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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9/05/24
    [시/신경림] 골목
    간장 오타맨...
  2. 2019/05/22
    [시/정희성] 나도 내가 많이 망가졌다는 것을 안다
    간장 오타맨...
  3. 2019/05/15
    [시/나희덕] 살아있어야 할 이유
    간장 오타맨...
  4. 2019/05/10
    [시/신경림] 오월은 내게
    간장 오타맨...
  5. 2019/05/08
    [시/기형도] 엄마생각
    간장 오타맨...

[시/신경림] 喊聲(함성)

  • 등록일
    2019/05/28 11:38
  • 수정일
    2019/05/28 15:37

喊聲(함성)

 

신경림

 

한때 우리는 말을 잃었다.
눈을 잃고 귀를 잃었다.
짙은 어둠이 온 고을을 덮고
골목마다 안개가 숨을 막았다.

웃음을 잃고 노래를 잃었다.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는 몰랐고
누구를 찾고 있는가 우리는 몰랐다.
꽃의 아름다움 저녁놀의 서러움도
우리는 몰랐다.

그러나 우리는 보았다 그날
이 어둠 속에서 일어서는 그들을.
말을 찾아서 빛을 찾아서
웃음을 찾아서 내달리는 그들을.
어둠을 내어모는 성난 아우성을.

구름 사이로 내비치는 햇빛을 보았다.
먼 숲속의 새소리를 들었다.
사람들은 거리를 메우고
이제 이 땅에 봄이 영원하리라 했으나

그러나 아아 그러나
모진 폭풍이 다시 몰아쳤을 때
우리는 잊지 않으리라 비겁한 자의
저 비겁한 몸짓을 거짓된 웃음을.

용기 있는 자들은 이 들판에 내어쫒겨
여기 억눌린 자와 어깨를 끼고 섰다.
멀리서 울리는 종소리를 듣고 섰다.
저것이 비록 죽음의 종소리일지라도.

한 사람의 노래는 백 사람의 노래가 되고
천 사람의 아우성은 만 사람의 울음이 된다.
이제 저 노랫소리는 
너희들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어깨를 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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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경림] 골목

  • 등록일
    2019/05/24 09:00
  • 수정일
    2019/05/24 09:00

골목

 

신경림

 

이발소 최씨는 그래도 서울이 좋단다
자루에 기계 하나만 넣고 나가면
봉지쌀에 꽁치 한 마리를 들고 오는 
그 질척거리는 저녁 골목이 좋단다
통걸상에 앉아 이십원짜리 이발을 하면
나는 시골 변전소 옆 이발소에 온 것 같다
술독이 오른 딸기코와 떨리던 손 
늦어린애를 배어 뒤뚝거리던 그의 아내
최씨는 골목 안 생선 비린내가 좋단다
쉴 새 없는 싸움질과 아귀

 

다툼이 좋단다
이발소에 묻혀 묵은 신문이나 뒤적이고
빗질을 하고 유행가를 익히고
허구한 날 우리는 너무 심심하고 답답했지만
최씨는 이 가파른 산동네가 좋단다
시골보다도 흐린 전등과 앰프 소리가 좋단다
여자들이 얼려 잔돈 뜯을 궁리나 하고 돌아가는
동네에 깔린 가난과 안달이 좋단다
그 딸기코의 병신 아들의 이름은 무엇이던가
사경을 받으러 다니던 딸의 이름은 무엇이던가
어느 남쪽 산골 읍내에서 여관을 했다는
이발소 최씨는 그래도 서울이 좋단다
골목에서 모여드는 쪼무래기 손님들과
극성스럽고 억척같은 어머니들이 좋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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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희성] 나도 내가 많이 망가졌다는 것을 안다

  • 등록일
    2019/05/22 20:34
  • 수정일
    2019/05/22 20:34

나도 내가 많이 망가졌다는 것을 안다
----- 이진명시인의 시를 읽으며

정 희 성

나는 내가 왜 이렇게 모래처럼
외로운지를 알았다
나의 불온성에 비추어
나도 내가 많이 망가졌음을 안다
그리고 모든 망가지는 것들이 한때는
새것이었음을

하지만 나에게 무슨 영광이 있었던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세상을 바라보았으나
사람들은 내가 한쪽 눈으로만 본다고
그래서 세상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한다고
세상은 그렇게 일목요연한 게 아니라고

네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다른 무엇일 거라고
결코 상상해서는 안된다고
환상에서 깨어나라고 이념을 내려놓으라고
그런데도 내 눈에 흙이 들어가지 전에는
버릴 수 없는 꿈이 있기에

나는 내가 많이 망가졌음을 알면서도
아직 망가지지 않았다고 우기면서
내가 더 망가지기 전에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아서 그래서
나는 더 외로운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

—————- 정희성 시집 『돌아다보면 문득』(창비,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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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희덕] 살아있어야 할 이유

  • 등록일
    2019/05/15 10:06
  • 수정일
    2019/05/15 10:06

살아있어야 할 이유

나희덕

가슴의 피를 조금씩 식게 하고
차가운 손으로 제 가슴을 문질러
온갖 열망과 푸른 고집들 가라앉히며
단 한 순간 타오르다 사라지는 이여
스스로 떠난다는 것이
저리도 눈부시고 환한 일이라고
땅에 뒹굴면서도 말하는 이여
한번은 제 슬픔의 무게에 물들고
붉은 석양에 다시 물들며
저물어가는 그대, 그러나 나는
저물고 싶지를 않습니다.
모든 것이 떨어져내리는 시절이라 하지만
푸르죽죽한 빛으로 오그라들면서
이렇게 떨면서라도
내 안의 물기 내어줄 수 없습니다.
눅눅한 유월의 독기를 견디며 피어나던
그 여름 때늦은 진달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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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경림] 오월은 내게

  • 등록일
    2019/05/10 08:30
  • 수정일
    2019/05/10 08:30

오월은 내게

 

신경림

 

오월은 내게 사랑을 알게 했고

달 뜨는 밤의 설레임을 알게 했다

뻐꾹새 소리의 기쁨을 알게 했고

돌아오는 길의 외로움에 익게 했다

다시 오우러은 내게 두려움을 가르쳤다

저잣거리를 메운 군화발 소리 총칼 소리에

산도 강도 숨죽여 웅크린 것을 보았고

붉은 피로 물든 보도 위에서

산조차 한숨을 쉬는 것을 보았다

마침내 오월에 나는 증오를 배웠다

불 없는 지하실에 주검처럼 처박혀

일곱 밤 일곱 낮을 이를 가는 법을 배웠다

원수들의 이름 손바닥에 곱새기며

그 이름 위에 칼날을 꽂는 꿈을 익혔다

그리하여 오월에 나느 복수의 기쁨을 알았지만

찌른 만큼 찌르고 밟힐 만큼 밟는 기쁨을 배웠지만

오월은 내게 갈 길을 알게 했다

함께 어깨를 낄 동무들을 알게 했고

소리쳐 부르는 노래를 알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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