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께서는 확진자의 접촉자로 분류되어 의무적으로 자가격리를 해당기간 동안 해주셔야 합니다.” 문자메시지는 꽤 단정했다. 안내에 따라, 방문은 늘 닫고, 방 밖으로 나갈 때는 마스크를 낀다. 같이 사는 친구가 마루에 나오면 방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부엌에서 시간을 달리해 요리를 하고 밥은 방으로 가지고 들어와 먹는다. 대화는 채팅 앱으로 한다. 내가 이렇게 나랏말씀을 잘 듣는 사람이었다. 아침저녁 하루 두번 나의 체온을 자가격리 앱으로 국가에 보고한다.
9월 2일 0시 기준 자가격리자가 4,767명이라는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하다. 가끔 땅을 밟고 싶다는 느낌이 간절해지는데 못 견딜 정도는 아니다. 그나마 방을 따로 쓰니 지낼 만하다. 식구가 많은 분들이나, 혼자 살지만 방에 움직일 공간이 없는 분들은 곤란한 일이 많을 듯 싶다. 방을 따로 쓰면서 집에 같이 사는 이가 있는 건 또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통지를 받은 다음날인가, 주민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코로나19 자가격리 중 맞으시냐는 목소리가 애틋하다. 걱정해주는 것처럼 들린 건 내 착각일 수도 있다. 생필품을 현물이나 현금으로 지원받을 수 있다며 무엇을 선택하겠냐고 묻는다. 물론 현금이죠! 당연히 모든 사람이 현금을 선호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전화를 끊고나니 달라졌다. 웹이나 앱으로 식료품 주문을 하기 어려운 분들도 있을 테고 주문할 수 없는 물품이 필요한 분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친구가 파스나 맥주를 사다줬고, 혹시나 뭔가 긴요해지면 부탁할 수 있다는 게 불안을 없애준다. 거꾸로, 기댈 게 친구밖에 없었다.
자가격리 앱을 설치한 다음날 검사를 받으러 보건소에 갔다. 앱의 위치확인 알림이 계속 떴다. 안내된 대로 미리 연락을 했으니 뭔가 처리될 줄 알았다. 아니구나. 그러면 누가 전화라도 걸려나. 아니었다. 집에 돌아온 후로도 알림이 계속 뜨길래 담당 공무원에게 연락했더니 통신사에 문의해보시라는 예상치 못한 답변. 다음날은 늦잠을 자는데 또 알림이 떴다. 오랫동안 핸드폰 위치에 변화가 없더란다. 앱의 치밀한 감시와 앱을 쫓아가지 못하는 방역당국의 허술함 사이에서 헛웃음이 났다. 일이 늘어 다들 허덕이고 있을 텐데 걱정도 됐다. 사람을 더 구하지는 않나 궁금해졌다. 구직사이트를 들어가 코로나19 관련 구인 공고를 보니 최저임금 수준의 시간제 아르바이트나 단기계약직 말고 눈에 띄지 않았다.
자가격리 통지에는 생계 지원 신청도 안내되어 있었다. 검색해보니 유급휴가는 개인별 임금 기준에 따라(2주 최대 182만 원) 금액이 지원된다. 유급휴가 대상이 아닐 때 신청할 수 있는 생활지원금은, 1인 가구라면 20만 원 조금 넘고 4인 가구라면 60만 원 조금 안된다. 이상했다. 소득의 유지는 중요하지만 같은 논리로 덜 벌던 사람은 덜 받아도 된다고 할 수는 없다. 특수고용노동자나 자영업자들처럼 유급휴가를 신청할 수 없는 사람도 있고, 2주의 기간 후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라가 지키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나의 의문은 이렇게 이어졌다. 코로나19 감염병에 더해 장마와 홍수까지 전지구적인 재난의 와중에, 재난으로부터 우리의 삶을 함께 돌보기 위한 계획은 어디에서 어떻게 세워지고 있는가. 7월 중순 발표된 정부의 ‘한국판 뉴딜’ 계획이나 어제 발표된 2021년 예산안 어디에서도 찾지를 못하겠다. 인공지능, 바이오헬스 등 새로운 산업을 일으켜보겠다며 기업을 지원하고, 당장 위기에 처한 노동자들은 재난지원금 같은 걸로 버티게 하면 괜찮아지는 걸까. 의료, 돌봄, 교육 등에서 심각한 허점이 드러났는데, 새로운 구조를 세우는 일은 다시 미뤄도 되는 걸까.
나의 일상을 지켜주는 조건이 우연이듯 누군가의 일상이 무너지는 조건도 우연이겠지만, 재난에서 우리가 기댈 것이 우연밖에 없는 이 체제의 무능만은 필연인 듯하다. 자동차산업이, 반도체가 경제를 일으켜 모두를 먹여살리는 것처럼 보이게 하면서 정작 우리의 일상을 지키고 가꾸는 이들의 노동은 값싸거나 값없는 것처럼 취급해온 체제. 삶이 무너지는 자리에 또다시 무너질 신기루를 쌓는 계획은 이제 그만두면 좋겠다.
삶이 무너질 때에도 서로의 삶을 일으켜세우고 보살필 줄 아는 세계를, 자가격리 중 궁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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