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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에 이어서
#_Day5
베를린에서는 D 샘 덕분에 아침을 정말 든든하게 잘 먹음. 든든하게 샐러드 챙겨먹고 투어 시작.
베를린 장벽 공원을 거쳐 브란덴부르크 문, 유대인기념비 지하박물관까지...
남북한의 대치에 비하면 독일은 통일 전에 교류도 많았고 비교적 자유로웠던 것으로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지만, 막상 또 가서 보니 어느날 갑자기 동네에 장벽 만들어지고 가족끼리 생이별하고, 탈주하려다 사람들이 다치고.... 역시 인생은 고해로다...
지하박물관에서... 프리모레비의 글귀를 만나고, 왜 이런 과거가 성찰로 이어지지 못하고 오늘날 이해할 수 없는 잔혹극으로 펼쳐지고 있는지 환멸.... 그나마 기록이 남아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렇게 추모라도 할 수 있지만,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흔적없이 사라져간 것일까...
1편에 이어서
#_Day3
이어 역사박물관 갔는데 휴관일이라 뮤지엄 샵에서 마선생님 굿즈만 사가지고 옴. 니체, 한나 아렌트 등 컵도 팔고 있음..
블로그가 연초에만 활발함. 다른 사람들이 피트니스나 영어 학원 등록하고 시들어갈 때, 나는 블로그에서 반짝 했다가 시들어가는듯...
작년에 실로 많은 일이 있었고, 읽은 책도 한 무더기인데... 기억의 공백 사태가 벌어지고 있음.
까먹기 전에 감자투어 먼저...
2019년 코로나 유행 직전 마지막 해외 여행이 엊그제 같은데
그것도 벌써 4년전 일이 되었고, 이번에는 담담이와 함께 감자투어..
#_day1
밀린 독서노트 틈틈히 정리해보자. 티끌은 모아봤자 티끌이라지만, 어차피 태산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으니 작은 티끌들을 소중히 줍줍..
# 그런 세대는 없다 (신진욱, 2022)
그런 세대는 없다 - 불평등 시대의 세대와 정치 이야기 신진욱 개마고원, 2022 |
신진욱 선생님의 진정한 빡침이 느껴지는 책 ㅋㅋㅋ 내가 그놈의 88만원 세대 때문에 20년동안 W 욕했지만 메인스트림에서 실명으로 이를 비판한 경우는 보기 드물었던지라, 일단 책에 급호감 ㅋㅋㅋ
이 책의 미덕은 이러한 빡침에도 불구하고 차근차근 세대론의 이론적 기원을 설명하고 (만하임 등장!), 세대 간, 세대 내 불평등을 실증적으로 검토하면서 "세대" 그 자체가 아닌 "세대 담론"을 둘러싼 지형을 세밀하게 분석함.
불평등 그 자체에 대한 분석은 이미 오래 전에 신광영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사회학자가 수행하여 세대 간 불평등보다 세대 내 불평등 문제의 본질을 지적했던 바 그리 새로울 것은 없었지만, 세대 담론의 진화는 매우 인상깊게 읽었음. 박근혜 정부의 소위 노동개혁을 거치면서 청년과 불공정 담론이 본격 만나게 되고,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이것이 폭발적으로 팽창하는 경과를 뚜렷이 보여줌. 사실 나는 조국 사태가 이 정도의 폭발력을 가진 사건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었는디... 물론 그것이 보수언론과 정치이데올로그들에 의해 적극 조장된 담론/프레임이라 해도 일단 이렇게 폭발하고 나면 담론 그 자체가 새로운 힘이 되어버린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존재.
"기성세대라는 가상의 악을 만들어 청년들에게 비난의 대상을 만들어주고 청년의 편인 듯 가장하여 인기를 얻으려는 발상은 어쩌면 큰 걸림돌이 없는 일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 기성세대른 동일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회집단으로서 실체가 없기에, 비난에 대해 반박하지도, 보복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냐나 만약 당신이 고용주에게, 직장상사에게, 집주인에게 맞선다면 당신은 곧바로 응당한 댓가를 치를 것이다. 그가 노인이든, 중년이든, 당신보다 젊은 청년이든 말이다. 계급은 실체이기 때문이다"
제도권 정치든 사회운동이든 고령화가 진전되고, 젊은 리더들이 기성 정당으로 편입하여 정치게임의 '작은 부품으로' 편입되는 현상에 대해서도 속시원하게 간명하게 진단을 내림
"구조의 본질은 나이가 아니다. 이미 권력자원을 점하고 있는 기성 정치세력들이 현존하는 정치질서의 근간을 위협하지 않으면서 개혁적 에너지를 흡수하여 체제를 지속하는 체제. 안토니오 그람시가 변형주의 transformism 이라고 불렀던 반 개혁 정치가 본질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의 MZ 세대 담론은 압도적으로 경제력과 문화자본을 가진 상류층과 중산층 청년들에게 접속하는 청년담론. 그렇다보니 사실 소비자로서 청년 세대를 호명한 1990년대 X세대 신세대 담론과 다르지 않음. MZ 세대 어쩌구 볼 때마다 저거 30년 전에 했던 똑같은 이야기잖여 라고 마뜩찮아했던 X 세대의 직관을 분석으로 잘 보여줌.
근데..... 아무리 이런 분석이 있고, 심지어 이를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책을 내면 뭐하냔 말인가... 쓰나미같은 미디어와 상업자본의 공세에 어떻게 맞설 수가 없잖여 ㅜ.ㅜ
#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허시먼, 2016)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 퇴보하는 기업, 조직, 국가에 대한 반응 앨버트 O. 허시먼 나무연필, 2016 |
2년 전에 읽은 책에 대해서, 에버노트 쪽메모를 기반으로 독서노트를 정리하는 나란 사람.. 대체.. ㅜ.ㅜ
기억이 나지 않아, 기억이 나지 않아... 곽재식의 '칼리스토 법정의 대역전극'에서 마금희 변호사가 로봇판사에게 어뷰징을 걸기 위해 불렀던 노래를 내가 여기서 부르게 될 줄이야...
하여간, 노력을 해보자면...
제발 번역서 제목 좀.. "Exit, Voice, and Loyalty: 이토록 간결한 원저 제목을 왜 이따구로.... ㅡ.ㅡ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오래된 고사에도 불구하고, 어떤 공동체에 남아 부단히 뭔가를 바꿔보려했던 사람들의 고민을 풀어줄 수 있을 것이가.... 하면 그건 아니고 ㅜ.ㅜ
경제학자이자 정치사상가답게 어떤 상황에서 이탈이, 혹은 항의가 조직 혹은 구성원들의 목표 달성에 기여할 수 있는지, 그 와중에 충성심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인지 논리적으로 탐색한 책이었음.
합리적 주체 (호모 이코노미쿠스)와 완전경쟁 시장에서 수요-공급이 지배하는 경제학의 세계에 이탈 이외에 충섬심이나 항의라는 개념은 존재하기 어려움. 소비자는 이 상품이 맘에 안 들면 다른 상품으로 옮겨가면 되잖여. '회복가능한 일탈'이란 개념이 존재하기 어렵지.... 허나 현실은 그보다 구질구질하고
또 독점인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적극적 항의를 통해 변화를 도모하는 현실을 규명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작업이 필요했다고 설명함. 놀랍게도 책의 발간 시점은 베트남전으로 미국이 혼돈에 휩싸여있던 1970년...
저자가 1958년에 출판한 [경제발전전략론]의 기본 명제가 "발전은 주어진 자원과 생산요소들을 최적으로 조합하는 것보다는 여기저기 숨어있거나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자원과 능력을 발전 목표에 맞게 이끌어내 정렬시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는디, 어쩐지 너무 절절하게 공감.. ㅜ.ㅜ
모든 조직이 매 순간 최대한의 능률로, 최대한 활기차게 움직이는게 아니라, 그게 운동조직이든 민간기업이든 공공부문이든... 시간이 되면 어찌 되었든 느슨해지는디.. 허시먼은 "느슨함은 매순간 태어난다'며 "제 아무리 기능을 잘 고안해서 제도적 틀을 갖춘다 해도 기업 등의 조직은 합리성, 효율성, 잉여생산 에너지를 서서히 잃어가는 지속적이고 임의적인 퇴보와 쇠락에 노출되기 마련이다. 퇴보는 언제나 공격을 멈추지 않고 존재하는 힘이라고 생각하는 이 급진적 비관주의는 스스로 고유의 치유책을 마련해낸다" 고 기술함. 기이할 정도로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관점이여 ㅋㅋㅋ
밀턴 프리드만을 비롯한 경제학자는 이탈이야말로 효율적이고 심지어 유일한 문제 해결방안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예컨대 공교육에 시장 메커니즘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바로 그러한 관점에서 비롯된 것임. 부모들에게 쿠폰 나눠주고 경쟁적으로 제공되는 교육서비스를 선택하여 구매하지 못하는 경우, '오로지 성가신 정치적 채널을 통해서만 의사표현을 할 수 있다'라는 문장이 대표적. 항의에 대한 경멸이 아주 잘 드러남.
