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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들

[한 번도 검진결과를 못 받았다는 사람]

아침에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골치가 아팠다. 방송국 송출업무를 하는 50대 중반 남자가 종합검진을 받으면서 동시에 야간작업 특수건강진단을 받는 과정에서 절차상의 미흡함에 대해서 화를 냈다. 우리 간호사에게 반말 섞어 가며 "나 이 검진 마음에 안 든다, 설문지를 안 보내준 건 누가 잘못한거냐, 종합검진센터나 너네냐" 뭐 이런 컴플레인.  

어제 좀 늦게 자서 몸이 무거운데, 첫 수검자부터 소리소리를 지르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심호흡을 했다. 그는 내 앞에 오면 이 검진을 도대체 왜 하냐 부터 시작해서 본인이 얼마나 힘들게 근무하는가를 누구보다 더 길게 설명할 것이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어떤 업무를 하시나요. 하고 물어보니 "얘기하면 알아요? "하고 노려보았다. 

"제가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예요. 직장인의 건강문제를 진단하는 사람이니까 좀 알아들어요. " 눈을 바라보면서 말했더니 방송편집및 송출업무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이야기는 이 검진을 한다고 했을 때 사실 기대가 좀 있었다. 해마다 똑같은 설문지에 체크하지만지난 몇 년간 한번도 검진결과를 받아본 적도 없다... 많이 많이 들어본 이야기이다.  보통 검진결과는 검진기관에서 사업장 보건관리자에게 보내고, 보건관리자는 당사자에게 전달한다.  그 과정에서 분실되는 일이 종종 있다.  그래서 우리는 상황에 따라 당사자가 쓴 주소로 우편발송하기도 한다. 주소불명 검진결과 반송률도 상당하다. 그래서 주소 두 번확인하기 등을 업무절차에 넣었더니 반송률이 상당히 줄었던 경험이 있다.  올해부터는 이메일로도 발송가능하게 법이 바뀌었다 하니 좀 나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간 검진을 받으러 여기 저기 다녔다는데 들어보니 다 그럴만한 검진기관들이다. 

설문지를 보니 피로와 불면이 심각하다. 30년 야간근무에 10년전부터 발생한 증상.  24시간 방송이 되면서 업무가 점점 늘은 것도 이유중의 하나라고 한다.  과거에는 야간근무를 해도 이렇게 노동강도가 높지는 않았던 것 같다. 공식적인 휴게시간이 없는 것도 야간근무 부담을 가중시키는 원인이다.   "수면장애주의에 야간작업일정개선(대근금지) 조치를 내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물어보니 처음엔 "좋다" 한다. "회사에서  다른 사람은 괜찮은데 왜 당신만 불면증이 있냐고 물어볼 수도 있어요" 했더니 그건 곤란하다고 한다. 어떤 경우는 당사자 동의를 얻어 문제를 공론화하고 근무일정을 개선하도록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당사자에 대한 낙인효과로 끝날 수 있기 때문에 본인이나 노사의 인식수준과 개선가능성을 고려해서 신중, 또 신중하게 판정한다.  

이 검진은 당해 근로자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개인수준에서, 조직수준에서 취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분은 내년에 정년퇴직이라 이슈를 만들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마 통상임금/퇴직금을 생각한다면 대근을 더 하고 싶을 수도 있을 것이다. 노동시간이 돈과 직결되어 있는 상황에서 개인수준에서 노동시간 단축이나 야간근무 감소는 쉽지 않다. 

수면위생교육 자료를 주면서 햇빛노출, 운동, 식사 관리 등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낮에도 급하게 밥먹고 바로 와서 일해야 해서 햇빛구경도 못한다고 했다. 광치료 안경을 소개해주었다. 광치료 안경은 의료기구로 분류되어 있지 않아 개인이 온라인 구매를 할 수 있다.  수면예정시간 14시간전에 강한 햇빛을 30분정도 쏘이면 14시간 후에 수면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가 촉진된다는 이론에 근거한 것이다.   눈부심 등 경미한 부작용도  더러 있을 수 있다.  장기간 부작용에 대한 연구는 없다.  가격이 좀 비싸다. 그래서 꼭 필요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하도록 소개를 한다. 이 분은 업무특성상 햇빛을 아예 볼 수 없다 하니 필요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증상을 조금 완화시키는 데에는 도움이 될 수 있으니 써보라고. 무엇이든 자신의 건강을 돌보는 것을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들]

이어서 다른 방송국 송출작업자가 왔다. 교대근무 일정에 대해서 별다른 불만은 없다고 한다. 들어보니 그 회사는 대근이 타 회사보다 좀 적었다. 즉 휴가를 쓰는 사람이 적은 것이다.  지난 주에 왔던 또 다른 방송국 송출작업자는 공중파 3사 중에 가장 나쁜 스케쥴로 일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 부서는 누군가 휴가를 쓰면 대근을 해야 한다. 대근은 특정시기에 과도한 야간근무일정을 소화하게 하기 때문에 노동자의 건강에 더 부담이 될 수 있다. 

방송국 검진을 한 지가 4년째이다. 그 수천명의 사람들이 불규칙 교대근무를 하고 있는  큰 회사는 수십만원 짜리 종합검진을 직원들에게 제공하지만 야간근무 일정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장시간 야간노동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바꾸고 변화를 만들어내는 일은 쉽지 않지만 꼭 해야 할 일인데.....어제 올라온 글을 첨부한다.  야간노동에 대한 글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가 노동시간과 관련해서 꼭 기억해야 할 내용이다. 

 

[기고]폐기해야 할 ‘무제한 과로 허용 조항’  

조현아 | 일터건강을 지키는 직업 환경의학과 의사회 이사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1192124015&code=990304#csidxc756fcbb5d7cd1fae9793829227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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