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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10/28
    날마다 배움이 큰 하루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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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4/10/28
    대화를 하며 생각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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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4/10/28
    [시/기형도]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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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4/10/28
    간장의 여유3[ 透明な音? (투명한 음악) / S.E.N.S. (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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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4/10/28
    오산 5일 장터
    간장 오타맨...

코스모스와 지구환경

  • 등록일
    2004/09/27 17:30
  • 수정일
    2004/09/27 17:30
코스모스가 가을을 알리고 있습니다.
한강변 공원(가양대교-양화대교, 출근할때 가양대교의 자연 늪지를 자전거로 산책한 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음. 대략 1시간 20분 정도를 자전거  타고 한강변을 산책 함.)에 코스모스들이 화사하게 꽃을 피우고 있답니다.
 
이번주 날씨가 전형적인 가을인지... 시원한 바람과 청명한 하늘 그리고  꽃으로 장식된 길을 자전거로 달리면서 상쾌함에 도취하고 있습니다.
 
올해 날씨가 이상해서 가을 코스모스를 볼 수 없지 않을까? 라는 불안 섞여진 고민은 한강변 코스모스를 보면서 고민일 뿐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올 여름 다른 해와는 다르게 여름에 코스모스가 길가에 피어나 가을날 볼 수 없을 거라는 불안감이 들었는데... 이러한 나의 불안감은 그냥 징후에 지나지  않았나 봅니다.)


가을날인지 퇴근 길 또한 어둑한 불빛에 환히 밝히고 있는 건물과 별들과 한강변 가로 등과 길가를 거니는 연인과 인라인을 타는 모습들이 정겹게 느껴집니다. 이는 맑은 하늘을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가을 운치를 느끼게 해줍니다. 그러나 이러한 날씨는 수재민들에게는 근심거리가 되겠지요.
 
추석때 불어닥친 태풍 매미의 한반도 강타(기상관측 사상 모든 기록을  갱신하였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정말 대단하였습니다.)로 집은 물론 가족을  잃거나 일년내내 고생하여 수확을 앞둔 농산물을 하루아침에 읽어버린 농촌 풍경과는 사뭇 대조적입니다.
 
한겨레 카툰(비비툰)에서 몇 칸의 만화에서 볼 수 있듯 지금 날씨는 정말  수재민들에게 더욱더 크나큰 고통을 가져다 주고 있습니다.(비비툰에서 다루고 있는 만화를 보면, 생활미와 정보통 부부가 하늘을 쳐다보며 날씨를  감상하면서 수재피해와 대조적인 요즘 날씨에 하늘을 보고 화를 내는 만화를  지켜보고 있자니 정말 수재나 남의 일 갖지 않더군요.... 그러나 인간의  개발 지상주의가 빚어낸 사건인지라 하늘만 탓할 수 없음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지구 환경에 대한 각고의 노력은 지구가 소멸되기 전까지 인간이 해결해야하는 지속적 사업이 아닐까요... 선진국과 개도국 등의 문제가 아닌 전지구인이 풀어야할 숙명적 문제이겠지요.)
 
이번 수해 어찌보면 수해를 입은 수재민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인간이 만들어 낸 예견된 재해에 대한 자연과 대지의 벌이 아닌가 뜬금 없는 상상을 해본답니다. 수만년의 기간을 통해서나 가능한 지구 온도 상승이 20C 동안 동일한 현상을 가져왔으니 말이죠.
 
자연 재해 또한 한 국가에서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라 전지구적 동일한 현상을 낳고 있습니다. 유럽은 폭염으로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는 사스라는 독감형태의 바이러스로 공포에 떨고 있고,  한반도는 장마철이 한참 지난 후 찾아온 태풍과 연일 이어지는 비 등 지구온난화에 의한 엘리뇨 현상으로 자연 환경이 변화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자연은 우리가 한만큼 되돌려 주는 것 같습니다.
3번의 빙하기와 간빙기를 거친 지구의 진화에서 확인 할 수 있듯이 지구 또한 살아있는 생명체입니다. 인간의 실수로 또 한번 빙하기를 맞이하지 않을까요.
 
