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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공동체 라디오 운동, 이제 시작이다!

  • 등록일
    2004/08/03 17:15
  • 수정일
    2004/08/03 17:15

지역 공동체 라디오 운동, 이제 시작이다!

"소출력 라디오" 도입을 위한 전문가토론회에서의 쟁점


나진아·조두영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 공동체라디오방송연구팀)


편집자주 : 지난 7월 28일 방송위원회(이하 방송위)가 '소출력 라디오 방송 도입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에 관련 연구자들이 참여하면서 급하게 작성된 이 의견서는 미디액트와 공동체라디오방송연구팀의 공식적인 의견을 작성하기 위한 초안입니다. 토론용으로 만들어진 의견서로서 입장 발표가 아니라 제 독자분들과 토론하기 위해 에 게재된 것임을 밝힙니다. 이 글의 요약본이 같은 제목으로 민예총에서 발행하는 일일문화정책동향 제1090호(2004년 7월 30일자)에 게재되었다는 점도 아울러 밝힙니다(일일문화정책동향).

참고 : 전문가 토론회 발제문

 

'소출력 라디오 방송'의 시작은 2001년 전파법 시행령에 1와트 이하의 안내방송이라는 기술적 개념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당시, 정보통신부에서는 월드컵 상암 경기장 내의 안내방송을 계획하고 있었으나 FIFA의 반대로 수행되지 못했고, 단지 전파법시행령에 명목적으로만 존재한 상태로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2003년 방송법 개정안에 소출력지상파라디오방송사업자가 제시되면서 시민단체와 개인들의 관심이 지속적으로 목격되었고, 미디액트 정책연구위원회의 경우엔 그 이전부터 공동체라디오방송연구팀(이전에는 소출력라디오방송모임)이 조직되어 작년과 올해를 걸쳐 지역공동체 라디오 방송 건설을 위한 토론회와 공동체 라디오 운동 활성화를 위한 국제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현재는 소출력 공동체 라디오 방송 운영과 제작에 참여할 수 있는 주체 양성을 위해 '라디오로 세상을 바꾸자'라는 라디오 교육을 기획해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에 7월 28일 방송위원회에서 '소출력 라디오 방송 도입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이만제 방송진흥원 수석팀장의 '소출력 라디오방송 도입을 위한 정책방안'과 이정택 MBC 디지털전략팀 차장의 '소출력 라디오방송 관련 기술사항 검토'발제를 중심으로 진행된 이번 토론회는 소출력 라디오의 도입에 앞서, 소출력 공동체 라디오에 대한 라디오 방송관련 전문 연구자와 기간 방송국 실무자들이 모여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고, 방송위에서 준비하고 있는 소출력 라디오 방송에 대한 정책안과 기술안의 밑그림을 파악할 수 있었던 좋은 자리이기도 했다.

그러나 소출력 라디오 시험방송이 임박한 현 상황을 볼 때, 이제야 이러한 토론회가 열렸다는 데에 대해서는 시기적으로 조금은 늦은 감이 들기도 한다. 더욱이 소출력 라디오 방송에 대한 명확한 개념과 정책이 세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더욱이 8월 초로 예정되어 있는 시범방송 공모를 시행한다는 것 또한 무리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정책상황 안에서 8월 시범방송 사업 공모에 어떤 주체가 어떤 목적으로 시범방송을 신청할지, 어떻게 운영할 있을지에 대한 예측도 미지수다. 따라서 소출력 라디오 방송(소출력 공동체 라디오 방송과 안내방송)에 대한 개념 확립과 올바른 개념인식의 대중화는 매우 중요한 과제하고 할 수 있다.

비단 이번에 열린 전문가 토론회로 그칠 것이 아니라 실제 소출력 라디오를 운영할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청회가 지속적으로 이어져 다양한 의견들을 종합해 볼 수 있는 자리가 계속해서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에 앞서, 미디액트 정책실(공동체라디오연구팀)에서는 소출력 라디오 방송 특히 소출력 공동체 라디오 방송의 활성화를 위해 이번 토론회에서 발표되고 논의되었던 사항들을 평가하고, 논의에서 누락 되었거나 미진했던 부분들을 검토하여, 차후의 소출력 라디오 방송의 실행에 있어 반드시 반영되어야 할 사항들을 체계화해 나갈 것이고, 아래와 같이 몇 가지 쟁점들을 먼저 정리해보았다.

