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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130회 – 쓸모없는 버러지 같은 삶

 

 

 

1

 

요즘 배우 이순재씨가 돌아가셨다고 많은 기사가 쏟아지고 많은 이들이 안타까움을 표하고 있습니다.

또 거의 동시에 아나운서 변웅전씨도 돌아가셨다는 기사를 접하기도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tv로 봐왔던 유명한 분들이라서 그분들의 부고 소식에 눈길이 가더군요.

그와 비슷한 시기에 sns에 또 다른 분의 부고 소식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형제복지원사건 피해생존자셨던 고 정인호님께서

11월23일 밤 지병으로인해 병원에서 사망하셨습니다, 가족이라고는 혼인신고를 하셨는지 안하셨는지는 몰라도 지적장애가 있으신 사모님만 계셔서 무연고장례식을 치를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메리놀병원에서 무연고 장례비용 만으로 공연장래를 치를수있도록 협조를 해주셨기에 이렇게 빈소를마련하여 공영장례를 치를수있게 되었습니다,

형제복지원사건 피해생존자 (실종자, 유가족)모임 대표로서 살아생전에 누구로부터도 환영받지못한삶을 살아온 피해당사자들이 저세상으로 가는 길 마저 외롭게 보내드리는것은 아니다 싶어서, 가족이 없는 분들한해서는 빈서에서 조문도 받고 외롭지 않게 떠나가실수 있게 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빈소를 마련해서 장례를 치를수있게 몇날몇일 맘고생해가며 도움을 주신 동 구청 관계자분들과, 부산시 한성호주문관님, 뚜벅뚜벅센터 김형란선생님, 영화숙재생원 손석주대표님 과 함께하는 활동가님들, 이재안전도사님,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메리놀병원 장례식장 2호실 11월26일 공영장례이다보니 오전7시부터 오후1시까지 조문을 받습니다,

조의금은 받지 않는다는점 유념해주시면 감사드립니다,

형제복지원사건 피해생존자 (실종자, 유가족)모임

 

 

이 분이 어떻게 살아오셨는지는 잘 모릅니다.

이 짧은 부고 소식에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어릴 적에 상상하기 힘든 끔찍한 경험을 했고

그 이후 세상에서 버림받은 채 힘겹게 살아오시다가

찾는 사람도 별로 없는 조용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겁니다.

 

최근에 연이어 들려온 부고 소식들을 접하면서

제 마음은 자연스럽게 정인호씨를 향하더군요.

제가 살아왔던 삶도 그렇거니와 제 마지막 모습도

그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를 보면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라고 시작해서

“앞서서 나가지 산 자여 따르라”라고 끝납니다.

그 가사처럼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평생을 살다가 조용히 돌아가신 그 분이

“앞서서 나가지 산 자여 따르라”라고 나지막이 읊조리는 것 같네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 : 한종선님의 페이스북

 

2

 

텃밭 한 켠에 심어놓았던 땅콩을 수확했습니다.

줄기와 뿌리를 들어내어 주렁주렁 달린 땅콩을 기분 좋게 바라봤습니다.

조그만 땅콩 한 알이 자라서 수 십 개의 땅콩을 매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식물의 번식력에 또 한 번 감탄하게 됩니다.

 

땅속에 남아있는 땅콩들을 찾아내기 위해 땅을 긁어내고 있는데

갑자기 뭔가 꿈틀거리는 것이 보여 깜짝 놀랐습니다.

뭔가 싶어서 봤더니 지렁이였습니다.

물렁물렁한 표면에 흙색과 비슷하고 길다란 것이 슬글슬금 움직이는 모습은 살짝 징그럽기도 하죠.

하지만 지렁이는 땅속에서 유기물들을 분해해서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대표적인 익충입니다.

땅속에 지렁이가 많다는 것은 흙의 상태가 좋다는 징표이기도 하기 때문에 처음에 놀라고 징그러웠던 감정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반가움이 올라옵니다.

그래서 지렁이가 보이면 반갑게 인사를 하고 조심스럽게 다시 흙을 덮어줍니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땅속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살아가고

어쩌다 사람들 눈에 띄면 징그러운 외모 때문에 불쾌감을 안겨주기도 하고

낚시를 위한 미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다지 쓸모도 없는 녀석이지만

땅속에서 묵묵히 자기 삶을 살아가는 녀석 덕분에 농사에는 많은 도움이 됩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버러지의 삶에도 이런 쓸모가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3

 

‘나는 반딧불’이라는 노래에 보면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벌레였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렇게 별 볼일 없는 조그만 벌레여도 빛나는 존재여서 괜찮다고 위로를 하죠.

 

그 노래를 들으며 저를 돌아봅니다.

거대한 혁명의 꿈을 안고 한때는 잘 나간다고 생각하며 살던 저였지만

지금은 세상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살아가는 존재일 뿐입니다.

제가 세상을 향해 뭔가를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고

뭐라고 외쳐봐야 공허한 메아리만 들려올 뿐이고

수시로 무시당하고 외면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익숙한 그런 존재입니다.

하지만

가족들과는 서로 정을 나누며 다정하게 살아가고 있고

사랑이와는 서로가 더없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 주고 있고

동네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정을 주고받고 있고

온라인에서는 몇 명 되지 않는 사람들과 읽는 라디오를 공유하며 소통을 하고 있습니다.

저의 존재가치는 딱 그 정도 범위에서 빛나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더 편안하고 좋습니다.

그 정도 범위라면

욕심도 별로 생기지 않고

상처도 별로 받을 일 없고

사소한 것 하나도 너무 감사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죠.

 

땅 속에서 살아가는 징그럽고 쓸모없는 지렁이도

조용히 제 삶을 살아갔더니

풍성한 땅콩을 제게 선물해줬습니다.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신 정인호님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쓸모없이 살아왔던 삶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사람이었을지 모릅니다.

 

세상에서 가장 하찮은 존재들과 하나 됨을 느끼는 이 순간

제가 미칠 수 있는 범위까지만

그 간절함과 따뜻함을 담아 보내봅니다.

 

 

 

(자우림의 ‘그래 제길 나 이렇게 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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