코스모스를 보면서 이후 봄과 가을이 없어지면 볼 수 없는 식물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잠시 가져 보았습니다. 요즘 바람과 햇볕이 얄밉게시기 맑게 비쳐주고 있군요.
 
수재민들이 힘을 얻어 다시는 태풍으로 인한 큰 피해가 없기를 바라며....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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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과 이성의 중간....

  • 등록일
    2004/09/27 17:21
  • 수정일
    2004/09/27 17:21

주인장님의 글을 보고 잡생각이 들어 글을 날려봅니다.
 
난 감성과 이성의 중간으로 중용을 늘 선호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중용의 덕이란 허구임을 어느순간에서야 알았다.(사람이 좋다라는 말 착하다는 말은 일상적 용어로는 좋아보이나 인간의 살기가 느껴지는 운동판에서는 이 말 자체가 욕이라는 걸 알고 난 후 난 착하다 좋다라는 말을 듣기를 거부한다. 왜냐 난 그들의 판단의 대상이 아니고 내가 착한지 좋은지 나와의 인간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나를  규정하는 말 자체가 싫으며, 착하다는 말 자체가 할말이 없어서 부쳐주는 말장난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나이기에 가능하고 살아가는 것 자체에 대핸 자긍심을 갖고 살아간다. 때로는 실수도 하고 횡설수설하지만 이러한 행위 자체 또한
 내가 살아가는 나만의 삶의 방식이기에 누구에게 판단을 받고 싶지 않다. 나라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 판단을 받아야 한다면 받겠지만, 그렇지 않고 나를 판단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그건 내가 정치적으로 판단을 내리기 보다는 감성에 치우쳐 많은 사람들과 함께가고자한데서 기인한다. 늘 나에게 조여오는 것은 사람들을 챙기기 보다는 기계적으로 인간을 대하고 이를 통해 일정정도 성과를 내고, 그 인간이 망가지던 아니면 운동판을 떠나던 신경을 쓰지 말라는 것들.... 이를 거부하기 위해 흑과 백의 이분법이 아닌 둘의 조화인 회색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이 회색이 탈이 었었나 보다 내 주변의 인간들이 하나둘 떠나고 급기야 학교를 정리할 때는 그 인간들에게 일종의 배신이라는 단어로 표현된 지껄이를 당했다. 처음엔 황당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못남을 탓하며, 그때의 행동에 대해 가슴쓰림이 든다.

이때 이후 난 어떻게 살든 오기로 운동을 지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에게 나라는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 철저히 개인적 원한과 개인적 분노가 함축된채 운동이라는 행위를 지향하고 있다. 올바르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분노라는 것 자체 또한 나의 잠재된 힘이자 버팀목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오기로 운동을 지향해왔다. 판단의 올바름을 떠나서 말이다.
 
난 정치적인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렇다고 정치적으로 살아가지 않았다라는 것 자체가 아니다. 늘 이 운동지형에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일상의 정치적 판단이라 생각되어진다. 모르지만 알고자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것일 수 있으며, 정치적인 것 자체가 포괄적 성격보다는 일상적 소소한 행위 그자체를 규정하고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운동을 지향하기전 난 한 개인이다. 감성과 이성이 혼재된 성격의 사람이다. 그러나 난 감성쪽에 방향을 많이 두었다. 왜냐하면 난 기계적인 이성적 성격의 선배들과는 다른 감성과 이성을 혼재한 인간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의  성패와는 상관없이 사람들을 책겨주고, 방황하거나 고뇌하는 친구와 후배들의 벗이되고,같이 앞을 향해나가는 길벗이고 싶었다.(난 선배들의 기계적 사고와 행동 또  권위적 위계질서를 강조하고 복종을 강조하는 조직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많았다.  올바름을 떠나 후배들을 이끌어주지 못하면서 자신의 판단에만 촛점을 맞춰 사업을 추진하는 작태에 대해서도 분노가 치밀어 오를때가 많았다. 무엇보다 난  후배들이 운동에 있어 자신들은 부격한자라고 낙인 받고 떠나는 후배 동기들을  볼때면 가슴을 방망이로 맞은듯한 심한 자괘감에 빠질때가 많았다. 난 그때 다짐하였다.