 

1. 소출력 라디오 방송에 대한 용어와 정의

토론회에서의 논의에 의하면 소출력 라디오 방송이라는 범주 내에 '커뮤니티 라디오'와 '안내방송라디오'라는 두 가지 방송 서비스 개념이 혼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볼 때, '커뮤니티 라디오'와 '안내방송 라디오'는 기간의 대규모 출력 라디오 방송에 비해 송신출력이 낮다는 공통점만이 있을 뿐, 방송 목적이나 운영, 대상 청취자층 등 모든 면에서 차이가 크다. 따라서 이만제 방송진흥원 수석팀장의 발제문에도 잠깐 언급되어 있듯이 차후의 소출력 라디오에 대한 실험방송이나 법제화, 본방송의 실행 등에 있어서 커뮤니티 라디오 즉, '공동체 라디오'와 '안내방송 라디오'를 명확히 구분하여 두 가지를 각기 다른 범주의 방송형식으로 구분하여 진행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공동체 라디오'의 개념에서도 '공동체'를 너무 행정구역에 기반 한 지역적 의미로만 국한시키지 말고, 예를 들어 문화지구(신촌이나 대학로와 같은) 등으로 개념을 확대시킬 필요가 있으며 나아가 지역적인 의미를 넘어서서 이주노동자나 장애인, 빈곤층 등의 소외 계층 등과 같이 다양한 사회적 층위를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

 

2. 운영주체

소규모 시민참여적 방송이라는 공동체 라디오의 매체 특성상 방송의 운영주체 면에서도 기존의 '방송사업자'와는 많은 면에서 차이가 나며, 따라서 지역의 일반 시민들이나 시민단체가 접근하기 쉽도록 기존의 '방송사업자'가 되기에 필요한 자격요건들을 완화해야 함과 동시에 방송국 소유제한이라는 면에 있어서도 기존의 '방송사업자'와는 다른 사고가 필요하다. 특히 방송국 운영주체를 굳이 '법인'으로 한 방송법 규정은 일반의 시민단체나 시민들이 접근하는데 있어 하나의 장애물로 보이며, 소유지분 제한 위주의 방송국 소유제한 규정은 소규모 비영리 방송을 지향하는 공동체 라디오라는 개념에서는 적합한 규정이 아니다. 따라서 제3섹터로서의 '공동체방송사업자'라는 개념을 따로 방송법 또는 하위 법규에서 규정하고 이에 따라 공동체 방송국의 운영주체를 판단해야 한다.

또한 지방자치단체의 참여문제도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혹, 지역의 지자체가 공동체 라디오방송의 설립과 운영에 참여한다 하더라도, 지나친 지자체의 간섭으로부터 공동체 라디오방송국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인사권과 편집권의 결정에 대해서는 지자체와 독립된 별도의 협의구조를 구성해야 한다.

 

3. 운영 및 재정

재정확보 면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광고의 문제이다. 지금 현재의 논의 상황으로서는 재정확보 차원에서만 광고를 허용하는 것으로 되어 있고, 광고 시간에 대한 기준이 종합유성방송, 위성방송 시행령 기준과 동일하게 되어 있다. 여기서 경계를 해야 할 점은 지나치게 재정확보구조가 광고로 일원화되었을 때 발생하는 문제들 지나친 상업화와 저질화 일 것이다. 이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방송발전기금 사용, 지방정부의 지원, 다양한 기금확보 활동 등 재정확보구조를 다양화하기 위한 노력들을 통해 재정확보구조에서 광고가 차지할 수 있는 부분을 최소화해야 한다. 또한 제도적으로 광고를 상업광고, 공익광고 등의 다양한 성격에 따라 분류하여야 하며, 이중 상업광고로 인한 수입이 방송국 전체 수입의 일정 비율 50% 혹은 40% 등 을 넘지 못하게 하는 장치들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상업 광고의 내용에 대해서도 일정부분의 심의나 규제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소출력 공동체라디오의 재정확보라는 부분에서 가장 중요하게 봐야할 사항은 소출력 공동체라디오가 비영리적이고 시민참여적이며 지역 공동체 사회의 공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공공적인 매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소출력 공동체라디오의 경우 설립이나 운영에 있어서 상당한 부분에 대한 방송발전기금지원 등의 공적 지원 체계를 적극적으로 마련해야할 것이다.

