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4.3 추념사. 제주 4.3의 정명이 어려운 이유를 다시금 확인시켜준.
추념사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된 사람들은 두 집단인데,
한 집단은 군경의 행위로 부상당하거나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군인'으로 복무했을 때 대통령에 의해 호명될 수 있었다는 점. 제주4.3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정당성에 마지막 남은 상처이므로, 대한민국의 군인으로 대표되는 이들을 통해 상처를 숨겨야 했을 것.
다른 한 집단은 제주4.3의 역사가 묻히지 않도록 애썼던 문화예술인들. 그/녀들에게도 이념은 없지 않았을 것이나, 그/녀들의 작품은 이념을 에두를 수 있으므로 대통령에 의해 호명될 수 있었다. "삶의 모든 곳에서 이념이 드리웠던 적대의 그늘"을 예술도 비껴갈 수 없었던 역사를 '금기'였다는 말로 넘어가도 될런지.
4.3유족회와 제주경우회의 '조건 없는 화해'를 '전 국민의 것'으로 만들자는 제안 역시도 4.3 정명이 멈춰있는 이유를 보여준다. 유족회와 경우회의 조건 없는 화해는 미래를 위한 선택이기도 하지만, 조건을 따지면, 즉 잘잘못을 따지기 시작하면 도전히 결론에 이를 수 없는 사건이 4.3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조건을 따질 수 없는 조건을 만든 것이 이승만 정권과 미군정의 책임이라는 점-진상규명이 현재 멈춰있는 지점-은 분명한데, 그렇다면 "학살을 정당화하는 명분에 불과"했던 '이념'이 무엇인지 밝혀내고 평가할 때에만 역사의 화해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추념사의 결론은 '(이념이 아닌) 평화와 인권'을 강조하는 것으로 끝날 뿐.
그래서 인권에 대한 고민이 이어지기도 한다. 4.3 70년이라는 올해는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이기도 하다. 두 사건은 우연히 같은 해에 있었을 뿐이지만 아무 상관 없을 수는 없다. 일제에 맞선 한반도 민중의 해방운동이 '강대국'의 의사/의지/이기에 휘둘리며 스스로 새로운 체제를 수립할 기회를 잃어버린 때에 그 '강대국'들은 인권을 선언할 수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 4.3이 그러하듯 '인권'은 여전히 투쟁 중임을 잊어서는 안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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