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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교육의 효과

 규모가 100인미만의 외국계 자동차 부품회사에 갔다. 반년전에 소음성 난청 예방교육을 하고 나서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결과에 따른 증상자 진찰과 상담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엔 아침 8시부터 근골격계 질환 예방교육을 잡았다. 야행성인 나에게 7시20분 출발은 가혹한 것이다. T T . 그래도 정 안되는 '후진' 사업장은 아침 일찍이나 저녁 늦게도 교육하러 간다. 단 근무시간중이 아닌 경우 작업자들에게 수당을 달아주어야 교육시간을 잡는다는 원칙이 있다.



아침 일찍이라 워밍업이 안되었는지 자꾸 말이 꼬였다.  근골격계 예방 교육을 할 때 효과가 좋으려면 그 사업장의 사례를 사진으로 보여주면서 해야 하는데 일년에 두 번 오다보니 마땅한 자료가 없어 다른 사업장의 예를 들어 보여주면서 좀 미안했다. 이럴 땐 우리 팀 전원이 디카를 들고 다니지 못하는 게 아쉽다.

 

박수소리로 그날 공연의 성공여부를 판단하는데 이 날은 덤덤한 박수를 받았다. 그런데 교육이 끝나고 한 젊은이가 머뭇거리며 다가와 손목을 보여주었다.

 

  병역특례로 작업한지 일년 팔개월이 되었다. 오른쪽 손목이 아프고 새끼손가락쪽으로 저린 증상이 4개월이 되었는데 근처 의원에서 물리치료를 받아도 좋아지지 않는다고 했다.  관리자의 눈치를 보며 어정쩡하게 서 있던 그를 앉혀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신경전달속도 검사를 해서 정확한 진단을 받고 작업을 중단해야 하겠다. 이따가 작업장 순회점검을 할 떄 작업을 보고 나서 적절한 조치를 건의하겠다고 했다.

 

아래 동영상은 그가 하루 12시간 내내 했던 작업이다. 이 작업은 4월 말일자로 없어지고 그는 다른 공정에 배치될 것이다. 이 회사에 손목부담이 없는 작업은 없으므로 산재요양으로 처리하는 것이 좋겠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생산과장이 이 작업자가 아프다고 해서 한 명 더 지원을 하고 있다고 해서 당장 작업을 중단시켜야 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아까 교육 잘 들었다고 하는 생산과장의 얼굴엔 교육내용에 대해서 별로 공감하지 않는다고 쓰여있는 듯 했기 때문에 내가 주눅이 든 것인지도 모른다. 이 공장에 온지 얼마 안되는 그는 긴장해서 나를 따라다녔다. 아파도 곧 없어질 공정이니 보름동안 참아야한다는 생산과장의 태도가 워낙 뻤뻣해서 말해도 먹힐 것 같지 않았다.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후회가 된다. "당장 다른 작업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이렇게 단호하게 말하는 게 옳지 않았을까.

 

 

이 사람과 이야기가 끝나자 안전관리자는 아침 교육에서 보여준 결정종 사진을 보고 똑같은 혹이 있는 사무직원에게 상담을 권했으나 거절했다고 귀띔을 한다. 들어본 바로는 노트북 사용과 관련된 질병으로 생각되는 데  본인은 곧 수술예정이며 '문제'를 일으켜 인사고과에 불이익을 당하기 싫어서 상담을 안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담은 하지 않았지만 이런 문제는 흔하고 재발을 자주 하는 것이므로 회사측에 사무작업에 대한 인간공학적 키보드 지급 등의 조치를 촉구하기로 했다.   

 

사업장의 집체교육은 일정 잡기가 어렵지만  하고 나면  이렇게 관리자들의 능동적인 태도를 이끌어 낼 수 있고 작업자들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들이 원활하게 가동된다는 장점이 있다.

 

  전체적으로 작업장 개선이 많이 되었다. 외국계 회사 중에 이중기준을 적용하는 곳도 많지만 여기는 그래도 안전보건쪽으로 감사도 자주 하고 경영진의 인식도 괜찮은 편이다. 무엇보다도 자동화를 통해 인건비를 절감한다는 정책과 맞닿아있기 때문에 가능한 작업개선이다. 작업은 개선되고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는 것이다.