 

4. 방송 편성

이만제 팀장의 발제에서 언급된 뉴스보도 제한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소형 방송국으로서 당연히 상임 뉴스보도 인력을 확보하고 운영하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몇몇 인터넷 언론 등의 사례를 볼 때, 일반 시민들의 자발적 뉴스소스 제공과 같이 비상임 자원봉사 인력을 통한 뉴스보도는 어느 정도 가능할 것이다. 다양한 실현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

 

5. 시범사업의 평가

시범사업의 평가에 있어서, 소속 지자체장의 의견보다는 공동체 라디오 방송의 수요자이자 참여자이기도 한 공동체 시민들의 의견을 모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특히 전술했다시피 공동체 라디오에서의 '지역 공동체'라는 개념을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문화나 지역의 사회 계층 등으로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다. .

 

6. 가용 주파수 확보

소출력 공동체라디오 방송을 실제적으로 준비함에 있어서 가장 큰 현안으로 다가오는 것이 바로 지역에서의 가용 주파수를 확보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난 전문가 토론회에서도 나타났다시피, 소위 방송 정책 연구자나 전문가, 실무자들 중 어느 특정한 지역에서 쓸 수 있는 가용 주파수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점에 있다. 이는 정보통신부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주파수 사용상황, 특히 방송 주파수의 사용상황에 대해서 정보를 공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인데, 더 많은 지역에서 다양한 공동체의 능동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라도 FM 방송 대역 주파수 정보의 공개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 정통부가 소극적이라면, 방송위에서라도 적극적으로 나서야할 것이다.

 

7. 방송시스템 및 설비

공동체라디오 방송은 그 미디어의 특성상 기존 라디오 방송보다 훨씬 간단하고도 저렴한 설비로도 충분히 목적에 맞는 방송을 할 수 있다. 그에 비해 토론회 발제자인 이정택 박사의 방송 시스템 안은 그 엄청난 가격도 문제지만, 방송 시스템 구성에 대해서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주조정실의 용도를 DJ 룸 겸용으로 사용한다고 했을 때, 과연 스튜디오를 따로 구성할 필요가 있을까하는 부분 등에 대해 고려해야 하고, 공동체 방송국의 편성 특성에 따른 다양한 시스템 구성 모델들을 구상해볼 필요가 있다.

 

8. 디지털 전환과 공동체 라디오

이번의 토론회에도 언급되었다시피 현재 라디오의 디지털 전환이 언제 어떤 표준으로 어떻게 진행될 지는 어느 무엇도 정해진 바가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디지털이 되든 아날로그가 되든 공동체 라디오 방송과 같은 지역적이고 시민참여적이며 소외계층 대상의 미디어에 대한 필요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향후 라디오 매체가 디지털로 전환이 되고 이에 따라 디지털 전환을 위한 주파수 정리를 할 때 반드시 공동체 라디오와 같은 공공적 매체를 위한 대역폭은 확보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이제 전문가 토론회 한 번이 이루어졌을 뿐이며, 더구나 토론회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드러난 상황에서, 시급하게 시범방송 등의 사업을 추진하기 보다는 여러 쟁점들에 대한 다양한 의견 수렴과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시험방송을 앞두고, 공개공청회, 간담회, 사업설명회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공동체라디오 방송이 지역의 주민들이나 여러 공동체의 능동적 참여가 필수적인 미디어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실제적으로 공동체라디오 방송을 할 지역들 시민들이나 단체들에게 공동체라디오를 홍보하고 다양한 의견을 듣는 과정은 필수적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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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은 존재하나 사람은 없는 현실

  • 등록일
    2004/08/03 16:27
  • 수정일
    2004/08/03 16:27

노동운동 그리고 시민운동으로 대표되는 지금.... 운동은 남아있으나 그 당시 구호를 외치던 이들이 없는 지금... 운동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고민하게 만든다.

