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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

지난주 목요일 다녀온 곳. 기록하긴 해야 겠는데 바쁘기도 하고 심란하기도 하고 하여 미루다가 쓴다.

 

작년에 처음 그 회사에 갔을 때는 보건관리대행 계약 직후였다. 먼저 다녀온 산업위생사 선생님한테 듣기는 했지만 막상 가보니 상상을 초월하는 작업환경이었다. 취급하는 화학물질중 발암물질이 4가지나 되는 작업장은 흄과 증기로 가득했는데 국소배기시설도 없고 아무도 호흡용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고 일하는 것을 보고 기가 막혔다.  




 

PVC와 DOP 등 원자재를 가열하여 떡처럼 만든 뒤 편평하게 밀어내는 기계가 돌아가는 작업장 . 마땅히 있어야 할 국소배기시설이 없다.

 

그날 들은 두 번째 기가 막힌 이야기는 이 회사에서 오후 4시반 쯤 나오는 간식(어떤 사람들한테는 실질적인 저녁식사)이 몇년동안 한번도 거르지 않고 라면이었다는 것.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시골구석까지 부식을 배달해주는 곳이 없어서 다양한 식단을 준비할 수 없다고 하며 아무도 라면배식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없었단다. 작업자들에게 영양에 있어 균형있는 음식을 제공해야 한다고 보고서에 쓰면서 먹을 것도 제대로 주지 않고 일시키는 현실이 끔찍하다고 느꼈던 기억이 생생하다.  

 

첫 방문에서 관련서류를 검토해보니 이전에 보건관리 대행및 작업환경측정을 했던 산업보건기관이 엉터리로 일을 해 놓아서 사업장 유해인자 노출 실태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마침 곧 작업환경측정과 특수건강진단이 있을 예정이라 그 결과를 기다려보기로 하고 나오는 마음이 참으로 찜찜했다.

 

몇달 뒤 두 번째 방문을 해서 우리 과에서 한 첫 작업환경측정결과와 특수건강진단결과를 보고 너무나 괴로왔다. 그 두 가지 자료로만 보면 분진만 약간 초과했을 뿐 참으로 양호한 사업장인 것 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같이 갔던 산업위생사 선생님과 함께 그 서류들을 검토하고 나서 서로 멍하니 쳐다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책 한권 분량의 물질안전보건자료를 검토하고 나서 내린 결론은 우리 과에서 한 측정과 특검이 엉터리라는 것. 그 날 업무보고서에 일단 '발암물질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환기시설을 해야 하며 최소한의 호흡용 보호구도 착용하지 않는 작업자들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적고 나왔다.

 

지난 목요일은 세번째 방문이었는데 이번에는 작업개선계획이 수립되고 예산도 잡혔다는 소식을 듣게 되어 다행이다 싶었다. 노동부 점검을 받은 뒤로 개선을 추진하게 되었다고 했다. 아마 지난 번 작업환경측정에서 분진이 초과하여 점검을 나왔을 것이다. 국소배기시설을 한 기계당 삼천만원씩 6-7개정도 설치할 예정이며 근골격계 질환 발생이 높았던 포장공장은 6억원을 들여 자동화한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작업자들은 자신들이 어떤 물질에 노출되고 있는지 그것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호흡용 보호구도 없는 상태로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과에서 두번째 실시한 작업환경측정결과를 보고 거의 쓰러질 뻔 했다. 이번에도 발암물질을 측정에서 누락시켰을 뿐 아니라 지난 번에 초과했던 분진조차도 거의 나오지 않는 양호한 환경이라고 쓰여있었다.

 

다음 날 우리 과 직원회의를 했다. 최근 집중 점검 대상인 화학물질 관리에 대하여 작업환경측정, 건강진단, 보건관리 세 분야의 업무방향을 공유하려고 준비한 자리였다. 각 팀장이 한가롭게 법규정이나 읽어대는 모습을 보니 울화가 치밀었다. 그들은 정말 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모르는 것일까?  전날 다녀온 회사를 포함해서 최근에 있었던 몇가기 기가막힌 사례를 들어 최소한 법이 정한 유해인자에 대해서만이라도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자고 호소했다. 과장은 작업장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에 대해서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우리팀이라도 잘해야지 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우리 과 전체 업무의 질관리에 소홀한 책임을 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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