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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알기 : 푸른 강은 흘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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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iverway
  • 등록일
    2009/10/21 17:26
  • 수정일
    2009/10/21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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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때를 알기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제겐 한참 지난 지금도 청소년기가 어떤 때인지, 스무살 청년기를 왜 좋은 시절이라고 하는지 헤아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장소설을 읽은 것이 큰 도움이 되었기에, 이 영화 역시 열일곱살 청소년들의 이야기라는 광고를 보고 선택했습니다.

두만강 가까이에 있는 아주 가난한 마을에 살고 있는 소년의 어머니는 한국에 돈을 벌러 가셨습니다. 아버지는 집 주변의 밭을 갈면서 지내지만 글을 쓰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오는 것을 보면 전업 농부는 아닌 듯도 보였습니다. 그 시골에도 컴퓨터가 있고, 소년은 같은 학교. 같은 반인 소녀와 채팅을 하면서 좋은 감정을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맑고 씩씩하던 소년이 어머니가 부쳐 준 돈으로 오토바이를 사면서 일탈을 시도하게 되고 소녀의 원망을 듣습니다. 같은 반 친구들도 소년의 일탈을 걱정하지만, 비난하거나 따돌리지 않습니다. 아버지도 너무 오래, 너무 많이 빠지진 말라고 당부할 뿐 자신의 한을 아들에게 퍼붓지 않고 지켜봅니다. 어느 날 학교에 소년이 나타나지 않자 선생님은 소년을 찾아 나설 친구가 없냐고 학생들에게 묻습니다. 소녀가 손을 들어 자청을 하고, 두만강가에서 "강의 가장 높은 위상은 바다로 가는 것이다. 바다로 흘러 흘러가라"하시던 어머니 말씀을 떠올리며 앉아 있는 소년을 찾아냅니다. 그렇지만, 소년은 소년대로 소녀는 소녀대로 각기 자신의 길을 걸어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고 둘은 다시 화해를 합니다. 그들의 암호는 "푸른 강"입니다.

두 주인공을 통해 '십 대'의 특징(?)을 몇가지 찾아봅니다.

1. 순간 멋있게 보이고 싶고, 더 빨리 달리고 싶은 충동과 욕구를 참지 못하고 끌려간 소년에 비해 같은 또래의 소녀는 훨씬 차분하고 안정된 모습입니다. 공부도 더 잘하고, 다른 친구들을 격려할 줄도 압니다. 

2. 소년의 마음을 돌리고 다시 돌아오게 한 것은 "어머니"였습니다. 소년이 자신의 모습에 괴로워할 때 "어머니"를 크게, 안타깝게 외쳤고, 강가에 앉아 어머니가 들려주셨던 말씀을 기억하며 용기를 얻었으니까요.

3. 놀랍게도 교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의 모습이 나오더군요. 선생님이 들어오시자 화들짝 놀라 불을 끄고 자리로 돌아가 앉습니다. 거침없이 한 학생이 선생님에게 이의를 제기합니다. 선생님은 왜 숨어서 우리가 잘못하기를 기다리시다 들어오시냐구요. 또 며칠 째 기숙사에 돌아오지 않는 여학생 두명을 걱정하며 울먹이는 순진한 여선생님을 학생들이 오히려 달래줍니다. 걱정하지 마시사라며, 곧 돌아올꺼라며 말입니다. 그들이 보기에 어른들이 전혀 어른답지 않아 보일 수도 있겠다 싶더군요.

4. 십대들은 때로 싸우고 부딪히지만, 쉽게 화해하고 서로를 끌어 안을 수 있는 여린 마음을 가졌더군요.

5. 친구들과 선생님, 그리고 부모님이 옆에서 지켜봐주고, 기다려주기를, 그리고 언제든 받아주기를 믿고 바라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잠깐, 저의 십대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지요. 저도 한강변에 살았기에 고등학교를 오고가며 버스 안에서 유유히 흐르는 푸른 한강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 기억으로 인해 지금도 한강이 제게 친숙한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고3 올라가자마자 성적이 너무 나빠서 낙담하여 한강까지 걸어가서 한참동안 강물을 내려다본 적이 있었습니다. 삶을 끝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지요. 문득 푸른 강을 더럽힐 수 없겠다는 핑계를 떠올려 사당동 집까지 걸어왔던 것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제겐 세상이 저의 일탈을 지켜봐주고 기다려주고, 받아줄 것이라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범생'이처럼 사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쳐다도 보지 못했으니까요.

