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를 재난으로 인식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재난이라면 그 피해는 무엇일까? 나는 최근에서야 이 질문을 진지하게 던져보게 되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감염으로 10월 30일 현재 463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들과 그 가족을 재난 피해자로 이해하고 있을까? 현재까지 26,385명이 코로나19 감염 확진 판정을 받았다. 아직 치료방법이 확실하지 않은 감염병 진단을 받았을 때의 충격과 두려움, 갑작스러운 확진 판정으로 중단된 일상과 고립. 완치 판정을 받고 나서도 후유증에 대한 불안은 가시기 어렵고, 그 중 누군가는 새로운 일상을 만드는 데 여전한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들을 재난의 피해생존자로 이해하고 있을까?
어쩌면 우리가 인지하는 재난 피해란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국가 차원의 방역만으로 벗어날 수 없는 판데믹의 공포, 그 바이러스가 언제고 나의 몸으로 침투할 수 있다는 두려움. 물론 우리는 이타적인 동기에서도 방역대책을 따른다. 누군가 돌이킬 수 없는 죽음에 이르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피해는 추상적이고 사람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확진자 수가 늘어나는 걸 보며 누군가 겪게 될 고통을 먼저 떠올리기보다 누군가 나를 위협할 가능성이 더 커졌다는 불안을 느낀다. 피해자에 대한 공감은 불가능해진다. 국가가 매일같이 재난 피해를 집계하지만 재난 피해자는 없는 상황, 이대로 괜찮은가?
괜찮지 않다. 공감할 수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재난 피해자는, 무엇이 문제였는지,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가장 많이 질문하고 가장 늦게까지 답을 구하는 사람이다. 그들의 목소리로부터 시작된 진실이 안전을 밝혀왔다. 그러나 피해자의 위치는, 타자화되고 비난당하며 대상화되기 쉬운, 무슨 말을 하든 왜곡되기 쉬운 위치다. 코로나19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재난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인권운동이 ‘재난 피해자의 권리’를 탐구하기 시작한 이유도 그것이다. 이때의 질문은 ‘재난 피해자는 어떤 권리를 가지나요?’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권리가, 재난 피해자의 위치에서 어떻게 사라지나요?’에 가깝다.
어제는 역학조사관들에게 재난과 인권에 대한 강의를 하며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방역대책에서 보면 ‘추적’이 시작되는 자리겠지만, 재난 피해자의 위치에서는 말하기가 시작되는 자리, 역학조사관은 누군가 ‘재난 피해자’로서 만나는 첫 사람인 것이다. 그러면 몇 월 몇 일 몇 시에 어디 있었고 누구를 만났는지 묻기 전에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 확진 판정 받고 놀라셨겠어요, 치료는 이렇게 이루어지고 예후는 이렇답니다, 치료를 시작하며 생기는 다른 어려움은 없으신가요, 혹시 궁금한 점이나 필요한 지원이 있다면 이리로 연락주세요, 지금부터 우리가 함께 할 역학조사는 선생님 같은 어려움을 다른 분들이 조금이라도 덜 겪게 하기 위해 필요한… 첫 사람이 이렇게 말해준다면, 피해자는 더욱 많은 질문과 이야기로 우리가 함께 재난을 넘어설 방법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런 직무를 맡는 사람이 역학조사관과 별도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폭염이라는 위험요소는 냉방시설과 주거, 빈곤과 고립 때문에 재난이 되듯 바이러스의 전지전능함은 재난의 원인이 아니다. 사회가 유지되어온 방식과 바이러스를 만난 후 대응하는 방식이 재난을 구성한다. 피해자의 말하기가 멈춘다면 ‘왜’라는 질문은 시작되지 않는다. 코로나19라고 다르지 않다. “왜 이렇게 된 거죠?” 어떤 장소에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어떤 관계에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감염되었을 때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되물으며 답을 찾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확진자다. 사망자의 이야기도 그를 아꼈던 사람들로부터 들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의 죽음에는 이유를 묻지 않을 때 재난불평등은 확정된다.
코로나19는 재난 피해에 관해 더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 일방적인 해고와 무급휴직, 돌봄을 맡은 사람들의 곤경은 재난 피해인가 아닌가. 그들은 자신이 맞닥뜨린 재난에 대해 충분히 질문할 기회를 얻고 있는가. 재난이 인권의 문제인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이 겪는 일이라 그렇다. 우리가 재난 피해를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따라 회복된 세계의 모습은 달라질 것이다.
* 저도 이번에 다시 읽게 된, '재난참사 피해자의 권리' 자료집과 '잊지않고 싶은 당신에게' 핸드북 다운로드 가능한 페이지 링크를 붙입니다.
<재난참사 피해자의 권리> 자료집 https://www.sarangbang.or.kr/writing/72593
<잊지 않고 싶은 당신에게> https://www.sarangbang.or.kr/writing/73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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