난 그런 선배가 되지 않으리라.... 시간이 지나 내개 학교수임자가 되었을때  난 그러지 않고자 하였지만, 그런 문화에 이미 젖어든 후배들은 나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였다. 내가 사업에 있어 추진력이 부족한 측면도 있었으나 나의 방식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던 것 같다. 조직이란 테두리라는 바운더리에  카리스마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거부감과 이러한 것들에 대한 반감.... 난 주로 학습 세미나를 위주로 후배들과의 시간을 갖고자 하였으나 후배들은 투쟁의 거리를 요구하였다.


혁명적 실천 없이는 혁명적 이론이 없다는 말에 대한 직설적 표현이었던  것으로 개인적으로 생각해 본다. 나에 대한 판단은 내가 내릴 수는 없지만, 나름데로 난 학교에 있어 운동이란 동지애적 평등성과 권위적 위계 질서에 대한 일정의  거부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를 마지막으로 내가 속한 조직을 내 스스로 정리하고 난 후 무엇을 해야할 지 방황을 하였다. 나의 무능을 탓하며.... 그래서 난 개인적으로 정치적이라는 단어에 대한 반감이 많이 있는 것 같다. 내가 무능하기에 그럴 수도 있지만..... 학교를 나온후 난 후배나 동기 선배와의 일체의  연락을 끊었다. 그들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난 그들의 배신을 용서해 줄 마음 또한 아직 없는 것 같다. 평생 그들과의 만남은 없을 것이란 약속을 지금도 충실히 이행하고 있을지 모른다.(나는 독선적이고 개인적으로 소심남이라  한번 결단하면 좀처럼 결단을 풀지 않는다. 남들은 오기와 아집이 세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좀처럼 고쳐지지는 않는다. 나의 잘못된 습성이다. 늘 의식하며 고치고자 하지만 기간 세월 정형화된 틀로서 고착되어 쉽게 바뀌지 않아 문제이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고쳐야 한다는 강박관념만 뇌리를 강타하고 있다.)
 
학교때 나를 정리한 후....
운동을 시작하면서 이 판의 생리를 알아나가면서 더욱더 인간에 대한 태도에  있어 어떻게 할까라는 고민을 많이했다. 친하게 지내는 이가 생기면 이전의 배신감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어 같이 하는 이들에게 잘해주는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후배들에게 무엇도 해주지 못한 나를 발견하곤, 지금 늘 미안함 마음이 든다.(습관과 습성을 바꾸기가 쉽지는 않지만 나의 이후 살아가면서 변화된 내 자신을 바라보며 살아가고자 합니다. 모든 것이 하루 아침에 바뀌지 않듯이  말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무르익지 않은 인식의 한계를 느끼며 이전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반성의 계기가 된 사건은 인천에서 짧은 1년간의 공장생활에서 난  허상이라는 물화된 세계관을 갖고 살아갔음을 알았다. 똑똑한 것보다 성실한 것이 중요하는 것을 알았다. 말보다는 행동이 중요하고, 행동에 있어서는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는 작지만 크나큰 진리를 배웠다. 중요한 것은 많이 알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했던 것 같다. 삶에 찌들어 힘들어 떠나보내는 것이 버겁다는 것을 이제서야 조금씩 알아나가는 나이에 접어들고 나서야  무엇이 문제였는지 나를 알게 되었다. 나의 독선적 고집과 판단에 대한 오기가  내 주변의 좋은 벗들과 후배들을 떠나보내게 되었음을 알고나서는 후회를 하게 되었지만, 이미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려 보낸 후였다.
 