영화 속에 슬프고 안타까운 조선족들의 생활이 많이 담겨져 있어서 재미있거나 빠져들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행복한 끝맺음이길 바랬지만,  한국에 돈 벌러 왔던 소년의 어머니가 끝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하는것이 마지막 장면이라서 마음이 많이 무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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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수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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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iverway
  • 등록일
    2009/10/20 16:34
  • 수정일
    2009/10/20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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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에 고구마를 캤습니다. 6월초에(?) 장에 가서 고구마 순을 사다가 둔덕을 만들고 비닐을 덮은 후 심어두고는 그냥 잊고 있었는데, 서리 내리기 전에 캐는 거라고 해서 캐봤더니 이렇게 많이 그것도 아주 큰 것들이 땅 속에 들어 있더군요. 그저 신기하기만 하더군요. 지난 여름 감자 수확보다도 더 풍성한 수확입니다.

언니, 형부, 조카네 부부와 그 딸(저를 할머니라 부르는 세살짜리)도 모두 모여 재미있게 캐 가지고 군고구마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참 달고 맛있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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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벨라 : 돕는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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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iverway
  • 등록일
    2009/10/09 14:27
  • 수정일
    2009/10/09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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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누구나 특별한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 아이를 가졌고, 일하던 레스토랑에서 해고되어 막막한 처지에 놓인 니나에게, 잘나가던 축구선수였던 과거를 묻어두고 주방장으로 일하며 어두운 기억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호세가 '도움'을 주고 싶다고 나섰습니다. 호세는 우쭐대며 고급 승용차를 몰고 가다가 좁은 골목에서 한 미혼모의 인생에 전부였던 어린 딸을 치어 그만 죽게하는 사고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그 후 열정을 잃어버린 그에게도 도움을 주신 분들이 있었습니다. 결혼 후 아이를 원했으나 생기지 않아서 큰 아들을 입양하여 키우면서 호세와 그 동생을 낳게 되어 유쾌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온 부모님이십니다. 

호세의 아버지는 말씀하십니다. "정원을 가꾸는 일은 생명을 돌보는 일이다"라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지혜로운 두 분에게서 니나도 위로를 얻습니다. 니나는 어릴 적 아버지와 사별한 슬픔을 겪었지요. 어머니는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여 하루 종일 TV만 보고 지내셨기에 어린 니나는 혼자 커야 했고, 어머니까지 돌봐드려야 하는 힘든 성장기를 보냈다고 하네요. 자신과 같은 인생을 반복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이 그녀가 원치 않은 임신을 알았을 때 난감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그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결정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니나의 심정을 감히 헤아려 볼 수 있습니다.  그녀에게 삶은 벗어나야 할 질곡일 뿐일테니까요.

이 영화의 메시지는 지극히 기독교적입니다. 혼자 힘으로는 어쩔 수 없으나 누군가를 통해 '사랑'을 전하시는 분의 도움으로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신앙은 겸손히 도움을 청하는 작은 행동입니다. 그러면, 모든 인간에게 단 한번의 인생을 허락하신 분께서 그 삶이 행복하도록 보살피시고 돌보신다다는 것이지요. 지금까지 그렇게 해주셨음을 믿고, 앞으로도 그러실 것을 바라는 희망으로 사는 것입니다.  

결국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그 마음, 그 사랑을 통해서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의 인생이 가져다 준 고통과 상처에서 자유로와져서 평안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영화의 끝 장면이지요.

이 영화에 대해 흔히 미혼모들에게 아기를 낳게 한 영화다, 상처를 서로 치유한 순순한 사랑의 영화다라는 평들이 있나봅니다. 그러나, 저는 학생들과 돕는 관계에 대해 이야기 나눌 때 소재로 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니나의 뒷모습을 눈여겨 바라보다 차마 돌아서지 못하고 뒤따라간 호세의 그 "마음"에서 영화가 전개되기 시작했음을 주목하고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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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한마리, 그리고 어머니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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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iverway
  • 등록일
    2009/10/05 17:02
  • 수정일
    2009/10/05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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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를 지냈습니다. 정확히 22년차인데도 여전히 시댁에 가기 전에는 심적 부담이 크더군요.

