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년 국민의힘 대변인 선발 토론배틀. 사소한 이유로 몇 개의 영상을 찾아봤다. 압박면접이라며 심사위원들이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었다.
16강전에 올라온 20대 여성이었다. 이준석이 질문했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앞에 있다면 무얼 묻고 싶나요?”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왜 말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탁현민에 대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오히려 더 놓은 자리로 돌아왔고, 안희정 전 지사나 박원순 전 시장 사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더 보여줄 수 있는 게 있었는데 거대한 화한을 보냈고, 재보궐선거에서 여성을 후보로 내면 되겠구나 하며 박영선 후보 낸 것도 어이없는 처사고… “민주당이 말하는 페미니즘은 다 가짜”라고 말했다. 내용만 보면 내가 하던 얘기와 다를 게 없었다. 당황했다. 영상을 찾아본 이유는 잊어버렸고, 혼란스러웠다. 페미니즘의 대중화는 이런 지형을 만들게 되기도 하는 건가…
그는 “보수는 20대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점을 보완해야 한다. 여성은 다 민주당만 지지했던 것처럼 보도되고 성별 갈라치기 하는 분위기가 있지만 편견이다. 여성들의 마음을 사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국민의힘이 안티페미니즘을 조직하기로 방향을 정한 후 문득 그의 행보가 궁금해졌다. 2022년 1월 상근 부대변인이 됐다는 소식까지 확인했다. 아직도 나는 분석이 안 된다.
#2.
국민의힘이 안티페미니즘 노선을 분명히 하는 만큼 안티페미니즘에 맞서는 일이 중요한 정치적 과제가 되었다. 이것을 여전히 (좁은 의미의) 페미니즘운동의 과제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건 그만큼 정치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모두의 과제다.
대통령선거의 결과와 무관하게 고스란히 남는 과제다. 다음 대통령이 윤석열이냐 이재명이냐와 무관하다는 말이다. 이준석은 남을 것이므로. 물론 대선 결과에 따라 차이는 생길 것이다. 윤석열이 당선된다면 이준석은 대선을 승리로 이끈 당대표의 지위에서 안티페미니즘의 정치를 이어갈 것이다. 이재명이 당선된다면 일단 국민의힘은 꽤나 크게 흔들릴 것이다. 대선 직전까지도 단단한 지반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마땅할 이준석이 물러날 가능성은 별로 커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준석은 자신의 전략으로 이나마 이룬 것이라고 주장할 근거가 더 많다. 당 내 투쟁에서 밀려날지 남을 밀어낼지는 아직 열려있지만 이미 시작된 그의 정치는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없어보인다. 대선 결과의 차이는 결국 윤석열의 입을 통해서 하느냐, 이준석이 직접 하느냐의 차이? 안티페미니즘 선동만 놓고 본다면 후자가 차라리 더 위험할지도?
결국 코앞에 닥친 대선도 문제지만 그 다음은 더 큰 문제다.
#3.
안티페미니즘과 싸우는 일은 안티-안티페미니즘 전선을 만드는 것과 달라야 한다. 그런데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쏟아내는 안티페미니즘 선동이 하도 심각한 수준이라, 솔직히 몸이 먼저 거부반응을 보여서 차분히 생각하기가 어렵다. 사고가 멈추는 느낌이랄까. 그 와중에 더불어민주당은 안티–안티페미니즘에 함께 하고 있다. 두 후보에 이목이 집중되는 시기에 이재명과 더불어민주당이 이나마 하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 있는 자리가 우리의 자리는 아니다. 이걸 잘 살피며 가지 않으면 페미니즘의 전진이 안티-안티페미니즘에 갇힐 수도 있다. 내게 이 차이는 비동의간음죄다.
제도의 디테일을 떠나 패러다임 차원에서 본다면, 두 후보의 공약이 공유하는 지점은 ‘가임 인구’로서의 여성을 위해 정책을 낸다는 점이다. 난임 지원이라든지 임신출산에 관한. 윤석열은 여기까지가 전부다. 이재명은 당연히 여기서 더 나간다. ‘노동 인구’로서의 여성과 ‘폭력 피해자’로서의 여성을 위한 정책들이다. 성별임금격차, 성범죄 관련 정책들이다. 그런데 사실 문재인이 5년 전 냈던 공약에서 큰 차이가 없다. 조금 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정책이 나왔다고 볼 수는 있겠다. 어쨌든 여기까지다.
