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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sili님의 [도시농부일기_20200429] 에 관련된 글.
한 달에 한번 밭에 가는 게으른 농부...
게으르다기보다, 다른 일이 너무 바쁜 쓰리잡 농부의 삶...
자연과 함께 하는 한가로운 농부의 삶이란 없어.. 일이 너무 되서 자연을 느낄 겨를조차 없다구 ㅜ.ㅜ
이번에는 화요일 저녁에 내려가서 1박하고 수욜 새벽부타 작업 시작...
하루종일 각기 다른 정체성으로 세 가지 종류의 회의를 마치고 기차 타고 내려가니 이미 그곳은 오밤중, 다행히 K 샘이 마중나와 주기는 하셨는데 숙소로 쓰는 별채 서재까지 가는 길, 다시 화장실이 있는 아랫집까지 내려가는 언덕길이 암흑천지인데다 풀이 너무도 무성하게 자라서 알던 길도 헷갈리고, 게다가 스맛폰 조명으로 비춰보니 대나무들이 무서운 기세로 자라나서 여기서 잘못 미끄러져 넘어지면 죽창에 찔려 사망각.... ㅡ.ㅡ
사실 하루종일 회의 돌아다니느라 끼니를 제대로 못챙겨 먹어서 기차에서 작은 떡 두조각 먹은게 다인데 이 오밤중에 어디 가서 밥을 얻어먹을 수도 없고, 동네 가게 문이 열린 것도 아니고... 주린 배를 움켜잡고 생수만 벌컥벌컥... 가방 안주머니에 사탕 한 봉지 찾았는데 sugar free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하늘도 무심하다
이 와중에 달빛 배경 삼아 온라인으로 자료분석 미팅을 하고 ㅋㅋㅋ 그대로 기절...
새벽 알람에 일어나보니 5시 반인데 벌써 세상이 환해서 깜놀...
아침도 못 먹고 일단 날이 더워지기 전에 서둘러 작업 시작...
지난 번 작업했던 두둑에 김매기 열심히 해주고, 멀칭이 더 필요한 부분 덮어주고 나서 허리펴니 아침 8시...
신기하게 감자꽃도 피고, 수세미, 브로콜리며 가지며..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음 ㅋ
정말 멀칭을 제대도 해준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차이가 어마무시하다는 것을 실감.. 멀칭만 잘 해주면 김매기 할 것이 거의 없음. 지난 냉해에 콩 파종한 것들이 다 얼어죽었나 했더니 이번에 가보니 절반 정도 싹을 티웠음.. 기특한 아이들....
선생님 댁에 가서 아침 얻어먹고, 읍내 장에 가서 또 모종 구입.. 파종을 한번 하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조금씩 때를 달리하며 파종과 수확을 거의 연중 지속...
모종으로 샐러리, 겨자채, 적채, 미니단호박, 수박, 곰취, 홍당무 심고, 집에 있던 루꼴라 씨도 뿌림. 비싼 루꼴라 맘껏 먹어보고 싶은 마음... 샐러리도 벌써부터 볶음밥해먹을 생각에 흐뭇 ㅋㅋㅋㅋ
지난 겨울에 심어놓으셨다는 마늘과 양파도 일부 수확하고, 주말에 엄마한테 부추전 해달라고 부추도 잘라옴 ㅋㅋ
점심먹고 서둘러 올라왔는데 벌써 햇볕이 장난 아니라 힘도 들고, 땀이 정말 삐질삐질....
그런데 역시 한국인은 장비빨 ㅋㅋ 동네 뒷산을 가도 아웃도어웨어 풀장착을 하고 나서는 사람들 아닌가... 나도 농사 대비 모자와 3M 쿨토시, 3M 안전장갑, 장화를 준비 ㅋㅋㅋㅋㅋ 누가 보면 전문 농사꾼... 심지어 옷은 등산 다닐 때 입던 기능성웨어... 3M 이 정말 좋기는 하더라구 ㅋㅋ 손에 딱 맞고 그립감 좋고, 물기도 금방 마르고.. 토시도 진짜 쾌적함... 장화는 크록스 ㅋㅋ 패션농부...
다음 번에는 몇 가지 준비물을 더 챙겨야겠음. 계속 장비 욕심 ㅋㅋ
일단 야간과 새벽작업을 위한 헤드랜턴 챙겨야 함, 작업 끝내고 샤워 후 갈아입고 올라올 여벌 옷, 얼음물 담을 수 있는 물병. 등산하려고 사모은 소소한 장비들을 이렇게 쓰고 있다 ㅋㅋㅋ 무릎보호대도 가져갈까???
다음번에는 작업량이 몹시 많을 것으로 예상... 일단 블루베리 수확을 사칭한 시식 ㅋ 마늘과 양파수확, 산에 있는 복숭아 싸주기, 그리고 역시 엔드리스 김매기...
그네 언니 말대로 바쁜 벌꿀은 쉴틈이 없다 ㅋㅋㅋㅋ
# 대니얼 서스킨드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 기술 빅뱅이 뒤바꿀 일의 표준과 기회 대니얼 서스킨드 와이즈베리, 2020 |
번역서 제목이 안티 아닌가... ㅡ.ㅡ
저자 자신도 "일은 한까번에 사라지지 않는다, 조금씩 줄어들 뿐"이라고 쓴 마당에
디지털시대 일자리의 퇴조와 관련하여 매우 차분하고 설득력있는 설명을 제시함. [노동의 종말]에 비해 훨씬 최근에 쓰인 책이라 현재의 상황에 훨씬 더 부합하기도 하고.. 가독성도 좋아서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림... (사실 내가 이거 읽고 있을때가 아니었는데 말야.. ㅜ.ㅜ)
그런데, 뭔가 대안 쪽으로 오면 갑분싸.... 법인세 높이고 전통자본에 세금 높이는 것 다 동의하는데, 이걸 대안이라고 제시하면... 여기에 반대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건 이미 디지털경제로의 전환 이전에도 이야기해왔으나 노-자간 역관계 때문에 안 되고 있던 건데.. 다시 공자님 말씀 들먹이면 뭐하나 싶은 생각이....
어쨌든 생산의 재배열과 국가의 적극적 분배 개입, 기업 통제를 종합해보자면 '공공성'이라는 언어로 개념화하지 않았지만 결국 '민주적 공공성'으로 수렴될 수 있을 것 같음.
참, 눈에 띄는 잡상식 ㅋ '틈새의 신 god of the gaps'이라는 표현 너무 적절 ㅋㅋ 종교지도자들이 현대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신으로 정의한다는 의미 ㅋㅋ
# 조정진 [임계장 이야기]
임계장 이야기 - 63세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 일지 조정진 후마니타스, 2020 |
아빠가 건물 경비일을 했던 사람으로서, 순수한 독자의 마음만으로 읽을 수는 없었지.. ㅡ.ㅡ
일단 사회 구조고 뭐고.... 사람들이 참 못됐다는 생각!!!
스스로 응분의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비대한 자아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인지...
다른 사람에 대한 멸시를 통해서 나의 상대적 지위를 구축하려는 이들의 생생한 사연에 진정 환멸.....
마침 부산에서 노숙인, 이주민 단체 활동가들과 인터뷰를 하고 온 다음날이라, 인류에 대한 환멸이 한층 더 심했던 듯.. 아오 정말 미친 새끼들... 욕도 아까움..
이제는 내가 빠져나온 (최소한 학력자본과 사회자본 측면에서) 그곳을 다시금 돌아보며,
겨우 빠져나왔다는 안도감과 아직 그곳에 남아 있는 나의 부모, 이웃들에 대한 연민, 사명감, 그리고 인간에 대한 환멸, 인생은 고해라는 현타 때문에 세상 하직하고 싶은 마음까지.... 복잡한 감정이 한꺼번에...
# 조너선 하이트, 그레그 루키아노프 [나쁜 교육] (2019)
나쁜 교육 - 덜 너그러운 세대와 편협한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조너선 하이트.그레그 루키아노프 프시케의숲, 2019 |
아..... 진짜 애~~~매 한 책...
미시적인 부분에서 많은 내용에 동의하는데, 왜 굳이 우익의 혐오와 차별 행동에 대한 비판보다 그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소위) 진보주의자, 좌파에 대한 비판에 이토록 많은 에너지를 쏟는지 좀 이해하기 어려움. 대학이 진보주의자 일색으로 기울어져서 사상의 다양성이 사라질 것을 우려하는 걸 보면 과연 글쎄올시다... 한국 대학, 특히 교수진의 보수성이야 그렇다치고 미국도 우파 씽크탱크가 그렇게 차고 넘치고 시카고학파 같은 우파의 이데올로그가 그토록 강고한데 이건 너무 과도한 걱정 아닌가 말여? 파편화된 정체성 정치나 극단적(?) '정치적 올바름' 에 비판적인 것도 사실 아슬아슬.... 예컨대 정체성의 정치가 보편적 인간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black lives matter 에 all lives matter 로 물타기하는 세력, 페미니즘이 아니라 보편적 휴머니즘이어야 한다며 물타기하는 세력이 엄연히 존재하기에 영 찜찜할 수밖에 없음 ㅜ.ㅜ 주장의 내용이 아니라 주장을 하는 방식, 그것의 정치적, 이성적 동기보다는 '심리적/정서적 반응'에만 너무 치중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학생들이 예민하거나 피해자주의에 물들어서라기보다, 분명히 개소리하는 인간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 과거라면 넘어갔을 문제들도 오늘의 높아진 인권감수성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분명 많아졌기에 문제제기가 늘어나는 것도 당연할진데 말이지...