그래도 세월의 힘은 큰가 봅니다. 나이가 드는 탓이겠지요.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1. 조기

제사를 다 드리고, 식사를 마쳤을 때, 아버님께서 다들 원하는 음식을 각자 싸가지고 가라고 말씀을 꺼내셨지요. 서울 사람들이야 필요없겠지만.. 하고 토를 다셨던 것 같습니다. 그 말씀을 받아 남편이 상어고기와 조기는 가져가겠다고 나섰습니다. 아버님은 코웃음을 치셨습니다. 제사상에 준비된 조기가 달랑 네마리뿐인데, 이 많은 식구들이 두마리를 갖고 아침에 나눠 먹었고, 니가 가지고 갈 것이 어디있겠냐구요. 그 말씀을 이번엔 어머님이 받으셨습니다. "아니다, 남은 두 마리 중에 한마리는 니가 가져가도 된다"라고.. 그 자리엔 시부모님과 저희 부부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저희 집 시동생네 두 부부와 작은 어머님과 그 집 형제 내외, 막내 작은아버님과 어머님 모두 계신 자리였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어머님이  내 놓고 당신의 큰아들에 대한 '특별한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평소에 삼형제를 고루 배려하시는 그 지혜가 놀랍고 존경스러웠던 저로서는 놀랍고도 인상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지난 세월, 특별한 아들을 키워오시면서 드러내지 않았던 그 무언가를 이제는 표현하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싶더군요.

그러보니, 목요일 저녁 저희 부부가 가장 먼저 도착해서 부모님과 저녁식사를 했는데, 어머니께서 맛있게 담그신 새김치를 상에 놓아주셨어요. 그 때, 아버님께서 한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이 김치 아무나 못 먹는 거다..." 나이 오십이 다 된 아들을 맞이하시려고 고구마를 삶아 놓으셨고, 오징어를 구워서 '몰랑몰랑'해지도록 젖은 행주에 싸두었다가 먹기 좋게 찢어놓으시기도 했습니다.  어머님의 아들 사랑을 조금은 짐작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 생각에 이어 지난 기억 속에서 한 장면이 더 떠올랐습니다.

 

2. 어머니의 눈물 

시집와서 지금까지 어머님이 우시는 모습을 본 것은 딱 한번입니다. 저희가 보스톤에서 지내고 돌아오던 해가 바로 어머님이 칠순이 되시는 해였습니다.  그래서 조카 네명과 동서, 그리고 어머님을 미국 동부 여행 패키지로 오시게 하여 여행 끝에 저희 집에서 함께 며칠을 더 여행을 하셨지요. 돌아가시는 날 뉴욕공항에 모시고 가서 일찌감치 짐을 부치고 나서 동서와 조카들은 쇼핑을 하겠다고 자리를 뜨고, 어머님과 함께 대기하는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어머님께서 울음을 터뜨리셨습니다. 아주 짧은 순간, 참을 수 없는 슬픔을 드러내셨던거지요. 그 이유를 어머님께 감히 물을 수가 없었습니다. 당신께 아주 특별한 아들의 인생에 대해 어머님으로서 어쩔 수 없는 슬픔을 가슴에 꾹꾹 눌러안고 계셨구나 짚어보았을 뿐. 한번도 아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당신의 기대와 바램에 비추어 요구하시지 않으셨던 어머님. 그 마음 깊은 곳에 감추어져 있었던 슬픔은 아마도 남들처럼 평범한 가정을 이루며 다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그 바램에서 벗어나 있는 아들이 감당해야 할 고통이 클 것 같아서 생긴 것은 아닐까 짐작해볼 뿐이지요.

이렇게 생각하보 보니,

한 어머니의 지극하신 사랑을 받은 그 귀한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이 바로 저네요.

어머님께서 저를 어찌 생각하시는지,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새삼 헤아려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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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참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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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iverway
  • 등록일
    2009/10/01 06:50
  • 수정일
    2009/10/01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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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떠나서 토요일/일요일 학회에 참석하고 어제 돌아왔습니다. 짦지만, 이런저런 감상이 많아서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네요. 글로 정리하면 차분해질까 싶어 써 본 글, 올려봅니다....

