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 정치세력화

오늘자 한겨레에 한국의 불평등에 관한 흥미로운 조사결과가 실렸다. 학력이 높을수록, 진보일수록 '불평등도가 높다'고 생각하는데, '불평등한 구조 때문에 힘들다고 느끼냐'고 물으면 학력이 낮을수록 힘들다고 하고, 보수와 중도에서 힘들다는 이가 많다는 것. (http://www.hani.co.kr/arti/society/rights/866446.html?_fr=mt2)

힘들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자신이 겪는 문제를 '불평등'으로 해석하지 않는 데에는 몇 가지 맥락이 있을 것이다. '불평등'이 문제라면 사는 게 더 막막해져버린다. 자신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여지도 없어져버린다. 차라리 다소간은 '내 탓'을 하는 게 그나마 내가 주체가 될 수 있는 방법이다. 가난하고 차별당하는 사람들일수록 주류의 논리를 내면화하기 쉬워지는 건 세상을 모르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회운동이 더 깊이 고민해야 할 문제다. 힘들다고 느끼지는 않는 학력 높은 진보가 '세상이 불평등하다'고 말할 때 그건 어떻게 들릴까. '빨갱이' 때문에 세상이 이렇다고 주장하는 보수의 이야기가 귀에 더 들어오기 쉬운 건 분명하다. 하다못해 선거에서 보수정당 후보라도 찍을 수 있으니까.
그런 점에서 한겨레가 인용한, 한국에서 복지가 "선택 가능한 대안, 구체적 정치세력을 통해 실현될 수 있는 구도가 아니"라는 지적은 새길 필요가 있다. 한국사회에서 불평등은 사회 현상이거나 이론의 대상이지 정치와 사회의 쟁점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같은 이유로, 그래서 지금 사회운동이 만들어야 할 정치가 복지의 정치인지는 모르겠다. 불평등 때문에 힘든 사람이든 힘들지 않은 사람이든 '한국의 복지 수준'에 대한 평가가 비슷하고 '복지 확대로 삶이 좋아질 것이냐'에 대한 기대가 비슷하다는 조사 결과처럼, '복지'는 무엇이 문제인지 드러내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말하는 언어로서 기능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무엇을 실현하려는 어떤 정치세력인지 드러낼 다른 말이 필요하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는 '말'이 아니다. 정치세력화 그 자체. 누구와 함께? 이 지점에서 기존의 계급이나 정체성의 틀을 리셋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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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9 10:12 2018/10/19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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