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는 검사, 윤석열은 고위공직자 길들이는 것을 ‘검찰개혁’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서로 제압하려고 기를 쓰는 동안 ‘독립성’이라는 검찰개혁의 요체는 갈 길을 잃고 있다.
어제 검찰은 산업통상자원부를 비롯해 ‘월성 1호기 폐쇄’와 관련된 기관들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점 자체를 과시하는 재미에 빠진 듯하다. 검찰은 ‘살아있는’ 권력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제 기능을 하도록 해야 한다. ‘제 기능’을 못 찾기는 법무부도 다르지 않다. 윤 총장이 권력을 겨누는 모양새가 독립성의 외양이 되는 곤혹스러운 구도는 추 장관을 비롯한 여당의 대응이 함께 만들어내고 있다. 검사 한 사람 한 사람의 문제가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보여준다는 접근은 고위공직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문제로 검찰 권력의 필요성을 증명하는 검찰의 논리를 재생산한다. 둘이 싸울 명분만 돈독해진다.
그 와중에 내가 묻고 싶은 건 이런 것이다. 원자력발전소 폐쇄 과정에 문제가 있나 본데, 오래 전부터 원자력발전소 인근 마을 주민들이 호소했던 건강 피해에는 누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그걸 짓고 해체하면서 죽거나 다치는 노동자들의 억울함은 누가 들으려는지. 윤 총장 장모가 요양급여 부정수급한 요양병원에 관여한 의혹이 있다는데, 요양서비스 받으러 갔다가 원장 일가 휴양 시켜주며 영양도 못 챙기게 된 수많은 노인의 인권 문제는 누가 쳐다 보고 있는지.
그러니까, 도대체 무엇을 위한 법무행정이고 독립성이냐는 질문이다. 서로 길들여 죽이려는 통에 사람 살려야 할 국가의 노릇이 방치되고 있는 것은 아니냐 말이다.
][ 독립성, 무엇을 위한
주간미류
2020/11/13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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