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서의 사색.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색'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기수'와는 더욱 연관짓기 힘든 이 아름다운 말, 생각, 편지들...
그것은 한마디로 감동이었다. 학업에 시달려 맘 편히 책을 손에 잡아 본 것이 벌써 옛날인 듯 한데, 한 글자 한 글자가 머릿속, 아니 마음속에 박혀 세상을 다시 한 번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독후감을 쓰기 위해 이 책을 샀을 때, 처음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얇다더니 뭐 이리 두꺼워~" 라는 비명 섞인 한숨이었다. 게다가 몇 년 전인가 「사형수가 어머님께 남기는 글」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 책은 온통 '푸른 하늘이 그립다','이제 다시는 보지 못할 이 세상'과 같은 말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러니 당연히 이 책도 어두운 말들로 가득 차 있겠거니 하는 생각에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 장 한 장 책을 넘겨 가면서 나는 어느새 감옥에 들어앉은 수인이 되어 있었다. 그 좁은 방 구석구석 묻어 있는 그의 생각에 공감하면서.
20년이라는 긴 긴 세월을 그는 어떻게 버텨 왔을까. 내가 살아온 시간보다 더 많은 날 동안 어두운 감옥에서 청춘을 보낸 사람. 어쩌면 그 곳이 그를 이만큼이나 성숙시켜 주었는지도 모른다. 봄과 가을이 없어 '하동하동'의 반복이라는 감옥에서 오히려 부모님을 염려하면서 빼곡히 채워 넣었던 작은 엽서들이 이제와 나에게도 '사람'을 만날 수 있게 해 주었다. 쇠창살의 풀 한 포기에 감사하는 그의 맑은 마음을 대하면서 뭔가 모를 찡함이 자꾸만 느껴졌다. 책을 읽다 말고 문득 창 밖을 보니 벌써 불그레한 가을이었다. 눈만 돌리면 이렇듯 가까이 있는 가을의 향기를 왜 나는 느끼지 못했을까.
감옥의 조그만 창으로 본 가을을 이처럼 간절하게 표현하는 사람도 있는데 말이다. 여지껏 난 세상을 제대로 바라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모르고 지나쳤던 모든 사물-심지어는 천장의 먼지 하나까지도-이 내가 느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내가 앞만을 보고 달려왔던 것은 아닐까. 아니, 주위에 있던 것들은 일부러 보지 않으려 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성취해야할 목표를 위해, 방해되는 것은 잊어버리자는 생각 때문에... 이 책에서 무엇보다 놀랐던 점은 그의 감옥에 대한 생각이었다.
-육순 노인에서 스물두어 살 젊은이에 이르는 스무남은 명의 식구가 한 방에서 숨길 것도 내세울 것도 없이 바짝 몸 비비며 살아가는 징역살이는 사회·역사 의식을 배우는 훌륭한 교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방의 기쁨이란 새로운 사람들과 또 그들의 아픔을 만나는 일이라고 할 만큼 그는 그곳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감옥'이라면 으레 떠오르는 욕설과 폭력이 그의 글에 나타나지 않은 대신 세상 사람에게 소외당하고 버림받은 징역수, 무기수들은 너무도 순수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서문에 나오듯 그가 한 장 한 장의 엽서에 담으려고 했던 것은 그의 아픔뿐만이 아닌 우리 시대의 모든 고뇌와 양심이었던 것 같다.
나는 갑자기 감옥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옥에 가서 이처럼 아름다운 생각만을 할 수 있다면. 매일 정신없이 돌아가는 생활에서 벗어나 감옥이란 곳은 어쩌면 너무 평화스러운 곳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풍족한 지금의 생활을 탓하면서 감옥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는 말은 배부름에 겨워 현실에서 도망치려는 무책임한 소리일 것이며 또 그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자신을 갈고 닦은 신 씨에게는 너무도 큰 죄를 짓는 일이 될 것이다. 조금만 마음에 여유를 가진다면 어디에서라도 '사색'은 충분히 할 수 있을 터인데.
나는 요즘 '2학년이 되면'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파릇파릇한 1학년으로 고등학생이 되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내년이 되어 생일이 지나면 만 16살, 이젠 나이만 한 살 더 먹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책임질 수 있는 어른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평생 동안의 인격은 가장 감수성이 풍부하고 자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 청소년기에 결정된다는데 공부에 찌들어 있는 내 모습은 과연 어떤가. 항상 하는 생각들이 눈앞의 이익만 위한 것이 아닌, 우리의 어른들에 대한, 그리고 이 사회에 대한 불만만이 아닌, 좀더 나 자신을 고결하게 하는 것이라면 좋겠다.
뼈저리는 옥고 속에서도이처럼 아름다운 생각만을 할 수 있었던신영복 씨를 언제까지나 기억하며, 또 오늘의 이 감동을 영원히 마음속에 새기며,세상을 살아가고 싶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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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님의 따뜻한 마음이 유인물 나눠주던 그 분에게도 전해졌을꺼에요.^^그나저나 걱정이군요. 저들의 공세가 저리도 거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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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유인물은 무조건 받는데..나눠줄때 생각나서요.정말 언론에서 투표전부터 계속해서 나오던 공무원 흠찜내기위한 뉴스가 너무 짜증났는데...참...힘내셔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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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님/ 네 전해졌으면 좋겠군요. 제가 어제 좀 몰골이 말이 아니었건든요. ^^ 어떤 몰골이었는지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슈아님/ 맞아요. 저도 유인물을 나눠주지만 사람들이 손을 내밀지 않아 내민손이 부끄러울때가 많아 유인물 닥치는데로 받습니다. 이 겨울 추운데 투쟁해야할 노동자들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좋은 결과가 있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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