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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

     오늘 같이 갔던 간호사에게 하루 종일  인상을 썼다. 두번째 사업장에선 상담이 시작되었는데 내 표정이 너무 굳어서 상담하러 온 사람이 '화나셨냐'고 물어보는 사태까지.  좋게 말해도 되는 데 화내면서 말해 놓고 후회하게 된다.



#1. 아침에 식품포장지 회사에 갔었는데 작업장 순회점검을 하다가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제품포장작업을 하는 아주머니로 부터 그 부서의 6명의 작업자중 3명이 하지 정맥류가 있고 그 중의 한명은 최근 수술을 했으고, 제2공장에 있는 이와 유사한 공정에는 22명의 작업자가 있는데 그중 8명이 하지정맥류가 있다는 것이다. 약 40%의 유병률이라......

 

  내가 화가 난 이유는 이 회사를 보건관리한 지 일년이 다 되어가는데 담당 간호사가 그 제2공장에 아직까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고, 나한테 정확한 사실을 알려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의사는 일년에 네 번밖에 사업장 방문을 하기 않기 때문에 미루면 언제가 될 지 기약이 없다. 그래서 다음 사업장 방문을 미루고 제2공장부터 가자고 했더니 울상을 짓는다.

 

  제2공장에 가서 현황파악을 했다. 1공장처럼 12시간 맞교대 서서하는 포장작업인데 1공장 사람들보다는 아프다는 사람이 적었다. 내가 들었던 이야기는 실제 상황보다는 좀 과장된 것이었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음번 방문 때는 관리감독자 교육을 하자고 썼다. 왜 우리의 권고사항들이 반영이 안되는지,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는 위험이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 회사는 형편이 좀 되는 곳인데도 근골격계질환 관리가 미흡하다. 이런 경우에는 관리감독자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 필요.

 

#2. 다음 사업장으로 가던 중 기가 막힌 이야기를 들었다. 역시 우리가 보건관리를 하는 그 옆 사업장에서 일주일에 한번 세시간 가량 장비 세척과정에서 성분 미상의 화학물질에 고농도로 노출되었던 작업자들이 회사에 항의를 했다는 것이다. 작업자들은 두통, 어지러움, 가슴답답함, 심한 피로 등 증상들이 있어 호흡용 보호구 지급을 건의했는데 일년동안 묵살당했다는 것이다. 앗 이런. 첫 방문때 그 공정을 돌아보았을 때는 파악하지 못했던 일.

 

  내가 화가 난 이유는 담당간호사가 그 일을 나에게 보고하고 같이 대책을 수립할 생각은 안하고 지나가는 이야기처럼 했기 때문이다. 일에 있어 경중완급, 우선순위를 파악하지 못하는 게 답답해서......

 

  결국 두번째 사업장을 일찍 끝내고 계획에 없던 옆 사업장 방문을 했다. 그 공정은  최첨단 설비가 들어 있어 절대 보안이 요구되고 들어갈때도 방진복을 입고 에어샤워를 철저하게 하고 들어가야 한다.  지금까지 그 회사를 세네번 방문했지만 공정에 한 번 밖에 들어가보지 못했다[변명]. 담당 간호사로부터 그 회사에 신경쓸만한 특별한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고 받아왔기 때문에 더 화가 났는지도 모른다[책임전가]. 내가 먼저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담당 간호사가 그렇게 판단한 것 같기도 하다. 다행히 호흡용 보호구 지급이후 증상은 완화 또는 소실된 것 같다. 야간 작업자들은 못 만나보았지만 주간작업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렇다.

 

  담당간호사는 참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다. 한 달에 한 번만 가면 되는데도 사업장에서 이런 저런 요청이 있으면 한 번 더 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기 때문에 늘 바쁘고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우면서도 화가 난다. 자기 몸 생각 안하고 미련하게 일한다고 야단친 적도 많다. 그러니까 나는 그 사람한테 오버타임해가면서 무리하지 말라고 구박하면서 한편으로는  제2공장 안갔다고, 사업장에서 일어난 사건에 신속하고 적절한 대처를 못했다고 야단친 것이다.  업무시간내에 중요한 일부터 하고 쉴 때는 쉬기를 바란 것인데 그게 말이 쉽지 사업장을 40개씩 맡은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야단을 치게 된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화를 내는 것은 문제해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의 안일함에도 많은 책임이 있는데 화를 내다니. 이성적으로는 그런데 아직도 마음이 풀리지 않는 건 왜 그럴까? 화내서 같이 일하는 사람 힘들게 한 죄 때문인가?

 

다음에 같이 나갈땐 먼저 거울보고 한 번 크게 웃은 다음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출발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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