사찰공화국과 전자주민증

  • 분류
    잡기장
  • 등록일
    2010/08/24 19:22
  • 수정일
    2010/09/13 13:02
  • 글쓴이
    진보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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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번호의 재앙이 주민증으로

 
훗날 이 정부는 '사찰공화국'으로 기억될 것이다. 시민들은 김종익 씨나 여당 소장파 의원들에 대한 국무총리실의 사찰을 두드러지게 기억하겠지만, 2008년 촛불집회 이후 정부에 비판적 의견을 게시한 네티즌들에 대한 사찰은 일상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얼마 전에는 방송사 뉴스게시판에 천안함 사건 관련 댓글을 올렸다가 경찰로부터 소환조사를 받은 네티즌이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가 지원한 이번 헌법소원에서 우리는 사찰을 위해 반드시 요구되는 정보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주민등록번호이다.
 
한국에서는 공공이나 민간 어느 영역에서건 주민번호를 알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주소와 기본적인 인적 사항은 물론 신용카드 사용내역과 인터넷 이용 기록까지. 지난해 12월 경찰은 전교조 교사들의 주민번호를 이용하여 민주노동당 사이트에 접속한 후 인터넷 투표기록을 열람하기도 했다. 특히 주민번호는 아무런 제한 없이 누구나 요구하고 수집하기 때문에 그로 인한 유출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2008년 옥션에서 유출된 것으로 확인된 주민번호만 1863만 명 분이다. 유출된 주민번호를 입수하면 누군가의 뒷조사가 어렵지도 않은 세상이다.
 
이 재앙은 주민등록제도의 태생 시점에서부터 예고되었는지도 모르겠다. 1962년 박정희 군사정권은 주민등록법을 제정하면서 "주민의 거주 관계를 파악하고 상시로 인구의 동태를 명확히 파악하여 행정사무의 적정하고 간이한 처리를 도모"한다는 조항으로 통제와 감시 목적을 분명히 했다. "주민생활의 편익을 증진시킨다"는 문구는 1997년 12월에야 삽입된 것이다.
 
1997년 12월 그 무렵 사상 최초의 여야 정권교체를 실현한 김대중 정부가 생각난다. 그 이후로부터 10년간 우리는 왜 주민등록제도를 손보지 못했을까? 아마도 주민번호를 통한 신원 확인 관행이 우리의 일상 생활을 너무나 오랫동안 지배해 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때마침 확산된 정보화로 인하여 원격으로 신원을 확인하고자 하는 수요도 커졌다. 다른 한편으로 국민을 출생시점부터 사망시점까지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식별번호의 존재가 정부로서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국가권력의 속성이다.
 
개혁 정부 10년과 전자주민증
 
국가권력의 속성에서 크게 자유롭지 않았을 지난 10년간의 개혁 정부가 그래도 주저한 것이 있다면 전자주민증의 도입이었다. 나는 김대중 정부의 시작을 "전자주민증 사업 중단"과 함께 기억하고, 이 지점에서 다른 권위주의 정부들과 개혁 정부를 구분할 수 있다.
 
1997년 12월 전자주민카드를 도입하여 운전면허증 등 다른 증명과 통합하는 법이 국회를 통과했었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국민의 프라이버시권 침해이고 막대한 예산이 소요된다는 반대 여론이 인권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격렬하게 일었다. 이들과 같은 이유에서 전자주민카드를 반대한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마침내 이 사업에 대한 중단이 선언되었다. 2006년 행정자치부는 삼성SDS 컨소시엄과 함께 다시 한번 전자주민증을 도입하려는 시도를 했었지만, 역시 반대 여론에 밀려 중단되고 말았다.
 