(사실 차별금지법 제정 없이 성별임금격차 해소하겠다는 말, 일도 신뢰 안 간다. 그리고 윤석열도 저기서 멈추기는 어렵다. 이건 이 체제가 굴러가려면 최소한은 해야 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하지만 이 부분 우선 패쓰)
내가 비동의간음죄를 주목하는 이유는 촛불 이후 페미니즘의 거대한 전진이었다고 할 수 있는 미투운동에 대한 성찰의 결과는 그것으로 표현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정책 대상으로서의 여성을 ‘의사’를 가진 주체로로서의 여성으로 인정하는 포인트다. 그러나 이재명은 여기서 멈췄다. 다시 말하면 문재인 이후 더불어민주당은 한 걸음도 더 내딛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민주당 안에 이미 자리와 지분을 가졌던 이들이 안에서 애쓴다는 이유로 그걸 거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들의 몫이고 그들의 책임이다. 우리는 후퇴해서는 안 된다.
#4.
‘추적단 불꽃’ 박지현 활동가가 민주당 캠프에 합류했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내게 그의 선택을 평가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그에게도 분명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그만큼 지금은 페미니스트들에게 곤혹스러운 시간이다.
얼마 전 그가 “이재명으로 마음 돌린 2030 여성들의 지지선언”을 조직한다는 걸 알게 됐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합류 소식보다는 덜 안타까웠다. 이건 민주당의 정치에 합류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에서 자신의 정치를 시작하는 과정이므로. “이재명으로 마음 돌린”이라는 수사를 통해, 처음부터 이재명을 지지했던 2030 여성들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이재명의 곁에는 N번방 사건 최초 공론자 ‘추적단 불꽃’ 박지현 활동가와 더불어민주당의 2030여성들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라고 선언할 때 이것은 이재명 지지선언이 아니라 박지현 지지선언이기도 하다.
물론 나는 박지현 활동가를 모르니 박지현 지지선언의 미래가 어디를 향할지는 모르겠다. 디지털성착취 구조는 N번방을 통해서 다 드러난 것이 아니라 이제 드러나기 시작했을 뿐이다.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디지털성착취물을 생산 유통하는가를 넘어, 왜 이 세계는 디지털성착취물이 생산 유통되도록 굴러가는가를 파악하기 위해, 그래서 끊임없이 ‘음지’를 찾아다니는 가해자들을 쫓아다니느라 소진되기 전에 음지 자체를 없애는 싸움을 하려면, 우리는 더 알아야 할 것들이 많다. 청소년, 빈곤, 디지털문화, 금융, 노동시장, 가족… 등 디지털성착취산업의 구조를 밝혀내고 드러내는 만큼 전선은 움직일 것이다. 디지털성착취에 대응하는 활동가들이 모두 이재명 지지에 동참하지 않는 이유도 이럴 것이다. 어쩌면 비슷하게 누군가는 이재명 지지선언을 하면서 이제 막 시작된 운동을 더 밀고 나가보고 싶은 마음을 먹을 수 있다는 점도 이해해보려고 한다. 이재명을 지지하는 터무니없는 주장들에 뒤섞여 빛을 잃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게 되기가 쉬워보이는 상황에 대한 책임은 자처하실 거라 믿고…
#5.
다시, 안티페미니즘에 어떻게 맞서야 하나. 잘 모르겠다.
국민의힘 상근부대변인을 하는 이는 지금 국민의힘이 벌이는 정치를 안티페미니즘으로 진단하지 않으니 그러고 있지 않겠나 싶고, 그러니 ‘안티페미니즘이 문제’라고 하며 대응하는 것 이상의 운동을 만드는 게 중요할 듯하고.
더불어민주당이 선거 이후 펼쳐질 국면에서 당선이 되든 안 되든 안티페미니즘에 맞서는 세력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전혀 없는데,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의 긴 시간 속에서 처절하게 확인해온 것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를 문제라고 말하는 일을 아직까지도 안 하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으니. 결국 페미니즘운동이 지금까지 나아온 자리에서 물러섬없이 싸우며 나아갈 수 있을지가 중요한데.
지금 내가 페미니즘운동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지 잘 모르겠고. 그저 내가 이런 고민이라도 할 수 있었던 건 모두 페미니즘운동의 최전선에서 싸움을 만들어온 동료 활동가들 덕분이라 그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투표 직전까지도 마음 편치 않은 이들이 많을 텐데, 편해질 수야 없겠지만 다치지는 않기를 바라며. 모두 무사히 이 시간을 지나갈 수 있기를 빌어본다.
모두, 안녕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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