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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포티(Young-Forty)라는 개념이 있다고 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소비할 줄 알고 과감하게 꿈에 도전할 줄 아는, 즉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이어받지 않고 자신들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낸 첫 중년 세대”를 지칭해서 영포티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영포티가 ‘젊은 척 하는 꼰대’를 비꼬는 말로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널리 퍼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기성세대를 비꼬는 이유에 대해 “경제 좋을 때 잘나가더니 이제는 젊은이들 등골 빼먹으려 한다”거나 “어른값도 못하면서 젊은 애들 영역이나 기웃 거린다”거나 “진보인척 하면서 거들먹거리다가 뒤로는 온갖 구린 짓들은 다 하고 다닌다”는 등의 기성세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깔려 있답니다.
여기서 더 나가 “지금의 4050 세대는 젊은 문화를 따라 하면 ‘영포티’, 이해하지 못하면 ‘꼰대’, 진보면 ‘위선’, 보수면 ‘낡음’이라는 선입견”이 강하게 작용한다고도 합니다.
영포티에 대한 글들을 읽으면서 참으로 착찹하더군요.
저는 경제 좋을 때 밑바닥에서 살았고, 애들 영역 기웃거릴 깜냥도 안 되고, 진보인 척 하면서 위선 떠는 이들을 누구보다도 강하게 비판해왔습니다.
지금은 영포티도 아니고, 꼰대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위선을 강하게 거부하고, 낡음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해보지만 결국 그들과 한통속으로 치부되고 있는 겁니다.
“나는 그들과 달라”라고 아무리 변명해봐야 ‘자기만 살아남으려고 동료들을 밀어버리는 이기적인 족속’으로 보일 뿐이겠죠.
기성세대가 지금 이 빌어먹을 세상을 만들었고, 그 속에서 자기 이익을 악착같이 지키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진보인척 하는 주류세력들이 더 뻔뻔하게 그런 모습을 합리화하는 꼬라지는 제가 봐도 역겹습니다.
그래서 기성세대에 대한 젊은 세대의 공격에 공감을 하지만, 저 역시 기성세대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기성세대에 대한 공격이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공격과 결합되는 현실에서는 더 이상 그들의 공격에 동의하기도 어렵습니다.
제가 젊었을 때도 ‘가부장적이고 속물적이며 어른값 못하는 기성세대’를 강하게 비판했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자리를 밀어내면서 한 뼘이라도 저만의 자리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했고, 그 결과 지금의 제 삶이 주어진 겁니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 역시 마찬가지겠죠.
그들과 격렬하게 투쟁하면서 제 이익을 지키려하기에는 지킬 것도 별로 없고 그럴 힘도 없습니다.
결국 그들이 저를 밀어내고 그들의 자리를 만들어가는 것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저도 자존심이 있기 때문에 궁시렁거리며 한마디쯤은 할 것 같네요.
“내가 별 볼일 없는 허접한 존재인 거는 인정하는데... 나 같은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면 나중에 후회하게 될 거야. 세월이 흘러 니가 허접해졌을 때 똑같은 처지가 될 테니까.”
2
포근한 날씨가 계속 이어지다가 비 소식과 함께 기온이 뚝 떨어졌습니다.
겨울이 다가왔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이제
난방장치도 점검하고 기름도 넣어야 합니다.
감귤나무들이 춥지 않게 하우스 주변 정비도 해야 합니다.
겨울 옷과 이불들도 다시 꺼내서 햇볕을 한번 쬐어야 합니다.
텃밭에서 자란 무로 깍두기도 담가야 하고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미뤄뒀던 일들도 더 추워지기 전에 처리해야 합니다.
그리 분주하지는 않지만 서서히 겨울을 준비해야 할 때네요.
하지만
겨울이 가장 힘든 것은
별달리 하는 일 없이 방안에서 견뎌야 한다는 겁니다.
그럴수록
제 마음이 자꾸 싱숭생숭한 생각들을 끄집어내서
저를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저를 불편하게 만드는 마음의 무기는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변해왔습니다.
귀농 초기에는 제게 상처를 줬던 이들을 자꾸 떠올리며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그 상처들이 서서히 아물어가자 제가 상처를 줬던 이들을 끄집어내서 저를 조롱했습니다.
그 조롱을 묵묵히 받아들였더니 주변의 작은 트러블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겁니다.
그 안쓰러운 모습도 가만히 품어줬더니 이제는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가 돼서 자꾸 저를 보챕니다.
자꾸 놀아달라고 보채는 이 녀석을 어떻게 달래야할지가 요즘 고민입니다.
3
시간이 흐를수록 저는 점점 세상에서 밀려나고
제 안의 있는 녀석이 자꾸 궁시렁거리면서 저를 자극합니다.
그 녀석이 하는 얘기를 가만히 들어보면 사소한 불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 녀석이 안쓰러워서 달래려고 하면
자꾸 술을 먹자고 하거나 자극적인 것을 찾으려고 해서
적당히 포기하고 물러서 버립니다.
“녀석이 왜 그럴까” 하고 가만히 지켜보면
“불안해서 그렇다”는 것이 보이더군요.
세상에서 점점 밀려나고 있는데
주위에 사람들은 없고
모아놓은 돈도 없고
농사짓는 것도 좌충우돌하고 있고
삶에 대한 열정도 그다지 없어 보이니...
“그래도 나는 지금 이 삶이 편안하고 좋은데”라며 애써 위안을 찾으려고 하면
녀석은 한심하다는 듯이 쓴웃음만 짓습니다.
그럴 때는 녀석의 관심사를 밖으로 돌리는 것이 최선이기는 한데
세상에서 들려오는 얘기들은 죄다 증오의 목소리이거나 따라잡기 힘든 광란의 소음뿐이니
제 마음은 그에 편승해서 더 목소리를 높입니다.
“이럴수록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연민의 마음은 잃지 말자. 그들이 나의 과거고 현재이고 미래니까”라며 녀석을 다독여보지만
이미 마음속에는 냉기가 가득해서 제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습니다.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녀석이 저질렀던 부끄러운 기억을 끄집어내서 살며시 들이밉니다.
그러면 녀석은 “씨발 씨발”거리면서 슬쩍 뒤로 빠져버리고
마음이 조금 조용해지죠.
언제 또 녀석이 고개를 들이밀지 모르니 조심하면서
소란 뒤에 찾아온 그 고요를 잠시 즐겨봅니다.
(김일두의 ‘가난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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