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자 룩셈부르크, 그리고 독일 사민당의 오판?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망 100주년이 되는 날이 15일이었다. 정치에 대해 한 마디씩 하는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로자 룩셈부르크에 관한 이야기를 내놓고 있다. 어떤 이는 평소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 완벽 적응된 듯 살던 사람들이 마치 안 그랬던 것처럼 로자 룩셈부르크를 운운한다며 불편한 심기도 내비치더라. 하지만 나는 오히려 364일 까먹고 살다가 불현듯 생각이라도 해낼 수 있는 게 더 가상하지 싶다. 아니, 그럼 뭐 364일 김치만 먹던 인간이 갑자기 스테이크 썰면서 고기찬양을 하면 안 된다는 거여 뭐여...

암튼 로자 룩셈부르크는 내 삶의 방향과 운동의 정체성, 이념적 인간형의 기준이 된 사람이다. 그래서 이번 사망 100주년에 쏟아진 여러 사람들의 말과 글이 반갑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말과 글들에서 일종의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개인적 전제를 깔고 역사를 단순화하면서 자기 정치적 지향에 맞춰 로자 룩셈부르크를 이야기하는 것이 자꾸 눈에 띄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장석준이 프레시안에 올린 기고문을 보면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다.

관련기사: 프레시안 - 100년 전 오늘, 역사가 꼬였다.

장석준은 독일 사민당의 역사적 과오를 짚으면서 특히 로자 룩셈부르크 등을 중심으로 하는 혁명세력에 대한 독일 사민당의 대응이 이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립경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1918년 말부터 전개된 독일의 혁명적 상황에서 독일 사민당은 반동적 세력과 연대하여 혁명세력을 탄압했고, 그것이 결국 독일 사민당 주류로 대표되는 개혁파가 혁명에 결합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개혁의 가능성마저 폐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로자 룩셈부르크와 카를 리프크네히트 등이 살해당했다는 것이고.

그런데 이 칼럼에서 아주 미미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 독일 사민당은 1918년 연말부터의 혁명분위기에서 이탈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 혁명적 분위기가 태동할 수밖에 없도록 이전부터 반동세력들과 결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게 보면 이 칼럼의 제목, 즉 "100년 전 오늘, 역사가 꼬였다"는 어색한 제목이다. 오히려 사태를 보자면 '꼬여버린 역사를 폭로한 100년 전 오늘'이 더 정확할 듯 싶다. 하긴 뭐 내 카피능력이 이렇지... 해놓고 보니 별로 눈에 띄지도 않는구먼... 쩝...

암튼, 조금만 더 보자면, 독일 사민당은 1912년에 이미 제1당이 되었다. 그러나 제1당이 되던 전후에 독일 사민당은 마르크스주의를 벗어나 수정주의로 기울었다. 게다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졌을 때 독일 사민당은 당내 일각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전시국채발행 등에 찬성하면서 독일의 제1차 세계대전 수행을 지지 엄호한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은 전 유럽을 참화로 몰아넣게 되는데,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전쟁의 양상이 과거와는 달리 총력전 참호전의 양상으로 전환되었다는 것이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일단 전후방이 따로 없는 총력전 참호전으로 전쟁이 전개되고, 따라서 애초 개전 당시에 예상했던 것보다 전면적이고 장기적으로 전쟁이 치러지면서, 물자와 사람이 징발되어 전장에서 사라지는 것은 물론 후방의 인민들도 극심한 전시동원체제에 희생되면서 전쟁에 반대하는 분위기, 그리고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주도한 자들에 대한 분노의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분노가 급기야 1918년 11월 혁명으로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황제(빌헬름 2세)는 도망가고 사민당이 임시정부를 맡게 된다.