1.  장소
이번 학회가 열렸던 곳은 일본 고베입니다. 관서지방이고 효고현 소속인 도시이죠. 한국에는 1995년 고베대지진으로 인해 널리 알려졌고, 교포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그리 낯설지 않은 곳입니다. 간사이 공항에서 내려 오사카를 거쳐서 갔습니다.  고베나 오사카 모두 항구이므로 부산같은 분위기가 많이 느껴지더군요. 버스가 해변을 끼고 고속도로를 달릴 때, 건너편 쪽 오사카 시내를 바라보면서 문득 제 아버지가 청년시절에 이곳에서 고학을 했다는 기억이 났습니다. 제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지는 경북 상주 산골에 어머니와 누님, 동생을 남겨두고 외사촌 형이 터전을 마련하고 있는 오사카로 떠났다고 하셨습니다. 낮엔 돈을 벌고, 밤엔 공부를 하는 주경야독의 생활을 해내며 애쓰셨을 '청년' 아버지가 떠올라서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막막한 미래를 위해 밤낮없이 불안했을 '청년'으로 이 하늘과 이 바다를 바라보았겠구나 싶더군요. 저희들에게 신문배달을 하며 공부를 했노라 말씀하셨을 땐 그저 어른의 훈계로, 핑계로만 들었더랬지요. 이제 돌아가시고도 한참 지나고 나서야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그 그리움으로 제가 아버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참 없더군요. 몇 년생이시더라? 결혼은 언제 하셨을까? 내가 태어나셨을 때 무엇을 하셨던가?... 내가 성장하여 기억할 수 있는 아버지는 그의 인생에서 일부분, 그것도 가장이라는 막중한 책임에 눌려 계셨던 모습 뿐이 아닌가 싶습니다. 언제, 시간을 내어 언니들과 오사카를 다시 와서 아버지를 추억하고 그리워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싶습니다.

2. 사람
이번 학회는 제1회 세계간호과학회 국제간호연구학술대회(The 1st International Nursing Research Conference of World Academy of Nurisng Science)입니다. 효고대학교 간호학과가 주축이 되어 일본의 여러 분과학회(성인, 아동, 정신, 지역 등등), 그리고 태국, 한국, 미국 등 여러 나라의 대표들이 모여 세계간호과학회를 창립하게 되었고, 이를 기념하는 창립기념학술대회였더군요(사실, 가기 전에 저도 잘 몰랐던 사실. ㅠㅠ).
주제강연자 중에는  유명한 간호이론가 Afaf Meleis가 있었지요.  저는 이름만 익히 들었고, 강의는 첨 들어본 셈입니다. 일단, 자신의 주장과 생각에 대단한 확신과 실천력을 가졌더군요. 지금은 University of Pensilvania 간호대학의 학장으로서 행정가/경영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어서인지, 발표의 결론은 자기네 대학의 석박사과정에 대한 소개와 홍보로 이어졌지요. 중요한 시사점 중 하나는 " 임삼실무 경험"이 간호학의 발전, 새로운 간호지식의 발견과 축적에 매우 중요함을 강조하였다는 것입니다. 최근 미국에서 주장되고 있는 전문간호사를 위한 별도의 박사과정을 지지하고 있더군요. 실무경험으로부터 간호연구의 주제가 도출되고, 이루어진 연구는 다시 실무에 반영되어 발전해나갈 수 있도록 대학의 구조와 기능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대학에서 이를 실현시키고자 애쓰고 있노라 하였습니다. 학생이 있으니 그저 학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지향하는 가치와 방향이 있어서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짜고 그 속에서 새로운 사람들이 훈련되어가는 학교를 만들어가는 것이 가능함을 확인하였습니다. 끝까지 청중석에 앉아서 심포지움 주제를 듣고 질문이나 코멘트를 성의껏 하는 태도도 돋보이더군요. 사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수백명의 사람들이 감수해야 할 수고에 비하면 늘 쓰는 말로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쯤이야 쉽겠지요.. 게다가 초청된 연자와 일본내 간호학 교수들중 몇몇 사람들은 다 UCSF에서 자신이 가르쳤거나 그곳을 졸업한 동문들이니 자신의 의견을 많이 개진하고 싶을 만큼 친근하겠지요.

이번에 인상이 깊었던 것은 일본의 간호연구자들이었습니다. 전국의 여러 곳에서 젊은 연령층부터 연세드신 분까지 다양한 분들이 오셨더군요. 학회 총참가자가 800여명이 넘었다고 주최측은 몹시 좋아했습니다. 일본 간호연구자들의 연구 주제와 방법론은 그다지 높아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경험한 바를 연구문제로 만들어서 이를 꼼꼼히 정리, 분석하여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은 열정으로 열심히 포스터를 만들거나 영어로 구두발표를 할 수 있도록 연습을 해가지고 온 모습들이 새삼 좋아보였습니다. 브라질에서 이민와서 일본에 사는 여성들의 아이양육과 관련된 사회적 연계망을 조사한 포스터 앞에서 제가 관심을 갖고 질문을 하며 미국에서 온 교수와 이야기를 잠시 나누었는데,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더군요. 찍은 사진을 자신들 학교 홈페이지에 올려도 되냐고 동의를 구하는 젊은 강사가 있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그 결과를 인정받았다는 기쁨이 가득한 표정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어깨를 껴안아주었지요. 격려해주고 싶어서요.