 

대중과 호흡하고 대중성에 기인하여 운동의 동력을 받았던 80년대가 저물고 90년대가 들어서면서 우리는 무엇에 쫒기는 듯이 운동에 대해 모색이라는 딱지를 붙이며 이것저것 모색하였다.

모색은 발전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동지들을 하나둘 현장에서 멀게하였다.

 

무수한 담론들 노동운동의 위기, 운동의 정체성, 운동이란 무엇인가? 등등 다양한 담론들 속에서 각자 다른 길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치열하게 살았던 자들이 하나둘 정치권에 들어가는 것도 보았고, 치열하게 살았던 이들이 변절이라는 단어에 어울릴 만하는 행태에 분노도 해봤고, 현장노동자들은 믿고 따라던 지도부의 결단에 의해 처참히 자신의 삶을 내동댕이질 당하는 것도 보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서서히 서서히 우리들을 좀 먹었다.

 

지금 난 운동이라는 것을 지향하고 있는 것인지 향유하고 있는 것인지 헤깔린다.

 

하루에도 매일 날라오는 메일들을 확인하면서 이 세상의 치열함을 느끼지만, 그 기자회견문에서 나는 또한번의 좌절을 느낀다.

 

그 좌절은 다름아닌 투쟁동력의 형성과 대중과의 접점을 만들기 못하는 나에 대한 분노이기도 하다. 무조건적 대중주의는 대중추수주의로 흐르는 무오류성으로 변질될 수 있으나 대중이 없는 운동 또한 없다는 것은 우린 익히 잘알고 있다. 과거 학교를 다녔을때 복학생 선배나 과 동기들은 운동을 하는 나에게 일정정도의 부채의식이 있었기에 자신이 나서지 못하는 길에 서 있는 나에게 심정적 연대와 물질적 풍요를 배풀어 주었다. 그때 난 그들에 대한 따스한 배려가 있었기에 지금도 제가 속한 공간에서 둥지를 틀고 운동이라는 끈을 부여잡고 있다. 그 때는 그랬는데 왜 그 사람들은 대중속에 모습을 들어내지 않을까?

 

아마도 운동을 지향하는 이들에 대한 불신보다는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이 전체 공유지점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자기만족적 운동에 그치고 있으며, 이에 대중보다는 손쉬운 전문적 운동에 매진하여 여론형성과 이슈투쟁이라는 단기적 처방으로만 운동을 이끌고 있기에 그들과의 접점을 만들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판단을 해본다. 운동이라함은 원래 장기적 플랜이어야 하는데 우리에겐 과연 이러한 장기적 플랜이 있는가? 없다면 만들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이러한 것을 만들기에 너무나 다양한 목소리들이 나와 불협화음으로 이러지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에게서 대중이란 무엇인가? 대중이라 함은 막연한 대중이 아닌 노동자 민중들은 어떠한 처지에 놓여있는지 우린 인지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런 인지보다는 벌어지는 사안에 우린 파뭍혀 주변의 소소한 움직임들에 대해 그냥 관성적으로 흘려보내고는 있지 않은지....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한다.

 

