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와 마주치면 파블로프의 개 마냥 자동재생되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조용하게 비내리는 오후에는 이승훈의 "비오는 거리"가 자동재생되고
'별'을 보면 한 때 남한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모 단체가 자동연상되는 등...
안개가 낀 날이면 어김없이 기형도의 '안개'가 떠오른다.
양념처럼 무진기행도 ...
아침 알람 소리에 놀라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항상 밤에 숨겨두고 잔다 ㅎㅎㅎㅎ)
문득 밖을 내다보니 거짓말처럼 안개가...
그 황망한 와중에 기형도의 시가 섬광처럼 떠올랐다
하지만, 알람을 찾아 품에 안고 따뜻한 이불 속으로 잠시 몸을 숨겼다 눈 뜨니 해가 쨍쨍.....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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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기형도
1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2
이 읍에 와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어떤 날은 두꺼운 공중의 종잇장 위에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때까지
안개의 軍團은 샛강에서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다.
출근길에 늦은 여공들은 깔깔거리며 지나가고
긴 어둠에서 풀려나는 검고 무뚝뚝한 나무들 사이로
아이들은 느릿느릿 새어나오는 것이다.
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얼마 동안
보행의 경계심을 늦추는 법이 없지만, 곧 남들처럼
안개 속을 이리저리 뚫고 다닌다.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쉽게 안개와 식구가 되고
멀리 송전탑이 희미한 동체를 드러낼 때까지
그들은 미친 듯이 흘러다닌다.
가끔씩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면
방죽 위로 걸어가는 얼굴들은 모두 낯설다. 서로를 경계하며
바쁘게 지나가고, 맑고 쓸쓸한 아침들은 그러나
아주 드물다. 이곳은 안개의 聖域이기 때문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안개는 샛강 위에
한 겹씩 그의 빠른 옷을 벗어놓는다. 순식간에 공기는
희고 딱딱한 액체로 가득찬다. 그 속으로
식물들, 공장들이 빨려 들어가고
서너 걸음 앞선 한 사내의 반쪽이 안개에 잘린다.
몇 가지 사소한 사건도 있었다.
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했다.
기숙사와 가까운 곳이었으나 그녀의 입이 막히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 겨울엔
방죽 위에서 醉客 하나가 얼어죽었다.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 그것이
쓰레기더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안개가 걷히고 정오 가까이
공장의 검은 굴뚝들은 일제히 하늘을 향해
젖은 銃身을 겨눈다. 상처입은 몇몇 사내들은
험악한 욕설들 해대며 이 폐수의 고장을 떠나갔지만
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났다. 그 누구도
다시 읍으로 돌아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3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안개는 그 읍의 명물이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
여공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가을이 오고야 말았다.
무려 새벽 여섯 시에 전화를 해서 multinomial regression을 물어보는 기인 덕분에,
모처럼 여유있게(?) 아침을 시작한다.
지하철역에서 사무실까지 걸어오는 동안, 느낄 수 있었다.
저 하늘 색, 저 구름, 그리고 약간은 싸늘한 기운이 감도는 이 바람....
바야흐로... 그 계절이 된 것이다.
그 분이 나를 애타게 부르시는...
wandering spirit, 바로 그 분 말이다...
꼭 바쁜 시절에 맞춰 강림하신다는 그 분...
허나.. 감히 거역할 수 있나!
학회 전에 사흘 동안은 에딘버러와 인버네스-하이랜드 구경을 했다.
여름 휴가를 이걸로 보낸 셈이다...
생전에 두 번 다시 못 갈 것 같은 곳을 의외로 두 번 이상 가고 있다. ㅡ.ㅡ
쿠바도 그렇게 브라질도 그렇고...
2002년도인가... 영국 에섹스에서 열렸던 통계워크샵 기간 중 주말에 잠깐 에딘버러 구경간 적이 있었다. 한창 에딘버러 축제를 준비하느라 부산한 모습이었는데, 아.. 축제기간에 볼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했더랬다. 이번에... 바로 그 축제기간이었다 ㅎㅎ
에딘버러 성 쪽으로 가는 길 맥주 양조장의 대형 광고판...
처음에는 Assembly 라고 되어 있어서 시의회인 줄 착각했음 ㅎㅎ
에딘버러 성에서 바라본 Calton Hill의 모습...
Hill 에 직접 올라가서 바라본 모습... 날씨가 어찌나 좋던지...
축제 중이라 여기저기 작은 공연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찌그러진 솥뚜껑으로 리듬이 아닌, 멜로디를 연주하는게 진짜 신기했는데
차마 나서기 어려운 몸매로 Scotland 민속의상인 Kilt 입어주신 관람객의 센스와 용기(!)에 우리 깜놀!
꼬불꼬불 골목길에서 내려다본 풍경...
기차타고 하이랜드로 올라가는 길...
날씨가 정말 예술이었음... 푸른 초원과 양떼, 소떼...
광우병 사태 터지고 나서 이렇게 예전 방식의 방목으로 돌아온 거란다. 그래서 식당에 가면 'British Beef'라고 자랑스럽게 써 있다.
월래스와 그로밋에 나오는 얼굴 까만 양들 원없이 봤다.
인버네스 기차역...
Ness River 가 흐르는 숙소 앞길.... 그 한적함이라니... 세번째 사진은 밤의 모습...
예전에 에딘버러 구경갔을 때 소원 중 하나가 Loch Ness에 가보는 거였는데, 이번에 다녀왔다. 인버네스에서 버스타면 한 시간이 채 안 걸린다.
경치가 정말 예술인데다, 크기도 장난이 아니라서 정말 괴물 나온다 해도 믿겠더라 ㅎㅎ
근데 카메라 앵글에 도저히 담아지지가 않음. 이건 파노라마 샷으로 찍어야 하는디...
방문자 센터 선물가게에서 파는 '네스호의 괴물' 모형... 나름 귀여워서 작은 사이즈로 하나 샀다.
여행의 대미는 Skye 섬이었다. 인버네스에서도 기차타고 두어시간, 거기다 버스까지 더 타야 했다.
사진은 섬 입구 터미널에 있는 '역전 식당' ㅎㅎㅎ
말하자면 시골밥상이 나왔는데 아주 푸짐하게 맛나게 먹었더랬다.
섬을 찾아가는 여정과 섬의 경관은 말 그대로 beyond description!!!
그 황량함과 고적함은 가히 본적도 들은 적도 없는 것이었다.
그런 곳에 한 달만 살면, 문학작품이 절로 쏟아져나올 것 같았다. 호연지기 60갑자 상승, 아니면 치명적 우울증...
그런데...
역시, 미천한 디카로는 그 아우라의 흔저조차 담기가 어렵구나...
그냥 허접한 산골마을 풍경처럼 나왔다... ㅜ.ㅜ
벌써 이 곳에 다녀온 것이 백만년 전 일인 것 같지만,
TV 위에서 꼼지락거리고 있는 Ness 호의 괴물과 지금 옆에서 김을 모락모락 내고 있는 따뜻한 British Tea를 보니, 현실감이 급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