당장 한국의 상황만 봐도, 학교에서의 성차별 발언, 성추행, 심지어 성폭력 사건들이 과연 요즘 아이들이 예민해서 문제 삼는 건가? 우리 때도 그게 뭔가 불편하고 이건 아니다 싶었지만, 아무개 선생 '변태'다 피해야 한다는 광범위한 공감대가 있었지만 당시로서는 그걸 설명할 안어가 없었을 뿐.... 요즘 페미니스트들이 문제 삼는 소위 '한남 문학'도 이미 예전부터 이건 좀 아닌데, 여자가 무슨 남성 주인공 돋보이게 만드는 도구야, 맨날 겁탈이나 당하고...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공포의 외인구단을 비롯하여 이현세 만화에 질색팔색했던 것이나, 일제강점기 남성 지식인 자의식 과잉 소설에 갸우뚱했던 것도 다 그런 이유... 다만 이걸 문제로 개념화하지 못했던 거지... 마치 예전에는 다 너그럽게 받아들였는데 요즘 애들이 예민하고 까탈스러워서 이런다고 본다면 진정한 지적 게으름이거나 너무 꽃길같은 안온한 인생을 살아오신 분들...
그럼에도 미시적인 부분에서는 동의하는 바가 적지 않았고, 나도 '안전주의' 문화에 대한 우려가 있기에 몹시 흥미롭게 읽기는 했음... 사실 이런 책은 혼자 읽을 게 아니라 술 마시고 같이 까대면서 읽어야 하는데 ㅋㅋ 아쉽네 그랴.. 예전에 스티븐 핑커 책 보면서도 같이 까댈 사람을 찾지 못해 한동안 하이에나처럼 어슬렁거리며 주변 사람들보고 제발 읽고 나의 이 불편한 마음을 같이 나누어보자고 했으나 성공하지 못함 ㅋㅋ
책의 내용을 좀 정리해보자면...
*
미국사회에 두루 퍼져나간 '대단한 비진실 great untruth'을 크게 세가지로 정리.
1) 유약함의 비진실: 죽지 않을만큼 고된 일은 우리를 더 약해지게 한다
2) 감정적 추론의 비진실: 늘 너의 느낌을 믿어라,
3) '우리 대 그들'의 비진실: 삶은 선한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 사이의 투쟁이다. -
이들은 여러 비진실 명제들 중에서도 고대(?)의 지혜와 모순되고, 현대 심리학 연구결과와 모순되며, 이 명제들을 끌어안는 개인이나 공동체에 해를 입한다는 점에서 '대단한 비진실'로 명명됨. 근데 바로 여기부터 살짝 고개를 갸우뚱... 고대의 문헌이라고 다 진실만 담고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고통과 도전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의 자원이나 레질리언스가 갖춰졌을 때나 성장에 도움이 되지 마냥 좋은 것도 아니잖여. 건강불평등 업계에서 allostatic load 개념이 널리 받아들여진 것도 20년이 넘었는디.... 심지어 고통을 겪어야 강해진다, 요즘애들 고생 안해서 물러빠졌다는 지적은 자칫 "나 때는 보리밭에서 일하다 애만 쑥 잘 나았다고.. 내가 군대 있을 때는 말이야..." 이런 '라떼' 꼰대가 되기 십상 ㅡ.ㅡ
하지만 두번째 '느낌'에 대한 신봉 (한국에서는 KIBUN ㅋㅋㅋ)이나 선/악 구도로 사람 전체를 판단하고 단죄하는 것이 가진 문제점에 대해서는 십분 동의!
*
이 책, 그리고 책의 모티브가 된 아틀란틱 칼럼을 쓰게 된 계기 중 하나는 대학들의 연사 초청과 관련한 폭력(?)사태와 교과 과정에서의 '트리거워닝' 요구 점증 때문...
우익적 선동을 일삼는 논객들의 교내 초청을 반대하는 학생들의 집회가 간혹 폭력사태로 진화하는 것에 대해, 저자들은 공론의 장에서 논박하는게 바람직하지 아예 물리적으로 입을 다물게 만드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비판 (대학은 무엇보다 '제도화된 부당성 증명'의 공간이 아니던가!).. 그런데 1991년 정원식 계란투척 사건으로 희대의 패륜 세대라고 싸잡아 욕을 먹었던 90년대 대학생 세대의 일원으로서 한 마디 보태보자면, 당시 전교조 탄압을 비롯한 문제적 인물에 대해, 그리고 그러한 행동에 대해 공론의 장에서 토론하고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었음. 겨우 계란이나 던진 것이 유일하게 가능한 저항과 의사표현의 방법이었는데, 광주에서 학살을 저지르고 민주화 운동을 억압해온 정권이 학생들을 패륜 운운하며 이 사건을 부각시킨 것은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어이 상실.. ㅡ.ㅡ
단, 이 책의 저자들이 이러한 학생들의 행동에 우려를 표명한 것은 좀 다른 이유 때문임. 학생들의 반대행위가 정치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저항이나 실천이라기보다, 이것이 학생들의 '감정을 격발'시키거나 '안전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반대에 나서는 것이라는 점에 우려.... 이러한 비판에는 나도 완전히 수긍함... 학생들이 교정 안에서 안전해야 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타당한 규범이지만, 미성년자도 아닌 대학생들이 그토록 '정서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존재인지는 진정으로 모르겠음... 책에 소개된 사례들을 보면 좀 후덜덜한 것이, 유혈낭자하고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혐오와 차별이 그득한 고전문학을 배우거나 법학과에서 성폭력 사례를 포함한 판례를 공부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표현하고 트리거워닝을 요구하거나 리딩리스트에서 배제할 것을 요구하고, 논쟁적 연사들의 발언을 듣는 것만으로도 트라우마를 입을 수있기 때문에 안전공간을 마련하는 것 등은 매우 황당.... 뭔 다들 손대면 톡 하고 터지는 봉선화들인가 ㅡ.ㅡ (아마도 압권은 영국 초등학교에서 눈싸움의 위험성을 막기 위해 눈 만지기를 금지시킨 거 ㅋㅋㅋ)
이렇게 보호받다가 사회로 나가면 어찌 되는가??? 상대적으로 안전한 대학 공간에서 이런 것들에 대한 대비를 하고 멧집을 키워서 사회에 진출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지... 사실 SNS 상에도 다큐멘터리나 영화에 대해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트리거 있으니 조심하라는 메시지를 공유하는 것을 보았는데, 트라우마는 회피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잖여 ㅜ.ㅜ 그리고 현실 사회에서 언제까지 회피할 수 있남...
안전주의는 다소 위험한 개념이라는데 전적으로 동의함. 제일 안전하려면 사실 아무것도 안 하면 됨 ㅡ.ㅡ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악순환의 고리...
*
미세공격(microaggression)이란 개념도 소개함. '매일의 일상에서 짧은 시간에 다반사로 일어나는 언어적, 행동적, 환경적 차원의 멸시. 의도적이건 비의도적이건 간에 유색인종을 상대로 적의, 경멸감, 혹은 부정적 뉘앙스의 인종적 혐하와 모욕을 전달하는 것'으로 정의되는데, 저자들은 이러한 개념이 지나치게 대중화하고 오만군데 적용되고 있다는데 문제의식. 그런데 사실 이것도 애매~한 것이... 실제로 노골적이지 않은 암묵적이고 일상화된 차별이 인간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내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라, 타인의 행동/발언 하나하나를 맥락으로부터 거세시키고 과잉해석하여 미세공격이라 비판하는 것도 과도하지만, 그렇다고 이걸 모두 예민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는 점. 한국사회에서 일상화된 온갖 차별적 발언들, 심지어 자기 딴에는 선의에서 내뱉었지만 편견 가득 담긴 발언에 짜증이 두 배로 났던 경험들은 다 있지 않나...
