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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노동자계급

  • 등록일
    2004/08/06 14:29
  • 수정일
    2004/08/06 14:29

동구사회주의가 몰락의 길을 접고 사회주의 운동이 패배한 운동으로 치부되는 현실에 직격탄을 날리는 하나의 소나기와 같은 책입니다.

국제사회주의자인 저자의 글을 통해 필연적 사회주의의 희망을 읽어나가 보시기를,,,,

신좌파의 상상력은 어찌보면 서유럽 사민주의자들의 호도일 수도 있습니다.

러시아 혁명의 역동성 마르크스-레닌주의 행동과 실천 강령은 결코 패배하지 않은 직관적 현실임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해 보시기를.....

 

간장 오타맨이....



알렉스 캘리니코스/크린스 하먼 지음/ 이원영 옮김

 

아무리 작은 승리라 할지라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자신감과 새로운 이해력을 제공한다. 아무리 작은 패배도 어느 정도의 사기저하, 절망, 현상태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동의를 낳는다. 역사에는 그 계급의 승리들이 서로서로를 가르쳐 그 계급의 가장 취약하고 자신감없는 구성원들까지도 계급적 일치의 감정으로 이끌고 그 견인의 힘으로 다른 계급의 일부까지 잡아당기는 강력한 운동성을 창출하는 시기가 있다. 또 역사에는 운동성이 일시적으로 사라지고 패배가 서로를 갈등하게 하며 그 계급의 강력한 부분의 일부에서도 계급적 정체감의 파괴를 가져오는 시기도 있다. 투쟁의 상승기에 한 계급의 의식과 활동성은 냉담하고 객관적인 시기에 측정된 것보다 춸씬 강력하게 솟구쳐 오를 수 있다.(파리 꼬뮌의 시기를 생각해 보라!) 그러나 역으로 투쟁의 침체기에 그 계급의 의식과 활동성은 그것의 객관적 힘 이하로 하락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지금 우리가 통과하고 있는 국면이다. 많은 활동가들이 느끼고 있는 사기저하가, 일시적인 패배를 영원한 죽음이라고 주장하는 유행적 이론들이 창궐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한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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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는 삶....

  • 등록일
    2004/08/06 10:53
  • 수정일
    2004/08/06 10:53

살면서 무수한 죽음을 목도하였다. 

내가 살아있음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한 마음을 늘 간직하면서 살아왔다.

죽음의 목도 그것은 참으로 마음아픈 일이리라....

 



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벗하고 있던 이들의 죽음을 목도라는 행위 그 자체는 고통이다. 그러나 만사가 무르익는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어느 학자가 말했듯 우린 이런 시간의 흐름속에 살면서 접한 수 많은 죽음에 대해서 그 당시 이외에는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조금 지나면 잊혀져 버린다. 망각이라는 것의 출현일지도....

 

정은임 아나운서의 죽음에서 나는 김선일 씨의 죽음을 떠올렸고, 오늘 읽은 매일노동뉴스 기사에 나온 정은임 아나운서 죽음에서 김주익 열사를 회상하였다. 이외 내가 살아오면서 보았던 죽음이 떠올랐다. 열사력을 다시펴보며 죽어간 열사들의 발자취를 오늘 하루 살펴봐야겠다. 가슴이 무겁다.

 

내 자신이 참 무심함 느끼고 있다.
불과 얼마나 시간이 흘렀다고 열사들의 죽음을 잊혀져 버리고 사는 것일까?
순간에 충실하는 것인지 순종하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다.

 

자연의 대지에서 품어져 나온 모든 인간은 죽음에 직면한다. 진리이다. 다만 언제 죽는지는 인간이 선택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의 죽음에 슬피울어 줄 이가 얼마나 있겠는가? 죽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죽음보다 더 서러운 것은 잊혀진다는 것이 아닐지.....

 

추억이라는 것은 많이 간직하지 못하더라도 잊혀지는 삶을 살지 않기를 바램해 본다.

 

그 동안 죽어간 많이 열사 그리고 안타까운 이들의 죽음에 애도를 표한다. 그리고 난 정은임 아나운서의 방송(주로 FM 89.1MHz 고정주파수로 하여 청취함)을 들어보지 못했지만.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한다.

 

억압과 착취 그리고 전쟁이 없는 평화의 땅에서 부디 영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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