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으로 기억되는 아동학대 사건은 친부모가 아닌 경우가 많다. '계모'나 '양모'를 강조하여 가족형태의 문제처럼 보이게 만드는 보도에 대한 비판들도 있어왔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왜 그럴까. (부나 모 앞에 친, 계, 양 등을 붙여 구분하는 것이 가진 문제도 있지만 문제제기를 위해 우선 그대로 쓴다. '2019 아동학대 주요통계'를 참고했다.)
아동학대사건의 70% 이상은 친부나 친모에 의해 발생한다. (친부 41.2%, 친모 31.1%) 그리고 2015년부터 2019년까지의 발생 건 수를 보면 친부모에 의한 사건이 급격하게 증가한다. 학대 자체가 늘었다기보다 신고가 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사회적으로 부각되는 사건은 친부모가족이 아닌 경우다. 성폭력 사건이 '아는 사람'에 의해 훨씬 많이 발생하지만 사회적으로 문제되는 사건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는 점과 비슷하다. 우리는 폭력의 본질에 아직 직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이게 전부는 아니다. 친부모에 의한 아동학대 사건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계부모나 양부모 가족 비율을 감안한다면 친부모가 더 쉽게 학대한다고 하기는 어렵다. 가구 구성 통계를 함께 비교해야 할 텐데 가족 형태 통계에서 양부모나 계부모 가족을 따로 구분하지 않아 정확히 알기가 어렵다. 다만 한해 국내 입양 아동 수가 400명에 못 미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양부모가족에서의 아동학대 비율이 적지 않다. 비율을 따지면 오히려 높다.*
그래서 다시, '역시 아이는 친부모가 키워야지'라며 가족의 환상을 환기해야 할까? '정인이' 사건 이후 '전국입양가족연대'는 "입양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는 성명을 냈다. 입양이 아니라 가정 안에서 발생하는 아동학대가 문제라는 점에서, 정확한 지적이다. 아동학대에서 다시 양부모나 계부모가 문제의 원인처럼 부각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러나 미/비혼모에게 입양을 종용하는 입양'산업'의 문제는 따로 짚어져야 한다.)
친부모가 아동학대 사건 가해자의 대다수라는 점, 양부모가 (학대하기 위해 아동을 입양할 리 없는데) 아동학대를 저지르기 더 쉽다는 점을 함께 본다면 우리가 직면해야 할 진실은 이것 아닐까? 부모가 자녀를 사랑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 부모는 그저 사랑을 연습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
아동은 독자적인 인격이다. 미울 수도 있고 마음이 안 맞을 수도 있고 번번히 대들 수도 있다. 관계에서의 어긋남을 폭력으로 종결시키는 관습(사랑으로 봉합하는 것의 거울쌍이다)에 보호와 훈육이라는 명분을 안겨주던 탓(특히 '친권'자에게 더 큰 명분이 된다)에 수많은 아동이 수많은 부모들에게 학대당해왔다. (친모는 더 사랑해서라기보다 더 사랑해야 할 것 같아서 한번 더 참을 뿐인지도 모른다.) 사랑을 전제할수록, 학대는 지속될 것이다.
'정인이' 사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여러 앞뒤 이야기들이 나온다. 가해자인 양부모의 '패륜성'이 부각될수록 공분이 높아진다. 하지만 아동학대에 대한 경각심은 오히려 떨어지는 것 아닐지 걱정도 된다. 세상 지극히 ‘평범한’ 부모들이 아동학대의 가해자라는 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래야 어떻게 부모가 자녀를 아끼고 돌보며 서로 키울 수 있을지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아동에게도 부모 아닌 동료가 필요하다.
* 2019년 아동학대 발생 건 수는 친부 12,371건, 친모 9,342건, 양부 58건, 양모 36건이다. 2015년 부부와 미혼자녀로 구성된 가구 수는 614만 가구 이상이다. 양부모가 미혼 자녀를 양육하는 가구는 입양아동 수를 고려할 때 1~2만 가구로 추산해볼 수 있을 듯하다. (이와 관련해 더 정확하게 살필 수 있는 통계가 있다면 안내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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