잘못된 판단으로 이런 결과를 도래시키 것에 대한 책임의식을 갖고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죄책감에 대한 보상일거라는 판단을 갖고 지금 하루하루 무미건조한 생활을 하고 있다.
 
주인장 횡설수설 글을 써보았습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가? 라는 화두 어린 질문, 정치적  판단을 해야 한다는 그 강박관념들.... 다 잡생각입니다. 주인장님이 서있는 자리 그 자체가 정치적 판단을 행하고 있으며, 늘 주인장님 삶 자체가 정치적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저는 정치적인 것 자체는 크지 않다고 봅니다. 어떻게 어느 곳에서 일상적으로 수행하고 있느냐가 중요할 뿐입니다. 모두 조급성에서 나오게 되는 강박관념들 입니다.
 
이후 나의 변한 모습에 대해 나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생각듭니다.
 
주인장님의 글을 읽다가 횡설수설 글을 써보았습니다.
 
간장 오타맨이....

 

 P.S 비가 내리기 마음도 차분해지군요. 오늘 대포집에서 막걸리에 파전이나 먹어야 겠습니다. 나를 볼 수 있는 내공이 언제 생길지.... 평생가도 오지  않는 것은 아닐까라는 노파심과 조바심이 듭니다. 성격이 워낙 못난 놈이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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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에 대한 단상...

  • 등록일
    2004/09/27 17:13
  • 수정일
    2004/09/27 17:13

주인장 원칙으로 정한 라면을 한달간 먹겠다는 다짐을 들으면서... 라면에 대한 단상이 생각이 납니다.
 
라면은 박정희 군사독재시절 경제 발전이라는 미명하게 노동착취하기 위해 일본에서 도입된 먹거리 입니다.


생산성 향상과 1억불 수출목표 달성을 위한 금자탑으로 상징되었던 경제정책에서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철저히 빼앗기 위한  음식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간편한 요리로 즐겨먹는 음식으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아마 수출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전 라면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 있어 아무리 간편하고 편리하더라도 라면은 웬만하면 먹지않는다라는 원칙을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의 라면에 대한 원칙은 과거 학교때의 식생활에 의해 기인하였다 할 수 있습니다. 학교때 게으른 하이에나로 정평이 나있던 저는 학교 식당을 가기 싫어 구매매점에서 라면을 몇 박스를 사다놓고 라면을 주식으로 즐겨 먹었습니다. 그래서 라면도 여러 가지 종류를  해 먹었죠. 요즘 어린아이들의 간식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라면땅과 생라면 먹기 등이 있을 수 있고, 군바리들이 즐겨먹는 봉지라면, 술안주로 즐겨먹던 육계장 라면(계란, 김치, 콩나물, 멸치, 고추가루 등), 미역라면, 라면 계란탕, 라면 쪼림(라면의 불려 국물이 없겠하여 먹음. 좀 간이 짠편, 라면 탕(라면에 동태  넣고 술안주로 먹음.) 등 다양한 실험 음식(남들은 퓨전음식이라 지칭 함.)을 만들어 먹었죠. 이것도 6년을 이라는 기나긴 기간동안이나 말이죠.

 

밥도 먹었지만, 통계치를 내보면 라면이 거의 주식이었음. 그렇다고 라면을 탓하기는 뭐하지만 술때문이 주원인이라고 생각 함.(거의 술먹으면 인사불성과 개끼를 잘 부리는 버릇도 아마 이때 생겨나지 않았나 판단됨. 원래 성격이 못나 그렇지만....  소심남의 전형임.)
 
라면을 6년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매 2끼 이상은 라면을 먹음.) 먹었더니 위장과 간에서 탈이 났죠. 그래서 학교때 위가 8개곳이  펑크나 병원에 대략 5개월 입원을 하였던 적이 있죠. 병원신세후 라면과의 우정어린 시설을 종치고, 죽과의 만남을 시작했죠.

