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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에 대해서....

  • 등록일
    2004/08/16 02:02
  • 수정일
    2004/08/16 02:02

운동이라는 것을 지향하게 되면서 초기부터 들었던 생각이다.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진정성 과연 가능한 것일까?라는 의문은 늘 내 초미의 관심사였다.

타자와의 관계형성에서 조직화의 관계로 발전하기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타자 즉, 내가아닌 남을 조직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다.

 

내가 처음 설레이는 마음을 갖고 간 인천이라는 동네는 타자와의 관계에 대해 무척이나 각박한 동네였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특히 크게 문제로 작용하였던 것은 기존 현장활동에 진출한 학출들의 활동이 그들에게 있어 불신으로 각인되어 있기에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불신이라 함은 다름아닌 그들의 활동에 있어 언행일치가 되지 않고, 오래 현장에 머물지 못하고 활동을 정리하고 운동을 접은 이들에 대한 불신임이라 하겠다. 그렇지 않고 지역에서 자신의 위치를 굳건히하는 이도 많지만 그들은 그중에서 몇 남지않은 활동가들이다.



더욱 크게 작용하였던 것은 87년 민중의 당 그리고 91년 민중당의 활동에서 인텔리켄챠들이 보여준 무책임성이다. 그들은 실패의 요인을 면밀히 분석하기 보다는 그 당시 좌파내 분파들의 종파투젱으로 말미암아 사분오열되고 만다.

 

과연 이러한 과정에서 타자 즉 내가 아닌 다른계급에 대한 조직화 그리고 계급적 단결이 가능한가? 결코 가능하지 않겠지... 담배를 피고 있는 지금... 과연 난 인천 있을 당시 타자와의 관계에서 충실하였는가 반문해 본다.

 

노동자계급에 대한 신심과 민중에 대한 무한성을 갖고 운동을 지향해야 겠다던 포부는 지금 버거움으로 인해 중압감으로 작용하고 있다. 더욱이 지금 보여지고 있는 현실 태에서 과연 노동자계급성이라는 것은 어떠한 과정에서 태동하는가에 대한 막연함과 조급함이 죄여오고 있다.

 

거대담론이라 할 수 있는 사회구성체 논쟁은 빛바랜 앨범이 되어 책장에 쳐박혀져 있고, 좌파라고 자임하는 이들은 언어적 좌익성만이 강조되었지 실천적 행동에 대해서는 새 가슴이 되어 숨죽이고 있다. 그 똑똑하고 잘난 인간들은 어디에 꼭꼭 숨어있는지... 나 같이 무식한 놈도 운동이라는 것을 실천하지는 못하지만 운동이라는 지향성의 끝을 부여잡고 줄다리기 하고 있는데... 나보다 못난 놈들.... 앞에서 선동하고 실천하라는 그 당당한 말들은 거짓부렁이었단 말인가... 진정으로.... 갑갑하다.

 

수 많은 담론 속에서 편가르기에서 난 선택을 강요받았다. 아니 선택의 여지는 나에게 없었다 다만 조직이라는 그늘에서 운동이라는 것에 철저히 훈육되었다. 똑똑하다는 이는 늘 전술을 이야기하며 우리에게 무엇무엇을 하라는 지령만 내렸다. 나같이 몸밖에 없는 놈은 충실히 이를 이행하였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이라고 믿어왔다. 철저히... 젠장할.....

 

그렇게 나를 지도하던 놈들은 다 어디갔냐.... 살아있으면 대답해 다오..... 다들 친목모임에서 연봉자랑이나 하지 말고.... 그대들이 떠들었던 자리에 나와 당당히 왜쳐라.... 세상이 엿같다고... 노동자계급은 아직도 억압받고 있다고..... 나 같은 새가슴도 외치는데 그 당당하게 마이크 잡고 떠들던 니그들은 왜 잘난 주둥아리 조아리지 못하냐 쓰방새들아.... 그리고 제발 나에게 전화하면서 모임에 나오라고 종용하지 마라.... 나 그자리 가면 구토할 것같다. 그 수많은 무용담에 난 기절초풍할 것 같다. 뭐 이리도 할 말이 많은지.... 정작 세상이 바뀐것에 대해 아무런 말 없이 함구하면서 과거에 대해서는 그토록 말이 많은지... 제발 앵무새처럼 살지는 말아라.... 그래서 현재와 미래가 중요하지 않을까....

 

난 낀 학번이라 선배들에게 쥐어터져 후배들에게 압박받아... 학교다니면서 뭐이리도 지킬게 많은지.... 욕먹어가며 지켰건만.... 후배라는 자식들 배신탱겨... 아유 열받아.... 그래도 느그들 처럼 뒷걸음 치진 않았다. 내가 정파는 선택하여 운동을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 정파가 야그하던 것에 대해서는 충실하고자 하였다. 그게 나에겐 실천의 태였고, 남들이 말하는 혁명이라는 것에 대한 순수성이였다. 남들은 스탈린 관료주의 실패가 소련의 붕괴를 낳았다고 한다. 그러나 한번보자.... 그들이 낳은 실패의 요인이 단지 스탈린주의의 오류만이 문제였나... 그리고 맑스-레닌주의가 낡은 구도인가? 난 아직도 폐기하지 않았다. 시인 백무산은 강령이라는 시에서 강령의 원칙성에서 강령은 변함없음을 말하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구좌파라고 욕먹어도 좋다. 제발 혁명 비스무리한것이라도 해봤으면 한다.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양산되고, 명동이주노동자 농성이 300일을 넘어서고, 각종 현장에서 노동귀족들이 판친다는 언론보도에서 노동자들은 죽음을 강요받고 있다. 이들에게 희망이라는 것이라도 주었으면 좋겠다. 제발 어려운 학자 이름과 이론을 천명하기전에.... 그들의 실천에 다가가 손이라고 내밀어 다오....