그런데 또 책에 소개된 사례들을 보면 심하다 싶기는 함 ㅋ 소수자 학생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누가 봐도) 선의에서 비롯된 발언들마저 미세공격으로 과잉 해석하고 소셜미디어 상에 앞뒤 맥락 없이 공개해서 (일명 '가해자 지목 문화') 더 나은 해결의 가능성을 아예 차단해버리는 사례는 너무 익숙함. 여기에 일종의 피해자의식 문화가 결합하는데, 이는 독립성과 회복탄력성이 아니라 "나약함을 신성시하는 분위기"를 가지며 세 가지 특징이 있음. 첫째 개인이나 집단은 사람들이 범하는 무례에 대해 고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둘째, 제3자에게 항의하는 식으로 갈등을 해결하려 하는 경향을 보인다, 셋째, 도움받을 자격이 있는 피해자라는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애쓴다... 이 세 가지는 당장 몇 개의 구체적 사례가 떠오를만큼 최근 몇 년간 사회단체들에서 극심한 갈등으로 비화되고, 문제제기한 당사자를 포함하여 소모적 상처만 입고 끝나는 (아니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는) 경우를 여럿 보았음. 심지어 대학원생 커뮤니티에서도 종종 목격. 왜들 그렇게 자신을 가장 취약한 약자이자 피해자로 포지셔닝하는지 가끔 어리둥절해질 때도 있음. 학생 때, 전공의 때 문제제기해서 해결했던 경험을 들려주며 한번 맞붙어보면 어떻겠냐고 하면, 극심한 권력 불평등 때문에 감히 그렇게 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며 마치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할말은 하는 사람으로 간주하는데 ㅋㅋㅋㅋ 여보시오들.. 나라고 갓 스무살 때 나이많은 남자 선배들, 전공의 때 교수들이 오냐오냐 내 이야기 잘 들어주어서 그런 거 아니라오 ㅋㅋㅋㅋ
하여간... 저자들의 비판에 동의하는 부분이 적잖으면서도 시종일관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는 세대 후려치기, 리버럴 후려치기에 불안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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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나. 저자들의 원인진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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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저자들의 대안은 무엇인가...
바람이 불어오면 꺼지는 촛불이 아니라, 더 거세게 타오르는 횃불이 되도록 아이들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에는 깊이 공감...
허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상처받지 않기를 선택하라. 그러면 상처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상처받았다고 느끼지 말라. 그러면 상처받지 않을 것이다" ㅋㅋㅋㅋ 뭐래, 원효대사 해골물이냐...
저자들은 1) 자기 힘으로 할 수있게 준비시킨다, 2) 감정적 추론을 다루는 방법을 알려준다, 3) '우리 대 그들'을 넘어 사고하도록 가르친다, 4) 학교가 변화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같은 양육 방법을 안내하면서, 자신들의 전공답게 인지행동치료가 도움이 될 것으로 소개.
인지행동치료에서 말하는 왜곡된 자동사고 유형이란.. 1) 마음 읽기 2) 미래 점치기, 3) 재앙화, 4) 딱지 붙이기, 5) 긍정적인 면 깎아내리기, 6) 부정적 필터링, 7) 과도한 일반화, 8) 이분법적 사고, 9) 당위적 사고, 10) 자책, 11) 남 탓하기, 12) 불공평한 비교, 13) 후회 지향, 14_) 상황 가정, 15) 감정적 추론: 감정이 현실 해석을 이끌도록 내맡기는 것, 16) 부당성 증명을 못 받아들임, 17) 판단 위주 사고
내 주변에도 이런 종류의 인지왜곡 대장들 몇 명 있고, 트위터 세상에는 한 백만 명 있는 것 갈음 ㅋㅋ 이것이 과연 사회적 수준의 대응으로 적합할지는 의문이지만, 이들이 이러한 인지왜곡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본인은 물론이거니와 주변 사람들의 정신 건강이 매우 개선될 것임은 분명해 보임 ㅋ
아우.. 누구 이 책좀 읽고 나랑 이야기 좀 합시다 캠페인하고 싶네...
hongsili님의 [도시농부일기_20200322] 에 관련된 글.
새벽같이 용산역 앞에서 K 선생님의 차를 얻어타고 임실고고... 오늘의 일꾼 날총님도 함께...
중간에 안성 휴게소 들러 김밥, 라면, 소떡소떡과 커피로 서둘러 (하지만 배터지게) 아침을 떼우고, 임실 들어가 읍내 장에 가서 모종 무려 4만 5천원어치 구입!!!
모종으로 나와 있는 식물들의 종류에 깜놀.... 세상에 정말 많은 종류의 채소들이 있구나.
텃밭하시는 분들이 상추나 치커리, 겨자채 같은 잎채소들을 많이 키우지만 경험에 의하면 저거 부지런히 따먹는 것도 일 ㅋㅋㅋㅋ 이미 나는 김체리님 텃밭에 방치된 상추가 서서히 나무로 변태하는 모습을 목격한 일도 있다 ㅋㅋㅋㅋ 별하고 방울 몇 개만 걸면 크리스마스 트리로 써도 되겠더라구 ㅋㅋ
그래서 우리는 좀 시간이 걸리고, 비교적 보관이 용이한 작물에 초점...
하지만.. 맘대로 골라보라는 K 선생님의 제안과 달리 아는 작물이 많지가 않아서.. 나의 야심작물 수세미를 일단 픽하고, 역시 애정하는 야채들인 브로콜리, 아스파라거스, 노란색 파프리카를 고름. 샘이 여기에 아삭이고추, 가지, 피망, 흑토마토, 대추토마토, 완숙토마토를 보태주심. 얼룩강낭콩, 일명 호랑이콩도 사고 싶었으나 다행히 집에 종자가 있다고 하셔서, 푸짐한 꾸러미 들고 귀환. 심바와 코랭이가 오랫만에 봤는데도 반겨줌
근데 아뿔싸!!!!!! 돌아와서 모종 분류하려고 보니 뭐가 뭔지 모르겠어 ㅋㅋㅋ 오로지 구분 가는 것은 잎이 익숙한 수세미, 단가가 비싸서 한 주씩 담아준 흑토마토, 코스모스처럼 생겨 기억에 남았던 아스파라거스 뿐!!! 각종 추론과 토론을 거듭하여 가장 가능성이 높은 이름표를 붙여놓았다가 나중에 열매 열리면 그 때 정정하자고 결정했는데, 아니 열매가 열리면 이름표가 굳이 필요없잖아.. 이게 무슨 짓이야 ㅋㅋ
지난 주에 잠깐 꽃샘추위가 심하게 왔었는데, 밭에 나가보니 그것 때문에 얼어 죽은 작물이 상당히 많았음. 각종 강낭콩과 완두콩들이 너무 시들시들하던데 과연 살아날지 모르겠음 ㅜ.ㅜ 본격 농사꾼인 이웃께서 잠깐 우리밭에 구경오셨는데, 거기는 냉해 때문에 아예 파종을 새로 하셨다고 함... 상업작물 하시는 분들은 그럴 수밖에 없었겠더라구...
일단 멀칭 용으로 심어둔 호밀이 이제는 정말 많이 자라서 그걸 베어 재료 준비. 이미 이삭이 패인 것도 있어서 이걸 그냥 멀칭용으로 쓴다는 게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호밀 정미소가 국내에 밀양 한군데 밖에 없어서 어차피 얼마 되지도 않는 양을 거기까지 가져갈 수도 없다고... ㅜ.ㅜ 원래 멀칭 용도로 심은 것이니 일단 베기는 베는데.. 아우 아까워... 나랑 날총이랑은 바닥에 떨어진 호밀대 하나도 다 주워서 두둑에 올림 ㅋㅋ
그러면서 감자 김매기 작업... 다행히 중간에 샘이 감자 이랑을 다 덮어두셨던 덕에... 멀칭을 치우고 보니 새싹들이 거의 대부분 살아있었음... 어찌나 반갑던지... 여섯 이랑이나 되는 감자밭에서 꼼꼼하게 김매기하고 싹 올라온 이외 부분 덮어주는 작업 수행.... 은근히 잡초들도 뿌리 힘이 세고, 흙도 단단하게 뭉쳐 있는 부분이 많아 모종삽과 호미로 작업하는데 손목과 팔꿈치 무리데쓰... ㅡ.ㅡ
그리고나서 정말 대화 한마디 없이 계속 비어 있는 두둑에 퇴비주고 다듬어서 모종 심고, 멀칭하고....
중간중간 두더지굴, 지렁이, 벌레 만나서 단말마의 비명 지르고...
동네 닭은 왜 그리 수시로 우는지 깜딱깜딱 놀램... 닭은 아침에만 우는게 아니었어!!!
파종 다 하고 점심 먹으려 했는데, 워낙 오전에 늦게 일을 시작하다보니 두 시가 넘어도 작업도 많이 남은데다 배가 너무 고파 일을 할 수가 없음... 이번에도 산들미향에 가서 제육볶음이랑 된장찌개... 천하일미....
밥먹고 돌아와 정말 1분도 쉬지 않고 다시 작업.. 서울 가는 기차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그 전에 오늘의 작업을 마쳐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지!!
