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 <한겨레> 칼럼 하나의 제목. “여성은 어떤 이성애 파트너를 골라야 하는가” 제목은 최소한 이렇게 나왔어야 했다. “이성애자 여성은 어떤 파트너를 골라야 하는가” 하지만 제목을 바꾼다고 해서 글의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글은 우리 사회에 호모 소셜 문화가 강력하다는 진단에서 시작된다. 호모 소셜 사회에서 위계가 낮은 남성들이 분노를 만만한 약자들에게 쏟아붓고 이게 대부분 여성들에게로 향하는 상황에서 “여성들은 어찌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 그리고 필자는 제안한다. 호모 소셜 문화를 거부하는 ‘시그마 메일(male)’들이 드물지만 있으니 “이런 남성들을 선택하겠다는 제스처를 여성들은 더 많이 할 필요가 있다.” 글의 말미에서는 “약자는 늘 사랑을 구하고, 강자는 늘 권력을 구한다”는 에바 일루즈의 문장을 인용하며 “사랑에 목숨 걸지 말”자고 한다.
먼저 지적하고 싶은 문제. 과연 소수자 집단에 대한 분노가 호모 소셜 사회에서 위계가 낮은 남성들의 불합리한 행동일 뿐인가. ‘일베’가 사회적 문제로 등장했을 때 그 현상을 설명하던 많은 말들이 생각난다. 일베는 ‘루저’들의 문화라며 여성혐오를 비롯한 혐오라는 문제를 ‘사회로부터의 일탈’로 다뤘다. 그 사회가 혐오를 생산하고 있는 문제는 숨기면서. 그러니 일베 회원 중에는 의사도 있다더라, 기자도 있다더라 하는 정보가 ‘뉴스’가 되기도 했다.
물론 지금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혐오’는 유사 이래 면면히 흘렀던 혐오의 문제와 동일하지 않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레트로토피아>에서 ‘부족으로의 회귀’라 짚었고, 이졸데 카림은 <나와 타자들>에서 ‘3세대 개인주의’라고 분석하기도 했는데, 극우 포퓰리즘과 함께 번성하는 지금의 ‘혐오’가 사회로부터의 배제와 박탈에 기인하고 있다는 점은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바다. 그러나 마치 혐오가 이들로부터 만들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는 것은 문제다.
이들은 혐오의 생산자라기보다 소비자에 가깝다. 혐오의 생산자는? 차라리 호모 소셜 사회에서 위계가 높은 남성들이라고 지목해야 한다. “부와 권력을 거머쥐고 다수의 여성을 트로피로 쟁취하는 남성들”은 부를 독점하기 위해 타인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데 거리낌이 없으며, 여성을 ‘트로피’로 인식하게 만드는 이데올로기를 꾸준히 생산한다. 이들은 때로는 성폭력이나 성차별에 단호한 태도를 취하기도 하는데, 그건 폭력과 차별이 자신들의 질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일탈’로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권력의 한가운데서 벌어지는 성폭력이나 성차별은 은폐하기에 급급하다.
여성이 겪는 차별이나 폭력을 사회에서 위계 낮은 남성들이 주도하는 문제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결국 부와 권력을 가진 남성들의 질서를 강화할 뿐이다. 그러니 결론도 같은 문제를 반복한다. 사실 필자가 선택을 권하는 ‘시그마 메일’이 정말 호모 소셜 문화를 흔드는 남성인지는 모르겠다. 자세히 검토할 만큼 의미 있는 개념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그마 메일이 선택받을 만한 남성이냐 하는 류의 쟁점은 별로 의미 없다. 필자의 주장이 가진 가장 큰 문제는, 호모 소셜 문화가 소수자들에게 억압적일 때 여성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행동을 고작 파트너 잘 고르기로 제안한다는 점이다. ‘트로피’를 시그마 메일에게 주자는 제안일 뿐.
“한 민족이라는 성향이 강한 한국은 내부에 두드러지는 소수자 집단이 오로지 여성”이라고 말하는 위치는 어디일까. 그렇다 한들, 여성에게 쏟아지는 분노를 돌려세울 방법이 파트너를 잘 고르는 것밖에 없을까. 호모 소셜 문화가 이성애중심주의(여성을 '트로피'로 만드는)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조금 더 들여다볼 수 있으면 어땠을까. ‘이성애자 여성’도 장애, 인종, 학력, 사회적 신분 등에 따라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호모 소셜 사회를 겪어내고 있다는 점을 떠올릴 수 있으면 어땠을까. '파트너를 어떻게 골라야 할지 고민하는 (...) 이성애자 여성에게’ 띄우는 글이었다면 또 모를까, ‘여성’에게 제안하는 글이라면 이래서는 안됐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이미 수많은 여성들이 '권력을 구하는 강자'로서 벌여온 실천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가. 칼럼 읽기 힘든 시절이다.
칼럼 읽기 힘든 시절
주간미류
2020/08/24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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