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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ITGEIST 1,2,3 :시대정신 1,2,3

  • 등록일
    2013/02/24 15:10
  • 수정일
    2013/02/25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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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ITGEIST: THE MOVIE 2007(시대정신1, 한글자막)

ZEITGEIST: ADDENDAM 2008(시대정신2, 한글자막)

ZEITGEIST: MOVING FORWARD 2011(시대정신3, 한글자막)

 

한 분이 제게 이 다큐영화를 추천하셨습니다. 그리고 트위터에  "이 글을 보신 분은 이 영화를 널리 퍼뜨려 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어구와 함께 추천하는 어구로 "커튼 속에 가려진 충격적인 진실!  진실을 아는 것은 두렵다. 그러나 알아야 한다." 라고 써놓으셨죠. 개인적으로 그 추천어구가 좋아서 인용하게되었습니다. 저는 수험생이라 볼 시간이 없으니 수능 끝나고나 보아야 할 듯 하네요.

[Joshua Lee]보수주의자님들, 무엇이든 알아보고 판단합시다.

  • 등록일
    2013/01/31 21:36
  • 수정일
    2013/02/25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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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내가 가장 관심있는 조직 IBT(국제 볼셰비키 경향)을 검색창에 쳐보았다. 한참 내리다가 재미있는 제목을 한 기사가 보였다. '각종 과격시위에 등장하는 좌파단체 다함께의 정체… ' 라고 나왔으며 서문에는 '연가시라는 유선형 동물이 있다.…그런데 좌파진영에도 이와 비슷한 조직이 있다. ‘다함께’라는 단체다.' 라고 나와있었다. '왜 IBT를 쳤는데 왜 다함께가 언급된 것이지?'라는 의문과 연가시라는 서문에 궁금해진 나는 기사를 눌러보았고 그 기사의 내용은 경악적이었다. 그 기사를 인용해보겠다.

 

 

 

각종 과격시위에 등장하는 좌파단체 ‘다함께’의 정체…

 

 연가시’라는 유선형 동물이 있다. 꼽등이나 사마귀 등에 기생하는 동물로 연못에 알 상태로 있다 물과 함께 숙주에 침투한다. 성장하면 숙주의 생식능력을 잃게 만든 뒤 뇌를 조종해 자살하게 만든다. 그런데 좌파진영에도 이와 비슷한 조직이 있다. ‘다함께’라는 단체다.

2005년 11월 부산 APEC회의 반대 시위, 2006년 5월 현역 군인들까지 폭행했던 경기 평택시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 반대 시위, 2006년 11월 서울 도심을 마비시켰던 한미FTA저지 시위, 2008년 4월 광우병 촛불시위, 2010년 11월 서울 G20정상회의 반대 시위, 2011년 5월 서울대 법인화 반대 시위, 2011년 7월 반값 등록금 시위, 2011년 11월 여의도 국회 주변에서 벌어지는 폭력시위. 이들 시위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이런 시위 때마다 종북좌파진영이 ‘범국민운동본부’를 꾸리는 것, 두 번째는 시위 때마다 ‘다함께’가 선봉에 서다시피 한다는 점이다. 공안기관은 ‘다함께’를 ‘민노당과 공생하는 단체’로 보고 있다. 하지만 광우병 촛불시위 때는 ‘다함께’를 비판하는 여론이 거세진 적도 있다.

 

‘다함께’는 누군가

 

‘다함께’는 국제 사회주의자(International Socialist)로 알려져 있다. ‘다함께’는 90년대 초반 ‘남한 국제사회주의 그룹(ISSK)’에서 시작된 단체다. 이들은 김영삼 정부 때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된 바도 있다.

‘다함께’는 2001년 민노당에서 갈라져 나온 뒤 ‘국제 사회주의자’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이때 운동권에서 훈련시킨 사람을 빼간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확한 인원이나 자금원, 실제 대표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현재 서울 주요 대학과 좌파단체에 회원을 숨겨두고 있다. 

다함께’ 소개를 보면 ‘국제 사회주의 경향(International Socialism Tendency)’의 한국지부라고 말한다. ‘국제 사회주의 경향’은 영국의 극좌정당인 ‘사회주의 노동자당(SWP)’을 근원으로 하고 있다. 이들에 동조하는 단체는 세계 24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겉모습일 뿐 실제로는 ‘국제 볼셰비키 그룹(IBT)’에 더 가깝다. ‘볼셰비키’는 폭력혁명, 철저한 중앙집권에 의한 조직 통제, 국제 노동자 계급의 폭력혁명을 통한 세계 공산화를 주장했다. 이는 곧 소련의 특징이기도 하다.   

‘다함께’와 비슷한 ‘국제 볼셰비키 그룹’소련, 북한을 ‘가짜 사회주의’로 보고, 우리나라나 미국은 ‘제국주의 자본가’로 본다. 이들에게 남북한 모두 ‘문제’지만 ‘혁명’은 남한이 먼저다.

실제 2006년 10월에는 북한 핵실험에 대해 “북한과 이란이 제국주의 세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핵무기를 가지는 것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고,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 때는 ‘국제 볼셰비키 그룹’은 “연평도 포격 도발은 남한의 도발에 대응한 것”이라며 “북한을 방어하자”는 성명을 발표했다. ‘다함께’도 마찬가지다. ‘다함께’의 통일론은 ‘남한에서 노동자 계급혁명을 일으켜 통일에 적합한 체제를 만든 다음, 북한이 계급혁명을 일으켜 통일을 한다’는 식이다.

 

정치포럼 ‘맑시즘’

 

이런 ‘다함께’에 대해 다른 종북좌파진영‘반북’ ‘이상주의’ ‘말이 앞선다’는 등의 이유로 비판한다. 하지만 ‘다함께’의 운동권 내부 영향력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다함께’는 2001년부터 정치포럼을 열었다. 처음에는 ‘전쟁과 변혁의 시대’였지만 지금은 ‘맑시즘’이라고 부른다. 지금까지 열린 ‘맑시즘’ 강의에는 강기갑, 노회찬, 심상정, 권영길, 이정희 등 정치인과 김수행, 정성진, 박노자, 박세길, 최갑수, 한홍구 등 좌파학자들, 광우병 촛불시위를 주도했던 사람들이 연사로 참가했다.

