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의 실종 소식을 들었을 때,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화도 났다. 동시에 불길한 예감이 현실로 확인되지 않기를 바랐다. 죽음을 선택하게 되는 심연에 누구든 갇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지 않나.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었다. 마지막 순간의 짐작할 수 없는 외로움을 헤아리면서 누군가의 죽음이 남기는 숙제를 받아야 하는 상황을 피하고 싶은, 지극히 이기적인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죽음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어떤 이유로든 누군가 죽음을 선택했을 때 그의 선택을 온전히 존중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죽음을 선택한 누군가를 존중하기 위해서라도 존중의 방법을 찾는 것은 큰 숙제다. 원망스러울 수는 있어도 비난하지 않고, 안타깝더라도 억울한 희생으로만 만들지 않기. 내 나름으로 쌓아온 방식이다. 비난의 언어가 될 수 있는 무책임하다는 말도 쓰지 않으려 한다. 누군가 죽음을 선택할 때 그것은 언제나 어떤 책임을 내려놓는 선택이기도 하므로. 남은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그가 지키려 했던 것은 무엇이고 세상에 남긴 책임은 무엇인지 살피는 일 아닐까.
내가 일하던 사무실 책장에는 그가 쓴, 천 쪽이 넘는 <국가보안법 연구>가 묵직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얼마전에는 그의 기증으로 지어올린 역사문제연구소 건물의 쾌적한 환경에서 토론을 했다. 서울시민인 나는 ‘서울형 유급병가’의 덕도 봤다. 비급여 진료가 털어가는 통장에 약간의 돈이 들어왔고, 그보다 조금 크게 ‘사회보장’에 대한 감각이 찾아왔다. 어쩌면 세상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도 잠시 맛보았다. 물론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을 무산시킨 그의 과(過)도 겪었으나 지금 강조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의 죽음 이후 목록이 늘어만 가는 그의 공(功)이 그 혼자 이뤄낸 일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한다.
한국 최초의 ‘성희롱’ 소송이 자주 언급된다. 가장 먼저 용기를 낸 피해자와,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 그 곁을 지킨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룬 일이다. 시민운동가로서 그가 이룬 일이 그렇듯 서울시장으로서 해낸 일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공무원들이 자의로든 타의로든 움직여준 덕분이다. 그의 말 한 마디, 발길 한 걸음이 사람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강제퇴거 현장이나 세월호 농성장이나, 그가 내민 손길이 남달랐다기보다 그의 지위가 남달랐으므로 더욱 큰 위로가 될 수 있었다. 박원순이라는 개인이 지닌 역량이나 마음씀을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다. 그가 이룬 공이 어떤 질서에서 가능했던 것인지 묻지 않고 그를 애도할 수 없다.
그가 차츰 이뤄낸 공이 그가 점차 ‘남성연대’의 질서로 들어가면서 가능했다는 사실을 이제는 모른 척할 수가 없다. 안희정의 모친상에 줄줄이 찾아간 이들이 함께 만드는 질서에서, ‘그래도 비껴서있는’ 개인이 있을 수 있다는 착각과 완전히 결별하기로 했다. 가해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그 질서에 문제제기하는 사람이었다면 절대로 그 질서의 중심에 이를 수 없었을 것이라는, 당연한 현실을 이제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가 죽음으로써 책임을 벗는 대신 지키려고 했던 그의 공(功)을 나는 더이상 소중히 여기지 않겠다. 그런 질서 속에서 만들어지는 공이라면 적어도 내게는 공이 아니다.
그는 질서를 바꾸는 사람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멈췄다. 부족함을 탓할 수는 없다. 그저 그가 멈춘 자리에 남은 이들의 책임이 놓여있다. 그가 성추행 고소를 당하고 죽음을 선택하는 시간까지 깊이 되새겼을 부끄러움을 소중히 기억하겠다. 비슷한 상황에 처했거나 처하게 될, 비슷한 지위의 정치인들이, 온갖 자원을 동원해 너끈히 무죄를 받아내거나, 유죄라도 하등 타격을 입지 않을 수 있음을 떠올리면 부끄러움조차 귀하다. 이렇게 나는 그를 애도한다.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그를 인간으로서 존중하는 나의 방식이다.
그리고 쓴다. 함께 부끄러워하며 책임을 나누기는커녕 부끄러움을 덮으려 급급한 이들을 향해. 그의 부끄러움 대신 그의 공을 기억하는 것이 애도의 방법인 양 말하는 이들을 향해. 애도를 넘겨주지 않으려고.
애도가 투쟁이라는 말을 이렇게도 겪게 될 줄은 몰랐다.
애도를 넘겨주지 않으려, 쓴다
주간미류
2020/07/13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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