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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아주 씩씩하고 예쁜 언니들

  이 블로그를 만들 때는 사는 재미가 소록소록 느껴지는 이야기들로 채우고 싶었지만 최근의 공장의사 일기를 보면 우울......그래서 오늘은 좀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사업장의 보건관리 담당자들 중에는 아주 아주 씩씩하고 예쁜 언니들이 있다. 오늘 아침에 만난 이도 그 중의 하나이다. 그녀의 이름을 편의상 지윤이라고 하자. 



 총무과 말단 사무직인 그녀의 업무중  우리의 일을 도와주는 것은 백분의 일 정도밖에 차지 않지 않지만 언제나 열심히 질문하고 메모하고 깔끔하게 일처리를 한다.  보건관리 담당자의 업무는 종종 부서의 경계를 넘나들게 되는데 말단사원인 그녀가 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그래서 작년 겨울에는 근골격계 질환 유해요인 기본조사지를 수거하는 과정에서 다른 부서장에게 야단을 맞았다며 속상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원칙을 중요시하는 그녀는 그 뒤로도 사업주가 최소한의 법적 기준을 준수하도록 성실하게 자신의 업무를 수행해왔다. .

  이 언니가 똑 소리나게 일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다.  오늘 아침에도 너무 예뻐서 이 다음에 승진하면 내가 밥사준다고 했다. 이 회사는 사장이 여자라 성차별은 덜한 곳이라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랬더니 '승진, 해야죠' 하고는 환하게 웃으며 자기가 쏜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에 부딪히더라도 하루쯤 실컷 울고 다시 시작할 것같은 지윤이가 정말 예쁘다. 

 

  씩씩하고 예쁘기로 말하면 미정이(가명)를 빼놓을 수 없다. 50명규모의 고무공장의 경리인 그녀는 무뚝뚝하다. 내가 업무보고서를 쓰고 회사에서 취해야 할 조치에 대해서 설명을 하면 시큰둥한 태도로 듣기만 하는 편이다. 보통은 '경리아가씨'가 보건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경우에 현안이 해결되지 않는 경향이 있고, 과장급(100% 남자임)이상이면 어느 정도 업무결정권이 있어 우리가 일하기가 편한 편이다. 이 회사는 우리가 관리한지 한 일년되는데 워낙 많은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데다가 이주노동자도 많아 우리가 할 일이 진짜 많은 곳.  그래서 미정이를 처음 보았을 때 속으로 한숨을 좀 쉬었더랬다.  

  두번째 방문에서 어깨통증과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는 아주머니를 만났는데 주 작업이 세탁이었다. 오십여명 되는 직원들의 작업복을 반자동 세탁기로 빨았는데 탈수를 하려면 일일이 손으로 옮겨야 했기에 생긴 증상이다. 이 아주머니의 진단명은 어깨의 근막통 증후군과 외상과염이고, 나의 처방은 '전자동 세탁기지급'이었다. 그걸 업무보고서에 썼더니 미정이가 작업복 한꺼번에 빨 수 있는 거 사려면 최소 오백만원은 든다며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었다. 그런데 6개월 뒤에 다시 갔을 때 깜짝 놀랐으니, 세상에, 전자동세탁기를 사 준 것이다. 아주머니의 증상은 씻은 듯이 나았다. 그날 은행에 다녀오던 미정이를 붙들고 엄청 칭찬을 했더니 씩 웃는다. 그렇게 예쁜 얼굴을 나 혼자만 본 것이 아까울 정도였다.

 

<사족>

 작년에 내가 한 일중 가장 보람있었던 사건과 가장 좌절감을 느낀 사건 둘 다에 세탁기가 등장한다.  이 고무공장의 전자동세탁기 지급사건은 전자이고, 후자는 내가 사업장 주치의를 했던 모 재벌의 계열사에서 청소용역 아주머니들에게 짤순이 하나 사주라는 나의 의견을 일년내내 검토만 하고 끝까지 안 사준것( 그 회사의 벽면은 큰 유리로 되어 있었는데 청소아주머니들은 손으로 짠 걸레로 그것을 닦느라 팔꿈치와 손목이 많이 상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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