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트 영역으로 건너뛰기

공부방 다큐..

 

132,133번 테잎을 보니 매우 느낌이 좋다.

가르치고 배우는 선생-학생이라는 건조한 관계 이외의 어떤 모습들이,

실제로 가르치고 배우는 틈 사이로 조금씩 비죽이 나오는 장면들이 눈에 띈다.

윤쌤에게 제주도에 살았다는 이야기를 하는 ☆☆이의 모습에서는

윤쌤의 서투름 같은 것이 보이는 것 같다.

윤쌤도 툴툴대고, ☆☆도 툴툴대는 성격이지만,

이런저런 일상을 겪으면서 그 안에서 관계를 만들어나간다는 느낌이 든다.

한글을 좀 늦게 깨우친 편인 △△이가 국어 문제를 한개밖에 안 틀린건 어찌나 기특하던지.

자기 자신도 뿌듯해 하는 얼굴이 참 귀엽다.

 

126번 테잎에서도 느꼈지만.

나는 이 즈음부터 아이들에게 현장 인터뷰 같은 것을 시도했었다.

음. 정말 제대로 된 인터뷰가 거의 없다.

 

132,133번 테잎에도 아이들 인터뷰가 잠깐 있다.

나는 ■■에게 끈질기게 물어보는데, 계속 내가 질문하고 싶은 것들에 다가가지 않는다.

나는 무엇을 질문하고 싶었는지도 잘 몰랐던 것 같다.

그저 조금 더 그 질문에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실패했던 것이었다.

 

촬영할 때는 못 알아들었던 중요한 단서들이 들린다.

♤♤가 ■■형네 집앞에 지나갔더니 방에는 불이 꺼져있고 거실에만 불이 켜져있었다.

방에 아무도 없었다는 이야기를 하자

■■가 그건 "엄마 혼자 밥 먹을 때"라고 말한다.

물론, 이 맥락상 ■■가 엄마랑만 산다는 건 전혀 알 수 없다.

 

엄마랑만 산다거나, 아빠랑만 산다거나, 할머니나 할아버지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하고만 산다는 것.

아이들에게 그것을 스스로의 입 밖으로 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나는 선생님들에게 아이들의 가정환경에 대해 대충 들었지만,

그런 삶을 상상할 수는 없었다.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몰랐다.

그리고 심지어, 부끄럽게도, 그것을 모른다는 것조차, 몰랐다.

사실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노력하지 않았던 것 뿐이었다.

 

추석즈음의 촬영분에는 아이들에게 친척집에 가는지, 용돈을 받는지,

내 딴에는 그런 '소소한 질문들'을 했다.

⊙⊙이와 ♧♧이는 친척네 가고, 용돈을 받는다고 했고,

■■는 안간다고 했고, 이번에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엄마가 화가나서 용돈을 안 주실 거라고 했다.

곧 해맑게 웃긴 했지만 장난치는 분위기였는데도 ■■는 잠시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그런 '소소한 질문들'을 던질 때 묘하게 불편했던 선생님들의 표정과 분위기들.

 

 

나는 촬영을 하면서 한번도 아이들 스스로에게 자기들의 가정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

(아, 딱 한번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놓쳤다. 물론, '제대로' 들었는지는 의문이다.)

 

소위 말하는 '정상가족'의 범주에 들어있지 않은 아이들.

가난한 아이들, 가난한 동네의 아이들.

아이 키우는 것의 대부분을 가족단위가 책임을 지는 한국 사회에서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돌봄을 받는 아이들.

어쨌든 한국사회에서 '복지'라는 행위가 갖는 시혜적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공부방에 다니는 아이들' 이라는 점을,

나쁜 한국사회를 유지하는 나쁜 말들 중에 핵심인 가족주의의 정곡을 찌르는 이야기라는 점을,

 

이 아이들이 바로 한부모 가정의, 조손 가정의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이 아이들이 바로 (비꼬며 말하자면)'복지혜택' 속에 있는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이 선생들이 바로 그것을 연결하고, 감싸고, 행위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그렇게 중요한 현실이 여기 들어있다는 사실을,

나는 너무나 크게 간과하고 있었다.

그리고 도피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의 촬영본은 헐겁고 가볍다.

어떤식으로든 그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드는데도,

현재 촬영본만으로는 그 이야기를 절대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편집도 다시 도피의 연속이다.

핵심을 찌르지 않고 간다.

 

나는 이렇게 저렇게 부딪치면서 일상을 지내고 있는

공부방의 선생님들과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만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나는 한국 사회에 이 사람들이 놓여져 있는 위치와 그것이 가져오는 차별과 상처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에 대해,

그리고 더 잘하고 싶어하는 이유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다.

 

아아. 그런데 그것을 이야기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너무나 협소하고 짧았고 너무 적었다.

그렇다. 이것을 말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 말하기 방식에 대한 고민이....

 

아마도 그냥 열심히 했다면,

아이들에게 다가가서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을 도피했던 것이다. 핵심으로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은 그런 이야기가 너무나 적어서, 그리고 너무 위험한 방식으로 전개될지도 몰라서,

이 상태에서 어떻게 진전시켜야 할지 모르겠어서,

안절부절하거나, 맥 없이 다른 이야기들을 만지작대고 있다.

 

내가 이 아이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충격.

타인에 대해 '말하는 사람'으로서 말하기 방식에 대한 어떤 지식도, 지혜도 없다는 것에 대한 충격.

 

아. 충격의 연속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