그러나 현실에서는, 국가에서 가족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제도들은 성가시더라도 항의를 다루는 것이 일상적이고 때로는 유일한 대처법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 밀턴 프리드만 이 냥반, 이 시절에도 까였는데 나중에 무슨 세상 멘토인 것처럼 사람들 떠받드는거 꼴보기 싫어 죽겠음. (심지어 내가 2년 전에 이런 메모를 남겨놨는데, 자칭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께서 밀턴 프리드먼을 끔찍이 떠받드는 걸 실시간으로 보고 있어야 함. 뭔 시련인가!!!)
하지만 정치학 영역에서 이탈은 '변절, 반역'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범죄행위로 낙인찍히기도 함.. 이것도 진짜 꼴불견이자 세상 망조의 지름길. 변화를 위해 싸우는 것도 아니고 일단 우리가 남이가 해서 결속만 외치는 것도 꼴보기 싫기는 마찬가지..
근데 현실에 이 두 가지 극단 정말 분명한데, 경제학과 정치학에서 이를 어느 한쪽만 지켜봤다는 것도 좀 의외이기는 함 (1970년 이 저작 이후는 좀 달라진 것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잖여)
쉽게 이탈할 수 있으면 항의 방식에 호소하는 일이 줄어들 것 같지만, 항의 방식의 효과는 이탈의 가능성 덕분에 강화됨. 즉 이탈의 위협 덕분에 항의가 작동함.
충성파가 조직을 떠날 시점을 판단할 때, 이탈 시 감내해야 할 도덕적 혹은 물리적 고통보다는 자신들이 떠나면 이 조직이 악화일로에 처할 것이라능 생각 때문에 쉽게 이탈하지 못함... (ㅜ.ㅜ 한국 운동조직의 또 다른 일면 아닌가. 하지만 이렇게 해서 망할 조직이면 진즉 망해야 ㅡ.ㅡ)
또다른 문제는 조직의 산출 혹은 질이 구성원들이 떠나간 후에도 문제가 되는 경우인데, 즉 완전한 이탈이 불가능한 경우를 나타냄. 이를테면 중산층이 자기 자녀를 사립학교 전학시키는 방식으로 공교육에서 이탈해도, 이 지역 공교육의 질은 공동체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공립학교 문제는 내 알바 아니라고 할 수 없음. "빠져나올 수 없다"는 표현이 쓰임. 이것이 바로 공공재의 외부효과 아니겠나 싶지만, 이것조차 감당하기 싫어서 더 멀리 떠나는 것이 현실이기도....
미국은 전통적으로 이탈의 국가. 유럽 맘에 안 든다 - 미국 신천지로 이민 - 미국 동부가 마음에 안 든다 - 서부로 진출... 이는 기묘한 순응주의와도 연관되며, 떠나가는 이민자라기보다 항상 떠나온 이민자들이라 할 수 있음. 떠나고 나면 이전에 속했던 공동체에 더이상 신경 쓰지 않음. (다만 저자가 이 책을 쓰던 시점의 히피 운동은 이탈의 방식이되 기묘하게 항의와 결합되어 있었음) 어쨌든 싸우지 않고 이탈하는 습성 때문인지 미국 베트남전 관련한 정부의 잘못에 대해 어떤 관료도 항의하며 그만두기보다 개인사, 가족사 등을 언급하며 도망치듯 이탈하는 것에 저자 화냄 ㅡ.ㅡ '공직자들이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정책에 항의하여 싸우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반대자의 순치'가 존재함. 베트남 정책에 회의적인 관료들에게 '공식적 반대자' 혹은 '선의의 비판자' 역할을 부여한 것. 회의자들은 이를 통해 스스로 양심의 위로는 받겠지만 그의 입장은 명확하고 예측가능해지며, 이들의 권력은 심각하게 손상되고 입장은 무시당함. 반대자들은 그저 팀의 일원으로서 역할분담에 참여하고 있다는 조건 하에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게 됨. 이를 통해 강력한 무기, 즉 반대의견을 제시하며 사퇴위협하는 행동이 사전에 포기당함... (나도 주류 학회에서 이런 거 여러 번 느꼈음. 너에게 비판자의 역할을 기꺼이 줄테니 이 경계 안에서 마음껏 말하려무나..... ) 이 경우, 기회주의는 공식적 의무감으로 합리화될 수 있음
"좀더 미화하자만 비밀스러운 순교라는 가면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달콤하고 복합적인 동기유발이 주어진 상황에서 비들기파는 자신의 정당화 논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한층 강도높게 지속적으로 기회주의 행동에 빠져들게 된다. 비둘기파는 자신의 이탈이 상황에 미칠 영향력과 파괴력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게 된다"
요약하자면...
조직원의
강력한
반응 양식
|
이탈
|
||
예
|
아니오
|
||
항의
|
예
|
자발적 결사체, 경쟁적 정당, (예) 소수 구매자를 대상으로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
|
가족, 종족, 국가, 교회, 전체주의 아닌 일당 지배적 정당
|
아니오
|
고객과의 관계에서 경쟁적인 기업
|
전체주의적 단일정당, 범죄조직
|
가능한 조합
|
조직이 퇴보할 때 구성원 반응
|
||
이탈
|
항의
|
||
조직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피드백 방식
|
이탈
|
경쟁적 기업
|
반대가 허용되지만 그것이 (순치를위해) '제도화'되어 있는 경우
|
항의
|
대체제의 경쟁에 직면한 공기업, 게으른 과점체계, 기업-주주 관계, 도시 중심부 등
|
구성원들의 충성심을 상당히 확보하고 있고 민주적으로 반응하는 조직
|
그니까.. 대체 언제 갈라서야 하냐구 ㅜ.ㅜ 나는 그게 알고 싶은데...
이런 종류의 책에서 보기 드문 방식으로 저자는 글을 마침
"이 책이 직접적인 영향력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그것이 무엇이든 현재 무시되고 있는 반응 유형의 숨겨진 잠재력을 이끌어내 이탈 혹은 항의 방식을 택하도록 고무시킬 수 있을 것이다. 글쓰는 자의 꿈이 적으도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쫌 매력!!!!
트랙백 기능 없어진 거냐.. 왜 뭐가 안 되지.. ㅡ.ㅡ
# 빈곤 과정 (조문영, 2022)
빈곤 과정 - 빈곤의 배치와 취약한 삶들의 인류학 조문영 글항아리, 2022 |
몹시 흥미롭게 읽었으나 3부 인류세의 빈곤에서 기후위기 나오고 코로나 이야기... 는 아직 저자의 생각이 정리가 덜 된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음
국내의 빈곤 관련 서적들이 대개 서사 중심의 현실 드러내기, 그들도 사람이었네에 초점을 두고 있다면 좀더 학술적으로 정제되어 상태로서의 빈곤이 아니라 유동하는 과정으로서의 빈곤 문제를 설득력있게 제시하고 있음. 제1장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역사, 2장 '의존의 문제화'는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기억이 희미해진 가까운 한국현대사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들었고, 노동-자립 / 빈곤-의존의 견고한 이분법이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님을 보여줌
장소와 시기는 다르지만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중국의 빈곤문제를 통해 보편성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게 한 부분도 좋았고, 한국의 글로벌 반빈곤 산업이 청년 봉사자들의 열정덕분에 집합적 퍼포먼스로 부상한 점, 청년들의 자원봉사가 타국의 경제적 빈곤에 대한 적극적 개입이라기보다 신자유주의 시대 실존의 빈곤을 보듬는 '치유'기제가 되버린 아이러니를 보여준 것도 너무 이해가 되었음
학생들과의 인류학 수업을 통해 소위 '말할 수 있는 프리케리아트'로서의 엘리트 대학 학생들의 현실 빈곤 인식론, 안전 담론을 들여다본 부분도 흥미로웠음. 나도 관심이 있던 문제라....
그런데 네그리/하트, 이진경, 바우만, 들뢰즈, 지젝.... 같은 사람들 -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 ㅋㅋ 이 사람들을 왜 이렇게 많이 인용하는 것인가. 이들이 멀쩡한데 하도 남한사회에서 이상하게 소비되는 것 때문에 내가 편견을 가진 것인가? 근데 인용한 부분도 보면 뭐 특별한 개념의 구축이나 혁신이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여전히 미슷헤리
몇 가지 메모
# 결핍의 경제학 (2014)
결핍의 경제학 - 왜 부족할수록 마음은 더 끌리는가? 센딜 멀레이너선 & 엘다 샤퍼 알에이치코리아(RHK), 2014 |
미국에서 교양 사회과학책 쓰는 진보 리버럴들이 공유하는 무슨 대본이 있는 건가. 정말 이 분위기 미치도록 싫음. 쿨하고, 자기비하의 농담을 여유롭게 즐길 줄 알고, 사람들이 흔히 놓치는 흔한 사실/경향을 예리하게 콕 집어내는 천재성을 갖춘 자뻑 명문대학 남자 교수들....
