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류의 오른쪽 어깨다. 어깨뼈의 안팎에 뿌리를 두고 위팔뼈를 움켜쥔 근육과 힘줄 덩어리. 지금 미류는 나와 함께 몇 시간째 글을 쓰고 있다. 감개무량하다.
2년 전쯤 미류와 나는 어긋나기 시작했다. 살면서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나는 그를 좋아했다. 몸을 움직이는 걸 즐기는 사람이라, 나를 쓰지만 않고 놀게도 해주었다. 그가 수영이나 요가를 할 때면 나는 늘 신났다. 언젠가부터 대화할 새가 없어졌다. 여러 차례 신호를 줬다. 미류도 알아차리는 눈치였다. 그런데 바뀌는 게 별로 없었다. 주위 다른 근육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버텼지만 상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저항하기로 했다. 미류가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오른팔에 힘을 주려고 하면 나는 손가락과 손목과 팔꿈치에 연대를 호소하며 그를 거역했다. 미류가 속이 더부룩하다며 배를 문지르려고 할 때에도 나는 딴청을 피웠다. 그가 오른팔로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줄어들었다. 언젠가 친구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오른팔이 몸통에 그냥 매달려있어. 무겁게 들고 다니는 느낌이야.” 나는 성공하고 있었다.
미류는 결국 안식년을 쓰기로 했다. 하지만 조금 늦었다. 나는 이미 너무 지쳤고 그의 노력만으로 되돌릴 수 없는 상태였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미류도 모르지 않았다. 돈이 걱정일 뿐이었다. 조마조마 선택을 기다리던 어느날 그는 재활센터에 다니기로 결심했다. 설렜다. 드디어 내 이야기를 찰떡같이 이해할 사람을 만나겠구나! 의사가 주사치료를 하자고 말했을 때도 미류는 군말없이 따랐다. 비급여 진료라면 의심부터 하던 그는 달라지고 있었다.
인권재단 사람의 <일단, 쉬고>라는 지원사업과 공익활동가협동조합 동행의 의료비 지원 덕분이었다. 액수로 따질 수 없는 든든한 응원이었다. ‘당신이 잘 쉬고 잘 낫기를 바래요.’ 이런 편지를 받은 것처럼 미류는 기운을 냈고 나를 더 아낄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갔다. 활동가들이 몸과 마음을 잘 보살필 수 있기를 바라며 언제든 기대라고 제 어깨를 내어놓는 곳이 있어, 참 다행이었다.
“저 이제 그만 다녀도 될 것 같아요!” 몇일 전 재활운동을 지도하는 강사에게 미류가 말했다. 강사는 한두 달 더 하라고 조언했다. 나야 반가운 대답이지만 미류는 실망한 기색이다. 인권재단 사람에 낼 결과보고서를 쓰는 지금도 ‘결과’를 말할 만한 마침표가 찍히지 않아 난감해보인다. 그래도 그간 배웠을 것이다. 몸을 보살피는 일에 결과와 과정이 따로 없다는 것 말이다.
내가 토라질 때마다 미류는 시간을 거슬러가며 무엇을 잘못했는지 찾아내려고 했다. 교정 가능한 원인을 찾은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인데. 지금 나랑 얘기 좀 하자는데 혼자 과거로 달아나버리는 꼴이었다. “왼손으로 사과 써는 법 알아?” 미류가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 친구에게 자랑했던 기억이 난다. 과도를 쥔 오른손이 움직일 수 없게 버텼더니 왼손으로 사과를 돌리며 기어이 반쪽을 만들었다. 우리가 겪는 변화를 받아들이며 웃기도 하는 미류를 믿어본다.
나와 미류의 노력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몸의 변화가 ‘이상’ 신호로 느껴질 때 그것을 찬찬히 살피고 이해하고 응답하려면 여러 도움이 필요했다. 시선, 돈, 제도, 관계 등은 몸에 언제나 개입되어 있어, 우리가 튼튼하려면 세계도 튼튼해져야 했다. 시간이나 돈보다 자신의 몸을 아낄 줄 아는 세계로. 천천히 가자.
오른팔을 머리 위로 들어올리기까지 몇 달이 걸렸다. 우리는 점점 더 넓게 벌리고 더 크게 돌리고 더 멀리 뻗어가고 있지만 아직 거리가 남았다. 조바심을 내지는 않는다. 서로 돌보려면 적당한 거리도 필요했다. 어깨 너머로 말고 어깨를 보라고 응석도 부리고, 미류 아닌 다른 사람도 기댈 수 있게 무게도 잡아볼 계획이다. 가끔 내가 쫙 펴면, 우리는 꽤 멋질 거다.
어깨 너머로 말고 어깨를 보라고
주간미류
2020/12/07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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