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사회'에 갇힌 돌봄

아이 둘만 있던 집에 불이 나고 두 아이는 중태에 빠졌다는 이야기가 왠지 자주 떠올랐다. 2년 전에 이미 아동학대로 첫 신고가 있었다는 걸 자꾸 곱씹었다. 신고 이후 어떻게 했어야 했나. 어머니는 여러 차례의 신고와 권유에도 가정 보육을 고집했다고 한다. 올해 초 아동보호전문기관은 보호시설 위탁을 법원에 청구했는데 법원은 격리가 아닌 상담 처분을 내렸다고 한다. 어떻게든 아동과 어머니를 떼어놓아야 했던 걸까? 그보다, 아이들은 무엇을 원했을까?  
장애여성공감이 엮어 낸 책 <시설사회>를 읽으며 나는 줄곧 인천의 두 아동을 떠올렸다. 돌봄이 ‘집’이라는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가족’의 고유한 기능이 될 때 선택지는 집과 시설밖에 없게 된다. 다른 선택지를 찾아야 하는 건 너무 많은 이들에게 긴박했고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임박한 질문이었다. 
장애인 학대는 동거인을 비롯한 친인척에 의해서, 피해 장애인 거주지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지만 가족을 떠나겠다고 마음 먹는 일은 쉽지 않다.(강) 청소년이 탈가정을 시도하더라도 결국 사회는 복귀만을 목표로 삼는다.(변) 어떤 배경과 동기에서든 집을 떠났을 때 머물 수 있는 곳은 시설밖에 없다. 시설은 보호가 필요한 이들을 돌본다는 대의를 내세우며 스스로를 키운다. 양육을 지원하기보다 양육의 불가능성을 설득하는 미혼모 시설은 산업화되고(김), 자립을 원한다면 입소를 선택하라는 한부모 시설은 더욱 많은 예산을 배정받는다(오). 자신이 바라는 요양병원은 “퇴원이 되는 요양병원”이라는 HIV/AIDS 감염인의 이야기(권)는 시설을 떠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시설의 필요’에 의해 ‘시설이 필요’한 사람들이 만들어진다. 이런 사회에서 당사자의 ‘선택’이란 환상이자 함정이다. 스스로 돌보며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돌봄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가족’이 필요하다거나 ‘시설’이 필요하다는 말로만 설명될 때, ‘탈시설 자립생활’은 ‘영웅’을 요구한다. “더 크고 고단한 투쟁”이 시작되므로.(전) 하지만 “갑자기 내몰린 상황 속에서도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나) 우리는 다른 가능성을 열어야 한다. 
책이 건네는 화두는 ‘동료성’이다.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동료가 될 것인지, 가족관계 안에서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 일상의 관계는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진)를 상상해야 한다는 제안과, 거리청소년의 ‘집’에서 비청소년 활동가와 청소년의 동료-하기를 끊임없이 수행하는 도전의 기록(한)을 나는 돌봄의 관계성과 장소성에 대한 이야기로 읽었다.
“시설화를 가능하게 만드는 정상성 중심의 사회의 균열을 내는”(조) 탈시설 운동이란 결국 돌봄의 관계성과 장소성을 재구성하는 기획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생애 대부분의 시간을 누군가의 돌봄을 받거나 누군가를 돌보며 지낸다. 하지만 돌봄은 공공연하지 않다. 돌봄의 필요성은 특정한 시기, 특정한 정체성, 특정한 상황에서만 요구되는 것처럼 이례화된다. 그래서 돌봄은 가족-결과적으로 ‘엄마’-의 숨은 노동에 일차적으로 떠넘겨지고, 숨은 시설의 사업화/산업화된 노동은 ‘마지막 보루’인 듯 우리를 기다린다. 돌봄의 장소를, 또는 장소성을 재구성하는 돌봄의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 시설에 감금된 이들만의 몫일 수는 없다. 
두 아이가 겪은 화재와 또다른 사건의 기억들에 응답할 말을, 책을 읽어가면서 왠지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족’ 아닌 돌봄의 관계가 형성되는 ‘집’을 상상하는 일, 도시/지역사회가 동료로서 서로 마주치며 돌봄의 관계를 탐색하는 장소가 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 조금 더 가까워지는 듯했다. 비정상이라 재단되는 몸들을 시설에서 시설로 이동시키는 ‘감금회로망’(김) 대신 다른 연결을 가능케 할 ‘돌봄회로망’에 도전하는 일도 탈시설 운동과 함께라면 가능할 듯했다. 이 느낌을 -책의 주제어 '불구의 정치'와 운을 맞춰- ‘불구(不拘)하는 희망’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책은 ‘돌봄’이 아닌 어떤 질문으로도 읽을 수 있다. 어떻게 읽든, 당신은 ‘시설’을 통해 ‘세계’에 닿을 것이고 아마 절망보다 희망이라 부를 법한 무언가를 만나게 될 것이다. <시설사회>라는 지극히 온당한 제목과 함께 꼭 기억되어야 할 이야기들이다. 

 

* 필자 이름의 첫 글자로 괄호 표시한 글들 * 
강진경, 친밀한 통제, 시설화의 또다른 얼굴
변미혜, 탈가정 청소년의 주거, 보호가 아닌 권리로
김호수, 해외입양과 미혼모, 그리고 한국의 정상가족
오진방, 한부모, 장소가 만들어내는 차이: 탈시설에서 답을 찾다
권미란, 요양병원이 종착지가 된 에이즈 환자들
전근배, '지역사회'라는 유일한 선택을 위해:대구시립희망원 중증 중복 발달장애인의 탈시설과 함께 살기
나영정, 누구와 함께 시설사회에 맞설 것인가
진은선, 시설화된 관계를 넘어 동료시민으로 살아가기
한낱, 탈시설 운동으로 나아가는 엑시트와 자립팸
조미경, 장애인 탈시설 운동에서 이뤄질 '불구의 정치' 간 연대를 기대하며
김현철, 도시의 감금회로망적 상상: 유동하는 수용시설의 경계와 그 사이의 몸들을 언어화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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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2 16:20 2020/10/02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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