근데 가만히 보니까 날총 너무 일못함 ㅋㅋㅋㅋ 못한다기보다, 너무 꼼꼼하게 작업을 해서 내가 세 이랑을 할 동안 하나도 제대로 못함. 아니 무슨 상감청자 만드냐고.. 왜 그렇게 조심조심 꼼꼼하게 하는 것이여..... 이것은 마치 시험 전날 교과서 구석구석까지 꼼꼼하게 읽으며 공부하다 결국 시험진도의 반도 다 보지 못하고 시험장에 들어오는 인간의 전형!
하여간 다섯시 무렵까지 모든 작업을 마치고 시원하게 밭에 물을 다 뿌리고 걸어서 다시 기차역으로...
돌아보니 정말 일당 알바처럼 일하고 왔음. 새벽차 타고 도착해서 한 시도 쉬지 않고 일하고 밥먹고 다시 일하고, 바로 귀환 코스 ㅋㅋㅋ 원래 생각한 안빈낙도의 삶이란 이런게 아니었는데 ㅋㅋ 나중에는 손에 힘이 빠져서 김매다 모종삽을 놓치기까지 했다니까 ㅋㅋ 다리도 후들후들...
돌아오는 기차에서도 미친 듯이 잘 것 같았지만 팔이 계속 욱신거려 한 숨도 못잤음...
다음에는 꼭 저녁 때 미리 내려가서 한숨 돌린 다음 아침 일찍 농작업 하고 쉬엄쉬엄 하며 돌아와야지...
근데.. 우리 밭 옆에 돼지 키우는 농가가 있는데, 오가는 길에 돼지들과 자꾸 눈이 마주침.
애들이 정말 깨끗하고 볼때마다 톱밥도 청결해보이는 걸 보니 정성들여 키우시는 건 알겠는데, 돼지들이 너무 똘똘하고 사람 지나가면 이쪽으로 다가와 친근함을 내보여서 마음이 ㅜ.ㅜ
얼마전에 이주노동자 지원단체 활동가 분 이야기 들어보니 돼지가 정말 영리하고 사람을 잘 따라서, 돼지 축사 이주노동자들한테는 고용주들도 비교적 대우를 잘 해준다고 함.. 손이 바뀌면 돼지들이 스트레스 받기 때문에.... ㅜ.ㅜ
그렇게 영리하고 사회성 좋은 아이들인데... 좁은 공간에서 하루 종일 사육당하는게... 막상 눈으로 보면 많이 괴로움. 심지어 밥 때가 되면 엄청난 울음소리들이 울려퍼짐. 좁은 공간에서 서로 밀치며 순서를 다투느라 벌어지는 일.... 저런 대접을 받을 존재들이 아니잖아... ㅜ.ㅜ
하지만 점심 제육볶음은 너무 맛있었고, 정말 뭐랄까.... 인간은 존재 자체로 다른 생명체들에게 민폐... ㅡ.ㅡ
사실 율도국에서 소돼지는 키우지 말자고 내가 제안한 적 있음. 그걸 누가 잡냐고.... ㅜ.ㅜ
근데 날총이 굳이 자기가 할 수 있다고, 고기 먹고 싶다고 했었는데 오늘 좀 수그러진 것 같음... 직접 마주해보니, 안 되겠다고 ㅡ.ㅡ
밸로시랩터의 후손이자 눈이 마주쳐도 우리 마음이 덜 괴로운 닭까지는 수용가능한 것으로 합의...
실컷 다 써놓고 글을 날려버린다는 게 이런 거구나.. ㅡ.ㅡ
뭘 잘못 눌렀길래... 하여간 다시...
#1. 투표율
코로나유행 때문에 선거가 제대로 될 수는 있을까, 투표율이 바닥이면 어쩌나 은근 걱정했는데 다들 그런 걱정을 한 것인지 오히려 예년보다 투표율이 더 높았다. 도통 바깥 나들이를 하기 어렵다보니, 나라가 허용해준 기회에 모처럼 나들이해보자는 심사였는지도 모르겠으나, 나도 사전투표하러 갔다가 사람 너무 많아서 깜놀 ㅡ.ㅡ 마감 시간 다가와서 투표 못할까봐 전전긍긍하기까지...
'적당히'를 모르는 민족의 근성이 여기서도 발휘된 것인가...
어떤 정당을 지지하든간에, 도저히 저꼴은 못봐주겠다, 이건 막아야한다는 절박함을 각자 품었던 게 주요 이유가 아니었을까. 내가 투표 안하면 저놈들이 이긴다, 그건 눈뜨고 볼 수 없다... 이런 마음?
이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민주당이나 민주당후보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되도 않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파렴치한 행동을 정당화하고, 쇠파이프 움켜쥐고 민주주의 투사인양 목에 핏대를 세우는 나경원의 모습을 더이상, 네버 앤 에버, 보고 싶지 않았다. 이건 뭐 이념이나 개별 정책에 대한 동의/부동의 같은 품격 있는 결정이 아니었다.
#2. 위성정당과 민주당, 진보정당
내 블로그는 소중하니까, 여기에 쌍욕을 쓰지는 않겠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아무짓이나 해도 되고, 그래서 했고, 심지어 그랬더니 실제 원하는 결과를 달성하기까지 했다. 민주주의 역사에 참으로 아름다운 교훈을 남겨주셨다. 쟤네들이 하는데 우리는 그럼 당하고만 있어야 한다는 거냐고 항변하는데, 이거야말로 정의당을 비롯한 소위 '우군' 시민사회를 발톱의 때만큼도 여기지 않는다는 이야기 아니고 뭐겠나. 너네한테 사정하고 달래가면서, 듣기싫은 욕먹어가면서 같이 가고 싶지는 않아, 그런 노력 따위 하고 싶지 않다구. 따라올테면 따라와... 요런 마음?
그런데 이게 어떤 개인의 '마음'이라면야 뭐 어쩔 도리가 있겠나, 양심과 사상의 자유는 보호받아야지. 그런데 집권여당이 이런 정치적 스탠스를 보인다면, 이게 도대체 의회 민주주의인가??? 또라이에는 또라이로 맞서는 바닥으로의 경쟁이라니.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코어팬덤 전사들의 결기야 내가 공감해줄 마음의 여유가 없으나, 이런 방식을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사후 승인하는데 가담할 수밖에 없었던 많은 이들의 불편한 마음에는 심심한 위로를 전하고 싶다.
87년 이후 유구한 '비판적 지지론'에서 이제는 '비판적' 마저 떼어버리고, 심지어 심상정, 이정미 의원 지역구에마저 떡하니 공천을 해대는 패권주의에 이제 넌더리가 난다. 수구보수 일파보다 우리 민주당 앞길에서 딴지 걸었던 정의당이 더 밉다고 온라인에서 떠드는 이들을 보면, 과연 어떤 대목에서 딴지를, 그리고 왜 걸었는지 확인 좀 해보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합리적 대화는 어차피 불가능.
물론 정의당에 대한 심경도 복잡하다. NL 그룹이 대중적 진보정당을 '본사'의 지령을 받는 허수아비로 만들어가는 꼴 보기 싥어 탈당하고, 진보신당을 거쳐 가만히 있다보니 노동당원 되었다가, 여기도 또다른 본사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기도 안 찬 사실에 탄복하여 탈당한 이래 아직까지 당적이 없다. 정의당으로 표상되는 진보정당 존재의 정당성을 강력히 지지하면서도, 여전히 당원으로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다. 해결되지 않은 그 무엇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정의당보다 더 처참한 것은 녹색당이다. 그나마 정의당은 원칙을 지킨다는 명분이라도 남았지만, 대체 녹색당은 왜 그런 악수를.. ㅜ.ㅜ 쉽지는 않지만, 혼란스러운 상황일수록 원칙을 지켜야, 후일이라도 도모할 수 있는 것 같다.
#3. 자기효능감 대잔치
선거 다음날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의 '야인'으로 돌아가겠다는 인터뷰를 보고 나도 모르게 방언이 터졌다. 왜, 기왕이면 트렌치코트 입고 성냥개비라도 물고 인터뷰하지... 자기효능감이 아주 만랩이로구나.
다들 킹 메이커 놀이. 정치 막후/배후 조정 놀이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조심성이라고는 개나 줘버린 것 같다. 칩거하던 모사가 선거 국면에 홀연히 중원무림에 나타나 기가 막힌 용병술을 발휘하여 선거를 승리로 이끌고, 이제 혈겁을 뒤로 하고 내 역할은 여기까지오. 윙크 한 번 하고 쿨 하게 돌아서서 다시 자연인으로 돌아간다는 서사를 내가 왜 "무려 21세기" 선거에서 봐야하는지 모르겠다고!!!
석양으로 붉게 물든 저녁 하늘을 배경으로 소오강호 가락이 어울릴까나, 아니면 영웅본색의 테마OST가 흐르는게 더어울릴까나 그런게 궁금해졌지.
