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 목록
-
- 다시! 83회 – 겸손한 삶
- 11/26
1
평소처럼 밤 9시에 잠이 들었고 평소보다 조금 이른 새벽 4시에 잠이 깼습니다.
평안한 명상음악을 들으며 몸과 마음을 깨우려고 컴퓨터를 꼈는데
‘오세훈 서울시장, 계엄에 반대한다는 입장 발표’라는 기사를 봤습니다.
너무나 뜬금없어서 기사를 클릭했더니 더 뜬금없고 황당한 내용들이 넘쳐나고 있더군요.
자리에 누워 잠시 이 상황을 이해보려고 했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일어나서 tv를 켜고 뉴스를 봤습니다.
심야 계엄발표, 계엄군의 국회진입, 국회에서의 계엄철회요구안 통과, 정치인들의 격양된 성명, 시민과 군인들의 대치 등의 소식들이 정신없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뉴스들을 보며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자 처음 밀려드는 생각은 두려움이었습니다.
책이나 영화나 미얀마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했던 계엄은 무시무시하고 살벌했기 때문입니다.
“내 과거 전력과 전과 때문에 요주의인물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동안 인터넷에서 꾸준히 글들을 올려왔는데 이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
“박근혜 탄핵 때는 피켓을 들고 와서 하우스 입구에 붙여놓기도 했었는데 이미 마을사람들 사이에 빨갱이로 알려진 것은 아닐까?”
이런 걱정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서 어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이어지는데
갑자기 대통령이 등장하더니 “국회의 요구에 따라 계엄을 해제한다”고 발표하는 것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이 상황은 더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군대까지 투입해놓고 갑자기 왜 계엄을 해제한다는 걸까?”
“계엄을 해제한다고 하면서 왜 국무회의는 당장 열리지 않는 거지?”
“잠시 방심하게 만들어놓고 더 세게 밀어붙이려는 걸까?”
그렇게 머릿속이 더 혼란스러워지는데 잠시 후 ‘국무회의에서 계엄 해제 의결’라는 자막이 보이더군요.
잠에서 깨고 30여 분간 이어진 상황이었습니다.
“이 비현실적은 상황은 뭐지?”라는 생각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가만히 누워서 뉴스만을 계속 보다가 누워만 있을 수는 없겠다 싶어서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아침을 먹고 사랑이와 산책을 하는데 마을은 평소처럼 조용하고 편안해보였습니다.
그 편안함이 오히려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심란한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책을 보거나 영화를 보려고 했지만 제 마음은 온통 ‘계엄’이라는 것에 사로 잡혀있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하루 종일 각종 뉴스를 찾아보며 이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했습니다.
비현실적인 상황을 받아들이고 났더니 현실의 모습이 보이더군요.
이 나라의 시스템은 돌발 상황에도 생각보다 견고하게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위기 상황을 극복했던 힘은 평소에 그렇게도 비판했던 정치인과 언론인들에게서 나왔습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가장 결연하게 투쟁의 목소리를 높인 것은 무능하고 무기력하다고 비판했던 민주노총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더없이 소심하고 나약한 존재였습니다.
2
비현실적이었던 하루가 지나고 났더니 조금씩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소식들은 여전히 비현실적이었습니다.
쿠데타를 일으켰던 장본인들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국회에 나온 계엄사령관은 순한 얼굴로 “저는 잘 몰랐습니다”라는 답변만 반복하고
성난 민심을 보여줄 것 같았던 촛불집회는 아주 초라했고
정치인과 언론인들을 제외하고는 그리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첫날의 모습보다 둘째 날의 모습이 더 비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런 세상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으려니 뭔가 이상하기만 해서 촛불집회에 나갔습니다.
초라한 촛불 행렬에 단 한 명의 힘이라도 보태고 싶었고
한마음으로 모인 그 공간에서 소심하고 나약한 제 자신에게 힘을 주고 싶었고
세상의 현실이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몸으로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각종 깃발이 나부끼는 집회는 뉴스에서 보던 것처럼 초라했습니다.
촛불도 없었습니다.
주위는 다소 산만하기도 했습니다.
날씨는 그리 춥지 않았는데 제 마음은 추워지더군요.
그런데 주최측에서 나눠준 손피켓에는 ‘윤석열을 타도하자’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90년대 ‘노태우 정권 타도’를 외치며 격렬한 가두투쟁을 벌이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집회는 그때의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어둠에 찬 반도의 땅 피에 젖은 싸움터에 민중의 해방 위해 너와 나 한 목숨 바쳐”라는 결연한 투쟁가도 들리고 “딸들아 일어나라 깨어라”라는 여성해방의 노래도 들려왔습니다.
마이크를 잡은 이들은 목소리를 높여서
다 알고 있는 규탄의 내용을 반복하거나
은근한 선민의식을 드러내며 앞서서 싸우자고 주장하거나
더 많은 이들이 보일 때까지 계속 투쟁하고 외쳤습니다.
말랑말랑한 촛불집회가 아닌 결연한 투쟁결의대회였지만
그 공허함과 이질감은 뉴스를 보며 느꼈던 비현실성만큼 비현실적이었습니다.
그나마 집회 마지막에 한 분이 계엄발표 당시 느꼈던 공포와 두려움을 솔직하게 얘기하시면서 “우리의 소중한 일상을 지키는 것이 지금 이 자리에 나온 이유입니다”라고 하실 때 공감을 할 수 있어서 힘이 되더군요.
3
요즘 소설책을 한 권 읽고 있습니다.
어느 작가가 정체 모를 기관에 의해 감금된 상태에서 그들에 의해 강요된 글쓰기를 하게 되는 내용입니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불안과 저항과 체념 같은 온갖 감정들을 보여주고 있는 소설입니다.
평소라면 “작위적인 설정 속에서 자기만족적인 사고실험을 하는 소설”이라고 깎아 내릴 수 있겠지만, 지금의 이 비현실적인 상황에서는 이 소설 속 상황이 너무나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지금도 뉴스에서 눈을 떼기 어렵고
2차 계엄가능성에 대한 뉴스가 나오면 가슴이 벌렁거리기도 하고
제 자신의 나약함에 환멸이 느껴질 때도 있어서
소설 속 주인공에 오롯이 감정이입하게 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평소처럼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평소처럼 제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보렵니다.
나약하면 나약한 대로, 방황하면 방황하는 대로, 굳건하면 굳건한 대로
제 자신을 오롯이 바라보며 그 모든 것은 감싸 안아 줘야겠습니다.
그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제 자신뿐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세상을 향해 더 활짝 눈과 귀를 기울이렵니다.
일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엄청나게 많은 소식들이 쏟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 소식들에 주눅 들어 숨어버리지 않고 똑똑히 바라봐야겠습니다.
그 속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지만 보고 듣고 기억하는 것은 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주위의 많은 것들을 사랑하며 살아가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계엄이 일상이었던 군사정권시절을 살았던 선배들이 그 시절을 버틸 수 있었던 힘은
불의와 부정의에 대한 분노보다 고통 받는 민중에 대한 애정과 삶에 대한 희망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별 볼일 없는 초라한 삶이지만 이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꼈고, 얼마 되지 않는 이들이지만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개들의 존재가 얼마나 든든한지 알게 됐습니다.
이처럼 소중하고 든든한 것들에 감사할 때 삶을 버티는 힘이 느껴집니다.
비현실적인 나날들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그 모든 것들을 오롯이 느끼고 골고루 바라보면서
다시 찾아올 현실적인 날에서 더 화사하고 따뜻한 기운을 만끽하고 싶습니다.
(정밀아의 ‘방랑’)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