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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열사들.....

  • 등록일
    2004/08/07 14:58
  • 수정일
    2004/08/07 14:58
연이은 자살보도가 언론을 통해 타전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노동현장에서 굴욕의 노동을 강요받던 노동자들의 분신, 자살정국 또한 올들어 간간히 들려온다.
 
태풍 매미때에도 골리앗에서 한진 사측과의 성실교섭을 요구하며 투쟁의지를 굽힘없이 전개해온 한진중공업 노동조합위원장은 태풍의 강인함보다는 자본의 악랄함에 투쟁의 의지를 굽히고 노동열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오늘자 신문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1970년 전태일열사의 외침이 아직도 이  땅 천만노동자들의 가슴속에 있는데.... 무엇때문에 노동열사가 되어야 하는가? 투쟁이 힘겹다 못해서 그런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마지막 선택 그 안엔 노동자 하나하나에 대한 진심어린 신심이 있었기에 그러한게 아닌가 추론해 본다.


올초 배달호 열사의 분신.... 현장에와도 재미가 없다라는 짧은 말과 유서 글  현재 노동현장의 상황이다. 그러나 이 노동상황을 우린 무엇으로 돌파하고자 노력하지만 견고히 버틴 자본과 정권은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를 내세워 노동자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IMF 경제위기 후 찾아온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은 노동현장에서 근무한 노동자라면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이는 죽음의 서막에 지나지 않았다. 이후 불어닥친 구조조정을 앞세운 정리해고 정국은 많은 노동자들을 정든 일터에서는 물론 이승의 삶을 접게 하였다. 많은 노동자들의 분신, 자살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났는가?
 
우린 노동열사정국에 무엇을 하였는가?
노동열사의 죽음은 열사만의 죽음이 아니었다. 1천만 노동자들의 죽음이었다.  이 죽음엔 우린 과연 무엇을 하였는가? 91년 한진중공업 위원장이었던 고 박창수열사 정국과 지금과는 다르다. 1천만 노동자들의 아니었지만, 선진노동자들의 분노어린 절규 그리고 안양시내를 관통하는 박창수 열사 사수투쟁이 굴과 12년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린 배달호 열사 그리고 오늘 소식을 접한 한진중공업 위원장의 죽음에 대해 아무런 힘을 결집시키고 있지 못하고 있다. 이도 그럴 것이  지금시대를 살고 있는 노동자들이 처한 조건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정리해고라는  무기를 든 자본은 언제든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 수 있는 지위를 확보하고  있고, 정권은 법제도라는 명분을 앞세워 노동자들의 죽음을 종용하고 있다.

열사들의 절박함이란 다름아니다. 노동자가 자본과 정권에 대항하지 않으면  지난 날 선배들이 쌓아온 노동운동의 힘이 퇴조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을 산화해가면서 노동운동의 횃불로 승화한다. 노동자들을 사랑하기에 아픔을 머금고 황천 길을 홀로 걸어가는 것이다. 더이상 있어서는 안되는 그 길을..... 시간이 지나면 아픔이 사라지는 현실이지만 지금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극단의  방법을 선택한다. 열사정국이 도래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노동자의 열사정국을 우린 노동자들의 총자본과 정권의 대항투쟁으로 만들어 내고 있지 못하다. 과연 무엇때문인가? 과거에 비해 노동운동이 개별화 파편화 그리고 조합주의 시각을 벗어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곧 노동운동의 총단결 총투쟁이라는 단결투쟁의 원칙이 개별노조의 조합주의로 환원되고 있다는 것 이다. 이를 극복하고 현 노동열사정국을 전체노동운동 투쟁으로 만들어야 한다.

열사여 고이 잠드소서....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많다고 나는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노동열사... 그리고 무수한 열사들 소식을 접하고 나서는 살아갈 날이라는먼 미래에 대한 삶의 희망이 있을까? 반문해 본다.


짧지만 세상에 대한 인식을 하고 살아오면서 많은 열사들의 모습을 보았고,  그들의 이승에서의 마지막 길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지금은 이 또한 허락치 않는 세상이다. 노동해방 세상이 금새 올줄 알았지만, 노동해방은 우리에게 먼 미래 그리고 언젠가 올 희망의 세상인지 의구심 또한 든다. 열사들이 무수히 배출되고 있는 지금의 정국에 우린 너무 쉽게 무너지고 있지는 않은가? 투쟁보다는 타협을  선호하고 있는 지금 노동운동의 조건에서 과연 열사가 고이 잠들수 있을까?

우리는 투쟁으로 화답을 해주어야 한다. 명백한 투쟁에 우린 그동안 무기력함  나약함을 단번에 날려 노동해방 깃발을 나뿌끼며 수세적 투쟁에 공세적으로  대응하여야 한다. 집회는 짧게 투쟁은 길게라는 선명한 투쟁과제를 선정하여,  타협으로 잃어버린 용기와 노동해방 정신을 되찾아야 한다. 우린 투쟁으로 열사의 마지막을 노동해방 횃불로 승화시켜야 한다.
 
타협과 회유에서 벗어나 투쟁의 현장으로....
그동안의 노동운동의 타협 그리고 무수한 투쟁 철회를 위한 회유로 점철되어져 왔다. 투쟁해서 패배를 한번이라도 해봤으면 좋겠다는게 나의 속내이다. 그러나  기존 노동운동의 패배를 너무 두려워한 나머지 용기 있는 투쟁은 커녕 파업투쟁 고양시기 투쟁을 정리하여 선진노동자들로부터 빈축을 샀으며, 노동운동의 전투성을 심각히 훼손하였다. 혹자들은 노동자 투쟁에 있어 과격투쟁이 대안이 아니며 구시대적 산물이라는 비판하지만 노동자들의 절박함을 방패와 곤봉으로 가로막고 있는 것은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과 정권임을 알아야 한다. 평화를 보장하지 않기에 시위가 과격화된 것이지.... 시위가 과격하기에 공권력이 과격한 행동은 한다는  것은 문제라 할 수 있다. 노동자들 스스로가 지켜내지 않으면 누구도 노동자들을 지켜줄 수 없기에 노동자들은 투쟁으로 나서는 것이고, 정당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길거리로 나서는 것이다.

기존 국민대중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는 노동자 투쟁의 대중적 확장을 가져올 것이라는 일부 노동조합 간부들의 생각이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린 되살펴 봐야 한다. 이는 노동운동의 대중성에 얼마나 심각한 훼손을 하였는지를.... 노동운동 이건 노동자가 대다수인 이 땅에서 온전한 정신을 갖고 있는 노동자라면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여져야 한다.


 타협과 기회를 넘어선 현장강화로 열사 정국투쟁의 횃불을 들어야 할 때이다.
 
 P.S 저를 비롯한 노동운동을 지향하는 모든이가 눈물 흘린 자격이 있는지  반문해  봅니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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