마감을 앞두고 집중력이 폭발하는 것을 집중 배당금이라 하고, 터널 시야에 사로잡혀 다른 것을 고려하지 못해 생기는 손실을 굳이 터널링 '세금'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니 참으로 경제학 전공자 답다 싶음...
심지어 담배/술 같은 유혹 상품에 지출되는 생활비 비중을 '유혹의 세금'이라고 표현했고, 당연히 저소득층이 고소득층보다 이런 상품의 소비 비중이 더 높은 것도 마치 결핍 때문에 이런 유혹에 쉽게 휘둘리는 것처럼...
이런 단어 만들어내고 자기네들끼로 신나서 하이파이브했겠지?
심지어 요점을 계속 반복하면서 책의 분량을 한정없이 늘림... 이게 이렇게까지 할 이야기인가????
사실 책에 나열된 사례들은 저자들의 핵심 개념인 '결핍'이 아니라 'distraction' 혹은 'cognitive burden' 으로 설명하는 것이 보다 적절한 문제들이 대부분이었음. 경제적 빈곤층이 왜 근시안적 결정, 바보같은 행동을 하는지, 시간/마감에 쫓기거나 다른 데 정신팔린 사람들이 왜 엉뚱한 오답을 내놓는지...
이건 채워지지 않은 욕망으로서의 결핍 때문에 그 결핍의 대상에 사로잡힌 게 아니잖아,
고려해야 할 수많은 요소 때문에 그야말로 prefrontal cortext 의 인지적 자원이 고갈되어 버린 거라구.. ㅜ.ㅜ 그게 경제적 결핍일 수도 있고, 관계의 갈등일 수도 있고, 응시하는 성적 시선일 수도 있고.... 그리고 내적 자원이 고갈된 상태에서 (proprioception) 부정적 정서와 부적절한 인지적 반응이 만들어진다는 것도 이미 많은 연구가 이야기하지 않았음?
대체 행동경제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넌센스임.. homo economicus 라는 말도 안 되는 전제에 대한 반발이 겨우 애들 장난 같은 심리학으로의 귀결이라니...????? 인도 시장의 노점상들이 행동만 다르게 했다면 얼마든지 덜 가난해질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이 용기를 우리는 배워야 하는 것인가... 그런데다 인도에서 행동경제학 실험은 왜 그렇게 많이 했다냐? 이런 연구들은 어떻게 IRB 를 통과한 것인감?
연구한다고 개인들한테 막 백만원씩 나눠 주고 그래도 되는 거임??????
이 책의 결론이 뭐냐면... ㅋㅋㅋ 1) 당신의 대역폭을 관리하라 2) 결핍의 심리에 초점을 맞춰라 (동기부여나 교육, 당근, 채찍이 아니라 대역폭 확대에 집중하라는 것 - 어차피 인센티브 줘도 성공 못한다는 말씀) 3) 풍족함은 결핍과 맞닿아 있다
진짜 지랄도 풍년이라는 말은 이럴 때 써야지... 빈곤 문제의 해결이 결국 일체유심조로 귀결되는 이 해괴한 현상을 보면서, 정말 빈곤지식산업이 얼마나 세상을 망치는지 실시간으로 감상한 느낌...
게다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이 엄청난 타자화는 뭐람?
'이 문제는 지독할 정도로 오래 방치되었고 그러다보니 이제는 어쩐지 지겹기까지 하다. 바로 이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왜 이토록 형편없이 굴까" 이것이 바로 방안에 있는 코끼리, 누구나 문제임은 인식하지만 쉽사리 꺼내지 못하는 난감한 문제이다'
아마도 이런 책을 사서 읽는 사람 중에 빈곤층 '당사자'는 없을 것이고, 독자들은 빈곤층의 이해할 수 없는 바보같은 행동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양식있는 동료시민이라 가정한 것인가? We/Others 가 이렇게 분명한 책도 참 오랜만일세....
이 책에 진심 감화받은 리버럴들은 (빈곤층을 돕는것에 진심인!!!) 빈곤층의 왜곡된 인지체계와 '마음가짐'을 교정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려나???
"결핍의 덫에서 해방되려면 자원을 욕망보다 평균적으로 많이 가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언제라도 닥칠 수 있는 커다란 충격을 충분히 제어할 수 있는 느슨함을 가지는 것 역시 그만큼 중요하다" ㅋㅋ 우리는 이것을 버퍼링이라고 부르구요... 그래서 소득만큼이나 자산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해왔어요. 근데 가난한 이들은 바로 그 가난 때문에 이렇게 자산을 축적할 수가 없잖여... ㅜ.ㅜ
아우.. 매번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다가 결국 스스로를 원망하며 끝나는 이런 책들.... 끝까지 읽기는 했다만 진정 책을 고르는 나의 안목이 퇴화한 것인가 자괴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네 ㅜ.ㅜ
사족으로... 1999년 나사의 화성탐사선 실패는 '영국식 측정법' 때문이 아니라, 미국이 일상에서 미터법metric이라는 표준 체계를 사용하지 않고 이미 영국에서도 폐기된 imperial measure 를 사용하기 때문에 벌어진 사고였잖아.. 국제적 웃음거리 되었다고... 똑바로 쓰라고...
그나마 블로그마저 없었으면 어찌 되었을까...
에버노트와 블로그를 보조 저장장치 삼아가며 살아간다.
작년 올해를 거치며 가난에 대한 책을 몇 권 읽고 세미나도 했었는데, 에버노트 끄적임이라도 여기 옮겨놔야겠음
# 가난의 문법 (소준철, 2020)
가난의 문법 -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소준철 푸른숲, 2020 |
학술 커뮤니티나 교양독서 커뮤니티 안에서 엄청나게 상찬을 받았고 그럴 만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책에서 그리고 있는 윤영자 씨의 생애사가 나에게 그닥 새로울 것이 없어서 다소 놀랍기는 함... 내 주변에 너무 많았고 익숙했던 이야기들...
뭔가 이제 사람들이 어떻게 가난해지는지, 책을 읽어야 겨우 알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인가... ㅡ.ㅡ
마치 어디 머나먼 이국의 낯선 풍습과 문화에 대한 인류학적 관찰을 하듯, 이제 우리 내부의 빈곤도 여간해서는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누군가가 "본격적으로" 탐구해야 알 수 있는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 매우 씁쓸함 ㅜ.ㅜ
생애사를 그리고, 하루의 활동을 시간별로 촘촘하게 쫓아가면서 어떻게 밥을 먹는지 누구와 만나서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일감을 어떻게 얻고 처리해나가는지.... 아주 꼼꼼한 관찰과 기술을 통해 특정 개인이 아니라 오늘날의 가난에 대한 전반적 그림이 그려질 수 있도록 했음
저자는 가난의 어원을 어려울 간 + 어려울 난 / 빈곤은 가난하여 곤한 상태. 즉 가난하여 살기 어려운 상태로 정의하며, 가난은 주로 현상을 묘사할 때, 빈곤은 분석에 동원된다지만 글쎄올시다..... 학술적 사용괴 일상어의 차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노인 빈곤에서의 젠더 차이를 설명하며 남성 노인은 젊은 시절부터 쌓아온 기존의 경력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지만 여성노인의 경우 숙련되 기술이나 장기적 경력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나쁜 환경과 조건의 서비스업으로 전환하거나 진입... 한다고 기술하는데, 일견 타당한 진단으로 보이면서 동시에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궁금과 걱정이 한 가득.
과거에 미숙련 중장년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식당보조, 간병/돌봄, 청소 등이었다면 우리 세대는 그래도 어지간해서는 고등학교 졸업했고 과거와 달리 완전 "허드렛일"보다는 제도화된 요양/돌보미 서비스, 마트캐셔, 콜센터 같은 일들을 해왔는데 과연 노년에 어떤 일자리로 이행하게 될지...
남성들이야말로 오히려 돌봄의 와해, 산재 등의 이유로 중고령에 더욱 취약한 상태에 처하는 경우도 많고 게다가 경비 같은 일은 일자리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추세니 과연 어디로 갈꺼나...
빈곤의 '쓸모'가 단순히 '스스로의 안정감을 확신하고 불안정에 대한 두려움을 상기'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우만의 주장처럼) 실질적으로 사회가 돌아가게 만드는 '쓸모'가 있다고 생각함 ㅜ.ㅜ
# 가난 사파리 (대런 맥가비, 2020)
가난 사파리 - 하층계급은 왜 분노하는가 대런 맥가비 돌베개, 2020 |
여러 모로 힐빌리의 노래와 대조되는데 빈곤층 당사자의 성장 서사라는 점에서는 일견 비슷하지만
현재 글을 쓰는 시점에서 계급의 상향이동이 확정되었느냐 아니냐, 그리고 탈빈곤을 개인의 서사가 아니라 계급정치, 사회운동 맥락에 배태시켰는가 여부에서 매우 큰 차이를 보임.
