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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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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iverway
  • 등록일
    2010/07/21 15:09
  • 수정일
    2010/07/21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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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쓴 작가가 81년생이고, 긴머리 소녀같이 앳된 인상이라는 사실이 읽는 내내 자꾸 생각났다.

낮엔 일하고, 밤엔 글을 쓰면서 등단을 한 후, 본업으로 삼아 쓴 이 소설로 한겨레 작가상을 받았단다.

같은 세월을 살면서 '나이'에 따라 참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나이 든 사람들에 대해 관대해지려고 했더랬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중엔 내가 관대한 처분을 받아야 할 '자리'로 뒤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작가의 관찰력, 상상력, 그리고 삶에 대한 애정은 어디서 부터 온 것일까?

묻고 또 물어가며 가지를 쳐나갈 수 있는 '사고의 여유'는 또 어떻게 훈련된 것일까?

정답을 알아내고 맞춘 보상을 누리며 청소년기를 보내온 내 입장에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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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수다를 깔끔하게 정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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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iverway
  • 등록일
    2010/07/10 09:35
  • 수정일
    2010/07/10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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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년간 연구(?)를 한다고 했는데, 이런 감사인사를 받아본 건 처음이라 기록을 남긴다.

1월부터 진행했던 간호사 인터뷰 결과를 보고서로 제출하고

인터뷰에 참여했던 이들과 몇몇 노조간부 간호사들과 다시 모여 하룻밤을 보냈다. 

취지와 방법, 그리고 결과에 덧붙여 나름대로의 제언을 풀어놓았더니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중 강력한 한마디..

"우리들의 수다를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해주셔서 고맙심더"

경상도 사투리의 한 간호사,

평소 자신들끼리 늘 모이면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었던  "공장이야기",

이렇게 정리될 수 있어서 좋았노라고...

 

그동안, 내가 계몽하거나 지도하는 것이 공부한 사람의 역할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비로서, 협력관계, 동반자적 관계...란 이런 것이 아니겠구나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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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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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iverway
  • 등록일
    2010/05/18 11:58
  • 수정일
    2010/05/18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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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부터 벗어나 한껏 달라지고 싶었지만, 하루하루 힘겹기만 했던 시간들이라는 기억이 스친다.

 

비오는 5.18

 

지난 주말 광주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삼십년 전의 흔적들을 따라 그 이야기들을 들으며

감히 그 아픔을 헤야려 짐작해볼 수 있었다. 5.18 유적지임을 나타낸 기념비엔 아직 새 냄새가 나고, 보존여부를 두고 논란이 되었다는 도청건물 안은 아직도 어둠이 그득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정성을 다하는 것이 살아남은 자신의 몫이라 생각하며 시골 학교 중학생들이 꿈을 갖고 새로운 삶을 펼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는 국어교육과 교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차마 부를 수 없다고 했다.  

망월동으로 안내한다고 해서 몇 년전 찾아갔던 국립묘지려니 예상했는데, 그 옆에 초라한 모습으로 남겨진 민주묘지를 먼저 가자고 했다. 이한열, 이내창, 강경대.... 익숙한 이름의 청년들이 삼십년 지난 세월 속에 빛바랜 사진으로 잔디조차 잘 자라지 않은 언덕에 모여있더랬다. 비가 오면, 이 언덕에 모여  소주한잔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는데, 오늘도 비가온다.

 

광주의 아픔을 "아시아의 문화도시, 광주"라는 돈과 맞바꾸었다는 자조섞인 혼잣말이 맘에 남는다. 사람의 문제로 곱씹고 또 곱씹어야 하는데도 한 때의 사건으로 잊혀져가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라던 그 분, 그 분노와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뇌출혈로 두번이나 쓰러졌었다고 하니.....

 

그저 겸손히 바라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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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밥먹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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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iverway
  • 등록일
    2010/05/11 15:33
  • 수정일
    2010/05/11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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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면 아파트단지를 떠나 논밭이 있는 동네에서 텃밭을 가꾸고 있습니다. 밭에 고추를 심다가 허리를 펴니 아기 손같이 곱고, 여린 나뭇잎과 키 작은 들꽃들이 봄 햇살을 받아 “저 여기 있어요”하고 말을 걸어오는 듯 하네요. 자건거를 타고 달리며 신난다 소리치는 아이들 소리도 들립니다. 오월의 초록이 이토록 아름다운지 이제까지 모르고 살았구나 싶습니다. 이 좋은 계절은 어린이날로 시작되었고, 어버이 날과 부부의 날로 이어지면서 가족을 새삼 더 돌아보게 됩니다.

자연, 그리고 가족을 생각하면서 연상되는 것은 어린 시절의 “밥상”입니다. 매일 아침이면 형제들이 순서대로 국에 밥 말아 먹고 도시락 챙겨 학교로 갔구요. 해가 질 때까지 동네에서 친구들과 뛰놀다보면, 여기저기서 “누구야 밥 먹어라”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고, 하나 둘씩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갔지요. 친구 집에서 먹은 팥밥, 푹 익힌 김치찌개는 집에서 먹던 것보다 더 꿀맛이었구요. 일요일 아침 늦잠도 못자고 밥상 앞에 불려 앉혀지기도 했지요. 무엇보다 어머님이 정성껏 차려주신 생일상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하얀 쌀밥에 미역국과 꽁치구이 한마리와 계란 후라이, 그리고 김과 나물을 혼자 먹도록 독상을 차려주셨거든요.