민주연구원은 원래도 당의 정책 씽크탱크 역할을 전혀 못해왔지만, 이제 공식적으로도 그냥 선거공학 일삼는 아재들의 살롱으로 확정. 비례후보들도 누구를 대표하고 어떤 배태성을 갖는지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으니, 그저 신출귀몰한 플레이어들의 용병술을 믿어볼 밖에. 다음 선거 때도 다시금 홀연히 등장하여 작전을 지휘해주실테니, 그동안 비전이고 정책이고, 시민사회연대나 지역운동 모두 쓸데 없는 낭비적 투자 되시겠다.
미래당은 선거 전날까지 본인이 맡은 당 이름도 모르는 분한테 선거캠프를 이끌도록 했으니 더 할 말도 없다만, 위기에 짠 하고 등장하여 뭔가 중요한 역할을 해낼 것이라는 그런 근자감 나도 진정 배우고 싶었다. 한국 남자들에게 삼국지 금지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도 잠깐 들었던 것이, 다들 유비의 삼고초려를 받는 와룡에게 자기동일시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의심이 든단 말이지.
그런가하면 아무런 정책도, 작전도 없이 그저 달리기만 하고 세 석을 가져온 안철수의 성취감과 자기효능감은 앞으로 또 어쩔 것인가?
#4. 코호트효과
당분간 선거 결과에 대한 이런저런 심층분석이 나오겠지만,
장기적 추세에서는 상당 기간 미래통합당(aka. 자유당, 민정당, 민자당, 한나라당, 신한국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등등)이 우세를 점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나의 짐작. 물론 대선에서 어떤 카리스마적 인물이 출현하거나 선거 국면에서 이변이 속출할 가능성이야 상존하기에 장담이야 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흔히 나이가 들면 보수화된다고 이야기하지만,
예전에 호프스테드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러한 연령 효과는 대개 Power Distance 가 높은 국가들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특징. 미국과 유럽에서의 68세대, 일본의 전공투 세대들을 보면 이후 나이가 들어서도 후속 세대보다 계속 일관되게 리버럴한 것이 특징인데, 이를 power distance 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코호트 효과가 상당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물론 "권력 질서를 비판하면서도 자신은 그 권력에 닿기를 애타게 소망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특징"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잠재력이 상당한 것은 사실이지만 ㅋㅋ
현재 50대는 20년 전의 50대와 역사적 경험이 전혀 다르고,
이제 50대에 접어들게 되는 70년대 출생인간들은 그 이전과도 또 다른 망나니세대 ㅋㅋ 그 유명한 엑스세대, 신세대인데다 교복과 두발 자유화, 과외도 없이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을 보내고 90년대 대중문화의 전성기를 향유하며 온갖 리버럴 짓은 다 해본 이들 아닌가. 이들은 사회조사에서 나이가 들어도 진보적인 견해에 동의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계속 높게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물론 이후 금융위기를 비롯하여 사회경제적 굴곡이 없었던 것은 아니고, 그래서 사회경제적/계급적 이슈에 대해서는 본인의 계급 위치에 따라 다른 견해를 보일 가능성이 매우 크지만, 최소한 이념적이거나 사회적/정치적 이슈에 대해서는 보수꼴통을 지지할 가능성이 낮을 것으로 짐작한다. 너무 낙후하고 너무 후지기 때문.
예컨대 유승민이나 이혜훈처럼 그래도 좀 제정신으로 말하는 것같은 보수주의자들이 등장한다면 모르겠지만,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는 글쎄올시다. 게다가 이 두사람조차, 처음에는 좀 멀쩡한가 했으나 들여다보니 그것도 아니어서 ㅋㅋㅋ 그 똑똑하다는 KDI 경제학 박사도 동성애자 이슈 앞에서는 하느님의 순한 양이더라구 ㅋㅋㅋ
장기적 전망이 그렇다는 거지, 격변이 잦은 한국사회에서 또 무슨 일이 일어나서 사람들의 마음이 획 돌아살지 모르는 일이다. 게다가 최소한 정치적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성숙한 상황에서 사회경제적, 계급적 이슈들이 전면에 부각되었을 때는 코호트 효과고 뭐고 사라지는 거지 뭐. 뿐만 아니라 다크호스로 부상하고 있는 우리 20대 XY 인구집단...... 아...... 할많하않...
그나저나 21대 국회에서, 압도적 다수를 마침내 달성했으니 그동안 힘없어서 못한다고 엄살피우던 여러 가지 개혁조치들, 차별금지법 입법, 52시간제 유예와 탄력근로제 확대 중단, 부양의무제 철폐, 공공병원 확대, 젠더폭력 처벌강화 등등의 의제들을 어떻게 처리하나 두고 볼 일이다. 공수처나 검찰개혁, 사법농단 재발방지 같은 이슈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엘리트그룹 분파 내에서 알아서 필사적으로 싸울테니 굳이 나까지 걱정해주지 않아도 되겠지.
밀린 독서일기가 에버노트에 한 가득 있지만 차곡차곡 정리하려다 패가망신할 것 같아서 ㅋㅋ 일단 최근에 읽은 책부터 정리하자로 전술 전환...
# 마샤 너스바움. 혐오와 수치심 (2015)
혐오와 수치심 - 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감정들 마사 너스바움 민음사, 2015 |
일찍이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있었으나, 죄가 무슨 죄나 사람이 죄지.. ㅡ.ㅡ
이런 인간환멸이 한 가득인 상황에서 정신 좀 다독여보려고 책을 읽음.
사실은 코로나 유행에서 드러난 혐오 문제를 좀더 차분하게 이해해보려는 마음으로 책을 폈는데, 중간에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점화되면서 가해자 신상공개 논란이 벌어짐. 한층 혼란 ㅜ.ㅜ
법은 감정적이 아니라고 노력한다지만 분명히 감정을 반영하고 (사실 분노와 탄식 없이 어떻게 인류사회에 법이 만들어지고 집행되었겠나! 또한 자유주의자들은 법에서 감정의 역할을 흔히 부정하고는 하지만 이미 영미 현행법에서도 '타당한 동정심'은 이미 양형 선고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 또 이론과 실천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존재한다는 지적으로부터 책은 시작. 이를테면 법이 범인에게 수치심을 주어야 한다는 시각과 법은 시민들이 존엄성을 훼손당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는 시각이 공존하는 상황. 특히 수치심을 주는 처벌은 공동체주의자들에게 사회규범의 표현으로 옹호되는 경향.
감정은 자연발생적으로 분출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사고를 담고 있음. 대개 자신의 목표와 목적의 도식 안에서 일정한 중요성을 부여해왔던 것에 대해서만 감정을 가지며, 목마름이나 배고픔의 욕구와는 다른 것이, 감정에는 믿음이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훨씬 더 많은 사고를 수반. 즉 감정은 '지향적 대상'에 초점을 두며 그러한 대상에 대한 평가적 믿을음 수반. 이를테면 인종주의는 감정 속에서 나름의 근거가 있기에, 증오의 기반이 되는 사실이나 가치와 관련된 잘못된 밁음을 없앤다면 (쉽지는 않겠지만 ㅜ.ㅜ) 감정도 바뀔 수 있는 것임. 감정은 분별없는 정서적 격앙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개인이 지닌 중요한 가치와 목적에 맞게 조율된 지적 반응... 옳소옳소....
법은 잘못된 '행위'를 처벌하고 그 행위에서 비롯된 '죄책감(guilty)'을 일깨우는 방식으로 작동해야지, 행위가 아닌 인간 정체성에 근간을 둔 혐오에서 비롯된 법적 판단, 혹은 수치심을 일깨우는 방식으로 작동해서는 안 됨. 수치심과 혐오는 분노나 두려움과는 분명히 다른 감정이기에, 너스바움은 혐오에 강하게 반대하면서, 혐오가 어떠한 행위를 범죄행위로 규정하는 일차적 기반이 되어서는 안 되며, 현재처럼 형법에서 죄를 무겁게 하거나 경감시키는 역할을 해서도 안 된다고 주장함
혐오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하자면...
혐오가 법에서 유용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부분은 위해로 여겨질 수 있는 불쾌감이 정당한 지침 역할을 할 수 있는 생활방해법이나 토지용도 지정 정도. 흔히 '혐오가 담고 있는 지혜'를 운운하며 혐오를 정당화하고 그에 기반한 차별이나 법제도를 옹호하지만 (동성애가 대표적 타겟), 사실 혐오라는 감정은 인간이 동물적 육체를 갖고 있다는 불쾌감으로부터 촉발되며, 사회적 실천은 취약한 사람들과 집단을 대상으로 투영됨. 이러한 반응이 규범적 의미에서도 비합리적인 것은, 이러한 반응은 될 수 없는 존재가 되려는 열망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그러한 열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을 표적으로 해서 심각한 위해를 가하기 때문.
