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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리도 가난하지만 너무도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가득이다.
그 이야기가 삶에서 나온 것이어서 생생하다.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이 넘쳐흐른다.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지 않고 간결하게 써놓았다.
그림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 모든 것이 모여서 정말로 아름다운 이야기책이 만들어졌다.
폐암으로 힘겨운 시간을 버티고 있던 이가 삶의 끄트머리에서 적어나간 시들이다.
말기 암환자의 시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맑고 깨끗한 시들이다.
너무 너무 착해서 뼛속까지 착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시들이다.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하는 초등학교 5-6학년 또래의 아이들의 얘기들을 단편으로 써놓았다.
큰 일 없이 소소한 일상의 얘기들이지만 그 속에는 불안정한 가정, 친구 없는 외로움, 가난과 같은 삶의 짐이 묵직하게 들어있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런 현실에 짓눌리지 않고 나름 씩씩하다.
애써 환상으로 도피하지 않으면서 아이들만의 방식으로 그런 현실을 살아가는데 그 얘기를 듣다보면 마음속이 따뜻해진다. 순수함과 따뜻함과 씩씩함을 아이와 어른에게 동시에 전해주는 소설이다.
별거 아닌 것 같은 짧은 소설 네 편을 모아 놨다. 그것도 각기 다른 작가들의 소설이다. 표지도 조금 유치하다.
편하게 읽어나가는데 한 편 한 편을 읽을 때마다 가슴 속에 뭔가가 묵직하게 놓이는 기분이다. 글도 쉽고, 내용도 특이하지 않고, 유치하다 싶을 정도의 기교 정도만 살짝 부렸는데... 내공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죽을 만큼 힘든 이가 있었다. 그러나 그가 기댈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엄마는 엄마대로 죽을 만큼 힘들었고, 선생은 선생대로 죽을 만큼 힘들었다. 모두가 죽을 만큼 힘들게 살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죽을 만큼 힘들었던 그는 죽어버렸다.
지독하게도 현실적인 소설이다. 청소년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보다는 차가운 현실을 보게 하는 청소년 소설이다. 그래서 죽을 만큼 차가운 현실에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줄지도 모른다. 짧은 소설이 긴 여운을 남긴다.
권정생의 글들 중에 가장 대중적으로 많이 읽힌 소설이다. 이 책은 길게 소개하고 자시고 할 것이 없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면서 살아가는 삶에 대한 얘기다.
작위적이지 않은 민중적 감동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낮은 곳에서 세상을 볼 줄 알았던 권정생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중학생들이 어른들을 향해서 반란을 일으켰다. 한때 혁명을 꿈꾸다가 현실에 안주했던 어른들과 그 혁명을 진압했던 어른들이 애들의 반란에 맞서 하나가 됐다.
발상만 신선한 것이 아니라 얘기 방식도 신선하고 철학도 신선하다. 청소년 소설이라고 내용 없는 교훈을 설교하지도 않고, 어정쩡하게 현실과 타협하지도 않는다.
유쾌 상쾌 통쾌한 소설이다.
많이 산만한 토토가 어렵게 찾아간 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서로를 존중하는 삶을 배워간다. 일본의 초기 대안교육의 한 모습을 어린이의 눈과 마음으로 깔끔하게 그리고 있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가 브라질 빈민가 소년의 순수함과 감동이라면, '창가의 토토'는 일본 중산층 소녀의 순수함과 감동을 전해준다.
청소년 소설의 장점은 아주 쉽게 읽히면서도 감동이 있는 책들이 많다는 점이다. 가난한 빈민가의 어린 소년이 꿈을 품으면서 가난과 폭력의 삶을 이겨낸다는 류의 청소년 소설들이 무수히 많지만, 그중 가장 뛰어난 책을 꼽으라면 단연 이 책이다.
그들의 삶이 생생하게 숨을 쉬면서 그들의 몸부림이 처절하게 전해진다. 그 생생함과 처절함 속에서 다가오는 감동은 어거지로 만들어진 감동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그래서 아직도 많은 이들이 제제를 생각하고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무지 가난하고 힘든 시절을 보내는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그 힘겨움을 이겨내는 방법은 아이들만의 상상력과 순수함이다.
자칫 뻔할 수 있는 얘기인데 자연스럽게 현실과 상상을 넘나들면서 마음속에서 힘과 온기가 피어오르게 한다. 아이들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참 좋은 동화다.
부모도 없이 혼자서 오래된 집에 사는 소녀라면 다양한 선입견이 생길 것이다. 그런데 삐삐 롱스타킹은 어른들의 그런 선입견을 완전히 날려버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자유롭게 살아간다.
이런 유의 어린이 소설에서 흔히 보이는 어른들과의 대립으로 이야기를 몰고 가지도 않고 이야기의 흐름마저도 자유분방하다. 삐삐는 아이들의 영웅일 뿐 아니라 어른들의 거울이기도 하다.
순간적으로 발작하듯 무지막지한 폭력을 휘두르는 엄마가 있다. 그 엄마와 함께 아빠가 다른 동생을 돌보며 살아가는 소녀가 있다. 상처받은 가족 속에서 소녀는 숨죽여 살아간다. 체념 속의 삶을 어린 나이에 배우고 있다. 누군가의 손이 절실한 소녀에게 역시 상처가 많은 한 소년이 나타난다. 조심스럽게 둘은 친구가 되지만, 소녀의 상처는 너무 크고 깊다.
너무 사실적인 얘기다. 그리고 어른이 잘난 척 아이들을 교양하는 소설이 아니라 아이들 눈높이에서 아이들의 고민을 진지하게 담고 있다. 내가 손을 내밀어 주고 싶다.
꼬맹이가 조금씩 세상을 알아가면서 세상살이가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발버둥 치는 법을 배우게 되는데 점점 발버둥이 커져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세상에 무시무시한 악마는 없다. 적당한 무관심과 적당한 관료주의와 적당한 개인주의만으로도 순진한 꼬맹이를 범죄자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애들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어른들도 충분히 알고 있지 않나? 책을 덮고 나서도 오랫동안 가슴 속에 뭔가가 남아 있다.
13층 나무집에 두 아이가 살고 있다.
그곳에는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은 뭐든 다 있다.
그리고 상상할 수 없는 것도 있다.
그냥 그곳에서 종횡무진 돌아다니며 마음껏 즐긴다.
단순히 다양한 아이디어들로만 채워진 이야기가 아니다.
얘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너무 자유로워서 그저 웃으며 따라가기 바쁘다.
만화와 이야기가 어우러진 방식도 흥미롭다.
읽고 나면 남는 건 없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마음껏 즐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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