밴스의 사례에서 '정치'가 공백이었다면, 대런의 경우 매우 어린 나이에서부터 빈곤/박탈에서 비롯된 분노는 정치화의 경험 속에 단련되고 혹은 좌절됨.
당사자로서 저자는 빈곤층/지역에 대한 대상화와 타자화, 소위 좌파에 의한 '전유', 빈곤을 자원 삼아 생계를 이어가는 복지 서비스 조직들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대단함. 그 서비스가 빈곤층에게 소중하다는 것은 알지만, 복지 서비스 조직들은 바로 그 빈곤층이 있기 때문에 생존이 가능한 것임. 그리고 이러한 냉혹한 진실을 서비스 수혜자 당사자들도 잘 알고 있음 ㅡ.ㅡ
게다가 선한 의도를 가진 연구자들의 '채굴' 행위에 대한 비판은 매우 신랄함.
"이런 지역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자본의 한 형태로 여겨진다. 이들의 삶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은 조직이 자신의 역할을 정당화하고 지속시키기 위해 채굴할 데이터와 서사를 담고 있는 자본 말이다. 선의를 가진 학생, 학자, 전문가들이 줄줄이 가난 깊숙이 내려와 필요한 걸 뽑아내고는 고립된 자신들의 집단으로 물러가 가난 사파리에서 가져온 인공 유물을 검토하는 것이다"
"이곳은 빈곤 산업이다. 이 산업에서는 선량한 사람들도 사회적 박탈로부터 어마어마한 돈을 번다. 이 부문의 모든 사람이 경력을 유지하고 계속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문제가 남아 있어야 이 산업이 성공할 수 있다. 가난을 뿌리 뽑는게 아니라 낙하산으로 와 '업적'을 남겨야 상공할 수 있다. 그리고 자원과 전문지식을 철수해 훌쩍 떠날 때 뚜렷한 업적이 없더라도 간단히 조작할 수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게 이 부문의 전통이다. 이 부문에서 일을 하는 방식은 보고도 못 본체하는 것이다. 실패하거나 일이 잘 안 되더라도 아무도 시인할 수 없다. 모두가 재정지원이 끊기는 걸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빠져나올 수 없는 가난, 다른 사람들에게는 가난하지 않음으로써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하는 수단으로서의 가난, 그리고 가난한 사람에게 대중들이 '기대하는' 것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 ㅡ.ㅡ
"어떤 사람들에게 가난은 헤어나기 힘든 것이다. 그 인력에서 벗어나려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만 그것을 헤어날 길 없이 우리를 집어삼핀다. 빠져나가려 애쓸수록 우리 목으로 더욱 차오른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 가난은 절대로 가서는 안 되는 먼 산비탈에 사는 괴물이다. 우리가 겪지 않은 걸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할 때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보기까지는 내 어린 시절이 힘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사람들이 그렇다고 말하기 시작하기까지는 내 인생이, 또는 실로 내가 어떤 식으로든 흥미롭다거나 의미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 가난 서사를 거듭 반복하도록 유도하기 시작하기까지는 내가 말할 가치가 있는 이야기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대본에서 벗어나면, 수수께끼같이 커튼이 닫히고 수수께끼같이 조명이 희미해지며, 수수께끼같이 마이크가 멎었다."
자본주의 '체제'와 '구조', '정치' 문제만을 이야기하는 엘리트 좌파에 대한 비판, 그러면서 빈곤층 스스로의 자기혁신과 지역사회의 변화 역시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 당사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통렬한 비판... 외부자들이 이런 '요구'를 할 수는 없잖여 ㅜ.ㅜ
"정치인들이 진정한 해결책을 갖고 있지 못하고 심지어 이 문제를 정직하게 논의하지도 못하는 이런 절망스런 상황에서, 지금 당장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머릿속을 거짓 희망이나 거짓말로 채우지 않으면서 그들에게 어떤 희망을 제시할 수 있을까? 제3의 산업혁명이 시작될 때 여기에 없을 사람들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까? 보편적 기본소득이 시작되는 걸 보지 못할 사람들에게 말이다. 나는 우리가 정직해지는 데서 시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혁명은 없을 것이다. 우리 평생에는 없을 것이다. 이 체제는 다리를 절룩거리며 나아갈 것이고 우리도 그래야만 할 것이다."
"하층계급이 된다는 건 20년 전에 알았던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가디언' 기사로 가득한 뉴스 피드를 허구한 날 스크롤하고 앉아 있는 걸 의미한다."
다소 놀라운 점은 저자가 고등학교 중퇴의 학력이라지만, 빈곤의 건강영향, 스트레스의 생물학, 정체성 정치 같은 소위 중간계급 좌파 혹은 리버럴 필자들이 활용하는 논거와 주장을 시의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점...
그러면서 문화정치, 정체성 정치에 경도된 엘리트 학생 운동에 대한 비판은 매우 단호함.... 아마도 1980-90년대 학생운동을 대하는 현장 노동자들의 애증이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추정함. 왜냐하면 나도 대학 들어가서 부잣집 운동권 선배들이 차가운 소주를 붓는다며 노동의 신새벽 노래 부르고, 낭만적으로 이상화된 민중, 현실과 동떨어진 "내일 당장 혁명".. 이런 거 맨날 읊어 대서 어안이 벙벙하고 황당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 맨날 민중 운운 하지만 내가 학비 때문에 아르바이트 해야 해서 농활 못가겠다고 하면 그렇게 짜증을 내더라고 ㅋㅋㅋ 그래봤자 다들 20대 초반이었으니 이제는 다 용서함 ㅋ
"특히 대학 캠퍼스에서 발전한 활동가 단체는 정체성 정치를 비판하는 것이 억압과 불평등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라고 본다. 정체성 정치가 사회정의 문제에 접근하는 양식이 보여주는 중요한 특징은 문화 추진력을 피해자와 소수집단의 서사에 주로 의존한다는 점이다. 정치 안건을 추진하기 위한 트로이의 목마인 셈이다. 이런 형태의 행동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 운동이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소수집단이나 학대 생존자에 대한 공격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논의를 이어가기가 어려운 건 우연이 아니라 고의다."
"전반에 걸쳐 교차성을 적용하면 우리의 다문화 사회에서 작동하는 역학관계를 좀더 충실히 보여주는 그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소수집단 내에서 발생하는 교차하는 차별과 편견과 학대가 포함된다. 성소수자 내 인종주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사이의 동성애 혐오, 페미니스트 사이의 성전환 논쟁, 이슬람교 공동체 내 여성의 종속성, 레즈비언 사이에서 일어나는 가정폭력, 그리고 엄마가 아이들을 방치하고 학대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건 금기 또는 공격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교차성을 통해 백인 남성의 특권만이 아니라, 서구 엘리트 대학의 풍족한 학생들이 우리 스스로 우리 경험에 대해 생각하고 논의하는 방식을 통제하려 드는 현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우리를 대변한다고 주장하면서 우리가 대화에 끼지 못하게 한다. 우리가 고분고분 따르지 않고 모슨이나 비정상을 지지하면, 활동가들은 멸시하는 말이나 독설을 쏟아부어 비판을 묵살하고 더 이상 논의를 하지 못하게 한다. 활동가들은 말 자체가 폭력의 한 형태라고 주장하겠지만, 또한 자신들의 목적을 추구하는데 필요하다고 여기는 일이면 무엇이든 관여할 수 있는 특권을 스스로에게 부여한다. 그래서 협박, 괴롭힘, 신체 폭력 행위가 용감하게 '기득권층에게 한 방 먹이는 일'로 여겨진다. 모든 상호작용을 교차성이라는 렌즈를 통해 보고, 따라서 권력의 역학 관계로 여긴다. 소셜미디어가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가운데 감정 과잉 상태에 빠진 이 활동가들은 자주 자기 행동이 낳은 인간적 결과가 자신과는 별개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전해들은 정보나 소셜미디어의 소문을 근거로 다시 생각해보고 자시고 할 것 없이 한 사람의 평판을 망치거나 취업을 방해하려 든다. 결국 이런 문화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반면 이 문화 자체는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특권집단은 자신의 언어와 행동이 어떻게 사회적 배제를 강화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소수자에 대한 억압과 소외가 계속된다고 활동가들은 주장한다. 하지만 이 활동가들은 문화적 출입제한이 있는 자신들의 논의가 하층계급 사람들과 어떻게 교차하는지 모르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에게 '노동계급'이라는 말이 '백인 남성'과 동의어가 되면서 계급이라는 주제를 고려하지 않고 제쳐두기가 더 수월해졌다. 최근 극우가 부상하면서 더욱 그렇다. 사회적 배제와 악습을 겪고 있는 많은 하층계급 출신 백인 남성이 특권계급 학생들 대신 비난을 받고 있다. "
"사람들은 미치광이처럼 구는 나를 응원했다. 내가 하는 말이 진실하거나 유익해서가 아니라 박수치는 사람들의 정당성을 입증해왔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자기 외에 세상 모든 게 바뀌어야 한다고 믿었다. 나는 어느 순간 나의 생각, 감정, 행동이 내 책임이 아니라는 거짓말을 믿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모두 나를 학대하고 배제하는 체제의 부산물이었다. 또 사회가 내가 처한 상황에 개입하거나 사회를 해체해 재구성해야만 내가 이런 어려움을 극복해 변화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나는 자라면서 내가 느끼는 모든 분노가 정당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단지 내가 하층계급이라는 사실만으로 말이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분노 자체는 정확한 순간에 정확한 방식으로 표출해야만 쓸모가 있었다. 올바른 의도를 가지고 알맞게 사용할 때라야 정당했다. 그래도 분노의 유용성은 한시적이다.술, 담배, 약물, 정크푸드와 마찬가지로 정당한 분노의 새로움은 곧 사라지고 충동만이 아남아 우리의 감정을 격화시키고 괴롭히는데, 이 때 대개 문제의 해결책은 우리 코앞에 놓여 있다. 이것은 좌파 사람들한테는 인기가 없겠지만 솔직한 이야기다. 이 경우에 나는 내 이기심을 감추는 연막으로 정당한 분노를 이용했다. 나 개인의 의제를 제기하기 위한 트로이의 목마로 '노동계급'을 이용했다. 게다가 개인적 분노가 어떻게 교묘히 내 생각의 방향을 결정짓는지 알아차리지 못한 채, 내가 아는게 많고 대단히 도덕적이라 생각하면서 이 모든 일을 했다."