저는 대학원 시절에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지요. 지금은, 아는 만큼 드러내고, 그 수준에서 또 모르는 것을 찾아 애쓸 수 있도록 학생들을 격려하는 선생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주로 간호교육을 주제로 한 논문들을 들었습니다. 영화를 통해 비판적 사고능력을 키운 사례를 발표한 대만 연구자도 있었고, 샌프란시코에서 여러 간호대학이 공동으로 보건소 실습을 기획하고 시도한 사례도 있었고, 중소병원에서 장학금을 주고 간호대학을 졸업한 후 그 병원으로 취업을 시켰다는 태국사례도 있었습니다. 실무경험으로부터 구체적으로 연구문제를 찾아내어 생생하게 들려주는 발표와 포스터들이 복잡한 통계와 추상적 개념으로 포장된 연구들에 비해 훨씬 더 많더군요.
저는 한국에서 간호사들의 소진에 관해 연구한 논문을 분석한 결과를 가지고 포스터 발표를 했는데, 쿄토대학의 한 교수팀이 관심을 보이더군요. 자신도 간호사의 소진에 관한 연구를 해볼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할 수 있다면, 한국과 일본을 비교하는 연구를 같이 해보자고 뜻을 모았지요.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참 많은 간호사들을 보았습니다. 그 순수함과 열정이 저를 더욱 겸손하게 하고, 의욕을 되찾을 수 있게 해줄 수 있을 것 같네요.

3. 시간
제가 이번 학회에 가게 된 계기는 10여년전에 만났던 한 교수로부터 온 연락 때문이었습니다. 1997년에 제가 일본의 키타큐슈에서 하는 산업간호학술대회에 참석했을 때, 제 발표가 끝나자 다가온 한 예쁜 간호사가 있었지요. 마키 도미나가! 부모님이 한국인이지만, 국적을 바꾸어서 일본인으로 살고 있는데, 그래도 한국인을 만났으니 이야기를 같이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도 참 반가워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때 그녀는 오사카에 있는 큰 회사의 산업간호사로 일하고 있다고 했지요. 한 두번 카드가 오고 갔던 기억이 있지만, 잊어버리고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에 키타큐슈에 있는 산업의과대학에서 '간호사의 건강'에 대한 심포지움이 있어서 한국 간호사에 대한 발표를 하러 갔었는데, 그 때 마키가 저도 볼 겸해서 왔노라고 저를 찾아주었습니다. 그 사이에 동경을 오고가며 석사를 마치고 나서, 회사를 그만 둔 후 동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땄고, 고베에 있는 대학의 간호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습니다. 10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잊지 않고 알아봐 준 그 마음이 고맙고, 간호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신규간호사의 이직의도 변화에 관한 추적연구를 하고 있다고 하니 더욱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헤어진 후 몇 달 후에 이메일로 이번 학회가 있다는 정보를 알려주었고, 자신이 준비위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덕분에 제가 영어는 부실하지만, 한 세션의 좌장을 맡을 수도 있었답니다. 살면서, 10년이란 세월은 참 긴 것 같고, 까마득하게 느껴지지만, 이렇게 한 사람과의 인연을 정리해보면 참 얼마나 생생한 시간인가 싶습니다. 오랜 인연이라는 것 그것만으로, 끈을 놓지 않았다는 것 만으로도 사람은 연결될 수 있는 것인가 봅니다. 마끼는 정말 인형같이 예쁜 오사카 여인입니다. 요즘의 일본 여성(특히 삼십대)들이 무엇을 추구하는가를 짐작하게 하는 젊은 연구자요, 선생이지요. 반듯하고, 깍듯한 태도가 차갑거나 형식적으로 다가오지 않고 따뜻한 배려로 느껴지게 하는 매력을 보았습니다. 언제 또 만날지는 모르지만, 참 따뜻한 인연이구나 싶습니다.