‘다함께’의 ‘맑시즘’ 포럼은 종북좌파진영의 주요 행사가 됐다. 지난 7월 21일부터 나흘 동안 열었던 포럼의 연사만 봐도 그렇다.

정성진 경상대 교수, 홍미정 건국대 교수,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김동광 시민과학센터 운영위원(고려대 교수), 이현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이호중 서강대 로스쿨 교수, 최갑수 서울대법인화반대공동대책위 상임의장(서울대 교수), 조헌정 향린교회 목사, 이종란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활동가, 한승동 한겨레 논설위원, 곽이경 민노당 성소수자 위원회 위원, 김정석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건설 공동실천위원회 위원, 김정훈 전교조 전북지부장, 일명 ‘고대녀’로 알려진 김지윤 고려대 문과대 학생회장, 방종옥 민노당 정책기획실장, 변창흠 세종대 교수, 원옥금 천주교 의정부교구 이주센터 베트남 여성 활동가, 이정훈 민노총 금속노조 유성기업 비대위원장, 이강택 전국언론노조 위원장 등 좌파 유력인사나 실세들이 ‘다함께’와 활동하고 있다.

 

소리 없이 좌파진영 침투하는 ‘다함께’

 

‘다함께’의 커진 영향력은 서울대 법인화 반대시위,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시위, 반값 등록금 시위와 한미 FTA 저지 시위에서도 잘 나타난다.

‘대학생 다함께’는 지난 9월 ‘반값 등록금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부실대학 구조조정과 퇴출에 반대하며 “모든 대학에서 무조건 반값 등록금을 실시하라”고 주장했다. 

이런 성명서에 좌파진영조차 “생각이 있는 거냐”고 비판했지만, 좌파단체들은 ‘대학생 다함께’의 성명에 반박은 커녕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물론 ‘다함께’가 배포한 ‘MB OUT’ 피켓과 구호도 그대로 사용했다.
충남 아산시를 시끄럽게 만든 유성기업 파업, 한진중공업에 쳐들어 간 희망버스 시위, 경찰까지 폭행한 한미 FTA 저지 시위에도 ‘다함께’는 끼어들었다. 이들이 빼먹지 않는 구호는 ‘이명박 정권 퇴진’ ‘썩어빠진 자본주의’ ‘노동자 세상 건설’ 등이다.

어떤 이는 ‘다함께’가 전국 수백여 개에 달하는 불법체류자 지원센터까지 ‘장악’했다고 주장한다. 불법체류자를 위한 ‘이주노동자 방송국’도 ‘다함께’의 영향력 아래 있다고 한다. 좌파 진영이 불법체류자를 ‘무등록 이주노동자’라 부르는 이유는 ‘다함께’가 추종하는 ‘국제 볼셰비즘 그룹’은 기존 정부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불법체류’라는 말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현실은 이런데도 종북·친북 좌파진영은 자신들이 ‘다함께’에게 먹히고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 “다함께와 같은 조직은 소수며, 조직도 돈도 없다”는 말만 ‘무한반복’한다.

연가시에 먹힌 곤충들은 스스로가 먹혔다는 걸 모른다고 한다. 지금 좌파진영은 ‘다함께’에 먹혀 휘둘리면서도 스스로가 극좌주의의 ‘노예’가 됐다는 것을 모르는 듯하다.

 

출처-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754

 

다함께가 국제 볼셰비키 경향(IBT)와 성향이 비슷하다고? 국제 볼셰비키 경향에 갓 관심을 가진 나도 다함께와 국제 볼셰비키 경향의 정치 성향이 다르며 서로 혐오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갓 관심을 가진 나도 그 정도를 알 정도라면 조금만 알아보았다면 그렇게 섣부른 판단을 할 수 있을지 기사를 쓰신 분에게 의문이다.  또한 '북한을 제국주의로부터 방어하자!' 라는 성명을 낸 국제 볼셰비키 경향을 종북 좌파로 보고 있다. 정치포럼 '맑시즘' 이라고 된 소주제의 첫 줄을 보면 "이런 '다함께'에 다른 '종북좌파진영'도 라고 써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말이다. 반북주의성향이 짙은 '다함께'는 물론이거니와 국제 볼셰비키 그룹은 북한을 방어하자고 주장하였으나 과연 북한을 맹신적으로 쫓는 경향을 띄었는가? 국제 볼셰비키 경향의 북한에 대한 입장 《북한을 방어하자》를 읽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국제 볼셰비키 그룹’은 북한(같은 의미에서 이란도)이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을 막기 위한 자기 방어 수단으로서의 핵무기를 보유할 권리를 방어한다. 우리 맑스주의자들은 김정일 정권에 대해 정치적인 지지를 전혀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과거 북한, 쿠바 등에서 자본가로부터 쟁취한 것을 지킬 것을 거부하는 자들은, 미래의 새로운 것을 싸워 얻을 능력도 없는 자들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출처-http://bolshevik.org/hangul/INDEX.htm

 

 위 글에서 국제 볼셰비키 경향은 북한은 방어해야만 하는 대상이며, 본받아야 할 대상으로 말하는가? 국제 볼셰비키 그룹은 '정치적 지지를 전혀(!)하지 않으면서'  라고 명백히 적어 놓았다. 뿐만 아니라 기사의 소제목 '다함께는 누군가'의 마지막 문단에서는 맥락을 깨고 특정 종북적 발언만 인용해 놓고 국제 볼셰비키 경향을 종북 좌파로 왜곡하여 보여주고 있다. 기사를 쓰신 분을 비롯해서 좌파, 혹은 사회주의에 편견을 가지고 계신 분께도 의문이 든다. 그들이 한 번이라도 좌파 지식인들이 쓴 글, 혹은 마르크스, 레닌, 트로츠키의 저서를 읽어보았는가? 부디 보수주의자들님께 좌파 혹은 사회주의자에 대해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Joshua Lee]유교 다시보기

  • 등록일
    2013/01/18 22:18
  • 수정일
    2013/02/25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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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교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수구적인 사상,  충(忠) 서(恕), 아랫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책임과 의무를 강요하는 사상, 삼강오륜, 장유유서, 부자유친, 부부유별, 예절과 형식을 중요시하는 사상  등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유교의 사상은 춘추전국시대의 계몽주의 사상, 오늘날의 사회주의 사상만큼 당시 시대에서 급진적인 사상이라는 것을 아는가? 그렇다면 제목에서 말했던 것처럼 유교를 다시 보도록 하자.