혐오는 감각 요소에 의해 유발되는 부정적 반응인 '기피'나 해로운 결과가 예상되어 거부하는 '위험'과도 구분됨. 혐오는 대상이 지닌 감각적 요소라기보다 대상에 대한 주체의 인식, 관념적 요소에 의해 유발. 혐오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지닌 동물성을 숨기고 ('오염'), 우리 자신의 동물성을 꺼려할 때 현저히 드러나는 유한성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감정임.
혐오는 분개와도 다른데, 분개는 모든 사람에게 법률적 규제의 기초로 일반적으로 수용되는 위해 또는 손상과 관련된 반면, 혐오는 법의 원천이 될 수 있는지 논쟁을 일으키고 있는 '오염'에 대한 사고와 연관. 분개는 일반적으로 발생한 위해를 야기한 사람에 대한 평범한 인과적 사고와 위해의 심각성에 대한 일상적 평가에 기초하는 반면, 혐오는 실제적 위험보다는 자신이 오염될 수 있다는 신비적 사고에 바탕. 또한 분개는 일반적 속성 상 우리가 쉽게 상처입을 수 있는 취약한 존재이며 우리가 가장 마음쓰는 대상이 다른사람의 부당한 행위로 해를 입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반응이지만, 혐오는 우리가 될 수 없는 어떤 존재, 즉 동물성을 갖지 않는 불멸의 존재가 되려는 소망을 중심으로 움직임. 혐오의 절규에는 '나는 이 추악한 세상을 나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길 거부한다. 그러한 바보같은 제도에 나는 토할 것 같고 그것들이 나의 (순수한) 존재의 일부가 되도록 놔두고 싶지 않다'가 담겨있는 반면, 분개는 '이 사람들이 부당한 대우를 방아왔다면 더 이상 그러한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담겨 있음. 혐오는 오염에 대한 사고가 중심이기 때문에, (행위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사라져버리길 원함. 역사적으로 혐오는 특정집단을 배척하기 위한 사회적 무기로 작동해왔음. 특권을 가진 집단은 자신과 구별하는 집단을 통해서 우월한 인간적 지위를 명백히 하려 했으며, 유대인, 여성, 동성애자, 불가촉천민, 하층계급 사람들 모두 육신의 오물로 더럽혀진 존재로 그려짐. 이런 면에서 사회의 도덕적 진보는 위험과 분개로부터 혐오를 '분리시키는' 정도에 따라 측정할 수 있을 것임.
혐오는 인간 내면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반응으로, 너무 어리거나 부주의해서 혹은 잘 몰라서 해당 품목의 이점을 숙고할 수 없을 때 위험을 피할 수 있게 해주는 유용한 장치이기는 하지만, 이로부터 혐오가 법적, 정치적 목적에 적합한 귀중한 반응이라는 결론을 도출해서는 안 됨. 인간의 삶 속에 깊이 뿌리내린 많은 반응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으며(!) 공적 행위의 지침이 될 수 없음. 혐오가 법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행위에 대한 추정상의 기준이 될 때, 그리고 특히 취약한 집단과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예속하고 주변화시키는 역할을 할 때 이는 위험한 사회적 감정이 됨. 우리는 혐오를 이용해야 하지만 혐오가 담고 있는 인간사회의 비전에 기초해서 우리의 법률 세계를 건설해 나가서는 안 됨 === 한문장 한문장 모두 지극히 동의
다음 타자 수치심!
인간에게는 원초적 수치심이 존재하고 선을 가져올 수 있는 잠재력이 있지만 공적 삶에서 규범적으로 신뢰하기는 어려움. 그래서 자유주의적 사회에서는 수치심을 억제하고 시민이 수치심을 겪지 않도록 보호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음. 왜 그런고 하니, 수치심은 자신의 약점이 노출되었을 때 생기는 고통스러운 감정으로, 특정 사회가 지닌 규범적 정향에 상관없이 밑바탕에 존재. 수치심은 인간이 지닌 인간성, 즉 자신이 유한한 존재임과 동시에 과도한 욕심과 기대가 두드러지는 존재라는 인식 안에 존재하는 일정한 긴장을 해소하는 매우 일시적인 방법이기도 함. 모든 사회는 혐오와 마찬가지로 수치심을 통해 특정 집단과 개인을 선택하고 그들을 '비정상'으로 구별하며 자신이 무엇인지 누구인지에 대해 부끄러워하게 만들어 왔음.
수치심은 역사상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처벌 방식의 일부이지만, 규범적 상황은 혐오보다 훨씬 복잡함. 일정한 형태의 수치심은 긍정적 윤리적 가치를 지니지만, 그러한 역할들이 원초적 또는 나쁜 형태의 수치심에 호소하고 있기 때문에 위험함. 현대 자유주의 사회가 '정상적인 시민'이라는 매우 일반화된 직관적 사고에서 벗어나야만 수치심을 둘러싼 현상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음.
수치심은 어떤 이상적 상태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반응하는 고통스러운 감정으로, 자아의 '특정한 행위'보다는 '전체 자아'와 관련. 수치심과 모욕의 구분이 필요한데, 수치심을 주는 것은 도덕적 비판이 정당한 경우들과 당사자의 인간성 자체를 욕보이지 않는 가벼운 경우도 포함하는 보다 넓은 개념인 반면, 모욕은 일반적으로 이를 당하는 당사자가 인간 존엄의 측면에서 다른 사람과 동등하지 않은 열등한 사람이라는 진술을 표현함. 당혹감은 일반적으로 수치심보다 가벼운 상황이며, 항상 사회적이고 맥락적이지만 수치심은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음. 수치심은 깊게 자리잡고 있는 문제와 관련되며 세상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과 무관하게 '자기 스스로의 평가'를 담고 있는 감정이라는 점이 중요. 당혹감은 청중이 없으면 생기지 않고, 청중의 속성에 대한 자신의 인식에 반응하는 것.
수치심은 완전해지고 완전한 통제력을 지니려는 원초적 욕구로부터 기원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 대한 폄하와 어떤 형태의 공격 (자아의 나르시즘적 계획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격렬하게 비난하는)과 연결될 가능성이 존재함. 분노와도 구분이 필요한데, 분노는 위해 또는 손상에 대한 반응이며 부담함을 바로잡으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으며, 죄책감은 말하자면 자기 처벌적 분노로, 자신이 잘못이나 위해를 저질렀다는 인식에서 생겨남. 수치심은 결점이나 불완전성에 주목하고 감정을 느끼는 그 사람 자체가 지니는 일정한 측면에 관심을 두지만 죄책감은 어떠한 행위에 초점을 맞춤. 죄책감에 내재된 공격성은 수치심 주기에 담긴 공격성보다 더 성숙된 것이고 창조적일 수 있는 가능성을 더 많이 가지고 있음. 죄책감은 도덕적 요구를 수용하고 다른 사람의 권리를 인정하면서 자신의 요구를 제한하는 것과 연관되었기에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생각과 관련됨. 법은 사회가 범죄에 대해 죄책감을 표현하고 죄책감을 사회적 동기로 활용하도록 해야 함. 성숙한 인간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도덕적으로'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의 통찰력 있는 말을 귀담아 들어서 귀중한 개인적 이상을 향한 자신의 노력을 계속해서 개선해나갈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
정상적인 것을 벗어난 모든 것은 수치심을 일으킬 수 있는 이유가 되며, 많은 경우 신체적인 것과 직접적으로 연관됨. 수치심을 외부 대상에 투영하고 다른 사람의 몸이나 얼굴에 소인을 찍임으로써 정상인들은 일종의 대리 행복을 얻고, 외부를 통제하고 완전무결해지려는 유아기적 소망을 만족시킬 수 있음. 모든 사회가 관여하고 있는 낙인찍는 행동은 일반적으로 유아기적 나르시즘과 자신의 불완전성에서 생겨난 수치심에 대한 공격적 반응이라 할 수 있음. 낙인찍는 행위의 핵심은 피해자를 비인간화하는 것.
수치심을 주는 처벌에 반대하며 다음과 같은 논거를 제시할 수 있음
이러한 논거에 반대하는 이들은 수치심 처벌이 형벌의 네가지 목적 (응보, 억제, 표출, 개심 또는 재통합)을 잘 수행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함. 처벌이론에서 응보주의는 무임승차와 평등한 자유에 관한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인데, 모든 시민이 동등하며 행위에 대한 동등한 자유를 향유해야 할 때, 범죄자는 자신에게 평등하지 않은 자유의 영역을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 없고, 응보적 처벌은 범죄자의 불평등한 자유요구를 기록에 올리는 것과 마찬가지. 응보적 처벌은 복수와 다르고 이런 면에서 수치심 처벌은 전혀 응보적이지 않음. 수치심 처벌은 일탈 집단과 대비되는 상위집단을 정의하는 것이 사실상 전부라 할 수 있음.
