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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자들의 체감 농도, 확인하자.

뻐꾸기님의 [마지막 방문] 의 첫번째 사업장에 관련된 글.

  어제 검진한 사업장은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로 삼성 하청이다. 봄에 한 번 방문해서 관리감독자 교육을 한 뒤로 현장 출입이 많이 부드러워졌고 작업자들의 관심도 늘었다. 그런데 이 동네 삼성 하청업체 작업자들은 정확한 작업환경평가를 받을 수 없고 건강관리도 어렵다. 문제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작업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삼성에서 그걸 허락하겠어요? 우리 회사 관리자들은 오더 끊길 까봐 말도 못 꺼낼껄요"


#1. 삼성에 들어가서 작업하는 사람들이 12명정도 있는데 그 중에 반 정도가 검진을 하러 들어왔고 세 명이 요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한명은 추간판 탈출증 진단을 받고 수술 권유받았으나 거절하고 개인적으로 작업을 조정하면서 버티고 있었다. 이 회사 말고도 이런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그 때마다 좀 더 생각해보자 하고 미루었다는 걸 깨달았다. 앞으로는 미루지 말고 이런 작업에 민감한 주관적인 작업부담 평가지를 만들어서 활용하고, 고위험군에 대하여 꾸준한 상담을 하도록 해야겠다. 

 

#2. 유기용제 관련 증상에 표시를 많이 했는데 작업환경측정결과를 보니 IPA가 20ppm을 넘지 않아 이상해서 물어보니 그건 하루 30분 정도 회사에서 작업할 때이고 삼성에 장비세팅하러 들어가면 IPA에 꽤 많이 노출된다고 했다. '작업하고 나면 술 취한 기분이예요' 이정도면 상당한 노출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증상자에 대하여 이차 검사로 IPA의 대사산물인 아세톤을 작업종료후 소변에서 측정하도록 했고, 신경행동기능 검사를 냈다.  

 

#3. 부품을 세척하면서 메탄올을 쓰는 작업자들이 여럿 있었는데 대부분 면봉이나 와이퍼에 묻혀서 소량 쓰고 관련 증상은 없다고 했다. 그런데 30대 여자 한 명은 거의 모든 증상에 동그라미를 쳤다. 알고보니 그 중에서 두 명은 국소배기시설이 없는 작업대에서 스프레이로 메탄올을 뿌려서 작업하기 때문에 힘들다고 했다. 같은 공정에서 대표로 한명씩 하는 작업환경측정에는 이 사람에 대한 기록이 없다. 이럴 땐 기운 빠진다. 도대체 산업위생사들이 측정할 사람을 선정할 때 성의가 있는 것인가 의심스럽다. 상식적으로 그 공정에서 가장 오래 일한 사람한테 누가 가장 많이 노출되는가 한 마디만 물어보아도 해결되는 문제 아닌가? 그래, 그래 이해는 간다. 일년에 한 두번 가는 사업장에, 그것도 이 회사처럼 담당자가 비협조적인 곳에서 애로사항이 많겠지. 그리고 작년과 달리 유기화합물을 측정하는 것 자체를 설득하는 것도 힘들었겠지. 그렇게 어렵게 설득해서 하는 거면 조금만 더 신경쓰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중에 담당자와 함께 그 작업을 보러갔을 때 이건 법적으로 국소배기시설이 필요한 작업이라고 했더니 담당자 왈, " 법지키고 어떻게 회사 운영합니까? 여기 다 위법 천지예요". 뻐꾸기, 웃으며 한 발 물러선다. " 그죠, 어렵죠, 어려운 거 알아요. 그래도 이 작업은 국소배기시설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간헐작업이라도 한꺼번에 고농도 노출이잖아요?"

 

#4. 그외에 저농도 유기용제 노출로 추정되지만 관련 증상을 호소하는 작업자들에 대해서 해당 작업을 많이 하는 날 작업종료후에 요중 아세톤, 요중 MEK, 요중 메탄올을 검사하고 신경계나 호흡기 기능 평가를 하도록 했다.

 

#5. PVC 판넬을 원형톱으로 자르는 작업을 하는 20대 남자는 냄새때문에 머리가 아프고 기침을 한다고 해서 현장에 가서 작업하는 것을 보았다. 냄새가 난다. 이게 PVC 먼지(dust)인가, VCM인가? 어느 쪽이냐에 따라 대책이 판이하게 달라진다. 원형톱이 돌아가면서 마찰에 의한 열이  250 도를 넘을 수 있는 건가? 모르겠다. 산업위생사 샘한테 물어봐야지. 이런 건 참고문헌을 찾기도 어렵다. 끙. 그게 VCM이라 할지라도 작업환경측정이 어렵다. 우리 병원에서 검사할 수 있는 항목이 아니므로 외부 실험실에 보내야 하는데 샘플을 채취하고 바로 보내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일단 작업자에 대해서는 작업전후 폐기능 검사를 하도록 했다.

 

 그동안 이와 유사한 저농도 유기화합물 노출 작업자들의 비특이적 증상 호소에 대해서 적극적인 조사와 대책을 수립하지 못했다. 일단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그런데 작업자들은 대부분 여자들이거나 병역특례거나 사회적 약자들이다. 이 회사를 계기로 꼼꼼하게 꾸준히 점검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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