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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날

  • 등록일
    2020/02/07 09:19
  • 수정일
    2020/02/07 09:20
입춘이 지나자마자 추위가 엄습하였다. .
올겨울 눈많이 내리지 않고 한파도 없이 이렇게 지나가나 했더니 봄 초입에 한파주의보와 눈발이 날린다. 겨울 추위보다 꽃샘 추위를 걱정해야 하나보다.
없는 사람에게는 겨울추위가 달갑지 않다. 그러나 농심은 한해 준비하는 계절 초입 추워야 농사도 대풍이라는데... 올해는 어떨지...
바이러스 코로나와 미국 독감으로 온 지구가 난리통이다.
그러나 돼지 구제역 등 그 수많은 생명의 죽음에 무덤덤한 인간사를 발견한다. 생명은 모두 존귀하지만 생명도 가격이 매겨지는 세상 인간 중심의 세상을 이 추운날 상기해 보았다.
 
추운 날
신경림
지난해와 또 지지난해와도 같은 얼굴들
오년 전 십년 전과도 같은 얼굴 같은 목소리
밖에는 모진 바람이 불고
창에 와 얼어붙는 영하 십오도의 추위
언 손들을 마주잡고
수수깡처럼 야윈 어깨들을 얼싸안고
우리는 이기리라 맹세하지만
똑같은 노래 똑같은 아우성으로
외롭지도 두렵지도 않다고 다짐하지만
온몸에 달라붙을 찬바람이 두렵구나
손을 펴본다 달빛에 파랗게 언 손을
다시 주먹을 쥐어본다
마른 나뭇잎처럼 핏기 없는 두 주먹을
...신경림 "가난한 사랑노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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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추가 거꾸로 돌아가는 시대

  • 등록일
    2020/01/10 11:00
  • 수정일
    2020/01/10 11:00

시계추가 거꾸로 돌아가는 시대라 말하지만 그것은 침묵한 우리의 몫이다.

이 시대를 규정하고자 하는 지식인은 죽었고, 이 시대를 투쟁으로 불태워야 할 노동은 스스로 움츠려들었던 시기... 김대중, 노무현이라는 시대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민운동의 그 지향성들이 빚어낸 투쟁의 거세로 인한 그 투쟁보다 교섭과 타협과 국회라는 그 틀거리 외줄 정치에 기대었던 환상의 답이기도 하다.

다들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생존의 벼랑에 내몰려 죽음에 이르는 그 고통을 겪어보지 못한 이의 변명에 불과하지 않을까?

투쟁은 빗발치지만 단결은 어디에도 없다. 단사의 투쟁으로 가슴 졸이는 모습을 보는 것도 힙겹다, 단결투쟁 언론지 일간지를 채웠던 노동의 투쟁은 어디에도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엔 자본의 섹션화로 인한 연애, 스포츠, 생활이라는 자리잡았다,

과거를 회상하는 것도 그 과거에 기대는 것도 향유의 권력이겠다 싶다. 투쟁을 통해 하나둘 자본으로부터 쟁취하던 시기였고, 노동해방 구호가 선명하였다.

그러나 지금 투쟁이라는 단어는 자본을 향하고 있는가 반문하고 싶다. 우리의 투쟁이 우리의 실천이 과연 자본과 노동자 계급간의 대척점을 투쟁으로 만들고 설정하고 있는가? 생각되어 진다.

투쟁하는 주체의 그 투쟁에 대한 노동의 대답은 지금 침묵이다. 총파업이라는 그 지향성과 문재인 정권에 맞선 총투쟁이라는 그 이야기를 넘어서서 할 구체적 우리의 인식과 실천의 폭 그리고 그 내용을 통한 아래로부터의 평조합원들의 전략 분임토의 실천 현장정치 그리고 실천이라는 그 경로는 여전히 없다.

참으로 이 시기 2019년 그 투쟁에 대한 단상과 전망 그리고 실천의 의제에 대한 태제들이 논쟁이 되고 서로 설왕셀레하고 투쟁을 태세를 위한 아래로부터의 기치를 이야기하여야 하지만 여전히 우리 내 노동조합 운동은 그렇지 못하다, 아직도 상층중심구도의 그 인식의 상부하달 명령을 위한 가공과 준비와 그 상층의 인식이 아랴로 전달되는 평조합원 운동의 주도면밀하고 그 투쟁을 이끌고 조직하고 실천하고 행동하고 학습시킬 능력이 부재한 상태이다,

애석하다,. 그렇지 않기를 바랬지만 여전히 우리의 운동은 조합주의, 그 기풍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 전체계급적 단결의 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평조합원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전체계급적운동을 이끌 주체 즉 상층의 아래로부터의 평조합원 운동전력의 부재의 단면을 본다.

논쟁과 계급적 단결을 위한 사회권력의 협력을 위한 논쟁과 투쟁의 자리가 지금 필요한 시기이다, 개별이 아닌 노동의 존패를 걸 문재인 정권과의 한판 계급 투쟁이 놓여있지만 여전히 평온한 초야이다,

참으로 먹먹하기만 하다. 투쟁하는 주체들의 그 널부러진 투쟁을 추스리는 것도 버거워 하는 시기이지만 그 투쟁에 대한 합목적성과 노동자 투쟁의 전망을 열어가기 위한 그 총노선과 총파업 노선 그 아래로부터의 힘을 받아 않은 투쟁하는 세력이 어떻게 몸으로 수용하고 나갈 것인가? 관건이다.

투쟁은 지금 예각화하고 나서야 하지만 참으로 투쟁을 이야기하기에 여전히 우리의 태세와 준비는 부족하다, 선엄적 투쟁에 그칠까 우려스럽다. 지금부터 늦었지만 전국을 어떻게 현장을 그리고 그 투쟁을 조직할 것인가? 민주노총을 넘어선 투쟁하는 진영이 만들고 그 투쟁의 힘으로 결기로 민주노총을 강제할 때이지 않을까?
준비 태세를 이야기하지만 조직노동이 태세를 갖추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투쟁을 이끌 현장이 그 투쟁의 선도투 단위로 그 비판과 투쟁의 탯게로 이끌고 나서야 할 태세와 박근혜에 맞선 전선을 이끌어여 한다.,

개별 단사 투쟁을 넘어선 공투 그리고 그 투쟁을 위한 전국적 투쟁을 위한 현장에 대한 공투를 하나둘 만들어야 한다. 2019년 노동에 대한 선제적 공격 그 공세적 공격을 막기 위한 우리의 투쟁은 여전히 빈약하다.

그 투쟁하는 주체들의 동력과 투쟁하는 세력들과 함꼐 교감하고 투쟁을 1월 투쟁의 태세를 정비하고 나서야 하지 않나 생각되어 진다. 너무 촉박하다.
투쟁하는 주체들과 투쟁을 준비하고 그 태세를 갖추고 박근혜 정권에 맞선 총자본에 총노동의 전선을 확고히 구축하여야 한다.

지금 곧바로.... 투쟁하는 주체들의 힘겨움 투쟁을 보는 것도 어렵지만 단결투쟁 승리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과 실천의 태를 만들고 노동이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하고 비판과 논쟁 그 실천이라는 전제하에서 할 시기이다. 엄혹한 시기.... 투쟁이 코 앞에 다가왔다.

총파업을 말하지만 현장 아래로부터의 평조합원에 대한 투쟁의 지침은 없다. 그리고 너무 평온하다. 투쟁하는 주체의 외침과 아우성만 성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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