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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온이 높아 따뜻하고
미세먼지도 없어 깨끗한데다가
날씨까지 화창해서 마음이 포근해지는 날
하우스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전에는 포근하게 느껴지던 기온이
오후가 되니 꽤 덥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온도계를 봤더니 35도를 가리키고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한여름과 달리 습도가 높지 않고 축척된 열기를 품고 있지 않아서
숨 막히는 더위는 아니었지만
3월에 예상할 수 있는 온도는 아니었습니다.
다음날 비가 내려서 건조했던 땅을 축축이 적셔주었고
영남권의 무시무시하던 산불도 잡혀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습니다.
비온 뒤 쌀쌀해진 날씨에 다시 보일러를 틀어야 했는데
간밤에 하우스 열풍기가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열풍기는 0도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기온이 그만큼 떨어졌다는 얘기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하우스에 들어가 온도계를 봤더니 2도를 가리키고 있더군요.
3월말에 가끔 서리가 내린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의 기온도 이례적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일주일 사이에 숨 막히는 미세먼지와 황사, 기록적인 고온과 저온으로 널뛰는 날씨를 경험하고 보니
지구가 끔찍한 몸살을 앓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솔직히 tv로만 보게 되는 영남권의 대형 산불은 그리 크게 실감되지 않지만
이곳에서 몸으로 느끼는 기후 위기의 징후는 살짝 두려움을 안겨줍니다.
올 여름은 또 얼마나 더울지, 태풍은 또 얼마나 무시무시할지 벌써부터 긴장하게 만드네요.
2
저는 주둥이가 시커먼 개들을 보면 친구처럼 느껴집니다. 어릴적 저와 놀아준 개들은 모두 다 주둥이가 시커멓게 생긴 친구들이였습니다. 형 누나들이 다 학교가면 꼬리를 당기기도 하고 개가 물면 나도 물고 말처럼 등을 올라타기도 하였었죠. 하루종일 함께 놀다 밥만 따로 먹었던 언제나 나를 반겨주는 내 친구였습니다. 외할머니댁에서 데리고온 친구들은 개장을 자꾸 부셔먹었었어요. 그래서 비를 맞기도 했었고요.
어디선가 예쁜이는 젖을 잘 물려주며 잘 살고 있을 거 같습니다.
지난 방송에서 사라져버린 예쁜이 소식을 접하고 득명님이 어릴 때 정을 나눴던 개들에 대한 추억을 떠올려주셨네요.
예쁜이가 사라지고 일주일이 넘었지만 아직도 예쁜이에 대해 얘기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만큼 많은 분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는 증거겠죠.
득명님처럼 간접적으로 접했던 분도 아쉬운 마음을 전해주시는 걸 보면 예쁜이가 많은 이들에게 사랑의 씨앗을 남기고 있었네요.
‘예쁜이는 이 동네의 온기를 측정하는 온도계’라는 얘기를 했었는데
이제 그 온도계가 사라져버렸으니
허전함과 함께 삭막함이 몰려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예쁜이를 통해 마음을 나눴던 사람들이 아직도 있으니
예쁜이에 대한 기억을 마음속 온도계로 삼아서
정을 나누며 살아가도록 해봐야겠습니다.
이 방송을 통해 연결되는 분들과도 그 마음이 함께 공유되길 바랍니다.
3
봄의 기운이 넘실거리는 요즘입니다.
취나물 밭에는 푸릇한 기운이 생기를 뿜어내고
유채 밭에는 노란 물결이 화사함을 안겨줍니다.
사랑이와의 산책길에 이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활짝 펴지지만
집으로 돌아와 끔찍한 산불피해 소식을 접하다보면 이 화사함이 죄스러워집니다.
그 편안함과 죄스러움을 같이 어루만지다보니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시가 떠오르더군요.
절망에 몸부림치는 순간에도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며 견뎌내는 힘을 주는 동시에
환희에 들떠 있을 때도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며 겸손함을 알려주는 시였습니다.
수확을 마친 취나물 밭은 조만간 갈아엎어질 것이고
화사한 유채꽃도 얼마 가지 않아 시들어버릴 것이며
더없이 편안한 지금의 내 삶에도 언제 파도가 밀려올지 모릅니다.
넘실거리는 봄의 기운을 만끽하면서
마음속에 올라오는 죄스러움도 잘 어루만져봅니다.
그렇게 자연과 호흡하고 세상과 소통하다보면
삶의 파도와도 함께 할 수 있는 힘이 생기겠죠.
(랜터 윌슨 스미스의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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