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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53회 – 감귤 수확을 끝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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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귤을 수확하고

가지에 묶어뒀던 줄까지 끊어내고 나니

나무가 한결 여유로워졌습니다.

1년 동안 마음 졸이면서 애써온 끝에

큰 탈 없이 수확을 마치고 나니

제 마음도 한결 홀가분해졌습니다.

 

감귤농사 7년차

그동안 이런저런 시행착오들을 반복하면서

끙끙거리면서 농사를 배워오고 있는데

올해 결과가 가장 좋습니다.

물론 개선해야할 지점들이 몇 가지 있고

이 성과가 지속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도 있지만

7년 만에 처음으로 흡족한 결과를 만들어내서 기분이 좋습니다.

 

나무는 1년 동안의 모든 것을 다 털어내고

다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또 한해의 사이클을 시작할 겁니다.

저도 1년 동안의 마음 졸임을 다 흘려보내고

다시 전정을 하고 방제를 하면서 나무와의 대화를 이어갈 겁니다.

이제는 나무의 생리를 조금 이해하게 됐으니

나무가 하는 얘기를 귀 기울여 들으면서

서로의 호흡을 맞춰나가는 연습을 해봐야겠네요.

 

 

2

 

감귤을 수확하는 날에는 모처럼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동생은 회사에 휴가를 내서 달려오고

타지에 살고 있는 동생도 일부러 내려옵니다.

감귤을 따고 나르는 사람들과도

서로 덕담을 주고받으면서 흥을 북돋우기도 하죠.

평소에 사랑이랑 둘이만 지내던 이곳이 왁자지껄하게 활기가 넘칩니다.

 

수확한 감귤을 주위에 나누는 즐거움도 큽니다.

조금씩 나눌 사람들을 체크하다보면

오래간만에 떠오르는 얼굴들이 반갑기도 하고

가까이 있는 이들과는 환한 얼굴로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즐겁기도 합니다.

고맙다고 답례를 받기라도 하면 두 배의 즐거움이 생기고

먼 곳에서 보내온 문자메시지에 마음이 풍성해지기도 하죠.

 

정산이 이뤄지려면 다소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통장에 목돈이 들어올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부풀어 오릅니다.

주위에 고마웠던 분들에게 감사를 전할 방법을 생각하고

세상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나누기 위한 방법도 생각하고

모처럼 내 자신을 위한 호사를 누릴 방법도 생각하다보면

상상만으로도 더없이 즐거워집니다.

 

수확 후의 즐거움이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지만

해마다 찾아오는 이 달콤한 시간이 너무도 소중해집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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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귤 수확 후에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작업은 전정입니다.

한 해 동안 왕성하게 자라난 가지들을 정리해주는 일이 감귤 재배에서 가장 힘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농업기술센터에서 하는 교육도 받으면서 하나씩 배워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한 번의 교육만으로 바로 실전에 임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엄청 힘들었습니다.

어느 가지를 어떻게 잘라내야 하는 지를 고민하면서 익숙지 않는 전정 작업을 하려다보니

머리는 복잡해지고 몸에 힘만 들어가곤 했죠.

전문가라면 며칠 만에 끝낼 일을 한 달 동안 부여잡고 끙끙거리며 하다 보니 정말 힘들더군요.

 

그렇게 한 해 한 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7년을 하다 보니 이제는 조금 감이 잡힙니다.

아직 전문가 수준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어떻게 가지를 정리해야하는지에 대해 상이 잡혀있어서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한그루를 뚝딱 해결하는 수준까지 이르렀습니다.

200그루 넘는 나무를 혼자서 정리해야 하기에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여유를 갖고 차분하게 해나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정 작업이 육체적으로 조금 힘든 일이기 때문에 중간에 쉬는 시간을 가지면서 잠시 책을 보는 여유도 가져봅니다.

 

일이 손에 익숙해지기 시작할 즈음에 조심해야할 것은

섣부른 자신감으로 서두르다 낭패를 보는 경우입니다.

지금도 전정이 조금 과하지 않은가 하는 걱정이 살짝 들기도 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자신감보다는 겸손함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나무를 위한 일이지만 나무에게 고통을 주는 만큼 섬세함도 필요하겠죠.

 

바쁠수록

여유롭게

겸손하게

섬세하게

 

 

 

(김목인의 ‘꿈의 가로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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