 

지난 번에 요통을 호소했던 공정을 확인해보니 작업개선은 되었지만 불충분하여 작업자는 만족하지 못했다.  작업자 뒤에 있던 빠렛트를 옆으로 옮긴 이후 오히려 허리를 비틀림이 늘고 전에는 두 손으로 들던 것을 한 손으로 들게 되어 어깨가 아프다고 한다. 만져보니 다행히 어깨 근육이 심하게 뭉치지는 않았다.

 

 어깨 근육푸는 법을 알려주니 안 그래도 허리때문에 헬스클럽에 열심히 다닌다고 하면서 " 내 몸은 내가 지켜야죠, 내가 열심히 하는 수 밖에 없어요" 한다. 이런 말을 들을 떄 마다 괴롭다. 건강에 관심을 가진다는 측면에선 바람직하지만 작업으로 인한 손상을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광범하게 퍼져있다는 게 안타깝다. 작업개선이 별 효과가 없어 고민하는 데 옆에서 안전관리자는 하루에 칠백개정도 밖에 안하니까 큰 부담은 안될 것이라고 한다. 작업자는 천개를 한다던데..... 이렇게 다른 답변은 늘 겪는 일인데 보통 안전관리자들은 평상 작업을 기준으로 현장을 파악하고 작업자들은 잔업이나 특근 등까지 포함해서  평균을 이야기 하기 때문에 차이가 나는 것 같다.

 

 

깊이와 폭이 깊은 상자에 담긴 제품을  집어 장비에 거는 과정에서 허리를 반복적으로 숙이는 공정에 리프트를 지급해달라고 했지만 결재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대신 허리 숙임을 좀 덜기 위해 적재함의 앞면의 높이를 좀 낮추었다. 작업자에게 물어보니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한다. "아프죠"  

  개선전                                       앞면의 높이를 좀 낮춤               리프트(약 5백만원)

 

맨 오른 쪽에 있는 리프트를 왼쪽의 상자에는 사용할 수 없다. 자세히 보면 상자 하단이 리프트가 들어갈 만한 공간확보가 안된다. 

 

 

작업장을 돌아보니 귀마개과 고글 등 개인보호구 착용상태가 좋은 편이다. 안전관리자는 6개월전 소음성 난쳥 예방교육이후 귀마개 착용률이 100%가 되었다고 하면서 3번 미착용시 인사고과에 반영한다고 말했다.  교육의 효과와 벌칙의 효과중 어느 게 더 클까? (단기적으로는 후자이겠지) 고글 착용은 이번주가 계도기간, 다음주부터 적발에 들어간다고 했다. 안전관리자는 고글 착용은 본사 방침이라는 데 불편해서 착용률이 높지 않을 것 같아 걱정하면서 개인이 착용감좋은 모델을 선택할 수 있도록 준비중이라고 했다. 이 작업에 고글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판단하기 어려운 점이 있기는 하지만 작업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은 지극히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맞장구를 쳐 주었다.

 

사무실로 돌아와서 마무리 미팅을 하는데 안전관리자가 "----안전보건관리 강화방안"이라는 서류를 보여준다. 보다 체계적인 접근을 위한 시스템 구축중이라고 한다. 대기업 지사나  외국계 회사들에서 안전보건체계와 규정을 최신식으로 마련해놓고 자랑하는 것을 가끔 본다.  하지만 그 문서를 작성한 사람과 깊숙히 이야기를 해보면 서류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이 계획에 작업자들과 쌍방향 의사소통을 위한 분임토의같은 것을 넣도록 제안하고  이러한 방식이 안전보건에 얼마나 효과적이고 효율적인지 국제적으로 검증되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업무보고서작성를 마치자 안전관지라는 안전보건을 총괄하는 부공장장에게 직접 브리핑해달라고 했다. 부공장장에게 브리핑을 하자 손목 통증 호소자에 대한 의학적 조치를 포함한 권고사항에 대해서 조치를 취하겠다고 한다. 이정도만 되어도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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