 

타자에 대한 조직화를 이행하기전 자신이 타자가 되어봐라.....

 

이전에 비하여 많은 부문영역이 확장되었다. 이는 시민사회의 확장이라는 수식어를 달며... 사회내적으로 확대되어져 갔다. 그런데 과연 확대되었냐.... 시민사회의 동력이 무엇인가 면밀히 보자.... 전문성과 왕성한 활동성... 그런데 여기서 제일 중요한 요소가 빠진다. 대중 즉 노동자 민중들이 이 활동 속에서 포함되고 있지 못하다. 그리고 그들과 공유할 간결한 슬로건을 찾기란 용이하지 않다. 아 원효처럼 당나라 유학길 무덤가에서 해골에 고인 물이라도 먹어야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면 나도 유학길에 올라 고행을 통해 진리를 찾건만.... 용이하지 않다. 원효의 짧막한 나무아미타불은 민중누구나 그 어려운 염불을 배울 필요없이 개인 해탈의 경지를 도달하게 하였건만... 우리에겐 이러한 구호나 슬로건은 용이하지 않다. 또한 단체간의 연계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사안별 공동체는 존재하나 단체간 일상적 활동공조는 용이하지 않다. 철저히 단체간에 있어서 배타적인 문화가 확대재생산되고 있다는 판단이 든다. 우려점이다.

 

쉬운 진리... 나를 내세우기전 왜 타자에 대한 배려는 없는가? 단체간 연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안별 연대가 아닌 운동 담론 형성을 위한 활동가 중심의 상설연대(영역이 아닌 전반적 운동을 필두로한...)가 필요하다. 그리고 전국민중연대라는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개인보다는 집단이 중시하는 사회에서 개인과 타자의 배려는 기대하기 어렵다. 개인주의의 잘못된 호도도 한 몫하고 있다.

 

나는 과연 노동자계급 처럼 절박한가?

활동하는 이들 대부분 노동자계급(지금의 기준은 모호하지만 아마도 경제적 삶이 주는 중압감은 노동자계급의 상태와는 다를 것이다.)이 처한 조건과는 다르다. 비록 적은 상근활동비에 활동을 지향해야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우린 그들보다 돈을 쉽게 벌수 있지 않은가? 내가 알고 있는 사람(정치조직에서 일하는 이들은... 그렇지 않은지도 있지만)들 대부분이 논술강의를 통해 일년 활동비를 충당한다. 꽤 잘나가는 강사의 경우 비용이 짭짭하다. 이렇듯 자신의 육체노동을 통해 임금으로 교환되어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지 않는 한 노동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활동이 각박하다고 하지만.... 내가 활동을 잘 못해서 그런지 나에게 이렇게 블로그라는 것에서 글을 쓸 시간적 여유가 많다. 그리고 출근시간에 대한 강박관념도 없다. 현장에 있을 땐 매일 술을 떡이되도록 먹었던 야근 철야를 하였것 임금삭감되지 않기위해 아침 6시 기상하여 7시까지 출근을 하였다. 그들에게 임금이란 그런 것이다, 비가오나 태풍이 부나 어김없이 현장에 출근해야하는 것... 어떠한 변명도 없다. 작업량이 많았다는 논리는 자본 앞에서 통하지 않는다. 그들도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지각3번 하루 임금 삭감으로 대처하고 지각이 빈번하면 시말서 제출 그리고 개선되지 않으면 퇴사이다. 이러한 굴레에도 이들은 현장활동(현장조직의 범람이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현장활동가들이 풀어내야 할 문제이다. 정파운동이 분파로 나가지 못하고 종파주의로 치닫았던 문제점이 현장조직의 대립으로 그대로 이어졌다.... 쓰발)이라는 것을 실천하고 있다. 

자본은 철저히 돈과 규정으로 노동자들을 통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통제에 노동자들은 순응하면서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낸다. 불법이라고 호도되어도 실천한다. 노랫말 처럼 노동자가 한다면 한다라는 말은 여기서 도래하지 않았을까....

 

오늘 하루 난 타자를 바라보면서 과연 향후 운동은 어떻게 지향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해보았다. 그런데 나도 모르겠다. 다만 내가 초기에 운동을 입문하였을때 비록 사회적 의제와 범위는 제한적이었으나 운동하나는 명확했다는 것은 각인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 명확성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아는 이 있으면 누가좀 가르쳐 주소....

 

그냥 밤에 잠이 오지 않고 쓰던 글 날라가서 그냥 잡생각을 끌적여 봄....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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