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선거에 나오는가
"진보정당의 독자적 성장 전망과 역할 및 과제에 대한 집담회"를 봤다. 흐미, 길기도 하네...
여러 의미 있는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물론 '정의당'에서 주관하는 행사였던만큼 정의당을 중심에 두고 논의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정당정치를 하는 진보-좌파가 들여다봐야 할 중요한 주제들이 있었다.
개별적인 주제들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고, "집담회"를 본 총론적 소감을 말하자면, '정치'의 개념이나 의의에 대해 사람들이 매우 다르게 이해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누구의 견해가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각각의 방향이 지향하는 바가 어느 정도 현실에서 합치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드는 거다.
일부 패널의 경우, 제도권 정치에 필요한 실물적 행동양태에 대한 견해에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쉽게 말해, 총선과 같은 시기에 당면하여 지지를 확보하고 제도권 내에서 위치를 점하기 위한 방안이 나오면, 그 방안의 타당성이라든가 실효성에 대한 견해가 아니라 당장의 당선을 위한 것이 아닌 근본적 문제를 제기하는 정치가 필요하다는 식의 의견을 내는 거다.
물론 나도 군소정당이 그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선거시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아둥바둥하는 이유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일단 선거에 뛰어 들었다면, 그 선거에서 일정하게 자신이 원하는 바 성과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선거가 끝나면 자신이 받은 결과에 대하여 평가를 해야 한다.
저 "집담회"는 아마도 선거평가가 주 목적이었던 거 같은데, 글쎄다, 제도권 정치권역 내부의 위치를 점하기 위한 절차인 선거를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해야할 말을 하는 자리로 한정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는 둘째 치고 그런 당위의 설파로 선거평가를 대신하는 게 "집담회"의 성격에 맞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더 답답한 건, 이렇게 서로 다른 '정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과연 '대통합' 같은 거 할 수 있을지이다. 총선 끝나고 나자마자 노동, 녹색, 정의가 함께 뭘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들렸는데, 그게 대체 가능한 시나리오인지 이 "집담회"만 봐도 그다지 감이 오질 않는다.
각자도생하다가 선거 등 특정 시기에 연대연합하면 된다는 썰도 있지만, 그게 특정시기 잠깐의 연대연합도 가능할까? 솔직히 말해 이번 '녹색정의당'이라는 '실험'은 연대연합의 모델이 될 수 있을까? 내 생각에 반면교사는 될지 모르겠지만 성공적인 연합의 모델이라고 보긴 어렵다.
물론 더불 가랭이로 기어들어가면서 그걸 연합이라고 에둘러 말하더니 선거 끝나자마자 연합의 승리라고 선언하는 식의 행태는 당연히 연합이라고 할 수도 없는 거고. 이건 반면교사 거리도 아니다만.
암튼 어렵다. 구체적이고 실효적인 실체로서 정치세력화할 수 있는 실천노선을 추구한다는 건.
고 박은지는 "우리의 투쟁은 십년 후의 상식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가 투쟁하면서 그 투쟁의 일환으로 정치활동 정당활동을 하는 이유는 '십년 후의 상식'을 진짜 십년 후에는 상식으로 만들기 위해, 아니며 그보다 더 빠른 시간 안에 상식으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투쟁만으로 십년 후에 우리의 이야기가 상식이 된다면 그냥 우리는 투쟁만 해도 된다. 굳이 빚 내고 몸 상해가면서 선거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 아스팔트 농사만 굳건히 지어도 된다.
투쟁만으로는 십년 후에 상식이 되지 않으니 그 고생을 하는 거다. 제도를 우회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험칙상 아스팔트에 머리만 처박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