 공자의 사상은 과연 아랫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책임과 의무를 강요하는 사상일까? 우리가 흔히 충성(忠成), 충실(忠實) 등을 말할 때 충(忠)은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등으로 왜곡되어 해석한다. 그러나 공자는 논어(論語)에서 충(忠)의 개념으로 "자기가 서고자 한다면 다른 이를 세워주고, 자기가 도달하고자 한다면 다른 이를 도달하게하라 (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기욕립이립인, 기욕달이달인)"이라고 설명했다. 또 소극적 사랑인 서(恕)에서는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강요하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기소불욕, 물시어인)"이라고 설명했다.  충(忠)과 서(恕)에서 강조한 사랑에서  '자기'을 지배층으로 본다면 체 게바라의 명언 중  "진정한 지도자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따르도록 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이 자신을 따라잡도록 고무해 주는 자이다."를 연상시킨다. 즉, 아랫 사람들에게 책임과 의무를 강요하지말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아랫사람에게 베풀며 먼저 도달하게하며 자신이 하기 싫었던 일들을 아랫사람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본적이고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사실 우리 시대에 이 기본적인 것도 제대로 실천못하며 자신이 겪었던 비극들을 그대로 아랫사람에게 '베푸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공자는 극기복례(克己覆禮)에서 자신의 욕망을 이겨 사회 질서를 지켜야한다는 면에서 보수적인 면모를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는 말에서 너무 이상주의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

 

 공자가 말한 극기복례(克己復禮)를 시대상을 배경으로 되새겨보면, 당시 사회는 하극상(下剋上)의 상황, 즉 대부가 제후를, 제후가 제왕을 이기려하고 그 지위를 넘보는 상황, 사실상 주나라 봉건 질서가 무너져가는 현실이었다. ‘자기를 극복해 예로 돌아간다’고 할 때 극복해야 할 것은 하극상의 주체 또는 그러한 욕망이다. 돌아가야 할 예는 주나라의 전통적인 질서와 문화다. 극기복례는 결국 이런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전통적인 주나라 정치·사회·문화 질서가 흔들리면서 많은 이들이 본래의 사회적 지위와 신분에 합당하지 않은 욕망을 추구하고 있다. 주나라 정치·사회·문화 질서를 회복시켜야 한다.’ 극기복례에 관한 한 공자는 다분히 보수적인 모습을 지닌다. 공자의 정명(正名), 즉 이름의 뜻과 실제가 같도록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그렇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臣臣父父子子)는 것은 이미 정해진 각자의 신분과 지위를 넘어서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된다.(출처-네이버캐스트: 공자)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는 데에서 보인 이상주의적 어구는 현실주의적으로 생각했을 때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다면?' 이라는 의문을 품게한다.  이 이상주의적 어구에 대해 현실주의자인 맹자는 현실주의적인 해결방안을 준다.  맹자는 역성혁명(易姓革命)사상에서 왕이 왕답지 못하다면 왕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齊宣王問曰、 湯放桀武王伐紂有諸 孟子對曰、於傳有之 曰、臣弑其君可乎 曰、賊仁者謂之賊賊義者謂之殘殘賊之人謂之一夫聞誅一夫紂矣未聞弑君也.(제선왕문왈, 탕방걸무왕벌주유제 맹자대왈, 어전유지 왈, 신시기군가호왈, 적인자위지적적의자위지잔잔적지인위지일부문주의미문시군야.)

 제선왕이 물어 말하기를 탕이 걸을 제거하고 무왕은 주를 정벌하였다 하니 그런 일이 있습니까? 맹자가 대답해 말하기를 전하는 말에 의하면 있습니다. 왕이 말하기를 신하로서 임금을 시해하는 것이 됩니까? 맹자가 말하기를, 인을 해치는 사람을 적이라 이르고 의를 해치는 사람을 잔이라 이르며 잔적을하는 사람을 한 지아비라 이르나니 한 지아비인 주를 처형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임금을 시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맹자》 中에서)

 

 맹자는 제선왕이 신하가 왕을 죽여서는 되는 일인가라는 물음에 인을 해치는 자는 도적이라 하며 의를 해치는 자는 잔인한 자라고 말하며 도적질, 잔인한 일을 하는 사람을 '한 지아비'라고 말하며 무왕은 '한 지아비'인 주를 죽였지 임금을 죽인 적이 없다고 말함으로써 인의를 해친 자는 더 이상 임금이 아니니 처단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맹자는 또한 무항산무항심(無恒産無恒心)이라고 말하였다. 백성들에게 일정한 생업이 없다면 일정한 마음도 없다는 것이다.

 

 無恒産而有恒心者 唯士爲能 若民則無恒産 因無恒心 苟無恒心 放僻邪侈 無不爲已 及陷於罪然後 從而刑之 是罔民也.(무항산이유항심자 유사위능 약민즉무항심 구무항심 방벽사치 무불위기 급함어죄연후종이형지 시망민야.)

경제적으로 생활이 안정되지 않아도 항상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오직 뜻있는 선비만 가능한 일입니다. 일반 백성에 이르러서는 경제적 안정이 없으면 항상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항상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없다면 방탕하고 편벽되며 부정하고 허황되어 이미 어찌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들이 죄를 범한 후에 법으로 그들을 처벌한다는 것은 곧 백성을 그물질하는 것과 같습니다

[출처] 무항산무항심 [無恒産無恒心 ] | 네이버 백과사전 

 

 맹자의 사회에 대한 철학, 즉 백성이 일정한 생업이 있다면 더 이상 방황하지 않을 것이며 방탕한 생활을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복지개념에도 비슷한 개념으로 지금으로부터 약 2400년이나 앞선 경제사상이다!

 마지막으로 맹자의 토지분배사상을 보자.