물론 비판적 자기성찰의 결과로 야기되는 수치심 (에렌라이크의 미국 근로빈곤층에 대한 르포가 미국 대중들에게 수치심을 갖게 만드는 방식)은 개혁을 추진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음. 일종의 건설적 수치심이라 명명할 수 있는데, 이는 완전히 일반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을 포함하기 때문에 법적인 측면에서의 수치심 처벌과는 다름.
대개 혐오와 수치심을 기초로 작동하는 법적 처벌은 시작은 도덕적 공분에서 비롯되었을지 모르지만, 결국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게로 향한다는 것이 역사적 경험..
동성결혼,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공격적 대중운동의 많은 부분은 전혀 종교에 관한 것이 아니며 원초적 나르시즘의 공격적 형태의 요소를 수반. 성소수자에게 낙인을 안겨줌으로써 가족과 성에 대한 통제력을 다시 발휘하길 바라는 것임. 이는 인종 간 결혼 합법화에서 '정상적' 가족 구조를 송두리째 뒤집는다는 인식과 마찬가지. 당시 백인 남성들은 자신의 남성성에 대해 수치심을 느낄 수 있었기에 이러한 수치심의 위협을 피하려는 욕구에서 인종간 구분선을 엄격하게 나누고자 했음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동성 결혼의 권리에만 초점을 두다보니, 결혼의 지위에 대한 건설적 논쟁이 어려워짐. 제도로서의 결혼은 사랑과 함께 폭력을, 아이 양육과 함께 아이에 대한 학대와 멸시를 키워왔고 특히 일반적으로 여성과 아이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해왔음. 동성결혼에 대한 공포와 이에 대한 반작용 때문에 평등한 결혼 권리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공적으로 토론되어야 할 긴급한 문제들이 지연됨 ㅡ.ㅡ)
혐오와 수치심을 규범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공동체주의자들의 주장에 담긴 아킬레스 건은 '공동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 모든 공동체는 규범과 가치에 대한 차이를 지니고 있으며 권력의 차이도 마찬가지. 특정 집단의 가치로 내걸리는 것은 주로 집단 내 가장 지배적 구성원들의 가치임. 또한 공동체주의자들은 대체로 인종, 장소, 또는 공통의 문화나 언어로 이루어진 집단에 초점을 두지만, 공통의 취향이나 직업, 문제를 공유하는 집단, 압제의 역사를 공유하는 집단도 공동체가 될 수있음
밀이 자유론에서 옹호했던 결론은, 다수(자신이 행하는 방식이 정상이라고 정의하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는)의 압제를 막고 개인의 존엄성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항상적이고 주의 깊은 보호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낙인의 작동에 대한 일차적이고 가장 본질적인 해법은 개인적인 자유와 권리를 빈틈없이 강조하고 모든 시민에게 법의 동등한 보호를 확고히 보장하는 것임. 너스바움은 이러한 맥락에서 시민들이 수치심과 낙인을 겪지 않고 살 수 있는 '촉진적 환경'을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 그러면서 낙인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빈곤을 지적하며, 예의 역량접근법을 토대로 사회가 모든 시민에게 괜찮을 생활수준을 보장해야하는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촉구 (인간 역량이란 어떤 구체적 형태의 기능을 선택할 준비가 되어 있고 그러한 기능을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의 상태를 지칭). 법적 측면에서는 차별금지법과 증오범죄법이 중요한데, 자유주의자들과 대립되는 시각을 지닌 사람들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고 어떻게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할 것인가 하는 어려운 문제가 실재함. 또한 자신에 대해서든 다른 사람에 대해서든 다루기 어렵고 수치심을 야기할 수 있는 인간성의 측면을 대면하고 검토할 수 있는 공간의 보호라는 측면에서 프라이버시 강조함. 예술이나 문학을 통해 생기는 상상과 공상은 과도한 불안없이 자신의 인간성이 갖는 다루기 어려운 측면을 탐구할 수 있는 방법이 되며 이러한 탐구는 자신에 대한 인식을 보다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고, 이러한 자기탐색은 타인의 경험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높여줌. 이 두 가지 능력은 바람직한 힌간관계를 맺는 데에도 중요하며, 자유주의 사회가 건강하게 운영되기 위해서도 필요. 즉, 사회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상상하고 탐구하는 공간을 보호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 프라이버시 영역, 특히 사람에 따라서는 수치스럽게 여길 수 있는 활동과 상상을 위한 프라이버시를 법적으로 보호하는 것이 중요. 대개 공/사 구분은 대칭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데 '정상인'의 경우는 감추고 싶은 선택과 공개하고 싶은 선택을 모두 보호하지만 '비정상인'에게는 감추라고 요구하기 때문. 이를테면 성소수자에게, 여성들에게 '사회가 혼란을 감당할 수 없으니' 욕구와 노출을 감추라고 하는 것처럼.
이러한 논의들을 따라가다보면, 최근의 텔래그램 성착취 사건에서의 가해자 신상공개가 과연 처벌의 응보, 억제, 표출, 개심 측면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 회의가 드는 것도 사실
그러나 이들이 저지른 범죄의 내용이 개인에게 수치심과 말할 수 없는 낙인을 가져온 행위였다는 점에서, 응보적 측면의 처벌이 타당해보이기도 함. 물론 억제와 표출 측면에서는 신상 공개보다는 강력한 형량이 더 의미있는 기여를 할 것으론 생각하지만서도... (이들에게 개심이 가능하긴 한 건지 잘 모르겠음 ㅡ.ㅡ)
근데 사실, 가해자의 수치심 처벌 측면에서의 신상공개보다는 잠재적 범죄 예방 측면에서 논의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을 하고 있음. 핵심 가해자인 조주빈을 포토라인에 세우는 거야 뭐 대중에게 딱히 '알 권리'를 충족시켜줄 것이 없으나, 그를 포함한 26만명 주변에 있는 여성들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성범죄 피해자가 되었거나 앞으로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신상 공개가 필요해보임. 언론에 명단이 공개되어 봤자 이들이 연예인도 아닌데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없고, 오히려 좀더 상세한 정보를 성범죄자 신상공개 형태로 조회해볼 수 있게 해서 잠재적 피해를 예방하는 것은 매우 필요해보임.
너스바움의 논문들만 읽다가 단독 저서는 처음 읽어봤는데 엄청 꼼꼼하고 논리적이고, 견고한 정치철학적 관점이 분명히 드러나서 강추하고 싶음.
그런데.... 책을 읽고나서 근본적 미스테리는, 이렇게 합리적이고 똑똑한 양반이 왜 유대교로 개종했느냐 하는 것... 인간 본연의 취약성으로 이해해야 하는가....
혐오가 인간 그 자체에 대한 부정이라는 점에서 합리적 감정이 아니라는 수백페이지짜리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일신 종교에 대한 마음 저 깊은 곳으로부터의 혐오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현실....
나이 들어가면서 이상하게 방향을 바꾸는 사람을 볼 때마다 주변에 '내가 저런 기미가 보이거들랑 꼭 말려달라'고 신신당부하고 하는데...
막상 그런 순간이 닥치면, 옆에서 누가 뭐래도 말을 잘 들지 않는 것 같다.
물론 그런 순간이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다기보다, 점증하는 조짐이 있었을테고 사람들도 서서히 손절하거나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걸 깨달아가고 있었겠지..
그래서, 요즘에는 요구사항을 하나 추가했다.
나에게 진정한 애정이 1이라도 남아있다면, 말 안듣는다고 포기하지 말고, 치매가 걸렸다고 둘러대든 바깥 문을 잠그든 막아줘야 한다고 ㅋㅋㅋ 예전 국정교과서 편찬위원 위촉과 관련한 해프닝이 좋은 참조 사례다 ㅋㅋㅋ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이상하게 변할 수 있으니, 2차 저지선, 3차 저지선을 마련해놓는게 좋겠어 ㅋ
요즘 보면 주위에서 내가 제일 멀쩡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ㅋㅋ
일희일비하지 않는 천성과 평균 이상의 자기객관화 능력이 나름의 장점이라고 생각하지만
커리어가 쌓이고 정치적 환경이 변화하면서 자의식과 자기효능감이 비대해질 수 있는 상황에 마주치는 경우가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시민사회, 운동조직과의 배태성이야말로 위험한 개인적 선택을 피할 수 있는 중요한 무기가 아닌가 싶다.
세상에, 다른 사람은 절대로 잘하기 어려운데 나만 잘 할 수 있고, 모든 외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나라면 다르게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당연한 거 아냐???
시절이 하 수상하여, 율도국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추진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바...
기본 중의 기본은 먹거리... 세상 어디를 가든 농사를 지을 줄 알아야 굶어죽지 않는다!!!
사실 작년 연말 송년회 때 임실 KM 샘 가족께서 흔쾌히 농사일을 할 수 있게 해주셔서 크게 마음 먹고 있었는데, 코로나 유행에 허리 삐끗, 강풍경보까지 겹쳐서 2주 이상 미뤄지다 드디어 파종을 위한 임실행.