사회적 맥락이 매우 다르기는 하지만, 이 책은 어쩌다 가난해졌나 혹은 빈곤의 실상은 무엇인가... 라는 종류의 르포라기보다는 가난에 대한 내부자와 (심지어 우호적인) 외부자들의 인식론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라는 측면에서 (정교하게 다듬어진 논의는 아니지만) 읽어볼 가치가 있음. 매우 강추
주먹도끼가 갑자기 샌드위치 휴일에 나들이 가자고 해서 급 휴가...
우리의 계획은 설렁설렁 아름다운 해변길을 걷는 것이었음.... 그래서 나는 심지어 운동화를 신고 갔다고...
자, 저녁 느즈막히 속초에 도착...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갖은 해물이 실하게 들어있는 전복 뚝배기 게눈 감추듯 먹어치우고
지역 브루어리 찾아 크래프트 비어 포장해옴... 대선 정국에서 우크라이나 사태, 박찬욱의 '일장춘몽'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역변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 수다를 떨다가 갑자기 일출 결의 ㅋㅋㅋ 낙산사에 가서 해수관음상 너머 떠오르는 해를 보자...
알람 맞춘대로 6시에 겨우 일어나기는 했는데 눈꼽만 떼고 겨우 출발하여 가다보니 아뿔싸????
일출 보려면 낙산사 입구에 40분 전에는 도착해야 한다네? 그래야 올라가서 볼 수 있다고.... 시계를 보니 아직 숙소 근처인데 벌써 6시 30분.. 일출 예쟝시간은 6시 57분...
이를 어쩌냐 황당해할 무렵, 마침 신호등에 걸렸는데 하늘은 이미 분홍색이고 왼쪽에 해맞이 공원 ㅋㅋㅋ
차를 돌리자꾸나...
이 때부터 약 40분 동안 바다바람 맞아가며 오랜만에 조용하고 아름다운 일출의 전모를 관찰....
손톱같은 초승달이 남아있는 새벽 어스름부터 새빨간 태양, 그리고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와 하늘의 색깔까지.... 오랜만에 역시 태양은 star 항성이구나 떠올림 ㅋㅋㅋ 광년이처렁 사진찍었네..
이 시간에 어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배, 그 이른 시각에 출항하는 배... 그리고 떠오르는 해에 물들어가는 설악산의 풍광...
우리는 아침 먹는 여자들...
매의 눈으로 아침밥 하는 식당을 찾아서 대구탕과 맛난 밑반찬 곁들여 푸짐한 아침 식사... 나한테 맛집 촉이 있나봐... 역학 전공이 이럴 때 힘을 발휘하는 것인가..... 하여간, 이 때 겸손하게 밥을 안 먹었더라면... 나중에 산에서 쓰러졌겠지.. 돌아보면 천만다행...
숙소 돌아와 다시 한 시간 자고 일어나서 이제 해파랑길 49코스 출발..
우리의 원래 계획은 거진항에 차를 세워두고 대진항까지 택시타고 올라가서 슬렁슬렁 걸어내려오자...
하지만.... 택시 아저씨의 과욕... 조금만 더가면 도보로 갈 수 있는 해파랑길 출발점이니 거기서부터 걸으면 좋다... 네네.. 그럴까요? 이렇게 해서 지옥의 행군이 시작됨...
난데 없이 우리를 민통선 앞에 내려주심. 오징어 입간판 앞이 포토스팟이라는 것도 알려주심 ㅋ
최북단 초등학교라는 명파 초등학교 지나면서 작은 '언덕'이 보이길래 우리는 아 전망대인가보다 했지.. 그랬더니 그게 산이야 ㅋㅋㅋㅋㅋㅋㅋ 5km 산길 ㅋㅋㅋㅋㅋㅋㅋ 나 운동화 신었다고... 눈 녹은 미끄러운 진흙길, 낙엽 쌓인 산길.. 능선도 아니고 오르막 내리막 끊임없이 반복되는데, 아 길은 아름답고 좋았다고, 하지만 너무 난데없잖아...
둘 다 너무 황당해서 할말을 잃음... 하지만 돌아갈 수도 없고 뭐 택시를 부를 수도 없고.. 꼼짝없이 명파에서 마차진 해수욕장까지 산을 넘어옴 ㅋㅋㅋㅋ 넘어왔더니 이제서야 통일전망대 신고소...
이미 12시가 넘었고 마음이 급해 휴게소에서 밥 먹을 시간은 없을 것 같아, 군밤 한 봉지씩 사서 끼니를 떼우며 우리가 원래 출발점으로 생각했던 대진항으로부터 걸어서 남하...
약간 가라앉은 날씨에, 말하면 입아픈 아름다운 해변을 끼고 걷기.... 이어서 화진포 지나면서 고즈넉한 호수 끼고 걷기.... 풍경은 아름아웠지만 아까의 충격이 여전히 몸과 마음을 지배하는 중 ㅋㅋㅋㅋㅋ
그리고 신기한 건.. 여기는 무슨 퀴어 프렌들리냐.. 해변가 경계석과 계단. 조형물이 온통 무지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누가 일부러 기획한 거야???
여기서 2차로 우리의 뜻밖의 여정 시작... 김일성 별장 지나서 호수 끼고 계속 걷던 중 '응봉' 올라가는 표지판 발견... 120여미터밖에 안 되는 데다가 화진포 전망이 다 보이는 곳이라는 안내글을 오기 전에 본 적이 있어서, 기왕 온 김에 올라가서 보자고 길을 꺾음.
그리고 여기서 기연을 만남 ㅋㅋㅋ 금강상사 입구부터 강아지 한 마리가 계속 우리를 안내해줌.. 처음에는 우연인가 싶었는데 자기가 먼저 올라가 우리 올때까지 중간중간 기다리며 계속 길을 안내... 심지어 하산하는 여행객이 나한테 우리 강아지냐고 물어봄... 이런 따뜻한 기연을 두고, 우리 주먹도끼는 꼭대기에 올라가면 쟤가 팁 달라는 거 아니냐는 동심파괴 언사! 하지만 나도 마음속으로 똑같은 궁금증을 가졌던 터라.. 둘의 순수히지 못한 마음에 빵터짐 ㅋㅋㅋㅋ
정말 정상에 올라 내가 남겨놓은 알밤을 나눠줄 때까지 기다림.. 경계심이 많은데 또 털은 너무 반드르르한 걸로 보아 유기견보다는 절집 강아지가 아닐까 의심.... 하여간 기연이었음
응봉 정상에서 내려다본 화진포 풍경 정말 아름답고 고즈넉함....
그런데 말입니다...
언덕만 살짝 넘고 다시 내려올 줄알았더니... 이 산길이 거진항까지 이어진 것이었단 말이다...
소나무 숲길 너무 예쁘고 향도 좋은데.. 그걸 즐길 수가 없어.. 너무 힘들어서 ㅋㅋㅋㅋㅋ
도시 아스팔트에나 적합한 워킹화를 신고, 급오르막 급내리막길 오르내리며 정말 죽는 줄알았다고 ㅜ.ㅜ 접지력이 하나도 없어서 발가락 꺾이는 줄 알았음...