 

 등나라 문공이 신하인 필전(畢戰)을 시켜 맹자에게 정전법(井田法)에 대해 물었다. "[…] 사방 각 일 리(里)의 토지가 한 단위의 정(井)이고 각 정의 넓이는 구백 무인데, 정(井)의 중앙을 공전(公田)으로 합니다. 여덟 가구가 각각 그 주위에 있는 백 무의 땅을 사전(私田)으로 합니다. 여덟 가구가 공동으로 공전을 경작합니다. 공전의 농사일을 끝낸 후에 사전의 농사일을 하는데, 이로써 야인(野人)이 군자(君子)와 구분됩니다. 이것이 그 대략적인 내용입니다."(등문공상3)

 

 한 리의 토지를 아홉 등분하여 중앙의 토지는 공동으로 경작하고 나머지 여덟 토지는 각각 나누어 경작하는 것이다. 이 토지분배사상을 보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토지를 공평하게 나누며 공동으로 경작하자고 주장하는 공산주의가 생각나지 않는가?

 유교는 백성의 정치의 중심이자 경제의 중심이라고 본 사상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의 손에서 나온다는 계몽주의 사상이 18세기에 나온 것을 생각한다면 서양의 계몽주의보다 유교사상은 2200년쯤은 앞선 사상이다. 유교가 보수적으로 보는 이유는 조선왕조가 정치이념으로 유교를 택했을 때 자신의 권력 보존을 위해 유교의 혁명적, 민본적 요소를 제외하고 삼강오륜, 삼년장 등 형식과 예절만을 아래 사람에게 가르쳐 자신들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썼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래 유교가 보수적인 사상이 아닌 혁명 사상이며 민본주의적인 사상임을 기억하자.

민중가요-《님을 향한 행진곡》

  • 등록일
    2013/01/05 16:21
  • 수정일
    2013/01/05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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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동영상이 경찰들이 시민들의 시위를 진압하는 장면이군요. 민중가요를 들어 심장이 뜨거워진 상태에서 경찰들이 시민들의 시위를 진압하는 장면을 보니 분노가 더욱 치밀어오릅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 12월에 작곡된 한국의 가곡이다.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사망한 윤상원을 기린 노래로서, 백기완의 시 〈묏비나리〉(1980년 12월)에서 가사를 따와 광주 지역 문화운동가인 김종률이 작곡한 것이다.

이 노래는 1980년 12월, 같은 달에 백기완이 지은 시 '묏비나리'를 가사로 하고 김종률의 곡을 붙여, 광주 민주화 운동 때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약하다 도청에서 전사한 윤상원과 1979년 겨울 노동현장에서 일하다 숨진 박기순(당시 전남대 국사교육학과 3학년)의 영혼 결혼식을 내용으로 하는 노래굿이 1982년에 제작된 음반 《넋풀이-빛의 결혼식》에 수록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그 뒤로 이 노래를 학생운동가와 노동운동가들이 부르면서, 제5공화국 당시 전두환과 정권에 반하는 상징적인 노래로 간주되어 금지곡이 되었다가, 전두환 퇴진 후 노태우 정권이 출범하면서 풀렸으며, 이후 운동권 외의 일반 시민들도 부르는 대중가요로 보편화되었다. 민주화운동은 물론 각종 시민사회단체, 노동단체, 학생운동단체의 집회를 시작하는 때에 '민중의례'의 일부로서 널리 불렸다. 또한 중국어를 비롯한 다른 언어로도 번역되어 불리기도 한다. 또한 대한민국의 대중 집회에서도 흔히 불리는 노래이다.

민주노동당에서는 애국가 제창 대신 이 곡을 당 행사에 부르기도 하였다.

 

가사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지식 및 가사 출처-http://ko.wikipedia.org/wiki/%EC%9E%84%EC%9D%84_%EC%9C%84%ED%95%9C_%ED%96%89%EC%A7%84%EA%B3%A1

 

 

 

 

민중가요-《인터네셔널 가》

  • 등록일
    2013/01/05 16:03
  • 수정일
    2013/01/05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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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48개국의 인터네셔널가입니다. 인터내셔널가를 듣는 것 자체로도  언제나 가슴이 벅차오르는데 세계 곳곳의 동지의 인터네셔널가를 들으니 감동이 몇 배입니다.

 

아래의 것은 한국어 버젼

민중가요-《적기가》

  • 등록일
    2013/01/05 14:07
  • 수정일
    2013/01/05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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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민중의 기 붉은 기는 전사의 시체를 싼다
시체가 식어서 굳기전에 혈조는 깃발을 물들인다
높이 들어라 붉은 깃발을 그 밑에서 굳게 맹세해
비겁한 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깃발을 지키리라

원쑤와의 혈전에서 붉은 기를 버린놈이 누구냐
돈과 직위에 꼬임을 받은 더럽고도 비겁한 그놈들이다
높이 들어라 붉은 기발을 그밑에서 굳게 맹세해
비겁한 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 기를 지키리라

붉은 기를 높이 들고 우리는 나가길 맹세해
오너라 감옥아 단두대야 이것이 고별의 노래란다
높이 들어라 붉은 기발을 그밑에서 굳게 맹세해
비겁한 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 기를 지키리라

[Joshua Lee]시험을 치르고 나서

  • 등록일
    2012/12/14 15:00
  • 수정일
    2013/02/25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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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기말고사가 끝났다. 시험기간동안 얘들이 공부하는 모습과 공부법을 보며 많은 한탄을 했다. 많은 얘들이 단 일 등이라도 올리려고 공부하는 모습, 그리고 시험을 치를 과목을 외우고 있는 모습... 시험이 끝나 한가할 때 이 모습의 문제점을 지적해보고자 한다.

 외움으로써 성적을 잘 치르고자 하는 모습을 보며 왜 한탄했는가? 물론 외움으로써 하는 공부는 그 즉시는 성적이 오르는데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험이 끝나고 나서 외운 내용은 머리 속에서 그 동안 기억했던 많은 양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동안의 공부는 성적을 위한 것이지 지식을 얻고자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조건적 암기법은 각 학문에 어울리는 교육법이 아닐 수도 있다. 다른 학문도 암기법이 잘못 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내가 다른 학문들에는 지식이 없어 각 학문의 공부법을 모름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내가 비교적 잘 알고 있는 사회, 정치, 역사, 철학 등의 인문학으로 예를 들어보겠다. 개인적으로는 그 어떠한 학문들보다 인문학에는 암기법이 치명적이라고 여긴다. 인문학은 지극히 주관적일 수 밖에 없는 학문이다. 정치같은 경우를 보자. 정치는 개인이 갖고 있는 정치성향, 가치관에 따라 똑같은 사건도 다르게 서술된다. 정치는 누구든 주관적이다고 여길테니 예시를 들지 않아도 될 듯하다. 인문학 중 가장 객관적이라는 역사마저도 그 사람의 가치관, 역사관에 따라 다르게 서술된다. 역사가 주관이 들어간다고?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1)그 사람은 우리나라의 군사력을 강하게 만들고 여러 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나라를 세계 열강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어느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었는데 그 나라의 한 청년에게 암살당했다.

