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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 다녀오면서...

  • 등록일
    2004/08/06 18:49
  • 수정일
    2004/08/06 18:49

아침 새벽 공기를 가르며 절에 다녀왔다....
네가 다니는 절은 그리 크지도 않은 비구니 스님이 있는 오산의 작은 절간이다. 살아 생전 어머님이 그리 잘 가시던 절간. 그래서 아마 나는 그절에 늘 가는지도 모르겠다.



형과 아버지가 있는곳이기도 하니 자주 찾아뵈어야 하는데, 생활과 나의 게으름으로 인해 자주 찾아 뵙지 못한다.

그래서 늘 명절에만 찾아가 제사 지내는 일외에는 전혀 간적이 없다,  정말 무심하다고 생각 할 정도로....

그러나 나에게는 아버지라는 존재와 형이라는 존재가 그러했다.  정말 늘 상상으로만 그리던 사람들이었다...

내가 커서 형과 아버지가 있다는 소식을 접하기 전에는 난 우리 아버지가 죽은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내가 국민학교 3학년이 되었을때 형과 아버지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난 무지 섭했다.
늘 양부 밑에서 살다가 형과 아버지가 있다는 소식을 접한후 난 그들이 매우 미웠다... 그래도 한번 보고는 싶어했다.
그리고 지금 인천 부평지역에 고모라는 분이 살고 있다.

아버지가 죽었을때 한번 만나고 내가 인천에 내려와 몇번 가본 고모집 그런데 그들이 나의 피붙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전혀 낯설다 그들과의 만남이 적어서 그럴수도 있지만 그들에 대한 섭함과 어머님에 대한 죄스러움이 나의 가슴 한구석에 아직도 어려있어서 그런것 같다.
 
뭐 이야기를 하다보니 딴데로 빠졌군,,,, 흐흐

오늘 아버지와 형의 제사 정말 고맙다 난 돈이 없어서 제사를 어떻게 지낼까 고민했는데... 스님이 돈은 있으면 있는데로 없으면 연락이라도 하란다 늘 제사는 잘 모셔주겠다고... 돈이 없는 나로서는 정말 고맙게 느껴진다.. 스님이..   다만 자주 찾아와서 이런저런 이야기 듣고 가란다.

아직 돈도 못벌고 있는 걸로 스님은 알고 있어서인지 내가 직장에 잘 취직해서 다른 사람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기를 바란다고. 살아생전의 어머니의 모습과도 같다.

그래서 정말 뭐라 그럴까 할말이 없다. 어머님의 뜻을 저버린 불효자 일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많은 사람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인 노동자 들을 위한 길. 그게 내가 살고 싶은 길이다. 참 그길은 어렵다. 버겁고..단지 할 수 있는 말은 최선을 다하고 닥친 현실을 회피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 이외에는....
 
오늘 새벽 절에 갔다 왔는데... 오산도 그전과 많이 다르게 확연히 달라져 있다. 매년 다르게 느껴진다. 오산이라는 곳도 도시화가 빨리 되어지고 있다. 사람도 그전에 비해 많아졌고 아파트라는 고층빌딩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구... 그전의 절의 적막함과 고요함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절아래서 보는 풍경은 정말 산속의 암자가 아닌 도시속의 작은 동산속의 작은 절... 도시의 하나의 공원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오는 길도 많이 변해져 있었다. 그전에는 오산에 갈려면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수원에서 차를 타고 들어갔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차들이 많아진 연휴에서도 그런것인지 모르겠지만 가는 방법도 예전에 비해 훨씬 수월해 졌다.
돈만 있으면 쉽게 갈수 있는 곳이다.
오늘 오면서 정말 나라는 놈이 무심한 놈이라는 것을 느끼고 생각하면서 사무실에 왔다. 올해는 아버지, 형의 생일이나마 절에게 풍성히 치루어 준다는 생각을 해본다.
 
인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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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해버린 종로 거리....

  • 등록일
    2004/08/06 18:41
  • 수정일
    2004/08/06 18:41

이제는 거리로 바뀌어버린 종로....
사람들의 인파로 거리가 부산하더군요...
4월 5월의 종로의 풍경은 이제 다시는 볼 수 없겠죠...

저의 과거의 추억에 기인한 4월 5월의 종로의 거리는 늘 매퀘한 채루탄 가스 냄세가 연일 코를 진동하던 그때와 지금은 판이하게 다르더군요...



  늘 시위군중들에 의해 해방공간으로 자리매김하던 종로의 거리는 이제는 과거의 풍경으로 상상속에 존재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투쟁을 조직하지 못하는 지금의 모습...
  아마 깃발을 들고 군중들을 향해 해방이라는 말 하는 것 조차 힘들어진 요즘의 풍경은 아마 시위문화자체가 이제는 사라지는게 아닌가라는 두려움 또한 일게 하더군요...
 
  이제 종로의 거리는 시위군중들의 장소가 아닌것 같더군요...
 
  여러 연인, 사춘기소년/소녀 그리고 친구들을 만나는 그런 공간으로 바뀌어버린 종로의 거리를 어제 우둑히 쳐다보면서 많은 회상이 교차하더군요...
 
  그래 나도 이세상에서 미친 놈이라는 소리를 듣고 살고 있는 놈이라는 생각 그래 미쳤도 단단히 미친놈이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90년 종로의 거리에서 연일 외쳐되어던 소리는 나만의 소리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미치기가 두려워 떠난게 아니라 현실에 안주하기위해 떠났으니까요.. 그래서 더더욱 미쳐지는 가 봅니다.
 
  지금은 미친짓 하는 이들이 하나둘 자신의 둥지로 떠나고 있더군요.
  언제 나의 미친짓은 끝난런지 저도 알 수 없지만 늘 미쳐서 지내고 싶더군요. 혼자가 아닌 여럿이 미쳐지내고  싶군요....
 
  p.s 92년 장마 종로에서 인가라는 정태춘 박은옥 노래테이프의 그런 소리들이 점점더 우리 곁에서 멀어지고 있더군요...
      저도 집회보다는 주로 아는 이들을 만나러 종로바닥을 가고 있으니까요....
 
  인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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