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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맹이 한움쿰...

  • 등록일
    2004/08/07 15:09
  • 수정일
    2004/08/07 15:09

10월의 마지막날을 사무실이 인접한 버드나룻길(영등포 로터리부터 당산중학교까지나 있는 도로)에서 분노를 삭히며 보냈다. 간만에 도로를 점거하고 짱돌을  던지며 공권력에 항거해 보았지만, 투쟁을 준비하지 않고 맞이한 집회에서 무기력한  패배의 쓴잔을 마셔야만 했다.  그날 저녁 난 아침 7시까지 술독에 빠져 나의 무기력함만을 책망해 보았다. 이도 몸만 축날뿐 나의 갈증은 채워지지 않았다.


무엇때문에 그토록 갈증이 나는지.... 가슴과 목이 타들어가는 조급함에 난 초조하게 10월 마지막과 11월 첫날 아침을 맞이하였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있는 날이라 10월 31일 오전 9시 30분에 출근을 하여  인터넷생중계 장비를 챙기고 서대문로터리에 위치한 드림시네마(옛 화양극장)에 도착하여 인터넷생중계를 오전 5시까지 진행하였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의 회의장면.... 학생운동을 하였던 과거와 바뀌지 않는 회 체제내의 모순을 흠뻑 느끼면서.... 과연 그들이 노동운동의 미래를 짊어지고 있는가는 반문이 들게할 정도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회의는 정세와 무관케 돌아가고 있었다.
 
치열하였던 노동운동의 기풍은 부피가 더하면서 회 체계의 틀에 갖혀 있음에  안타까움을 느꼇고, 내 현장이 아니기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 않는 대의원들의 모습에 서글픔을 느꼇고, 열사의 죽음에 복받쳐 오는 분노를 대의원대회 장소에서 내내 들었다. 나의 분노가 이러한데 현장에서 현장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현장활동가  심정은 어떠했으랴.... 상상만 해본다. 근로복지공단 광주지부장이었던 이용석  열사의 죽음 소식을 접하자!!! 참관석에 있던 중소영세사업장 노조위원장의 제안 묵념을 하고 대의원대회를 진행하자라는 말에 왜 민주노총 대의원들은 묵묵 부답이었을까?

추모를 하고 나면 대의원대회 안건이 부결될까봐 아니다. 그들에겐 열사투쟁보다는 단사에서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가늠할까하는 노조 관료주의의 찌든 병폐가 작동하였기 때문일 것이다.(이는 현 민주노총 대의원 배석의 문제로 확연히 들어난다. 민주노총의 경우 대의원대회에 참석하는 파견대의원의 경우 조합원 200-300명당  1명의 파견대의원 선임권을 주기에 대공장노조의 경우 다른 노조보다 민주노총 대의원 수가 많다는 것이다. 이는 현 민주노총의 각 업종별 산별노조 건설에 있어 이전 소산별과 대산별 건설에 있어서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소산별을 중안시 하였다면  아마도 노조에 있어서 동일한 대의원 수를 배당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지 못하고 대산별로의 전환을 통해 대공장 노조의 횡포-일부노조-가 비일비재하게 지역판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우린 주지 할 필요가 있다. 학생운동의 경우 이러한 폐단을  없애기 위해서 전체학생대회(아니면 전체학생대표자대회인가?)로 전환하고  대의원대회를 폐지하였다.)
 
추모를하고 대의원대회를 진행하면 뭐 대의원대회 위상에 존폐가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민주노총의 회 중시 풍토는 열사정국의 정세를 반영하지 못하였다. 회 운영 묘를 살리지 못한 의장의 모습이 애처럽기 그지 없었다. 왜 꼭 회의를 마치고 묵념을 하여야 하는가? 결의를 못하더라도 준비된 노조를 중심으로 투쟁을 전개하지 못하는가? 선엄적 노동운동의 한계에 나의 무기력함에 더욱더하고 대의원대회를 진행하자라는 말에.... 왜 민주노총 대의원은 침묵하였는가? 아쉽다. 동지애는 노래의 구호로 대치될 수 없으며, 그 어떤 상징으로도 평가될 할 수 없건만 행동을 요구하는 동지들의 구호에 언쟁이 오고가는 모습은 그리 보기  좋지 않은 모습이다.


자명히 실천해야할 이 마당에 현장상황만을 되내이는 현장간부의 모습이라니..... 참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내가 현장활동가가 아니라 쉽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라는 나름의 위안은 해보지만 속이 타들어가는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열사들의 죽음에 우린 무엇으로 화답을 해야 하는가?
막연하게 나마 이러한 생각만을 하게 된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  하나.... 그러나 답은 자명하다. 이 땅에서 그토록 치떨며 외쳤던 열사들의 구호 "비정규직 철폐", 손배가압류 폐지, 노동탄압 중단, 노동자 총파업투쟁으로  노동해방 세상을 열어제끼자라는 열사들의 외마디와 절규..... 전태일 열사가 청계피복 어린 여공들의 노동탄압에 분노로 항거하였던 시간이 벌써 30년이 지난 시점인 지금...


이 땅의 노동자들은 전태일 열사의 분노와 같은 함성을 온몸으로 내지르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아무것도 변한게 없는 노동자의 현실이기에....
 
혹자들은 대안없는 총파업투쟁을 어떻게 전개하냐라는 반문들을 하며, 무조건적 과격한 행동을 삼가하고 실리적인 측면을 부각하며, 현 노동정세를 돌파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실리는 노동자들에게 또다른 죽음을 종용하는 타협의 수단일 뿐이다. 무조건적 총파업.... 언제 노동자들이 계획을 갖고 투쟁을 전개한 적이 있는가? 자본의 칼날에 항거하기 위해 구속 수배, 백골단 폭력을 감수해 가며 투쟁을 하였던 것이다. 이 투쟁이 점차 대오가 많아지면서 투쟁전술이 나온것이지.... 과격한  행동을 목적으로 삼고 투쟁을 한 적이 없다. 이들의 투쟁은 생존이라는 굴레의 생과 사의 갈림에서 필연적으로 선택한 방어수단에 불과하다. 이러한 이들을 폭력, 불온세력으로 몰아붙이는 자본의 의도가 더 불손하고 불온하지 않는가? 대화는 언제나 노동자들의 투쟁에서만 사측이 마지못해 선택하는 최후의 수단일 뿐이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힘을 과시하지 않으면, 자본은 한번의 칼날로 노동자들의 수족을 모두 잘라 버린다. 한진중공업, 세원테크 위원장의 자살과 분신에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정당한 파업투쟁이 불법으로 매도되고, 파업투쟁을 한번하면 구속 또는 해고자 신세로 전락하는 노동자들의 현실.... 죽음보다 더  무서운 공포였으리라.....
 
난 10월의 마지막을 길거리에서 돌맹이 한움쿰을 깨뜨리고 던지며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노조 이용석 광주지부장의 죽음에 분노하며, 공권력에 항거해 보았다.  그러나 나의 힘은 미약하였다. 또한 몸도 예전같이 않아 돌 몇번 던지면 팔이 아파할 정도의 통증이 났다. 나의 한계이다. 나의 현실이고..... 이렇게 열사를 보내면 안되는데 하는 관념은 존재하나 나의 몸은 그렇지 못하였다.

공권력의 장난에 놀아난 그날의 집회.... 이 치욕 결코 잊지 않으리라... 다짐만해 본다.
 
내 힘을 낼 수 있는 동안 돌맹이 한움쿰 양손에 쥐고 공권력 하수인의 면상에 퍼부어 낼 결의를 다짐해 본다. 열사 정국에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실천이기에...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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