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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자 서준식


공안검찰로 유명했던 김기춘의 구속에 붙여, 손석희는 앵커브리핑에서 서준식 선생을 언급했다고 한다. "평범한 시민을 하루아침에 간첩으로 만들었던 수많은 조작사건들"의 가해자였던 인물 중 하나인 김기춘이 "사복을 입은 채로 조사를 받고 난방이 가능한 구치소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된 것"은 "간첩단 사건의 피해자 서준식 씨를 비롯한 인권운동가들의 노력" 덕분이라며. 그렇다. 한국의 감옥인권 현실을 말할 때 서준식은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서준식 선생은 내가 지금 속해 있는 인권운동사랑방 창립멤버 중 한 사람이다. 감옥인권운동은 인권운동사랑방이 창립 당시부터 10여 년 넘도록 이어온 활동이기도 하다. 지금 활동을 이어가고 있지 못해 부끄러운 마음도 있지만 한 시기의 감옥인권운동에 대한 자부심은 보탠 것 없는 내게도 이어진다. 독재정권에 맞서 싸웠던 수많은 사람들이 '양심수'나 '정치범'이라는 이름으로 감옥에 갇히고 운동이 그들에게만 눈길을 보낼 때 감옥인권운동은 감옥에 갇힌 '모든' 사람들의 인권을 주창하며 새로운 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인권운동가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서준식 선생을 인권운동가일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자로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감옥인권운동 역시 그가 사회주의자였기 때문에 시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서승과 서준식, 두 형제는 손석희가 언급했던 간첩단 사건의 재심 청구를 거부하고 있다. 체제에 저항하려 했던 내심을 숨기지 않겠다는 의지로, 무고한 피해자였음을 증명하라는 재심을 거부하신다 했다. 감옥에 있을 때도 사상전향을 거부했던 그로서는 자연스러운 결심일 것이다. 그가 사회주의자였다거나 북한을 다녀왔다는 사실은 그가 피해자라는 사실과 대립하지 않는다. 사회주의자거나 북한을 다녀오거나 하는 것은 누군가 감옥에 갇혀야 할 이유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대한민국은 국가보안법이 살아있고 사회주의나 북한과의 교류가 처벌의 이유가 될 수 있는 국가다. 서준식 선생은 재심을 거부하면서 여전히 체제에 저항하고 있다. 
운동의 눈길을 끌었던 '양심수'나 '정치범'들이 '민주화 경력'을 인정받을 때, 그렇게 불리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오늘도 교도관의 모욕과 폭행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고 출소한 후의 전과자 차별도 견고하다. 김기춘 같은 자가 누리는 '인권'은 여전히 아무나 누리지 못하는 '특권'이기도 하다. 그리고 서준식 선생이 지키고 싶었던 사상은 여전히 '국민'의 자격을 박탈당하는 이유가 된다. 그가 시작한 감옥인권운동은, '더 낮은' 사람들을 향한 연민이기보다 체제로부터 내쫓기는 사람들의 연대였을 것이다. 그는 사상을 내세워 사람을 구분하지 않았고, 사상을 숨기는 대가로 개선을 얻지 않았다. 사상과 신념을 지키며 산다는 게 이런 것이 아닐까. 감옥인권운동은, 감옥 밖의 더 큰 감옥을 부수는 운동으로 뻗어가려는 전망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 인권운동의 기틀을 잡기도 했던 서준식 선생이 사회주의를 품은 사람이었다는 것은 지금 인권운동을 하는 모두에게 큰 행운이자 숙제다. 조효제 선생은 <인권의 지평>을 내며 인권침해의 구조적 성격을 강조했는데, 한국의 인권운동은 이미 그런 기본적 토대에서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 역시 서준식 선생에게 빚지고 있을 것이다. 지금, 숙제는 무엇일까. 

지금의 세계에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라는 질문이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지구와 인류가 처한 온갖 문제들, 그러나 뚜렷한 경향성을 보이고 있는 불평등의 문제들에 단순한 몇 가지 질문으로 입장을 정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적어도 운동 안에서는 이념이 체제의 변화를 보지 못하게 기능하는 역효과도 낳고 있다. 이념 논쟁이 해방의 열망을 대체하는 듯 운동을 내부에서부터 무너뜨리기도 했고, 이념의 배제가 해방을 가능케 하는 듯 운동을 체제 안으로 가두기도 했다. 이 모두 이념의 역효과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이것은 저항의 흐름을 읽어내는 데에도 부적절한 질문이다. 불평등과 폭력의 시간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깨치며 세계를 지켜내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행동들, 여기에는 하나의 사상으로만 읽어낼 수 없는 힘이 있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주의를 말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그게 결론이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의 해방, 해방된 인간을 사유하고 도모했던 사상들(당연히 여성주의를 포함하여!)은 지금 여기에서 저항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출발선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도 경유하지 못하는 사상은 이미 해방의 기획일 수 없는 것이 역사다. 저항이 사상을 얻기 전에도 삶으로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어 우리는 언제나 해방을 꿈꿀 수 있다. 그러나 해방의 사상은 변혁을 꾀하는 실마리가 되고 사회주의는 여전히 우회할 수 없는 해방의 철학이다.

인권은 억압으로부터, 차별로부터, 착취로부터 해방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어떤 문제에 봉착하고 있는지 어디에서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 들여다보게 하는 돋보기다. 시선이나 관점은 다를지언정 사실 모든 운동이 출발하는 것도 그곳이다. 그리고 그곳에 이미 사상은 흩어져 있다. '인권'은 이념과 무관한 이론이지만 이념과 뒤범벅된 현실이기도 하다. 사회주의는 인권의 숙제가 아니지만 인권운동의 숙제가 된다. 서준식 선생은 <옥중서한>의 머릿말에 아래와 같은 문장을 썼다. 지금 인권운동, 아니 한국의 모든 운동에도 고스란히 숙제로 남는 말이다. 

"진정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대규모로 진행되는 저항운동의 체제내화다. 그것은 우리의 희망 그 자체를 파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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