 

라면 후유증으로 2달간 우유와 죽으로 연명한 기억이 납니다.  병원에서 주 음식은 거의 과일식이 요법으로 언명하고요. 그래서 라면에 대한 그리움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주인장님의 라면 사랑에 대한 원칙을 들으면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꼭 라면을 먹어야 한다면, 면은 넣더라도  밥과 밥찬 그리고 짠맛을 조금 없애고 묽게 드십시요. 그래야 위와 간장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혹자들은 인생을 짧고 굵게 산다지만, 인생은 60대부터다 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60 청춘을 불태우기 위해서는 건강이 최고 입니다.


주인장님 건강 잘챙기세요... 살아가면서 희망이 있다는 것을 각인 할 수 있게요. 즐겁고 재미있게.... 과정에 흔들림과 버티기의  버거움은 있겠으나 그래도 폐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살아가야죠.

이 바닥아니면 우리가 설자리가 별로 없다고 개인적 생각이 들기에... 그래서 더욱더 건강하고 음식 먹거리에 신경쓰셔야 합니다. 제가 이전에 사다놓은 오스트레일리아 수입산 쇠고기가 있으니 맛은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쇠고기 무국을 시원하게 끌여드리겠습니다.

덤으로 콩나물 해장국장 또는 북어해장국, 동태/생태국, 만두국, 계란탕과 수제비가 제가 가장 자랑하면서 내세울수 있는 음식이니 맛은 판단하시고, 먹고 싶으면 오프라인 신사동 우리집에 놀러오셔요.


그럼 이 목록에 있는 요리 다해드리죠. 건강을 위해... 청국장과 된장국은 비장의 무기임.... 그리고 밥해먹을 때  일본에서 유래된 아끼바리병(휜쌀밥만 먹으로 생긴다는 무서운 병)에  걸리지 않기위서는 검은 쌀, 보리, 현미, 콩을 넣고 밥을 드셔보세요.

밥맛이 단백하고 좋습니다. 건강이 최고라는 것을 아무리 강조해도 아깝지 않음.
 
나의 소망....
조국과 청춘의 노래 나의 소망에서는 "차비 걱정에 끼니 거른날 몇 날인지 몰라도 빈손 아픔 느껴가며 혁명을 부르짖는다고 이야기 하고 있지만" 저는 다른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차비 걱정할 것없이 빈대붙고. 먹을 거 앞에서는 배부른 배 잡아가며 밥과 음식을 가득먹어야 한다는 생존의 원리... 이게  원칙으로 잡혀져 있습니다.


그래서 라면 원칙을 철회해 주시기를 이 월세방 사람이 강력히 요구합니다. 주인장은 라면 원칙 철회하라!!!! 하라 하라 하라~~~~
 
주인장 60살이 되면 저와 함께 인생을 즐기며 삽시다. 산도가고 여행도 가고, 낙시도 가고, 스킨스쿠버도 하고, 스카이 다이빙도하고 암벽등반도 하고, 여러 기타 즐거운 여가를 보내야죠. 그래서 지금은 건강을 비축해야 할 시기입니다.
 
나이 60즈음에와 나이 60앤 우리를 기대하며.....
 
간장 오타맨이.....

 

 P.s 횡설수설을 마칠까 합니다. 텔레비젼 내일 가지러 오시기를...  집들이 꼭 하쇼... 그래야 휴지 한장이라도 줄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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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엽서