마침 날씨도 더 없이 청명, 따뜻하고, 도심을 벗어나니 2m 물리적 거리를 두어야 할 사람의 발길 자체가 드물어서 정말 오랜만에 해방감... 전날까지만 해도 건조한 실내에서 계속 잔기침을 해서 걱정이었는데, 코가 뻥 뚤리고 목에 참기름 바른 느낌이라고나 할까 ㅋㅋㅋㅋ
강낭콩 서로 다른 종류로 세 이랑, 완두콩 한 이랑 심고 (맨날 이랑/고랑 헷갈림 ㅋ)
감자는 씨감자를 통째로 여섯 이랑 심었음. 원래 네 이랑 심으려고 번호표 1/4~ 이렇게 시작했는데 갯수가 남아서 내친 김에 여섯 이랑 채움.
가급적 살충제나 제초제도 안 쓰고, 또 농촌 환경오염의 주범 중 하나인 비닐덮개도 안 쓰기 위해 시간과 돈을 엄청 들여서 두둑을 만들어두심... 게다가 비닐 대신 멀칭 용으로 사용하려고 겨울 전에 호밀도 심어두신 상태...
그래서 호미로 조금만 흙을 파봐도 지렁이 대박 많고 (혼비백산했음 ㅜ.ㅜ), 지렁이 미식가인 두더지 굴이 온통 연결되어 있음.
다행히, 두더지가 농작물을 직접 파먹는 건 아니라고 하는데 상업작물을 하는 농가에는 밭을 들쑤셔놓아 피해가 막대하다고 함... 뿌리가 상하는 일이 많다고... 그렇다고 덫을 놓거나 약을 뿌릴 수는 없는 일이고.. 일단 지켜봐야겠음. 근데 벌레 무서워 죽을 것 같음 ㅜ.ㅜ 다리가 2~4개의 범위를 벗어나는 동물류 모두 질색...
창창한 농부의 앞길을 벌레가 가로막고 있다....
점심에 맛난 삼겹살 먹고, 오후에는 겨울을 버텨낸 시금치 수확함. 자주 내려와 숙소로 사용할 방도 둘러보고, 산책하면서 매화도 감상하고.... 거 참, 두시간만 움직이면 이토록 다른 세상이라니...
연구소 식구들 가져다줄 선물보따리 들고, 오후 느즈막히 귀향.
맨날 손꾸락 놀리며 키보드질만 하다가 오랜만에 호미질 좀 했다고 팔꿈치 관절이 아파.. 몹쓸 관절...
그래도 피곤한 와중에 시금치 다듬어서 스파게티 해먹고, 꺾어온 매화는 주먹도끼가 선물해준 우아한 미니어처 청자에 꽂아보았음.
모름지기 선비라면 매화! 옆의 접시는 진희가 이란 출장 다녀오며 선물해준 것이지..........
4월에 내려가서는 밥에 원없이 넣어 보고 싶은 호랑이강낭콩과
나만의 소득증대 작물로 계획 중인 수세미를 심을 예정 (지지대를 설치해야 한다!!!).
올해는 자주 내려가서 땀흘려 농작물도 가꾸고, 벌레랑도 좀 친해지고,
와이파이 팡팡 터지는 조용한 농가에서 음악 들으며 책도 열심히 읽어볼 생각...
미니벨로 하나 얻어서 읍내 장터에는 그거 타고 다녀야지.
헬멧도 사야하고, 장화도 사고 싶네 ㅋㅋ 농가의 미니멀라이프는 커녕 점점 더 살림이 늘어나게 생겼어 ㅋㅋ
벌써부터 날총은 코로나 때문에 벚꽃놀이도 못 간 마당에 날잡아 닭이나 삶아먹자 하고 ㅋㅋㅋㅋㅋ 이러다보면 빈한한 선비의 삶이 아니라 주지육림 탐관오리의 삶이 될지도 모르겠구만!
코로나19 유행 대국에서 가장 예상치 못했던 것은 사이비 종교집단에 의한 폭발.
아무리 잘 막아낸다 해도 지역사회에 산발적으로 클러스터가 생길 것이라고 우려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미친 듯한 전파는 정말 상상도 못했음.
아시모프 할배의 파운데이션에서 the Mule의 등장에 가까운 돌발변수.
21세기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허술하기 그지없는 종교에 빠져드는 것을 보면, SF 소설이 그려내는 초절정과학문명 시대에 여전히 괴상한 컬트가 횡행하는게 그닥 비현실적 설정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음. 이를테면 [라츠드 제국] 시리즈 같은 경우도 그렇고, 아서 클라크 작품들도 마찬가지.
주류 기독교에서는 이들 집단이 '이단'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선긋기를 하고 있지만, 이단이냐 아니냐는 교리를 둘러싼 해석의 차이니까 어차피 내 알 바 아님. 어차피 허무맹랑한 가상의 존재를 믿는거야 똑같은데, 누가 좀더 그럴 듯한 설명틀을 갖느냐의 차이 아니겠남. 그래봤자 해당 종교 바깥 사람들한테야 아무 의미도 없는 것.
이단의 폐해를 드러내기 위해 사회적 해악을 강조하는 것도 좀 어이없음. 이건 이단이고 정통이고를 떠나 세속적 윤리와 도덕 기준에서도 크게 벗어나는 행위들이라 굳이 이단 가져다 붙일 것도 없음. 이를테면 불법 다단계판매업자들과 유사한 사기, 재산갈취, 유인협박.. 이런거 종교 교리 들먹이지 않아도 이미 세속 기준에서도 문제이고 불법적 행위들 아닌감.
대한민국에 재림예수가 최소 50명이라니, 이 좁은 한반도에 무슨 축복인가 말여 ㅡ.ㅡ
정통이고 이단이고 상관말고, 믿음 가진 분들은 부디 모두(!) 천국 가셨으면 좋겠음.
그동안 휴머니스트들은 꺼지지 않는 지옥불을 무한동력으로 삼아 에어컨도 돌리고, 공기청정기도 돌리면서, 인간의 도덕규범을 논하며 살기 좋은 지옥 세상 만들어보자구. 아시모프, 아인슈타인, 스티븐 호킹 같은 셀럽들도 즐비하고, 내가 좋아하는 칼 세이건, 보네거트, 더글라스 아담스 같은 양반들도 다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설레기까지 한단 말야
어후, 이 혼세마왕의 시대, 얼릉 좀 평화를 되찾았으면....
hongsili님의 [2018_일본_병원사_탐방 ] 에 관련된 글.
# Day7
아침 일찍 기차타고 이동...
가마쿠라 막부 본거지 들러서 작은 마을에 위치한 고쿠사쿠지 방문. 이곳은 닌소의 유적지라 함.
유적지 보고 나서 슬슬 걸으며 마을 산책했는데, 하세라는 해안가 마을의 곳곳에 놓인 쓰나미 경고 표지판에 후덜덜...아름다운 바닷섬도 알고보니 화산섬... 이런 자연환경이 사람들의 멘탈리티를 어떻게 만드는지 몹시 궁금... 이 아름다운 동네가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만화 슬램덩크의 무대였다는디 ㅋ
지나다보니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운운하는 전쟁세력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사무실 포스터....
오후에 요쿠사코 해상 자위대와 미군 기지, 러일 전쟁 당시 승리를 거둔 미카사 호 구경...
이 나라 참 큰일..... 러일 전쟁이 침략 전쟁이고 아시아 민중을 도탄에 빠뜨린 시작이라는 건 아무 의미 없음. 서양을 상대로 우리가 이긴 것만 중요함...
게다가 도쿄에서 불과 50킬로미터 떨어진 이곳의 난감한 분위기가 오늘의 위태로운 인류의 운명을 보여주는듯 ㅡ.ㅡ 나 진짜 잠수함 처음 봤다구... 동해시 어달리에 전시해놓은 거 말고.... 시커먼 잠수함 엄청 위압적이고, 주변 공원이 시위 금지 장소로 지정되어 있음....
이 와중에 점심으로 먹은 해군카레랑 디저트로 먹은 딸기 소프트아이스크림은 왜 이렇게 맛난겨... ㅡ.ㅡ
시내로 돌아와 차이나타운에서 최후의 만찬, 맛난 저녁 식사.
좋구나 이런 수학 여행 ㅋㅋ 다음에 이런 여행 있으면 또 데려가 달라고 해야지!!!
근데 문제는 시간이 너무 지나서, 사진에 해당하는 책 내용이 기억이 안 나... 내머릿속 지우개 ㅜ.ㅜ
사실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정보를 쏟아부어서 당시에도 이미 용량 초과 ㅋㅋㅋ
이 책 읽으면서 오늘날 한국보건의료 체계의 기원에 대해서 좀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는데 말이지... 담에 천천히 책도 다시 읽으면서 이 장소들 다시 돌아보면 좋겠음
일본 병원사 한울(한울아카데미), 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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