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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크랩의 권리

길을 걷다가 문득 눈에 들어온 킹크랩. 

서울에서도 종종 보게 되는, 수족관 안에 켜켜이 쌓인 채 지내는 킹크랩. 

저들이 살아있는 걸까 잠시 멈춰서 보면, 어디에선가 누군가는 분명 움직이고 있고, 

죽어있는 게 아니라면 저렇게 짐짝처럼 쌓인 건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그러게, 그걸 어떻게 알지?

돼지나 닭 등 인간이 '식용'동물로 만들어버린 이들의 집단 사육은 큰 문제다. 사육 환경만 문제인 건 아니지만 어쨌든.

보기만 해도 해선 안 될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저 킹크랩들은?

왜 저이들은 이제서야 눈에 들어온 걸까?

그리고 저이들에게 저 환경이 어떤 환경인지, 누가 알지?

사람이 미어 터지는 서울이라는 도시에 살아가는 사람과, 

수족관 안의 킹크랩들과, 

축산기업의 농장 안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동물들과, 

어느 것이 더 문제적인지 알 수 있을까?

비교는 어차피 불가능하겠지. 

그것만으로도 문제임은 분명하고. 다만, 그것이 동물의 '권리'로 말해질 수 있는 건가 궁금해졌다. 

 

권리주체의 외침을 들을 수 없는 조건에서, 

동물과의 일대일 소통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집단적 소통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결국 권리주체인 동물들은 대리'인'을 통해서만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면, 

사실

동물의 '권리'는, 동물에게 이러저러한 것들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권리'가 되어버리는 것 아닐까?

그리고 그건, 어떤 방식으로든 동물의 권리(가 있을 수 있다면)를 박탈하거나 왜곡하기가 더 쉬울 거라는. 

 

뭐 이런 생각을 구치소 가는 길에 했다. 

갇혀있다는 건 누구에게나 힘든 일일 거라는 말을 이쯤에서 하게 되면, 

사람의 자유가 킹크랩과 비교되는 것 같아 나도 뭔가 뻘쭘하고, 누군가는 기분이 안 좋을 수도 있을 테다. 

이미 그런 위계(또는 소통불능)에 익숙해진 인간이, 동물과 근본적으로 동등해진다는 건 어차피 불가능. 

그럴 때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생명으로서의 동물과, 어떻게 만나면 좋을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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