그런데, 천안지역 저소득층 아이들 중 거의 매일 아침을 안 먹는 아이들이 5명중 1명꼴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아침을 먹지 않으면 잘 못 크고, 학교에 가서 집중력도 더 떨어지겠지요. 게다가 인스탄트, 패스트 후드를 즐겨 먹으면서도 운동은 부족하니까 비만이 될 위험이 높아지고, 스트레스나 우울도 더 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침식사는 단지 끼니를 거르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고, 아이들이 얼마나 건강한가를 나타내는 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정에서 부모나 어른들이 안 먹는 경우에 아이들도 안 먹는 경향이 높다고 하네요. 어른들이 아침식사를 안 먹거나 못 먹게 되는 사정이 나름 다 있겠기에 집집마다 알아서 아이들에게 밥상을 차릴 수 있을 때까지 맡겨둘 수는 없지 않을까요? 아침식사를 꼬박꼬박 챙겨 먹어야 할 아이들은 누구라도 불러 모아서 함께 밥을 먹고 정을 나누는 동네 밥상이 필요한 때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지방선거에 출마한 많은 후보들이 친환경·무상급식에 찬성을 하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읽었습니다. 어른들이 함께 소리모아 “얘들아, 밥 먹자”하고 외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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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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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iverway
  • 등록일
    2010/05/07 11:12
  • 수정일
    2010/05/07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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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이 참 아름다운 계절임을 새삼 느낀다. 왜 그동안 이 아름다움을 못 누렸던가 생각해보니 가정, 가족을 유난스레 챙기는 것이 싫어서 였던 듯.

 

어제 밤, 울산에서부터 올라와 밤늦도록 회의를 하고 오늘까지 강행군을 할 예정이라는 한 임상병리사이면서 노조활동가 한분을 만났다.  초딩 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세상이 평등해져야 하는 거라고" 말했더니 되려 딸이  어떻게 똑같아질 수 있겠냐, 이상하다"고 반문을 했단다. "사람들이 서로 좋아하면 되는 거다, 그러면 가능하다"고 답했다고. 그래서 2000년전 예수라는사람은 그걸 벌써 알아서 그 때부터 사람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말했노라고... 딸내미가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는 모르지만, 흔히 생각하는 40 후반의 중년 남자가, 그것도 집 떠나서 3년간이나 서울에 올라와 상급단체 활동을 했다는 분이어린 딸에게 이렇게 따뜻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있음이 가슴 깊이 남았다.

 

오늘 아침, 가족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FM라디오 진행자의 멘트가 거슬리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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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고백이 지닌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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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iverway
  • 등록일
    2010/04/22 10:48
  • 수정일
    2010/04/22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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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번씩 만나는 모임에 함께 하는 여의사가 늘 마음에 거슬렸다.

개업을 하고 있는데, 매사가 자신을 중심을 준비되거나 움직이기를 바라는 듯 했다. 의사들의 직업적 특징 중 하나로 해석되는데, 자신이 주인공이고 다른 사람들이 감당하는 조연의 역할은 늘 당연시하는 태도로 보였다.  일반 사회현상이나 정치적 이슈는 나름 유연한 태도를 가졌으면서도 의료제도나 정책에 대해서만큼은 철저히 개업의의 편의, 손익 중심의 입장을 지고 있는 듯해서 싫었다.

전형적으로 가족 챙기기, 아들, 딸을 일류대와 의대에 보낸 것이 기본적인 의무라는 당당함이 그 거부감을 더했는지 모른다.

그렇게만 보이던그녀가

자기 딸을 키워주시던 친정어머니의 갑작스러운 발병, 진단과 치료, 임종의 과정에서 자신이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솔직히 드러내보이며 눈물을 흘렸다.  그 자리에선 사실 난감하고 당황스럽기도 하여 그저 아무 말도 못했지만, 하루 밤을 자고나니 그녀가 보여 온 삶의 자세나 견해들이 설명되는 듯 하다. 스스로에 대한 엄격성을 놓칠 수 없도록 하는 아주 단단하고 복합적인 감정의 덩어리가 그녀 안에 있었다. 그 감정에 대해 옳고 그름, 맞고 틀림의 잣대를 들이댈 이유는 없다. 그렇게 그녀를 새롭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줄 수 있으면 되는 것이리라. 진심으로 "이제 괜찮다"라고 등 두드려줄 수 있으면, 그녀 또한 스스로 편한해질 수 있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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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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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iverway
  • 등록일
    2010/04/21 13:07
  • 수정일
    2010/04/21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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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활동을 하는 간호사들과 간호사 인터뷰 결과와 소견을 나누었다. 그 중 한 분이 묻기를, 말하는 것을 들으니 참 교수같다...아님, 우리와 같은 활동가인가 ?? 당신의 정체성이 무어냐고 확인하는 질문이었으리라.