 

(2)그 사람은 우리나라에 그 나라의 힘을 앞세워 많은 이권을 챙겨갔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나라는 그 나라의 식민지로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의 한 청년은 그 사람을 암살했다.

 

 독자의 눈이 예리하다면 (1)번과 (2)번의 '그 사람'은 이토 히로부미라는 것을, '한 청년'은 안중근이라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역사는 객관적이다는 말을 더 이상 하지 못할 것이다. 인문학 중 가장 객관적이라는 역사도 주관이 들어간다. 이처럼 인문학은 한 가지 사건을 두고 여러가지로 해석이 될 수 밖에 없는 학문이다.

 이러한 인문학을 하나의 책만 가지고 왜 가르치는 걸까? 그렇다. 단 하나의 가치관을 가르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금괴틀에 찍힌 금들처럼 학교에서 똑같은 가치관을 갖도록 보이지 않게 강요당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인문학을 그 어떠한 학문보다 암기법이 치명적이라고 여기는 이유이다. 암기법은 당장은 효과있겠지만 학습에 흥미를 떨어뜨리며 학문의 목적을 알지 못하게 된다.

 일등이라도 성적을 올리려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왜 한탄했는가? 교육은 공존과 인성을 가르쳐야지 경쟁을 가르쳐서는 안된다. 우리는 누구든 모두 소중하며 공존해야한다는 인식을 교육해야 한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인정할 사실이다. 그러나 단 한 사람의 머리를 짓밟으며 자신의 목적을 향해 돌진하는 사람들이 교육으로 얻는 것이 결국 무엇일까? 나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 목적을 향해선 수단간 방법을 가려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 하늘 위에서 하고자 하는 바가 다를 뿐이지 하늘로 나아가고자 한다. 그러나 머리를 짓밟으며 전진한다면 몇몇 힘이 강한 자, 머리 좋은 자들만이 저 하늘 위로 올라갈 수 있을 뿐 우리 모두가 나아갈 수 없다. 서로 손에 손을 잡으며 하늘로 나아가간다면 우리 모두가 저 하늘 위로 나아갈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짓밟으며 홀로 하늘로 나아가고자 하는가, 서로의 손을 잡아주며 모두 함께 하늘로 나아가고자 하는가? 그것은 독자의 선택에 달려있을 뿐이다.

체 게바라의 편지

  • 등록일
    2012/11/24 13:51
  • 수정일
    2013/02/25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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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하는 어머니,

 

 마침내 이곳에 와서야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다는 걸 느낍니다...... 하지만 일단 지난 여정을 말씀드려야겠지요. 가르시아와 함께 머물렀던 산호세[1]를 떠나 우리는 길의 닿는 곳까지 굴러 왔습니다. 이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 가르시아와 저는 족히 50킬로미터는 걸어와서 니카라과 국경 부근에서 작별을 고했거든요. 저의 발 뒤축은 엉망이 되었어요. 우리를 태워주었던 트럭이 강 바닥에서 뒤집히는 바람에 발을 다쳤거든요. 그리고 이곳에서 저는 베베라기-아옌데 형제를 알게 되었는데 그들은 자기들이 골수 페론 반대자들이라고 하더군요. 그들이 우리를 태워준 덕분에 우리는 다시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보스턴 대학이라는 커다란 마크만 본다면 그들을 미국인들로 착각할 거예요! 아무튼 우리는 아르헨티나 영사가 기다리고 있는 마나과[2]에 도착해 부모님들로부터 온 전보를 받았어요. 영사는 자기가 늘 이런 식의 선도자 역할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믿고 있는 것 같더군요.(영사는 부모님한테 돈을 부탁하라고 제안했습니다.) 사실 그 영사는 제가 완전히 녹초가 되어도 부모님께는 한 푼도 요구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어야 해요. 어쨌든 부모님께서 전보에 썼듯 제 건강을 위해서 건배나 하세요. 그 편이 훨씬 더 유익하니까........

 

 어쨌든 만사가 잘 해결될 거예요. 이곳에는 의사들이 부족하거든요. 혹시 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이 도시를 떠나 고대문명 연구에 좀더 몰두해 볼 생각도 있구요. 바이아블랑카[3] 못지 않게 평온한 곳이면서도 적잖은 외국인들과 더불어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연대감이 감돌고 있습니다.

 

 온두라스에서 날아온 것이 분명한, 해적 같은 비행기 한 대가 수도 위를 선회하고 가는 일이 며칠 동안(6월 15일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돈으로 고용된 용병들이 포격을 개시했습니다. 그 와중에 두 살 먹은 여자아이가 희생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국민과 군대를 하나로 단결시키기 위해서 이 사건을 철저히 파헤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에게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환자들이 악단을 조직했습니다. 아코디언을 켜던 사람은 오른손의 손가락을 모조리 잃은 사람이었는데 손목에 막대기를 고정시켜 손가락을 대신했답니다. 또 노래를 부르던 사람은 앞을 볼 수 없는 장님이었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제나름의 장애를 몸에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 모든 사람들이 희미하고 음침한 랜턴 불빛 아래에 모여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장면이 저에게는 이제까지 보았던 가장 아름다운 장면들 중의 하나로 남게 될 것입니다. 게다가 알베르토의 환송사는 얼마나 멋졌는지 듣는 사람을 거의 까무러치게 만들 정도였죠. 페론의 완벽한 후계자가 여기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니까요!

- 산파블로[4]의 나환자촌에서 어머니에게

 


 

 저는 예수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저는 힘이 닿는 한 모든 무기를 동원하여 싸울 겁니다. 저들이 나를 십자가에 매달아두게도 하지 않을 것이며 어머니가 바라시는 방식대로도 하지 않을 겁니다.