원래 예정된 코스였다면 오후 3시쯤 다 끝나서 아침에 못가본 낙산사 가서 낙조나 보자구 했는데, 낙산사는 커녕 산에서 해질까봐 조마조마하며 미친 듯이 행군....
그리고 겨우 거진항에 내려와서도 차를 너무 멀리 대놓는 바람에 울며 1km 추가 행군 ㅋ
차에 타고 보니, 이동 거리가 20km 에 4만보를 걸었다고.. 이게 뭔 일이야...
우리는 힐링하러 왔지 극기훈련하러 온게 아닌데.....
근데 또 밥은 먹어야겠음 ㅋㅋ 속초 맛난 막국수집 찾아서 고고...
이목리 막국수집에 가서 맛난 동치미 막국수와 감자전 먹고.. 기왕 늦은 거 맥주 사가자 ㅋ 브루어리 들러서 맥주 사가지고 서울로 고고.... 되다 되.....
치밀한 계획 없이, 엄선된 맛집 리스트도 없이 대강대강 돌아다녔지만
매우 즐겁고 고단한 여행 ㅋ
여행이란게 원래 그런 거지 뭐.... 우연과 모험과 그리고 고통 ㅋㅋㅋㅋ 나중에 나중에 돌아보면서 서로 즐겁게 회상할 수 있는 이야기 한 보따리...
이것도 벌써 1년 전.. 사진 정보 확인해보니 21년 4월의 일이다...
무슨 회고록도 아니고... ㅡ.ㅡ
부산 출장이 있어서 내려갔다가 팥수수, 부추가 합류하여 저녁에 해변에서 양갈비 구이 먹고 바다 구경
제목은 해파랑길인데 첫번째 사진은 양갈비 ㅋㅋㅋㅋ 원래는 좀더 캐주얼한 곳에 가서 배터지게 구워먹을 생각했는데 C가 손님대접으로 해변가 고급진 식당에서 난데없이 만찬 ㅋ
1월말에 폰 바꾸고 처음으로 야간 사진 ... 카메라 좋구나 실감 ㅋ
한적한 밤의 해안에서 오랜만에 바닷바람...
다음날 아침 전복죽 맛나게 먹고 해운대 달맞이고개 ~ 기장 대변항까지 해파랑길 2코스 걷기.
선탠에 맞서는 이름으로 문탠로드라니 아연실색할 만했지만...
날씨 너무 화창하고, 해변 따라 걷는 길의 풍광도 너무 아름다워서 에라.. 다 용서해주자 ㅋㅋ
중간에 길에서 잠깐 빠져나와 맛난 커피도 마시고, 다시 걷다 빠져나와 용궁사 앞에서 해물쟁반짜장도 먹고.. 대변항에서 맛난 아이스크림도 먹었는데 사진을 안 찍었네!!!
매우 쉬운 길이었지만 어쨌든 발바닥이 얼얼할 만큼 걷고 바닷바람 원없이 맞고 햇볕에 구워지고...
여태껏 부산을 돌아본 중에 가장 경치가 아름답고 조용한 나들이었던 것 같았음
마지막 대변항에서 택시타고 숙소로 돌아와 짐 챙겨서 나는 서울 고고. 부산이 고향인 두 처자는 부모님 댁으로...
이게 1년 전이라니...
예전에 읽었던 책들 메모랑 요즘 읽은 책이랑 순서 뒤죽박죽... 그래도 정리해두는게 안하는 것보다야 낫지.. 나를 위한 글인데 순서가 엉망이면 뭐 어떤가
# 전국축제자랑 (김혼비, 박태하, 민음사 2021)
전국축제자랑 - 이상한데 진심인 K-축제 탐험기 김혼비.박태하 민음사, 2021 |
월간주폭초인전 dcdc 알마, 2019 |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심너울 아작, 2020 |
[세트] 왕은 안녕하시다 1~2 - 전2권 - 성석제 장편소설 성석제 문학동네, 2019 |
예전에 읽다가 중간에 어찌 휴지기가 있어서, 처음부터 다시 읽음.
소설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토록 헛헛한 마음으로 끝날 줄은 몰랐네..
Ares 에서 phobos 를 거쳐 처음 화성에 착륙하고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고, 모든 것을 만들어내던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의 기술적 도전, terraforming 의 흥미로운 실험들이 이어질 줄만 알았다구.. ㅜ.ㅜ 2편 3편이 green & blue mars 아냐.... 테라포밍 어렵지만 착착 진행되고 그 다음으로 이어질 줄 알았지.... 하아.....
자원이 있는 곳에 탐욕이 몰려들고, 더할나위 없이 강해진 자본의 전횡과 착취, 극단적 불평등. 그리고 저항과 혁명의 시도들, 실패.... 아니, 실패라고 불러도 되는 것일까?
SF는 역시 사회실험 쟝르...
예전에 [쌀과 소금의 시대] 읽을 때 진즉 깨달았지만, 작가 필력이 후덜덜....
결국 자신의 손으로 힘들게 건설한 모든 것들, 그야말로 모든 것들이 스러져가는 모습을 지켜봐야하고 동지들을 하나씩 잃어가는 the first hundred 들의 심상에 너무나 깊이 감정이입....
Nadia 가 space elevator 추락하는 모습에서 더할 나위 없는 아름다움을 느꼈을 때, 마치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거대한 DNA double helix가 춤추는 듯한 모습을 그렸을 때, 내 눈으로 직접 보는 줄 알았다구... 대홍수와 지각변동의 엄청난 파괴력에도 후덜덜.... Frank Chalmers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이 찔끔....
후속 시리즈도 읽어야겠는데, 이제는 문고판 사이즈 글씨가 너~무 읽기 힘들어서 (특히 밤에 침대에서 읽으면 글씨가 안 보여... 쓸모 없는 눈 갖다버리고 싶음 ㅜ.ㅜ) 어쩔 수없이 아마존 킨들 버전 다시 사야 함... 소설에서 DNA repair 치료 하는 거 보니까 쏠쏠해보이던데...
오래(?) 전 급하게 남겨놓은 메모만으로 당시의 고민과 감정을 유추해서 '추리'하며 써내는 독후감의 쟝르는 대체 무엇인가... ㅜ.ㅜ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리사 펠드먼 배럿 생각연구소, 2017 |
뭔가... 내 세대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여러 학문 분야에서 일정한 지점에 이르러 비슷하게 공통의 문제에 직면하고 새로운/하지만 비슷한 시각을 취하기 시작한 것 같음. 자동적 지식과 타동적 지식의 구분, 우리의 감각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실재'와 그것을 인식하는 우리의 value-laden, idea-laden, 혹은 affection-laden 인식에 대한 공통된, 메타적 자각이랄까???
실재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반드시 정확한 반영이 아니고, 인식론적 상대주의를 취하게 된다는 점. 이것은 너도 옳고 나도 옳다, 각자 나만의 세계가 있다는 이야기가 아님. 이러한 비판적 실재론 패러다임을 통해서 "구성된 감정이론" 또한 이해할 수 있음.
가장 원초적인 것이라고, 그 자체로 실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감정조차 개인과 사회적 문화, 관습, 학습에 의해 (그리고 내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 뇌의 신경망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구성'된다는 것...
이러한 개념은 몹시 흥미롭고 설득력있는데, 다만 기우라면 우리가 '스스로 감정을 구성하는 설계자'라는 관념이 마치 합리적/이성적 과정을 통해 감정을 연출하고 완벽히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오해할 것 같음 ㅡ.ㅡ . 그래서 사이비 마음수련이나, 엄연한 고통의 실재가 존재하는데 다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일체유심조 순응의 이데올로기로 악용되지 않을까..... 너무 지나친 걱정이려나???
* 구성된 감정이론 theory of constructed emotion
"감정은 내장된 것이 아니라 더 기초적인 부분들을 바탕으로 구성된 것,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에 따라 다르며, 촉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낸 것. 즉 신체 특성, 환경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발달하는 유연한 뇌, 이 환경에 해당하는 문화와 양육조건의 조합을 통해 출현. 감정은 실재하지만 분자나 뉴런이 실재하는 것과 같은 객관적 의미에서 실재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화폐가 실재하는 것과 갆은 의미에서 실재. 감정은 착각은 아니지만 사람들 사이의 합의의 산물"
"감정 개념이 있어야만 관련된 감정을 경험하거나 지각할 수 있음"
즉, 공포에 대한 개념이 없으면 공포를 경험할 수 없고, 슬픔에 대한 개념이 없으면 다른 사람의 슬픔을 지각할 수 없음
구성된 감정이론에 포함된 구성은 사회적 구성 (문화와 개념의 중요성) + 심리적 구성 (감정이 뇌와 신체의 핵심체계에 의하여 구성된다고 간주) + 신경 구성 (경험에 따라 뇌의 배선이 달라진다는 견해 수용)의 세 가지를 포함
* 감정 입자도 emotional granularity
내면의 감정 상태를 얼마나 정확히 판독할 수 있는가... 자신의 감정 상태를 정확히 인지하도록 훈련시켜서 감정입자도를 향상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함. 이는 자기 객관화와 메타 인식의 세계이며, 묘하게 불교의 마음수련과 닮아있고 실제 저자도 자주 언급함.
