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의 심리학에 대해서' 

229. 부끄러운 감정이 표출되는 개별적 현상들을 종합해보면, 이 현상들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자아감정의 강한 부각과 위축이 병행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부끄러워할 때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서 자신의 존재가 부각되는 것을 느끼고, 이어서 일정한 규범을 어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자체로 아무런 내용도 없는 이 도식에 따르면, 부끄러움을 느끼는 전혀 다른 다양한 이유들이 존재하는 것은 주체로서 우리가 하나의 규범과 어긋난다고 느끼는 방식이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238. 앞의 경우에서는 사회 조직이 개인을 대신하게 되고 이로써 개인은 부끄러움의 요소인 첨예하게 이분화된 의식을 가질 기회를 상실하는 반면, 여기에서는 거꾸로 개인이 내면적으로 전체를 대신해서 전체의 결점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첨예하게 이분화된 의식을 갖게 된다. 

 

'다리와 문' 

269. 삶의 흐름에서는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방향이나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방향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지니지만, 그러한 삶의 흐름이 교회에서는 중단되고, 유일하게 필요한 단 한 가지 방향에 의해서 대체된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그러나 분리되어 있는 사물들 사이에 매 순간 다리를 놓는 지상의 삶은 매 순간 문의 내부 혹은 외부에 존재한다. 문을 통해 삶은 자기 자신만의 공간을 벗어나 세상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또한 세상으로부터 물러나 자기 자신만의 공간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편지. 비밀의 사회학' 

198. 편지에는 구체적으로 음성의 울림, 억양, 제스처 및 얼굴 표정과 같은 부수 현상들이 결핍되어 있는데, 이것들은 구어의 경우 불명확성의 근원이자 명확성의 근원이 된다. 하지만 실제로 편지를 ㅂ다는 사람은 편지가 말로 하는 것보다 더 명백하게 전달할 수 있는 순수하게 논리적인 문의에 만족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니, 단순히 논리적 의미만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역시 그것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기 때문에, 결코 만족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편지에서는 그 명확성에도 불구하고, 또는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바로 그 명확성 때문에 말에서보다 훨씬 더 많이 오해가 발생하고 더 많은 '해석들'이 이루어진다. 

 

'신의. 사회심리학적 접근' 

191. 신의란 결국 내면적인 측면에서 인간관계가 스스로 유지되도록 하는 감정이다. 

 

'감사. 사회학적 접근'

185. 신의 없음은 전적으로 아무런 책임도 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이전 관계들과 연결된 끈이 많기 때문이다. 이제 이것은 단절되어야 한다. 또한 신의 없음은 전적으로 책임을 물을 일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더이상 처음에 관계에 들어선 그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의가 없다고 따질 수 있는 주체는 이미 사라져버리고 없다. 

 

'감각의 사회학' 

163. 일반적으로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서 보는 것은 우리가 그에게서 듣는 것을 통해 해석된다. 반면에 그 반대는 훨씬 더 드물다. 

169.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것 또는 보편적인 것을 인식하는 것은 듣기보다는, 훨씬 더 커다란 정도로 보기를 통해서이다. 

170. 우리가 수많은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고 보기만 하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들 모두에게 공통적이긴 하지만 귀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이며 가변적인 모든 것을 배제시키는 고도의 추상화가 일어나게 된다. 

173. 우리는 무엇인가 냄새를 맡으면서 그것이 주는 인상이나 그것을 발산하는 객체를 우리 안으로 깊숙이, 곧 우리의 중심으로 끌어들이며, 이를 이른바 호흡이라는 생명 과정을 통해서 다른 모든 감각들에서는 불가능할 정도로 우리 자신과 매우 밀접하게 동화시킨다. ~ 후각은 분리시키는 감각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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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2 14:35 2020/08/12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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