1997년 전자주민증의 핵심적인 문제는 '다목적성'이었다. 한장의 카드가 주민증도 되고 여권도 되고 운전면허증도 되고 건강보험증도 된다는 말은, 그 카드 주인의 주민등록정보와 여권정보와 운전면허정보와 건강정보에 다른 사람이 접근할 가능성이 이전보다 매우 높아졌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 대한 모든 사실을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전자주민증은 첨단감시사회로 진입하는 입구로 여겨졌다. 국가권력에 대한 시민적 통제가 의심스러웠을 당시, 감시사회는 더욱 민주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보였다. 지금 다시 전자주민증이 도입된다면 그때의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사찰공화국 완성할 전자주민증
 
그러한 의혹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이명박 정부가, 전자주민증 도입을 위한 기치를 높이 들었다. 지난 7월 8일 행정안전부는 10년 전 과거로 돌아가 전자주민증의 재추진을 공식화 했다. 과거와 달라진 점이라면 전자주민증의 형태가 '스마트카드'라 불리는 IC카드라는 것이고, 카드에 직접 모든 정보를 수록하는 방식이 아니라 온라인을 통해 정보에 접속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의 다목적성은 변함이 없다. IC카드는 다목적성을 위한 선택이다.
 
IC칩에 저장된 개인정보는 순식간에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리더기를 통해 복제되어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로 전송될 것이다. 앞으로는 수많은 행정이나 민간 서비스에서 주민증의 전자칩 인식을 요구할 것이다. 여기에 막대한 예산이 소모될 것도 불 보듯 뻔하다. 그러나 정보주체는 그것을 자기 의사대로 통제하기도 어렵고 그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잘 알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전자칩으로 인식되는 모든 장소는, 나의 모든 행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기록이 될 것이다. 온라인의 주민번호처럼, 오프라인에서는 전자주민증이 나의 모든 것을 추적할 수 있는 키가 될 것이다.
 
행정안전부는 전자주민증 도입의 필요성으로 위변조 방지라는 이유를 들이댄다. 하지만 위변조에 대처하는 정부의 자세는 다른 것이 될 수도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 국가신분증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의존도가 너무 크다는 사실이다. 주민등록번호가 남발되었기에 그에 대한 도용과 유출이 많은 것처럼, 주민증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기 때문에 위변조 되는 것이다.
 
주민등록번호의 경우 이제야 정부가 민간의 사용을 다소 제한하는 방식으로 수습하려 하지만, 이미 전 국민 대부분의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된 뒤이다. 전자주민증도 같은 전철을 밟으려는 것인가. 다목적으로 쓸 수 있는 전자신분증이 등장하면 그에 대한 위변조 욕구와 암시장도 활성화될 수밖에 없다. 주민증에 대한 수요부터 줄여야 한다.
 
주민증 수요부터 줄여야
 
물론 국가는 신분증 형식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꼭 IC카드여야 할 이유도 없다. 적어도 국민들이 요구한 것은 아니다. 전자주민증의 도입을 요구하는 이들은 업계이다. 업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스마트카드 신분증 시장의 확대를 위하여 전자주민증의 도입을 요구해 왔다. 국민의 프라이버시권에 대한 우려가 업계의 이해와 교환될 수 있는 것일까? 행정안전부는 누구를 위한 정부 부처일까?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정부가 국민들 몰래 전자주민증을 도입하려는 꼼수를 썼다는 것이다. 행정안전부는 5월 전자주민증을 염두에 두면서도 모호한 주민등록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였다가 법제처의 지적을 받고 7월 재입법예고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내용도 과정도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온 국민으로 하여금 스마트카드를 지참하고 다니도록 하겠다는 계획 앞에서, 아직까지 공청회 한다는 말 한마디 없다.
 
덕분에 국민들 대다수는 전자주민증이 곧 도입될 것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다. 이대로 우리의 프라이버시는 재앙을 맞을 것인가. 아니면 10년 전 그때처럼, 맞서 일어나야 할 것인가.
 
장여경 (진보네트워센터 활동가)
 
*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 2010년 8월(171호)에 게재한 글입니다.
http://www.cathrights.or.kr/news/articleView.html?idxno=4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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