신체 반응이나 표정으로 감정을 예측하거나 읽어내는 것은 매우 부정확함. 동일한 감정 범주가 상이한 신체반응을, 반대로 다른 감정이 비슷한 신체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음.
"일관성이 아니라 다양성이 표준"
감정 지문은 신화! 이런 면에서 개인의 표정이나 신체 반응을 통해서 감정상태를 예측하는 것은 매우 위험
* 정동실재론 affective realism
자주 등장하는 두 가지 개념
정동을 모른 채 정동을 경험할 경우, 정동을 세계에 대한 자신의 경험이 아닌 세계에 관한 정보로 취급할 확률이 높음. 하지만 우리가 세계에 관한 사실로 경험하는 것의 일부는 우리의 느낌에 의해 만들어짐. 화창한 날이면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산다는 보고를 더 많이 하지만, 날씨에 대한 질문을 노골적으로 받으면 이런 편향 사라짐.
"우리는 뇌가 느낀 대로 믿는다"
사람들은 합리적 사고를 통해 감정을 극복할 수 없음. 왜냐하면 신체 예산 상태가 모든 사고와 지각의 기초이며 내수용과 정동이 매순간에 개입하기 때문.
이렇게 보면 인간 뇌의 진정 놀라운 점은, 패턴을 인식하는 능력과 통계적 학습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점 아닐까 싶음. 이런 면에서 베이지안의 a prior/posterior 확률 추론은 뒤늦은 깨달음 같기도 함. 오히려 머신러닝을 통해 인간 스스로의 뇌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음.
인간의 가장 주목할만한 적응 특성 중 하나는 인간 뇌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배선을 위해 모든 유전물질을 후세에 전달할 필요가 없다는 점 이는 생물학적으로 엄청 많은 비용을 초래할 수 있음. 인간 유전자는 뇌가 주위 사람들의 뇌를 바탕으로, 즉 문화를 통해 발달하는 긋을 가능케 함!!! 인간의 문화는 진화의 효율을 높이는 역할을 하며, 우리는 후손의 뇌를 배선(!)함으로써 그들에게 문화를 전수
지각, 시각이든 청각이든 사실 객관적으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발견하는 신체와 이런 변화의 의미를 구성하는 뇌가 세계와 상호작용할 때 구성되는 경험
감정의 기능 - 1) 감정 개념이 다른 모든 개념과 마찬가지로 의미를 구성한다는 사실에서 비롯, 2) 개념이 행동을 명령한다는 사실에서 비롯, 3) 신체예산을 조절하는 개념의 능력과 관련
* 다양성에 기초한 개체군 사고
동일성에 기초하는 본질주의와 다양성에 기초하는 개체군 사고는 근본적으로 양립 불가! 하지만 본질주의는 반대 증거에 대한 면역력을 가지고 있음. 이건 종교도 마찬가지 아녀??? 본질주의가 감정이론에 적용될 때 이는 학설 이상의 것이 됨. 이는 인간존재의 의미에 대한 그럴듯한 이야기를, 즉 인간본성에 대한 고전적 이론을 제공하기 때문!!!
감성지능의 핵심은 우리의 뇌가 특정 상황에서 가장 유용한 감정개념의 가장 유용한 사례를 구성하도록 하는 것. 그리고 감정을 구성하지 않을 때는 가장 유용한 다른 개념의 가장 유용한 사례를 구성하는 것!
바이러스는 신념, 성실, 가치관에 관심이 없고 인격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내리지 않지만, 정동은 내수용 감각을 우리 자신에 관한 어떤 것으로, 나의 잠정과 단점이 결부된 어 떤 것으로 변모시킴. 그러면 감각은 인격적인 것이 되고 나의 정동적 적소 안에 머물게 됨. 불편은 순전히 신체적인 것이지만 괴로움은 인격적인 것이며, 이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함.
* 올바른 법률 제도를 위한 조언 "법률제도를 위한 정동 과학의 선언"
저자는 감정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혹은 과도하게 '근본적'인 것으로 해석되는 현실, 특히 법률체계에서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대안을 제시함
"감정은 진화의 결과이지만 동물조상으로부터 물려밭은 본질 같은 것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신은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더라도 감정을 경험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이런 경험의 수동적인 수취인은 아니다. 당신은 따로 지시를 받지 않더라도 타인의 감정을 지각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정을 타고나거나 학습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가 타고난 것은 개념을 사용해 사회적 실재를 구축할 수있는 능력이다. 그리고 이 사회적 실재를 통해 다시 뇌가 배선된다. 감정은 사회적 실재의 매우 실제적인 창조물이며, 이것이 가능한 까닭은 인간의 뇌가 다른 인간의 뇌와 협조하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개념들을 가진 보편적인 마음이 있어야만 우리 모두가 같은 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환경과 물리적 환경에 따라 배선이 진행되어 결국에는 여러 종류의 마음을 산출하는 대단히 복잡한 뇌로 충분하다."
* 인간의 마음에 설정된 세 가지 모드
마음의 이런 세 가지 필연적 측면을 통해 구성적 견해가 주는 교훈은 바로 '회의적 태도'!!!! (반면 본질주의는 확실성을 깊이 신봉) 우리가 파악할 단 하나의 현실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뇌는 주위에서 들어오는 감각 입력에 대해 하나 이상의 설명을 만들어낼 수 있음. 적당량의 회의주의는 고전적 견해의 요전적으로 공정한 세계와는 다른 세계관을 낳음. 사회에서 당신이 차지하는 위치는 무작위로 결정된 것도 아니지만 필연적인 것도 아님. 예컨대 인종에 대한 사회적 고정관념은 사회적 실재에서 뇌 배선의 물리적 신재로 변화할 수 있으며 그래서 빈곤이 유전자 탓이었던 것처럼 보일 수 있음. 이 대목에서 필자가 스티븐 핑커 까대서 기분 급 좋아짐 ㅋㅋㅋ 흑인이 백인보다 복지 수당 받을 확률이 더 높다고 믿는 것이 비합리적인 것이 아닌게, 이게 현실에서 맞기 때문. 다만 핑커는 과학자들이 정치적 공정성 때문에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해석하는데 비해서, 바렛은 복지 통계가 맞는 것은 '우리가 사회를 통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함.
물리학, 화학, 생물학은 소박실재론과 확실성에 뿌리를 둔 직관적이고 본질주의적 이론으로 시작했으나, 이런 이론을 넘어서는 진보가 이루어진 것은 낡은 관찰이 특정 조건에서만 참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 이에 따라 개념의 대체 작업이 이루어짐. 정치 혁명을 통해 새 정부와 사회질서가 들어서는 것처럼 과학혁명은 특정한 사회적 실재를 또다른 사회적 실재로 대체. 과학의 개념들은 본질주의에서 다양성으로, 소박 실재론에서 구성으로 점진적으로 나아가고 있음
다 읽고 나면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시에, 무언가 실재론과 구성주의의 양날개가 크게 펼쳐지고 지금의 학문 세대가 거기에 함께 올라타 어디론가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게 됨....
타인에 대한 연민 - 혐오의 시대를 우아하게 건너는 방법 마사 C. 누스바움 알에이치코리아(RHK), 2020 |
왜 원서의 제목을 이따구로 바꾸었는가.. The monarchy of fear - 두려움이라는 군주... 책을 쓰게 된 동기이자 전반적인 주제의식을 담고 있는 좋은 제목이었는데 말이지
뜻밖에 누스바움의 생활세계를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밤에는 일을 하지 않는다거나 좋은 아이디어도 컴 앞에 바로 앉아있을 때 차근차근 떠오른다든가 ㅋㅋㅋ 트럼프가 당선된 미국 대선 결과를 해외에서 맞이하면서 근심과 불안에 시달리다가 이 두려움이야말로 미국 사회의 현재 문제를 풀어가는 열쇠라는 것을, 이 감정에 대해 더 정리해보아야겠다는 "행복한 발견"으로 "희망을 품고 잠에 들었다"는 뭐랄까... 탈인간급의 경지를 엿보게 되었는디 ㅋㅋㅋㅋ 진짜 서론에서 육성으로 현웃 터졌음....
글쎄. 이런 차분함을 전선에서 격렬하게 싸우는 활동가들은 누릴 수 없는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팔자 좋다'고 치부해버릴 수 없는 것이 이렇게 한발 떨어져 문제를 숙고하고 장기적 전망과 근본적 질문을 던져주는 철학자의 존재가 있기 때문에 우리도 나아갈 수 있는 것... 향수를 불어일으키는 역사상 완벽한 민주주의 사회도 없었고, 지금의 상황이 '우리의 행진이 뒷걸음질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재앙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 을 말하면 지금의 현장에서 절박하게 싸우는 이들에게는 서운하게 들리겠지만 오랜 역사를 두고 본다면 그래도 진실....