 

 쿠바의 젊은 혁명가로부터 그들의 혁명운동에 참여해 달라는 권유를 받은 지는 꽤나 오래 전 일입니다. 물론 저는 그 제의를 받아들였구요. 이제 저의 미래는 쿠바혁명과 떼려야 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것과 함께 승리하든가, 아니면 그것과 함께 죽는 길밖에는요. 저로서는 당장 이 감옥에서 나가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일다는 페루에 들어선 새 정부로부터 특별사면을 받아 조국으로 돌아가게 될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앞으로 연락을 자주 못 드릴 것 같군요. 멕시코 경찰이 남의 편지를 몰래 읽는데 재미를 붙이고 있는 것 같으니 아주 일상적인 얘기 외에는 쓰지 마세요. .......이 글을 작별 인사쯤으로 여겨주세요. 지나친 과장일지 모르지만 어쨌든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돌이켜보면 이제까지는 진정 제가 원하는 게 뭔지 모르고 엉뚱한 길만 걸어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도중에 저를 영원케 하는 한 여자와 함께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부터는 제가 죽더라도 슬퍼하지 마세요. 나치 히크멧의 시구처럼 말이지요.

"나는 끝나지 않는 노래를 부르며 슬픔을 무덤까지 가져가리."

여러분 모두를 사랑합니다.

 


 

티아, 티아, 티아(베아트리스 이모의 애칭), 유나이티드 프루트(그는 북아메리카의 체제를 한마디로 이렇게 불렀다)의 영토를 여행하는 동안, 저는 그들의 위력이 얼마나 막강한지를 새삼 획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문어발 같은 자본가들이 전멸되는 날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 맹세하였습니다. 저는 진짜 혁명가가 되겠다는 뜻을 실현시키기 위해 과테말라로 갈 것입니다.

 

 종종 의료업무를 수행하기는 하지만 제가 수입을 얻는 곳은 신문 등에 투고하는 글로부터입니다. 아울러 대륙 발견 이전 시대의 문화에 대해 강연도 종종 하고 있구요.......

 

 이모에게 키스를 보냅니다. 이모를 사랑해요. 배가 고프지만 쇠처럼 건강하며, 동시에 깨어 있는 미래의 사회주의자인 조카로부터.

 

 루스벨트가 씌워준 '선한' 얼굴의 가면을 쓴 양키들이 마침내 그 가면을 벗었습니다. 공군력과 현대장비로 무장된 그들의 군대와 재래의 방식으로라도 싸워야 한다면 우리는 그럴 것입니다. 지금 과테말라에서는 민중 정신과 진정한 투쟁의 열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저도 이미 의사 자격으로 긴급구호대에 지원했습니다만, 아무래도 군사훈련이 필요할 것 같아 청년 여단에도 역시 지원했습니다. ...... 들리는 바에 따르면 미국이 파견한 군사 고문단이 아르벤즈 대통령을 만나 만일 하야하지 않으면 이 나라가 쑥밭이 될 때까지 폭격해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고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에 동조하는 온두라스와 니카라과의 선전포고까지 가세하였구요.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과테말라 군부는 결국 대통령에게 사임 압력을 가했구요. 저는 이제 멕시코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저는 머지않아 발발할 무장혁명에 뛰어들 것입니다.

 


 

  우리를 보고타까지 실어다 줄 군용비행기는 2주일 후에나 도착한다는데 이 위기에서 구해 준 것은(그때 우리의 수중에는 한푼도 없었거든요) 우리가 축구 코치였다는 거짓말이었어요. 처음에는 직접 경기에 나서라고 할까 봐 은근히 불안했는데 그래도 운동장 밖에서 기술이나 가르치기만 하면 되려니 여겼죠. 그런데 막상 시합을 직접 시켜보니 선수들의 실력이 얼마나 형편없던지 결국 우리가 직접 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답니다. 헌데 가장 약체라고 알려진 우리 팀이 예상 밖의 선전을 거듭하여 결승에까지 진출한 거예요. 비록 페널티킥으로 지기는 했지만요. 알베르토는 정말 신들린 사람처럼 잘 뛰었어요. 페데르네라 처럼 공을 몰고 가서 자로 잰 듯한 패스를 줘서 팀 내의 기둥으로 떠올랐죠. 그리고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제가 기록한 골이 레티시아 시청 연감에 두고두고 남게 되겠지요.

-레티시아에서 가족들에게

 


 

 모님께

 

 사랑하는 두 분,

 다시 한 번 나의 로시난테[5]에 박차를 가해야 할 때가 온 것을 느낍니다. 방패를 챙겨들고 저는 다시 길을 떠납니다.

 부모님께 작별의 편지를 썼던 것이 어느덧 십 년이 지났군요. 혹시 기억하고 계시다면 제가 훌륭한 군인이자 좋은 의사가 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었다는 것을 아시겠지요. 저는 썩 형편 없는 군인은 아니기 때문이죠.

 본질적으로 변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의 마르크스주의가 더욱 깊어졌고 정제되었다는 점을 전보다 더욱 자각하고 있다는 점만을 제외하곤 말입니다. 저는 해방되고자 하는 민중들의 유일한 해결책은 바로 무장투쟁밖에 없다고 믿으며 이 신념을 일관되게 따를 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무모한 모험가로 여기고 있다는 걸 압니다. 물론 저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다른 형태의 모험가지요. 바로 자신의 진실을 지키기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내던질 수 있는 그런 모험가 말입니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길 기대하지만 논리적으로 따져볼 때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저는 두 분에게 마지막으로 포옹을 보내는 셈이지요.

 생각해 보면 두 분을 너무너무 사랑하면서도 저는 그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질 못했습니다. 저는 제 행동에 있어 지나치게 완강했고 더러는 그런 저를 이해하지 못하셨을 겁니다. 사실 저를 이해하시기란 쉽지 않으셨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만은 절 믿어 주십시오.

 이제 예술가의 희열로서 연마한 제 의지가 무뎌진 다리와 지친 폐를 지탱해 줄 것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저는 마지막까지 나아가겠습니다.

 가끔은 이 20세기의 난폭한 모험가인 이 못난 아들을 기억해 주시겠지요. 셀리아와 로베르토, 후안 마르틴과 파토틴, 그리고 베아트리스 이모에게 키스를 보냅니다. 모두를 사랑합니다.

