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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어쩌다 보니 일들이 몰리고 몰렸다.  이렇게 되기 까지 예측하지 못한 변수가 있기는 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2주 정도 휴가를 내려고 여러 일을 앞당겨서 하려다 보니 더 힘들었던 것 같다. 결국 휴가를 미루었다. 그래서 조금 숨통이 틔었다. 그리고 부담스러웠던 일들도 거의 '가르마'를 탔다.  

 

1. 복잡한 산재사건의  손해배상 소송의 신체감정의뢰를 법원으로 부터 받았었다. 여러 병원을 돌고 돌아서 여기까지 온 사건이다. 급성 중독성 질환에 대해서 의견서를 쓸만한 전문가는 많지 않다. 그래서 하겠다고 했다.  

당사자들은 서울오는 여비를 부담스러워서 우리 병원 방문을 망설였다고 한다. 무료변론 소송이었다.  환자들은 몇 개월 뒤에, 즉 이번 3월에 나타났다.  이제 전반적인 상황 파악을 했으니 몇가지 사실관계만 더 확인하고 앞으로  의견서를 쓰면 된다.   

이 환자들에 대한 평가를 위해 한 검사들은 우리 간호사의 노력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었다.  어찌보면 번거롭기만 한 일들을 성의껏 진행해주었다.  작업을 하다가 영문도 모르고 화학물질에 중독이 되어 몇년째 아픈 몸을 이끌고 여기까지 온 그 분들을 보고 딱해서 눈물이 날 뻔 했다고 한다. 

 

2. 지난 겨울에 어느 마을의 환경오염 건강피해조사를 해보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았다.  이전에 몇차례 조사가 있었지만 결과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을 했던 문제이다.  그 마을 가까운 곳에 있는 병원중 그 일을 할 만한 데가 마땅치 않아서 여기까지 연락이 온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하겠다고 한 이유는 그 전 해에 참여했던 유사한 연구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고 자란 땅에 어느날 공장이 들어오고 그 뒤로 먼지. 소음. 악취에 시달리면서도 떠날 수도 안 떠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거의 체념한 농촌 노인들의 얼굴. 우리나라의 눈부신 경제발전의 이면에는 이렇게 긴 세월 자신들의 억울함을 이야기 할 수 있는 힘도 없는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해당사자들과의 소통이 중요한 프로젝트이다.  지난 주까지 마을 설명회를 세 번 잡아서 저녁시간에 다녀왔다.   

늦은 저녁식사를 했는데 함께 다녀온 환경분야 연구자가 물었다. "교수님은 고통받는 사람들만 만나니까 힘드시겠어요. 세상이 살만하다고 생각하세요?" 내 대답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가 이어서 한 말은 기억이 난다. "저는 이렇게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살만 한 것 같아요" 

 

3.  청소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살충제에 노출이 문제가 되어 노동조합에서 임시건강진단을 요구했다. 임시건강진단이란 직업병 발생 우려가 있을 때 고용노동부 지방관서장의 명령에 의해 실시하는 것으로 흔한 일은 아니다. 노사가 '합의'하여 우리 병원에 의뢰를 했다.  정확히 말하면 노측의 요구를 사측이 수용한 것이다.  이 지역에는 이런 문제를 감당할 만한 대학병원이 우리 병원을 포함해서 3개가 있다.  그 중 하나는 이 회사의 원청의 계열사이기 때문에 제외되었다.  

사전조사를 하러 현장에 갔었다.  우리가 회사와 근로감독관으로 받은 정보를 토대로 설명자료를 준비해갔다. 노동자들이 들려주고 보여주는 작업환경은 예상보다 심각했다.  

노동조합은 우리 팀이 무엇이라고 좀 해결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는 것 같았다.  밀폐공간에서 아무런 보호장구도 없이 살충제를 코와 이십센티미터 거리에서 직접 분사하는 일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그런 작업환경을 피하려면 그들에게 청소를 의뢰한 원청기업의 작업을 조정해야 한다.  우리의 산업안전보건법이 이 분들의 작업환경을 개선할 근거를 마련해줄 수 있을까?  

 

전문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적지만, 전보다는 나은 삶의 환경을 만드는 데 아주 약간은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내 앞에 주어진 일이라도 잘하자...늘 일이 많고, 어떤 때는 쫓기는 기분으로 쉬지를 못해서 몸과 마음이 아프기도 하는 나를 위로하려고 만든 주문과 같은 말이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여러 사람과 협력해서 해야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부담이 안 될 수 없다.  임시건강진단이나 환경오염 마을 주민 건강검진은  같은 비용을 다른 건강검진보다 우리 과 직원들이 정신적 육체적 부담이 훨씬 더 큰 일이다.   나와 타인 모두 무리하게 일을 하지 않도록 계획을 짜고 점검을 하지만 어느새 아슬아슬하게 경계에 서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일한 기간이 꽤 된다. 어쩌다 보니 일이 밀렸고, 그러다 보니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폐를 끼쳤고, 그래서 더 힘들었다.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들었는데 곰곰생각해보고 나서도 사실 문제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아닌지도.   

 

금요일 저녁부터 오늘 아침까지 몇 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 잤다. 자고 나니까 좀 낫다.  잘 지나가기를 바래야겠다.  분명한 것은 아프지 말고 내가 선택한 일을 잘 마무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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