나는 나에요~~라고 답했다.  우답이었을까?? 어깨에 너무 버거운 짐을 지고, 바위가 얼마나 견고하고 큰지 쳐다보지 않으며 달려드는 날계란같은 모습이 안타까워서 튀어나온 말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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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시작 : 삼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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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iverway
  • 등록일
    2010/04/19 16:21
  • 수정일
    2010/04/19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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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농사를 시작했다.

밭을 다 갈고 정리를 해주셔서 그저 모종을 심고 씨를 뿌리는 정도에 그쳤지만...

새삼스럽고, 언제 그렇게 농사를 지었던가 기억이 까마득했다.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집들의 풍경을 보면서, 문득 팽팽했던 고무줄이 툭 하고 끊어지듯

긴장이 풀렸다. 

 

집과 나무, 밭, 그리고 언덕...

 

모든 움직임이 멈춘 듯한 그 풍경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 그저 애를 쓰는 것이 아님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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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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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0/04/12 21:46
  • 수정일
    2010/04/12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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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에 시작했던 인터뷰가 지난 토요일로 마무리되었다.

6개병원 10개 그룹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인터뷰를 통해 참 많은 것을 느끼고 확인했다.

정리와 모색이 남아 있지만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로 하여금 이야기하게 하고 그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가슴이 뻐근하면서도 벅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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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이야기1

이번 겨울, 제가 만났던 간호사 두분의 이야기입니다.

한 분은 영산강 주변 영암군의 한 산골에서 일하시는 40 중반의 보건진료원입니다.
어릴 때 시골에 살면서 한 마을에 사는 친구 중에 저수지를 갖고 있는 부잣집 아이가 있었다네요. 친구 아버지는 과수원에서 일하시다가 저수지에서 낚시를 해서 친구를 불러 집에서 고추장가져오라고 하시어 날로 드시곤 했답니다. 언젠가 친구집에 놀러갔을 때 친구아버지가 편찮으셔서 누워계셨고, 얼핏 배가 부르고 누런 얼굴을 하고 계신 것을 보았다네요. 그리곤 돌아가셨다는 이야길 들었구요. 그 기억이 생생하게 다시 떠오른 것은 자신이 보건진료원이 되어 주민들에게 간흡충 검사와 예방교육을 하게 되었을 때랍니다. 먹을 것이 정말 귀하던 시절에 자기 저수지에서 민물고기를 날로 드시던 부자가 어릴 적엔 마냥 부러웠었는데 알고 보니 그것 때문에 돌아가셨을 수도 있었겠다 싶은 거지요. 그 꼬마가 커서 보건진료원이 될만큼 세월이 훌쩍 지난 지금, 아직도 유일한 단백질 보충식이라 여기며 민물고기 회를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먹게 하는 주민들이 계시는 강가 마을에서 어릴 적 그 추억을 찾아낸 선생님의 마음이 제게 큰 감동을 주더군요.

또 다른 한분은 병원에서 평간호사로 일하며 정년퇴직을 하고 싶다는 40대 초반의 간호사입니다.
집안이 어려워 산업체 고등학교가 있는 회사를 다니셨다네요. 어느 여름 장마비가 심하게 와서 친구들 기숙사가 물에 잠겼대요. 그 당시는 월급을 현금으로 받아서 저금하는 것도 잘 몰라서 그냥 기숙사에 모아두고 있던 친구들이 많았는데 그만 한 순간 물에 다 잠겨 잃어버리게 되었답니다. 비가 많이 오니 기숙사에 가서 짐을 챙기라고 회사에서 안내만 해주었더라도 몇 년간 고생한 그들의 재산이 그토록 허망하게 없어지지는 않았을꺼라구요. 그 때 친구들은 망영자실 하여 그저 회사 정문앞에 모여 있었답니다. 피켓도, 머리띠도 두를 힘은 없었지만 한 발짝도 뗄 수 없을만큼 절박했고, 자신은 그 친구들에게 주먹밥을 해다 날랐다네요.
그 후 자신은 회사를 나와 졸업을 하고 간호사가 되어 병원에 들어갔을 때 그 때 그 경험을 잊을 수 없어 노조에 가입을 했답니다. 경력이 쌓이면서 대의원 활동도 하고 파업에도 참여하였고, 그로 인해 승진이 늦어지는 불이익을 당하며, 탈퇴를 권유받아왔지만 자기 혼자 힘으로는 허망하게 자신의 것을 빼앗길 수도 있음을 알기에 조합원으로 남아있답니다. 그리고, 환자를 돌보는 일은 자신에게 잘 맞고, 하고 싶은 일이라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정년이 될 떄까지 일하고 싶다고 합니다. 조용하지만, 당당한 그 목소리가 아직도 제 맘에 남아 있습니다.

저는 두 분의 이야기에서 간호사라는 직업인이기 이전에 자신이 살아오면서 겪은 경험이나 갖고 있는 바램을 통해서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진정성을 보았습니다. 두 분의 진실된 고백은 제게 새로운 도전이고 격려로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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