89년 정말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 동구사회주의권의 붕괴와 소련의 페레스트로이가 이후 체제 개편이 이루어졌다. 이 사건직후 나의 선배들은 하나둘 운동이라는 것에서 멀어져갔다. 그리고 소시민으로 직장에 다니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 소시민선배들이 작년 대선에서 노무현 지지를 위한 노사모 회원이 되어 386세대라는 닉네임을 갖고 대중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들은 왜 그렇게 노무현을 지지하는 것일까 처음에는 의아해 했다. 그러나 그들과 술한잔 하면서 그들이 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는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은 운동에 목말랐다 그러나 운동에 대한 부채의식과 패배감은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동력을 형성해내기엔 턱없이 부족하였다 그런데 때마침 노무현을 중심으로한 온/오프라인 활동이 전국적으로 진행되면서 같은 동질성을 갖는 선배/동기/후배들을 만나게 된것이다, 그들은 물찬제비를 만난 것처럼 이리저리 신명나는 한마당에 동참하였다. 내가 그토록 저주하는 386이라는 닉네임을 필두로 내세우면서..... 그런 그들이 이해는 가지만 그들은 왜 위기이니 모색이니 이런 운동에 대한 무수한 담론과 수식어를 후배에게 던져주고 떨어져 나갔는가?  희망이 없다면 희망을 만들었어야 하는게 아닌가? 그런 그들이 오늘따라 더 미워진다. 그들이 만들어준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의 선봉장이 되었고, 친미자주라는 이상한 수식어를 만들어 국익과 한반도 평화를 이야기 한다. 죽음을 담보로한 평화가 얼마나 가겠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고민한다. 과연 이 남한이라는 땅에서 혁명이라는 깃발이 나부낄 수 있을지....

혁명이라는 깃발은 나부끼지 못하더라도 혁명이라는 그 운동성이 존재하였으면 한다. 그러나 어디를 둘러봐도 그 만던 조직은 무엇이 그리도 급했는지 다들 간판과 깃발을 내리고 사라졌다. 몇안되는 좌파진영의 운동가들이 자신들의 입장과 내용을 갖고 고전분투하고 있는 지금.... 운동은 과연 지속될 수 있을까? 대중과의 간극은 점점더 벌어지고 있는 지금... 그리고 노동자들의 정당한 노동3권 투쟁이 밥그릇 논쟁으로 비화되어 폄하되는 현실.... 이것이 내가 살고 있는 한국이라는 땅덩어리에서 벌어지는 현실이다. 

 

운동이라는 거대담론에 대해서는 잘 알지는 못하겠지만. 나의 초심만은 잊지않고 살아가고자 한다. 내가 대학에 들어와 접하게된 정파가 나의 뜻과 무관하게 실천활동을 하면서 받아들여졌지만 난 결코 이런 과정에 대해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좌파라고 자임할 수 있는 이론적 실천적 행동을 하고 있지도 못하다. 다만 내가 좌파적 지향성속에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고 대중과의 접점속에서 실천활동을  마르크스와 레닌을 접목시킨 이론적 토대에 대한 이념적 성향을 갖고 있다, 남들은 구좌파라 하지만 난 신좌파보다 구좌파에 가깝다고 생각한다.(내가 구좌파에 대한 지지를 보내는 이유는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는 사회주의 이행기에 대한 자본주의 세력의 총공세에 의해 무력화되었지 스탈린주의의 무오류성과 관료주의로 퍠배하였다 보지 않는다. 스탈린의 행위에 대해서는 역사적 평가가 되어야 하지만 그에게 사회주의 운동의 실패의 원죄를 모두 쒸우는 행위 자체는 현시대 사회주의자들의 면죄부를 얻기위한 조건충족밖에 되지 않는다 판단이 된다.  난 그래도 러시아혁명의 역동성과 그 혁명의 승리가 지금 우리를 존재하게 하고 있으며, 그들의 원칙 또한 철저하였기에 구좌파를 고수하고자 한다. 그들의 강령은 틀림이 없었다. 다만 냉전과 경제적 고립이 사회주의권에 대한 직접적인 탄압으로 작용하였기에 그들의 역사적 투쟁이 지금은 잠시 단절을 겪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운동이 좌경으로 매몰되고 이념적 운동이 쇄퇴기에 놓였있다는 지금.....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 조직하지 않고, 학습하지 않고, 투쟁하지 않으면 우린 무엇을 배울 수 있단 말인가?  난 대중들을 조직하고, 함께투쟁하고, 함께 교육하는 신명나는 운동을 상상해 본다.

 

무수한 담론보다는 간결하고 설득력있는 슬로건을 내걸고 우리 세샹을 한번 바꿔봅시다.

 

길재가 고려의 패망을 보면서 쓴 한시....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어즈버 대평성월이 꿈이련가 하노라...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처한 현실이 아닌가라 생각이 됩디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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