  • 등록일
    2004/09/27 17:06
  • 수정일
    2004/09/27 17:06

중고등학교때의 개인적으로 낭만적 삶을 영위하고자 부던히 노력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을이면 제 자신에게 엽서를 쓰든가 아니면 친한 친구들에게 엽서한장을 사서 마음에 있는 이야기들을 주고 받던 기억이 납니다. 먼 옛날의 이야기가 된 지금 저는 낭만이라는 것에 대하여 이제는 매료되지는 않지만 그당시 사춘기적 열망을 낭만과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막연한 신뢰와 희망을 가지면 저의 개인적 안위를 불태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을 연거푸 짖게하지만 그 당시 저의 인식과 사고는 오로지 저 개인을 향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거치는 과정이라 저는 믿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알퐁스 토테의 별에서 목동이 스테파네트를 흠모하면서 하던 이야기-내 나이 20세이기에...처럼 저도 그때의 나이에 저의 사고는 오로지 출세와 부귀영화에만 눈이 멀었습니다. 지금은 그리 관심이 없지만 그때의 심정은 이 세상의 가치는 부귀영화와 개인적 안위 이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친구들 또한 그렇게 학교생활때 폭넓게 사귀지 못하였습니다.
  동내 죽마고우 이외에는 친구라곤 대학때 몇명이외에는 저에게 벗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늘 집에가다 예쁜 엽서한장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나가는 과거의 슬라이드 필림들... 아직도 그때의 사고자 남아있
  음에 저는 엽서를 두장정도 사들었습니다. 무엇을 할까? 그러나 그때의 심
  정과는 다르게 저는 엽서를 보면서 친구들 그리고 지금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들이 희비를 교차하더군요.
  그러나 그때처럼 엽서는 쓰지 못할 것 같습니다. 사회생활에 찌들데로  물
  든 저에게 낭만이라는 것 조차 이제는 사치이게 때문입니다.
 
  가을엽서...
  그건 아마도 가진자들의 풍요로운 상징이 아닐까요.
  오늘 집에서 사무실로 오는데 서울역 노숙자들이 서울역 지하도에 일 렬로
  누워 자는 풍경을 보면서 그들에게 희망은 무엇일까? 그들에게 희망은  존
  재할까? 아니면 좌절만이 존재할까라는 고민이 되더구요.
  저는 늘 서울역 지하도에서 늘 노숙자들의 모습들을 봅니다. 술에  찌들어
  자신의 존재적 가치를 포기한이...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있는 노숙자  가
  족 저는 그들을 보면서 난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반문을 해 보았습니
  다.
지금 저는 그들의 처지와 다르니까요. 저도 그들일수 있으니까요.
 

가을엽서...
전 만약 신이 있다면 쓰고 싶습니다.
왜 가난을 만들었는지, 왜 행복과 불행을 만들었는지,... 왜 인간을  창조하며 평등을 이땅에 심어 놓지 못했는지.,.. 등의 엽서를 요...


그러나 신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사회 정의와 평등은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권리도 땅에  떨어진지 이미 오래전... 신은 자본가들인 것 같습니다.
 
노숙자들에게 신은 아마도 그들을 길거리로 내몬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낭만과 서정은 죽었습니다.
다만 치열한 생존만이 판치는 이 지구.....
아프칸의 난민들은 죽어가고 있습니다. 신은 그들을 보지 않고 있습니다.
신은 정권이 만들어낸 피조물입니다. 인간을 위해 굴림하기 위한 권력자들의 권모술수.....
 
가을 그래서 하늘이 이렇게 서럽게 다가옵니다, 겨울이오면 그들은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과 술의 열기로 삶을 연명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가을엽서를 보면서 저를 타박해 봅니다.
배부른 저의 얄팍함을 비웃으면서요...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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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김수영] 싸리꽃 핀 벌판

  • 등록일
    2004/09/27 16:25
  • 수정일
    2004/09/27 16:25

피로는 도회뿐만 아니라 시골에도 있다

푸른 연못을 넘쳐흐르는 장마통의

싸리꽃 핀 벌판에서

나는 왜 이다지도 피로에 집착하고 있는가

기적소리는 문명의 밑바닥을 가고

형이상학은 돈지갑처럼

나의 머리 위에 떨어진다

 

                                                 김수영 전집중에서.....<1959. 9. 1>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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