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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벽 세 시가 넘어서 잤다. 월요일에 시작한 림프종 환자의 업무관련성 평가서는 거의 수요일 오전에 끝났고, 어제 오후에는 백혈병 환자의 업무관련성 평가서중에 내가 맡은 부분까지 작성을 끝내고 산업위생전문가에게 넘겼고, 저녁에는 재생불량성으로 산재소송중인 사례에 대하여 의견서를 작성하려고 이런 저런 자료를 보다가 의문점이 생겨서 사실관계를 확인을 해 보고 깜짝 놀랐다. 공정이 열 개쯤 있는데 네 개 부서에서만 직업병 의심사례가 발생했고, 그중 한 부서는 의심 사례가 가장 많은데 사측에선 화학물질을 전혀 취급하지 않는 안전한 환경이라고 펄쩍 뛰고 있다. 제품을 검사하기 위해 고온테스트를 하는 공정인데, 불량품이 탈 때 나오는 먼지와 연기의 성분이 무엇인지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사례들에 대해서 골 똘히 생각하다가 잠 잘 시기를 놓친 것이다. 쩝.
아침에 알람 소리에 눈을 간신히 떴는데, 따님이 욕실에 가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밥을 무척 좋아해서 아침에 따뜻한 밥 먹으면 행복해하는 따님의 얼굴이 떠올랐고 피곤한 것을 꾸욱 참고 아침 밥상을 거하게 차려놓고 과일까지 깎아 놓고 출근을 했다. 사실 아침 밥상은 남편님에게 역할분장 된 것인데, 맨날 밥 김치 계란만 줄 뿐 아니라 어떨 때는 중학생이신 따님한테 밥상을 차려달라고까지 하신다 하여 따님의 불만이 지속적으로 제기된 뒤로 여건이 되면 한 번씩 내가 아침 상을 차린다. 그런 날은 따님이 방실방실 웃는데, 그 모습이 보고 싶어서 그러는 것 같다.
오늘 검진 이야기.
폐암 수술받은 적 있는 60대 남자분이 들어와서 한참동안 앉아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나가셨다. 여러 가지 증상과 이에 대한 치료를 제대로 받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은 것. 주치의와 이야기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지만 수검자가 얘기하고 싶어 하고 하고 시간이 좀 되면 듣는다. 대부분은 잘 하고 계시다는 답변으로 끝. 하루에 한 명 정도는 감당 가능.
치과병원에서 새로 일을 하게 된 젊은 여성 노동자가 특검을 받으러 왔는데 천식이 의심된다. 치과에서 근무한다는 것은 천식이 발생할 수 도 있고 있던 천식이 악화될 수 도 있다는 뜻. 호흡기 내과 진료안내를 했다.
대장암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서 대장내시경 검사를 원하는 사람도 늘었으나 국가 암검진은 50세 이상자에 대해서 분변잠혈검사만 제공하고 있다. 관련 증상유무를 확인, 최근 5년 이내 대장내시경 검사여부 확인을 하고 이에 따른 설명을 하게 되는데 자동응답기처럼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다보면 힘이 들어서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작년에 11월에 분변잠혈검사 음성 통보를 받은 72세 남성이 올해 1월에 직장암 3기로 수술을 했다고 보호자가 와서 항의한 뒤로 증상을 조목 조목 확인하는 것으로 절차를 강화했다. 연세가 많은 분들이 오시다보니 문진지만으로는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 취한 조치인데, 그 결과, 목이 아/프/다.
오전 검진이 거의 마무리가 되어 간다. 지금까지 접수건수는 61건. 자궁경부암 검사는 7건. 이 정도면 할 만 하다. 수검자가 밀리지 않고 대기시간 길어진다는 불만 없으니 진찰실이 평화롭다. 어제 쉬는 날이라 암판정할 것도 없고, 오후에 직업병 진료예약만 없으면 완벽하게 편안한 날. 그/러/나 확인해보니 예약이 있단다.
무엇엔가 몰두해서 작업을 할 때는 검진하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진다. 어제 아들이 말하기를 "요즘 영어공부가 재미있는데 그러다보니 수학공부에 소홀하게 된다", 나도 그렇다. 검진을 하다보면 뇌를 많이 쓰는 업무에 손대기가 싫어지고, 뭔가에 꽂혀서 탐구하다보면 검진하기가 싫어진다. 학교와 병원에서 이중의 적을 두고 각각 월급을 받는 처지. 가끔은 월급을 줄이더라도 병원일을 안 하고 연구만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는데, 주로 뭔가 해야 할 일이 잔뜩 밀려있을 때 그런 생각이 드는 듯. 그게 바로 오늘. 사실 나는 병원업무(검진)도 좋아하고 연구프로젝트도 좋아하고 집안살림도 좋아하는데, 문제는 이 세 가지가 동시 진행은 어렵다는 거지.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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