부당한 명령에 항거한 수병들과 이에 동조한 노동자들이 만든 혁명의 분위기라고 하지만, 독일 사민당은 혁명의 과정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어정쩡하게 혁명을 비토하는 입장을 취한 게 아니라, 혁명노선을 일찌감치 폐기하고 있었던 차에 제정에서 공화정으로 정체가 바뀌는 순간 신생독일공화국의 장래를 자신들이 떠안게 된 상황에서 자신들의 지도체제를 부정해야할지도 모를 혁명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이 일련의 역사적 과정을 통해 알 수 있다.

로자 룩셈부르크 등은 벌써 1917년에 사민당을 나와 독립사회민주당의 일원이 되어 있었고, 그들은 이미 1916년에 스파르타쿠스단을 결성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1919년 1월에 봉기를 일으켰으나 곧바로 진압당하고, 이 과정에서 로자 룩셈부르크는 재판없는 즉결처분으로 살해당한다.

장석준의 칼럼은 이 부분을 좀 애매하게 처리하면서 로자 룩셈부르크 등 1월 혁명의 주동 세력들이 그때까지도 사민당과 같이 정치행보를 벌였던 것처럼 오해를 살 수 있지만, 정황은 그렇다. 문제는 이 정황 속에서 발생한 사건이 과연 사민당이 혁명의 상황을 오판했던 것이냐이다. 장석준은 1919년 사민당의 오류는 "사회주의 혁명을 시도하지 않은 게" 아니라 "민주주의 혁명조차 제대로 밀고나가지 않았"던 것이라 지적한다.

장석준이 말하는 당시 독일의 "민주주의 혁명"은 "구 지배질서의 기둥이자 세계 전쟁의 원흉인 군부를 해체"하고 "공화국 군대를 새로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역사적 과정을 통해 독일 사민당은 당시까지의 정치적 위치에서 "구 지배질서의 기둥"인 "군부를 해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오히려 군부까지 포함된 체제질서의 한 축이었으며, 1차 세계대전에 공동의 책임이 있을 뿐만아니라 신생공화국 최초의 권부를 장악한 권력의 정점이었다. 이들이 어떻게 "구 지배질서의 기둥"인 "군부를 해체"할 수 있었겠나?

사민당의 과오는 혁명의 분위기를 타고 그 혁명의 주력으로 자신들을 위치시키지 못한 것에 있지 않다. 사민당의 과오는 오히려 그러한 혁명의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을 수 없는 반동적 사회구조를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데에 있다. 

이 칼럼을 통해 장석준이 하고 싶은 얘기는, 현재 '진보정당'은 뭘 할 것인가를 고민하자는 것일 터이다. 그러기 위해 독일 사민당의 '오류'를 반추하고, 이 과정에서 1월 봉기를 주도하다가 숨져간 로자 룩셈부르크의 노선-사회주의-을 되새겨보자는 것일 게다. 하지만, 100년 전 오늘 독일 사민당의 판단오류를 전제로 논리를 이끌어나가는 건 무리다. 적어도 내 관점에서, 독일 사민당은 그 때 그 순간 판단착오를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당시 노선과 위치가 그렇게 갈 수밖에 없었던 한계를 이미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이제 신자유주의를 넘어선 혁명 또는 개혁을 위한 어떤 결정적 순간이 닥쳤을 때, 현재의 진보좌파는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건 문제의 선후가 안 맞는다. 오히려 그 역사적 순간이 도래했을 때,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정도의 준비를 하고 있는 진보좌파가 있는가, 있다면 누구인가를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장석준의 독해와는 달리, 로자 룩셈부르크의 '대중파업론'이 내게 남겨준 교훈도 바로 그것이고.

덧: 어떤 사회학자는 장석준이 로자 룩셈부르크와 레닌의 대립구도를 장석준이 잘못 파악하고 있다면 지적을 하던데, 내가 볼 때는 그분 역시 둘의 대립구도를 잘못 파악하고 있더라. 이 부분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지만, 여기까지 구라를 푼 것만으로도 이젠 귀차니즘이 발동해서리... 암튼 나의 로자 룩셈부르크를 너무 단순하게들 재단하지 말아달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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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6 12:23 2019/01/16 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