 

 방자하고 고집 센 아들, 에르네스토

 


 

 아바나 농업 재건의 해를 기념하며

 

 델,

 

 이 순간 나에게는 많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마리아 안토니아의 집에서의 첫 대면, 당신과 함께 오자는 제의, 그리고 혁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그 모든 긴장들, 언제인가 누군가 우리에게 이렇게 물었지요. 죽어야 할 순간이 오지 않겠냐고, 죽어야 할 순간이 현실적으로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이 우리를 사로잡았었지요.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사실이었고 (어차피 그래야 한다면) 혁명 속에서는 이기는 자도 있으며 죽는 자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승리로 오는 길목에서 많은 동지들이 그렇게 쓰러져 갔습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그때만큼 극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더 원숙해졌다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현실은 반복되는 법입니다. 나는 쿠바혁명에서 내가 할 바의 몫을 수행했다고 여기며 어느덧 내 자신의 일부가 되어버린 당신과 동지들, 그리고 쿠바 국민들에게 작별을 고합니다.

 

 나는 당에서의 내 직책과 장관으로서의 직위, 대장이라는 계급, 그리고 쿠바 시민권을 공식적으로 내놓습니다. 쿠바와 나를 묶어놓을 어떠한 법적 구속력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유일한 끈이 있다면 또 다른 속성의 것, 즉 공식적인 문서로는 파기될 수 없는 것이겠지요.

 

 지나간 내 삶을 돌이켜보건대, 나는 혁명의 승리를 공고히 하기 위해 자부심을 갖고 일해 왔다고 믿습니다. 내가 저지른 유일한 큰 실수는 시에라마에스트라에서 투쟁하던 그 초기 시절보다 당신을 더 신뢰하지 못했다는 것과 지도자의 혁명가로서 당신의 역량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찬란한 날들을 살아왔습니다. 당신의 곁에 머물면서 카리브 해의 위기가 야기한 슬프고도 저 빛나는 시간들을 우리의 민중과 더불어 함께 했다는 사실에 긍지를 느낍니다. 그날들보다도 더욱 빛나는 시간을 가진 정치가는 없을 겁니다. 아울러 망설임 없이 당신을 따랐고, 당신의 사고방식에 내 자신이 기꺼이 따랐다는 점 역시 자랑스럽습니다.

 

 이 세계의 다른 땅에서 미약하나마 나의 헌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이 쿠바의 수반으로서 지고 있는 책임 때문에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작별하여야 할 시간이 온 것입니다.

 

 당신과 헤어질 생각을 하니 희열과 고통이 어지럽게 내 마음을 휘젓는군요. 여기에 나는 건설자로서 나의 가장 순수한 희망을 두고 갑니다. 그것은 내가 사랑하는 것들 중에 가장 소중히 여겼던 것이지요. 그리고 나를 친자식처럼 따뜻이 맞아주었던  쿠바의 민중을 두고 떠납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희망의 일부로서 계속 남아 있을 겁니다. 제국주의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막론하고 새로운 전장에서 나는 당신이 나에게 심어주었던 신념, 민중의 혁명정신, 가장 성스런 의무를 수행한다는 감정을 늘 지니고 있을 겁니다. 이것들이 있다면 아무리 깊은 상처라도 위로받고 치료될 수 있을 것입니다.

 

 거듭 얘기하건대 나는 쿠바혁명이 주었던 모범만은 제외하고 모든 책임으로부터 쿠바를 자유롭게 해주렵니다. 혹시 또 다른 하늘 아래서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면 나는 마지막으로 바로 쿠바 국민, 특히 당신에게 향할 것입니다. 당신의 가르침과 모범에 대해 감사하며 내 행동의 결과에 늘 확신을 갖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나는 혁명의 외부정책과 늘 일치해 왔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내가 어디 있건 간에 나는 쿠바 혁명가로서의 책임감을 숙지하고 그에 걸맞는 행동을 할 것입니다. 나는 아내와 자녀들에게 물질적으로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떠나지만 그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러는 것이 오히려 기쁠 따름입니다. 나는 그들을 위하여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국가가 그들의 생활과 교육을 충분히 책임져 주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이외에도 당신과 우리 국민에게 할 얘기가 산더미같이 있습니다만 한편으론 말이 필요치 않을 거라 느낍니다. 말로써 내 바람을 다 표현할 수도 없는 일이며 그런 말장난이 굳이 필요치 않다고 여기는 까닭입니다.

 

 승리를 쟁취하는 날까지, 영원히 전진! 조국 아니면 죽음을!

 나의 모든 혁명적 열정을 다하여 당신을 포옹합니다.

 체게바라

 


 

 녀들에게 보내는 편지

 

 사랑하는 일디타, 알레이디타, 카밀로, 셀리아 그리고 에르네스토에게,

 너희들이 이 편지를 읽게 될 즈음엔 나는 더 이상 너희들과 함께 있지 못할 게다.

 너희들은 더 이상 나를 기억하지 못할 거고 어린 꼬마들은 이내 나를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희들의 아빠는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했으며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던 사람이었단다.

 

 아빠는 너희들이 훌륭한 혁명가들로 자라기를 바란단다.

 자연을 정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기술을 정복하기 위해 많이 공부하여라. 그리고 혁명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우리 각자가 외따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점을 늘 기억하여 주기 바란다.

 

 특히 이 세계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행해질 모든 불의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웠으면 좋겠구나. 누구보다 너희들 자신에 대해 가장 깊이. 그것이야말로 혁명가가 가져야 할 가장 아름다운 자질이란다.

 

 늘 너희들을 다시 보길 바라고 있으며, 아주 커다랗고 힘찬 키스를 보낸다.

 

 아빠가

 


 

1966년 2월 15일 브라자빌에서

 

 

 랑하는 일디타에게

 

 오늘 너에게 편지를 쓰지만 너는 아주 나중에야 편지를 받아 보게 되겠구나. 어쨌던 나는 너를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네가 알아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네 생일, 즐겁게 보내기 바란다. 너도 어느덧 숙녀가 다 되었구나. 그러니 어린아이에게 하듯 우스갯소리나 하고 거짓말이나 하는 편지는 쓸 수 없겠지. 아빠가 아주 멀리 있고,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네 곁에서 떨어져 있을 거라는 사실을, 앞으로도 내 모든 힘을 바쳐서 적들과 싸울 거라는 사실을 너도 이젠 알아야 한단다. 이곳에서 내가 아주아주 하찮은 일을 맡았다고 해도 그건 아주 소중한 거야. 네가 항상 아빠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내가 너를 자랑스러워하듯이 말이야.

