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이 두려워진 이유

제주 가는 비행기는 오래 전 예매했다. 차례 음식 준비하는 엄마에게 결혼하지 않은 딸이 보물이 되는 시간이다. 혼자 지내는 엄마를 자주 찾아가지 못하는데 음식 준비는 서로의 핑계가 된다. 엄마는 나를 부르고 나는 엄마를 보러 간다. 
9월 들어 정부는 추석 연휴에 귀향을 자제해달라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신경은 쓰였지만 항공권을 취소하지는 않았다. 연휴와 조금 거리를 둔 날짜에 예매하기도 했고 혼자 다녀오는 길이니 조심하면 괜찮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육지에서 뒤엉킬 동선과 비교하면 집-공항-집이라는 동선은 꽤 단순해보이기도 했다. 
열흘 전쯤 계획을 재고하기 시작했다. 통화를 하며 약속을 잡는데 상대가 추석연휴 근처의 날짜를 제안했다. “어차피 연휴에 어디 안 갈 거잖아?” 뜨끔했다. 다녀오며 마음이 편하지 않겠다는 걸 깨달았다. 연휴 기간 20만 명이 제주를 방문할 거라는 기사도 봤다. 사람들로 가득 찰 공항을 떠올리니 걱정도 됐다. 혹시라도 연휴를 거치며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되기라도 하면 비난을 피할 길이 없어보였다.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이번 추석에는 친척들이 모이지 않기로 했다, 동생네 식구들도 아이들이 있어서 오지 말라고 했다, 남동생만 다녀가기로 했다, 차례 음식도 많이 준비할 필요가 없어 도와주지 않아도 된다, 고 하시는데 다음 말이 묘했다. “너는 와도 좋다.” 네? ‘오지 마라’는 말이 들어갈 법한 자리를 꿰찬 ‘와도 좋다’는 말을 어떻게 오라는 말로 듣지 않을 수 있을까. 결정이 더 어려워져버렸다. 
고민이 길어지니 억울함이 쌓였다. 고향도 가지 말라는 시국에 여행 가는 사람들이 너무한 것 같았다. 오며가며 불안할 텐데 그렇게나 가고 싶을까 한숨도 나왔다. 이렇게 여러 사람 불안하게 만들면서 다녀오면 마음 편할까 밉기도 했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내가 들을까 두려워하는 비난을 내가 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떠나기로 마음 먹은 사람들 속도 편할 리가 없겠구나. 
명절 연휴에 여행 다니는 풍속은 이미 오래됐다. 작년 재작년에도 20만 명 안팎의 인파가 제주를 다녀갔다. 귀향에도 저마다의 사정이 있어 못 가서 아쉬운 사람만큼 안 가서 편안한 사람이 있을 테고 조심하며 다녀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귀향 자제’를 요청하는 방역대책은 과연 적절했던 걸까? 
코로나19 확산을 막고 싶은 마음은 개인을 향하기 쉬워보인다. 우리는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을 신뢰하는데, ‘내가 알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내가 모르는 누군가 부주의하거나 무신경해서 코로나19를 전파시킬 것이라는 두려움에 휩싸여있다. 확진자들이 자신의 건강보다 ‘주변으로부터 받을 비난과 피해’를 더 두려워하는 건(**) 동전의 양면이다. 
정부의 방역대책이 개인의 행동 지침에 주안점을 둘수록 덫에 빠지게 된다. 책임을 물을 대상도 개인밖에 없는데 개인이야말로 가장 믿을 수 없으므로. 그러나 ‘내가 알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누군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에 속할 것이므로, 우리가 누군가를 믿거나 믿지 않을 근거가 개개인에게 있을 수 없다.
이동을 자제시키기보다 ‘자제된 이동’이 가능한 조건을 만들면 어땠을까? 철도가 거리두기를 위해 예매 가능한 좌석 수를 제한한 것처럼 말이다. 신뢰는 재난으로부터 회복된 결과가 아니라 재난으로부터 함께 회복될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피해야 하는지보다 우리가 어떤 조건에서 만날 수 있는지 알려주는 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 
복잡한 고민 끝에 항공권을 취소했고 비행기는 조금 전에 떠났다. 귀향이든 여행이든 연휴 기간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양보하는 마음이랄까. 모두가 무탈하기를 빌기로 했다. 더불어 부탁하고 싶은 게 생겼다. 
귀향을 고민하는 나의 두려움은 감염 그 자체보다 ‘말할 자격’이 없어질 것 같은 느낌에 있었다.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잠재적 가해자’가 된 듯하고, 혹시라도 내가 전파의 매개가 된다면 영영 고개를 들 수 없을 거라는 느낌. 이대로는 코로나19를 벗어날 수 없다. 
혹시 감염되더라도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마시라. 당신이 겪은 어려움을 충분히 말해줄수록 우리는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부디 안녕히 다녀오시라.


* 서울대 보건대학원 코로나19 기획 연구단, '코로나19와 사회적 건강' 연구 1차 조사(8월 25~28일) 결과
** 경기도 공공보건의료지원단,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팀, '코로나19 확진자, 접촉자 대상 인식조사'(6월 3~17일)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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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9 11:40 2020/09/29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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