절대 군주제 국가라면 복종을 가능케 하는 두려움만 있으면 되지만 민주주의에서는 그 이상이 필요하다는 지적부터...
"선에 대한 믿음, 미래에 대한 희망, 민주주의를 좀먹는 증오와 혐에오 맞서려는 결심입니다. 저는 이 증오, 혐오, 분노가 두려움을 먹고 자란다고 생각합니다. "
그래서 민주주의 개 피곤하고 어려움.... ㅜ.ㅜ
감정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과 규범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형성된다는 지적은 중요함. 이 대목에서 배럿의 연구를 인용했고, 그래서 오랫동안 보관함에 담아두기만 했던 책을 드뎌 읽게 되었음.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분명하게 말해주는 것이 좋음
"인종 혐오, 여성 멸시, 이민자들에 대한 두려움, 장애인을 혐오하는 감정들 중 불가피하거나 '자연스러운' 것은 결코 없다. 지금까지는 그래왔을 수 있으나 앞으로는 결코 그래서는 안 된다. 그리고 당연히 그러지 않을 수 있다."
두려움의 나르시시즘을 극복하고 해방되는 과정을 인간발달을 비유로 설명. 하지만 개인들의 관계에서든 사회와의 관계에서든... 두려움의 군주에 사로잡힌 나르시시즘은 얼마나 만연해있는가 ㅜ.ㅜ
"사랑은 자기중심적인 요구 이상으로 타인을 독립된 개체로 인식하는 능력, 상대가 무엇을 느끼고 원할지 상상하는 능력, 그리고 자신의 노예가 아닌 분리된 삶을 허락하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 이는 절대 왕정에서 민주주의적 관계로의 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기의 분노는 근본적인 모순에 입각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모든 인간은 이 모순 속에서 살아간다. 나는 무력하고 우주는 내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생각과, 나는 독재자이며 모든 사람이 나를 돌봐야 한다는 생각이 공존한다. 무력한 신체, 자기애, 유아기적 나르시시즘의 조합이 그 모순을 만들었다."
분노는 확실한 생각을 동반하는 명환한 감정으로, 강하고 남성다운 중요한 감정처럼 보이지만, 분노는 두려움의 산물. 그 이유는 1) 인간은 타고난 취약성 때문에 자신이 곤란해지지 않는다면 절대 분노하지 않을 것 (문제는 두려움을 잃으면 사랑도 잃게 된다는 점 2) 두려움은 상대적 지위에 대한 집착에도 불을 붙인다는 점.
마찬가지로 혐오 또한 비인지적 감각반응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두드러진 인지능력.
그리고 인간 사회에서 자신의 혐오스러운 모습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다면 흔한 전략의 도움을 받을 수있는데, 특정 집단을 우리보다 더 동물적이라고, 더 많은 땀을 흘리고 냄새가 나고 성적이며 죽음의 악취가 풍기는 집단이라고 규정하면.. 그런 집단을 만들어 성공적으로 지배하면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지도 ㅋ . 이것이 바로 투사적 혐오 개념의 토대 (projective disgust).. 사람들이 혐오를 느낄 때 원하는 것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회피...
진보적 운동에서 중요한 점은 행위와 행위자를 구분하는 것이라는 지적에 이성적으로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음. 타인의 인간성을 포용하면서 그들이 저질렀을지 모르는 잘못된 행동만을 반대해야 함. 그래야 동료 시민의 말과 행동에 찬성하지 않더라도 그들을 친구로 여길 수 있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전래 속담이 바로 이런 철학적 숙고를 담은 내용이었다니.. ㅡ.ㅡ
성소수자를 향한 폭력에 대한 연구가 말해주는 타깃 선택의 이유는 뿌리 깊은 증오보다는 오히려 단지 경찰이 그들에게 관심이 없어 그들을 공격해도 처벌받지 않을 거라는 믿음 때문! 이런 면에서 법과 규제, 통합과 가시성이 중요.. 그래서 젊은이들이 보다 많이 커밍아웃해야 한다고 메시지.. 그러면서 소셜미디어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고 코미디가 소중한 반혐오 장르라면서 그리스의 희극 시인을 데려왔는데 ("몸의 우스꽝스러운 움직임에 웃을 수 있다면 소수자들의 신체도 불안함 없이 바볼 수 있게 된다") 한국의 다수 코미디가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에 앞장서고 있는 것을 보면 이런 말씀 못하실텐데?
시기와 비판의 차이? 시기는 적대감과 함께 파괴적 소망을 담고 있어 소유한 자들의 기쁨을 망치고 싶어한다 ㅋ
최근 성평등을 둘러싼 백래쉬 중 여성들의 평등, 공적인 삶에서의 완전한 평등을 방해하는 것이 세 가지 있는데: 1) 의무를 다하지 않는 여성 (집안일 안 하는 여자들 ㅋ) 이데올로기, 2) 육체성을 가진 여성 존재의 강조 (그래서 여성을 단속해야 함 ㅋ) 3) 성공한 경쟁자로서의 여성 ㅋㅋ (그래서 더 이상 여성우대가 필요 없다!) - 이는 이민자들에 대해서도 옹일하게 적용 가능 하지만 1, 2가 결합하면서 여성 문제에서 더욱 두드러짐 하지만 누스바움의 반론은 간단.... "여성이 타고난 본성 때문에 할 수 없는 일이라면 하지 못하게 막을 필요가 없다" ㅋㅋ
성차별주의자와 여성 혐오자의 구분도 명쾌한데, 전자는 '불쌍한 여성들, 언제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지'라고 말하는 반면 후자는 '빌어먹을 여자들이 못 들어오게 해' 라고 표현함 ㅋㅋㅋ 이런거 보면 한국의 중장년세대는 성차별주의자, 떠오르는 이대남들은 여성혐오자로 분류하는게 맞을 것 같음
여성혐오와 성차별주의가 항상 같은 것은 아니며, 성차별주의자들의 믿음은 증거로 반박할 수 있고 실재로도 그래왔음. "진짜 문제는 조롱, 혐오 표현, 고용과 선출의 제한, 동등한 인간으로서의 존중 거부 등의 방법을 써서라도 구시대의 질서를 유지하겠다는 남성들의 결심!" 하지만 '여성혐오는 순간의 위안일 뿐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한다'고 이야기하지만 현실에서는 혐오 자체가 여성들을 위축시키고 제약하는 칠링 효과가 엄청나잖아.. ㅡ.ㅡ 누스바움 전반적으로 낙관적이심....
희망은 두려움의 반대편에 있으며, 둘다 불확실성에 반응하지만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반응. 희망은 전진하고 두려움은 물러선다, 희망은 취약하고 두려움은 자기방어적이다... 두려움은 타인의 독립성에 대한 믿음보다는 통제하고자 하는 군주의 욕망과 비슷. 마찬가지로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지 않는 사람은 통제하려는 사람, 군주적인 사람일 가능성이 높음. 내욕망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무엇도 좋지 않으며 불확실성과 취약성의 여지도 없고, 희망도 없다! 뭐 이런 논리...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희망을 지탱하는데 도움이 되는 영역으로 추천해준 것이.... 시와 음악을 비롯한 예술, 교육기관이나 다양한 토론 집단의 비판적 사고, 타인에 대한 사람과 존중을 실천하는 종교단체 (????), 폭력을 지양하고 대화로 정의를 추구하는 연대단체, 그리고 (그런 단체들과 깊은 관련이 있는) 정의에 대한 이론들..
허나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ㅋ '혐오와 수치심'에서도 그러했지만 '사회정의를 으뜸으로 삼는 유대교'를 향한 신실한 신앙... 이 양반 사상에서 제일로 이해 안가는 것이 종교.. 고상하고 진보적인 엘리트 유대교회 신도라서 그런가... 당최 이해불가.... 존재론적 유신론도 아니고...
"철학자들은 종교인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무척 종교적인 나라인 미국에서 철학자들이 대중적 영향력을 거의 끼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리석거나 천해서 종교를 믿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종교를 믿는 개개인이 그 안에서 분열과 보복보다느 포용과 애정이라는 희망의 요소를 찾길 바라야 한다. 철학은 적을 존중하는 법은 알려주지만 적을 사랑하는 법은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예술이, 또 많은 이들에게는 종교가 필요하다"
네? 뭐라구요???????
인종과 계급의 차이를 넘어, 자신이 속한 집단을 초월하는 공동의 목표를 생각해내는데 도움을 주는 방법으로 공공업무 의무복무 제도 제안.... 계급분리가 고착화되는 상황에서 나도 동의함.. ㅜ.ㅜ 하지만 이게 체험학습으로 끝나지 않게 하려면.. 하...
전반적으로 찬찬히 곱씹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가끔은 과연 이 방법이 통할 수 있을지 고개를 갸우뚱하며 깊이 빠져들 수 있는 묵직하면서도 희망적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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