 

 우리 앞에선 끝없는 투쟁이 있음을 기억하거라. 네가 어른이 되었을 때 너 역시 투쟁의 대열에 끼어야 할 것이다. 어른이 될 때까지 가장 혁명적인 사람이 되도록 준비하여라. 이 말은 네 나이에는 많이 배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단다. 가능하다면 정의를 지지할 수 있도록 준비하거라. 나는 네 나이에 그러지를 못했단다. 그 시대에는 인간의 적이 인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네게는 다른 시대를 살 권리가 있다. 그러니 시대에 걸맞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동생들이 바르게 자라고 있는지 잘 살펴보는 것을 잊지 말고 그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라. 엄마를 꼭 안아주렴. 그러면 엄마도 너를 더 꼭 끌어안고 키스를 해줄 거다. 엄마의 키스가 우리가 서로 만나지 못하는 시간들을 채워줄 거야.

 

아빠가

 

출처-/blog.daum.net/shim808/7819393

 

체 게바라의 편지들입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말이거나 중요한 부분이다라고 여기는 곳에 밑줄을 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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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1]코스타리카의 수도

[2]니콰라과의 수도

[3]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주(州)에 있는 도시

[4]페루의 나병촌

[5]'돈키호테'가 타고 다니는 말

hasta siempre commandante che guevara

  • 등록일
    2012/11/24 10:28
  • 수정일
    2012/12/16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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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Aprendimos a quererte

우리는 당신을 흠모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①

desde la histórica altura

역사적 높으심을④

donde el Sol de tu bravura

당신의 용감함에서③

le puso cerco a la muerte.

죽음을 멈칫하게 만든②

 

Chorus: 코러스:

Aquí se queda la clara,

깊게 남아있습니다③

la entrañable transparencia,

투명성이②

de tu querida presencia,

당신의 존재가 갖는 소중함과①

Comandante Che Guevara.

지도자 체 게바라여④

 

Tu mano gloriosa y fuerte

당신의 영광스럽고 강한 손은③

sobre la Historia dispara

역사 속에서 빛납니다④

cuando todo Santa Clara

산타 클라라 계곡이①

se despierta par a verte.

당신을 보기 위해 깨어났을 때②

 

Chorus: 코러스:

Aquí se queda la clara,

깊게 남아있습니다③

la entrañable transparencia,

투명성이②

de tu querida presencia,

당신의 존재가 갖는 소중함과①

Comandante Che Guevara.

지도자 체 게바라여④

 

Chorus:

코러스

Vienes quemando la brisa

당신은 태우며 옵니다④

con soles de primavera

봄날의 햇살과 함께③

para plantar la bandera

깃발을 꽃기 위해②

con la luz de tu sonrisa.

빛나는 당신의 미소는①

Chorus: 코러스:

Aquí se queda la clara,

깊게 남아있습니다③

la entrañable transparencia,

투명성이②

de tu querida presencia,

당신의 존재가 갖는 소중함과①

Comandante Che Guevara.

지도자 체 게바라여④

 

 Chorus:

코러스

Tu amor revolucionario

당신의 혁명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①

te conduce a nueva empresa

당신을 새로운 약속으로 이끕니다④

donde esperan la firmeza

그리워하는 단단한②

de tu brazo libertario

. 당신의 자유로운 팔으로써③

 

Chorus: 코러스:

Aquí se queda la clara,

깊게 남아있습니다③

la entrañable transparencia,

투명성이②

de tu querida presencia,

당신의 존재가 갖는 소중함과①

Comandante Che Guevara.

지도자 체 게바라여④

 

Chorus:

코러스

Seguiremos adelante,

계속할 것입니다②

como junto a tí seguimos,

 우리는 당신을 따르는 것을①

y con Fidel te decimos:

그리고 피델과 우리는 선언할 것입니다:③

"¡Hasta siempre, Comandante!"

"잘가시오, 지도자여!"④

 

Chorus: 코러스:

Aquí se queda la clara,

깊게 남아있습니다③

la entrañable transparencia,

투명성이②

de tu querida presencia,

당신의 존재가 갖는 소중함과①

Comandante Che Guevara.

지도자 체 게바라여④

 

위 번역은 영어 번역을 참고했습니다.(사진출처 겸-http://en.wikipedia.org/wiki/Hasta_Siempre,_Comandante)

 

산타클라라의 체 게바라 기념 동상

 

저가 가장 존경하는 혁명가는 체 게바라입니다. 체 게바라에 대한 이 노래는 인터넷 공간을 돌다 우연히 발견한 것이고요. 물론, 일방적인 찬양이라는 느낌이 들어 마음 한 쪽이 다소 불편하지만요. 아스타 시엠프레의 원곡은 까를로스 푸에블라가 불렀다고 합니다. 원곡은 여기서 들으시면 됩니다.(http://www.marxists.org/subject/art/music/mp3/hasta_siempre.mp3)위 동영상은 나탈리 카르돈이 부른 것이고요. 나탈리 카르돈은 이 뮤직비디오 때문에 한 동안 논란에 휩싸였다고 하더군요. 

[Joshua Lee]11월 9일 학교 급식 조리원 파업에 대해

  • 등록일
    2012/11/07 17:34
  • 수정일
    2013/02/25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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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담임선생님께서 9일 날 급식조리원들이 파업하여 도시락을 싸오시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은 '그 사람들도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라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도시락 싸오기 귀찮은데' 라고 투덜거리는 아이들이 있었다. 나는 물론 '그 사람들도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라 생각하는 입장이다. 자신의 권리만큼 타인의 권리를 인정해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적 의식을 지닌 인민이 아닐까?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일어난 급식 조리원들의 영향으로 인해 다소 불편함이 있더라도 그것을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것으로 이해하고 그 정도의 불편함은 감내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또한 급식 조리원들도 노동 환경 조건이 어렵기 때문에 그것의 개선을 위해 파업을 한 것이지 아무런 이유없이 파업을 한 것이 아니다. 이 파업을 통해 급식 조리원들이 지금보다 나은 노동조건을 쟁취하기를 기원한다. 우리 모두 학교 급식 조리원들의 파업에 지지와 격려를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