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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족의 발전

  지난 주에 다녀온 자동차 머플러 생산 공장의 안전관리자는 답답한 사람이다. 처음 만났을 때 현장에 물질안전보건자료를 비치, 게시, 교육할 의무를 주지시키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작업자들이 건강에 나쁜 걸 알면 불안해하니 모르는 게 나아요" 했다.



작업이 바빠서 건강상담을 할 수가 없으니 차 한잔 마시고 그냥 가라고 해서 결국 언성을 높히게 되었다. 마음도 가라앉힐 겸 업무 보고서에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사업주의 의무과 보건관라자의 의무를 한바닥  옮겨 쓴 뒤, 업무협조가 안되어 그냥 돌아간다고 적고 나왔다.

 

 소심한 그는 그 업무보고서를 상사에게 결재받을 만한 용기가 없어 쩔쩔매다가 깊이 반성한다는 메시지를 전해왔고 우리 팀의 묵인하에 그 서류는 그의 손에서 사라졌다. 그 뒤 작업장 순회점검이나 건강상담에 협조하려고 노력하는 게 가상해서, 그리고 달래야 좋아지는 스타일로 판단되어 꾸준히 칭찬했더니 많이 좋아졌다.

 

 아주 나쁜 놈은 아니어서  현장에서 번번히 쓰러져 정밀검사결과 정신과적 문제로 판명이 났고 더 이상 작업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어 자의반 타의반 사직을 한 젊은이가 회사측으로 부터 치료비 보상을 받을 수 있게 해 준 뒤, 그에게 적합한 치료법에 대해서 조언해달라고 물어오기도 했다. (업무와 무관한 질병이므로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음)

 

 이번에 갔더니 옆 동네 회사 안전보건담당자가 사표를 쓴 이야기를 한다. 그는 화재사고가 난 뒤 이를 처리하느라 마음고생이 심했고 책임을 미루는 회사측에 배신감을 느껴 8년간 일했던 직장을 그만 두게 되었다.  일도 열심히 하고 어려운 여건에서도 보건관리에 신경을 꽤 썼던 좋은 사람이었는데...... 안타깝다.

 

 사표를 쓴 친구를 위해 동네 안전관리자 모임에서 회비통장을 마이너스를 내 가며 금 열돈을 해 주었다고 전하면서 자기가 총무라서 결단할 수 있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그 안전관리자를  미워하기 어렵다.   

 

  5월에 있을 다음 방문에는 화학물질 관리에 대한 작업자 교육을 하기로 손가락 걸고 약속했다. 그 때 가보아야 알겠지만 이 정도면 장족의 발전이다. 물질안전보건자료 게시도 안 하려고 했던 회사에서 화학물질 관리 교육일정을 잡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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