또 하나, 시간에 대한 단상은  일본 사람들의 영어실력입니다. 97년도에 일본학회 참가자들은 거의 다 동시통역기를 사용했더랬지요. 질문이나 발표 중에도 일본어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물론, 이번 학회 규모가 더 크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영어실력이 놀랄만큼 늘었더군요. 일본식 영어를 부끄러워 하면서 발표하는 사람도 있을 만큼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유창하진 않아도 쉽게 말을 걸고 더듬거리더라도 기꺼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적극성도 그 전엔 못 봤던 듯 하고. 지난 10여년동안 일본의 4년제 간호대학은 12개에서 200여개로 급속히 늘어났다고 하더군요. 법을 만들어서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적극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고도 합니다. 부자나라에서 한 사람 한사람의 발빠른 적응이 집단의 큰 변화로 나타나는 것을 확인한 것 같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그 속에서 각 개인들은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나 혼자 애쓰면 뭐하나 싶을 때, "시간"이 나를 도울 것이라는 믿음이 힘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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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자!

  • 분류
    riverway
  • 등록일
    2009/09/08 08:06
  • 수정일
    2009/09/08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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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때인 만큼, 주변을 정리하고 새로 시작하고 싶은 생각이 가득하던 차에

블로그를 돌아보니,

나름 새롭다.

기록의 가치를 존중하여

다시

시작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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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의 성장 정도

  • 분류
    riverway
  • 등록일
    2009/05/12 14:53
  • 수정일
    2009/05/12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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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여러가지 일들에서, 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끼게 되면서 드는 생각이다.

내 인격의 성장 정도는 중학생 수준이구나!

이유야 복합적이겠으나, 나의 모든 경험, 유전, 배경 등등이 통합되어 발현되는 현 단계의 인격은

중학생 정도임에 틀림없는 듯하다..

부끄럽고, 미안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래서, 난 또 누구에게든 고맙고, 겸손하게 대할 때 마음이 평안하다.

 어느 새 훌쩍 나이 들어버린 겉모습때문에 나조차도 착각했더랬다. 이젠, 잘 돌보고 키워갈 일이다. 성숙해지도록.. 나이에 걸맞은 수준이 될 수 있도록 애써야겠다.

나아질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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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과거를 불러내는 영화

  • 분류
    riverway
  • 등록일
    2009/05/11 11:00
  • 수정일
    2009/05/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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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에 소개된 기사를 읽고 보고싶었던 영화입니다.

 주말마다 농사지으러 가느라 통 시간을 못냈는데, 토요일 저녁 갑자기 시간이 났고 충동적으로 극장엘 달려갔지요. 보는 내내 가슴이 답답하고, 인간이 선택할 수 없는 딱 한가지가 부모요 형제라는 사실에 새삼 눈물이 많이 났습니다. 대물림을 하는 폭력, 가난, 한... 내가 영화관에 앉아 있는 그 시간, 누군가는 맞고, 아프고, 숨죽여 울고 있겠지요. 태어나서 배워야 할 유일한 것이라면 "관계맺기"라는 것도 새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과 사람으로서 인격적인 만남을 갖고 그 만남을 잘 키워갈 수 있는 능력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혼자만의 노력으로도 되지 않습니다. 어떤 환경에 놓이느냐가 중요한데, 누구나 누군가의 환경이 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특히, 양익준 감독에게 배우는 바가 큽니다. 그가 말하는 희망은 허망한 구호가 아니고 그의 삶입니다. 세상은 살아볼만하다고, 자신의 운명과 화해하는 길을 가는 것이 곧   삶의 궁극적 가치, 소명임을 서른 살 중반인 청년으로부터 배웁니다.

 

감독에 관한 소개기사입니다.

http://www.artnet.kr/art/bbs/board.php?bo_table=B12&wr_id=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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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 분류
    riverway
  • 등록일
    2009/03/11 16:42
  • 수정일
    2009/03/11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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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두려움이 있음을 아는 것이다.

그 두려움이 단단한 껍질에 둘러싸여 있음을,

저 깊은 곳에 숨겨져 있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그 두려움을 바라보며

서서히 다가가

손을 내밀어

화해를 청하는 것이다.

결국,

그 두려움을 끌어안고,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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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 분류
    riverway
  • 등록일
    2009/03/10 16:30
  • 수정일
    2009/03/10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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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레포트를 받아보고,  마음이 아팠다. 우울하고, 자신없고, 힘들고, 밥 제대로 못먹고, 위경련 생기고....  어른들이야 먹고 사는 것이 힘들다지만, 예전처럼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지도 않으면서 이렇게 힘들게 지내다니... 뭐라 할 말이 없어서 내 스무살 적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쁘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길래, 나도 그 시절엔 몰랐는데 지나보니 너무도 아름답고 풋풋한 시절이더라고 너희들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자신을 가지라고 말해주었다. 잠시나마 아이들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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