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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과 호흡하는 평의회 출판사

얼마 전에 어느 동지가 메일을 보내왔는데

"기어코 이놈이 돌았어~~" "제정신이 아니야~~"

라고 하더군요.

그림을 너무 열심히 그려서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 한다나 어쩐다나...

물론, 애정 어린 메일이었고, 농담도 섞여 있는 것이라서

기분은 좋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해봤지요.

“내가 정말 미친 건 아닐까?”


음~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이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사회 통념으로 보면 지금 성민이 상태가 정상으로 보이지는 않겠지요.


그래서 간단하게

미친놈이 되기로 했습니다.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하더군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하는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거든요.

미친놈이니까.

이런 마인드 컨트롤도 세상 편하게 사는 방법인거 같더라고요.

그리고 미쳐서까지 혁명을 떠벌린다고 소문이 나면

폼은 나지 않겠습니까? 씨~익


이번에는 출판사를 하나 차려봤습니다.

이 출판사가 책을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미친놈 횡설수설 하는 얘기 들으려니까 미치겠지요?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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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과 호흡하는 평의회 출판사



1. ‘책 읽는 노동자’라는 환상


평생을 운수노동자로 살아왔다가 나이 들어서는 농사를 짓고 있는 아버지가 수술을 받고 병원에 한 달 가까이 입원해 있던 적이 있었다. 한 달 동안 병실에 누워있으려면 시간을 때우는 것이 만만치 않은 법인데, 아버지는 신문조차도 보지 않은 채 견디셨다. 입원할 때 농사 관련 실용서 한 권을 들고 가셨지만, 한 달 동안 다 읽지도 않았다. 뭔가 읽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서 그 시간들을 견딜 뿐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밥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한 채 출근해서 잔업까지 포함해 하루 10시간 이상을 일을 하고 퇴근한다. 술을 한 잔 하게 되면 밤 11시나 12시에 집에 들어와서 잠을 자고, 그렇지 않고 막 바로 집에 들어간다고 해도 저녁을 먹고 나서 숨을 돌리다가 9시 뉴스를 보면서 하품을 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생산직 노동자들의 생활 사이클이다. 이런 삶의 흐름에서 책을 본다는 것은 시험을 준비하거나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정말 힘들다.


현대자동차는 노동조합의 힘이 강한 편이고, 노동 현장이 상대적으로 넓은 편이다. 콘베이어 벨트 시스템과 소음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노동자들은 작업 도중 신문이나 잡지를 왕왕 보기도 한다. 아주 드물게 소설책을 보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뭔가를 읽기보다는 옆 사람들과 얘기를 하거나, 묵묵히 일만 한다. 소음도 훨씬 덜하고 작업에서 여유시간도 훨씬 많은 장치산업 노동자들 역시 신문이나 잡지를 뒤적이기는 해도 책을 읽는 사람은 많지 않다. 몸도 힘들고 마음도 편치 않은 노동현장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책을 조금 읽는 편이다. 활동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지식과 정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0년 이상 활동을 해온 현장 활동가 중 상당수는 아직도 책 읽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사회과학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해방전후사의 인식’, ‘우상과 이성’을 비롯한 이영희의 책, 세계적으로 유명한 좌파 학자인 노엄 촘스키의 책, 무수하게 번역된 맑스주의 원전, 사회구성체 논쟁을 뜨겁게 했던 박현채나 이진경이나 김수행 등의 책들을 읽은 현장활동가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현장활동가들이 게으르거나 통박으로만 운동을 하려고 하기 때문일까? 인식의 반란을 통해 운동을 시작한 학생운동 출신과 현실의 억압을 뚫고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운동을 시작한 현장출신의 접근 방식의 차이인 것은 아닐까?


2. ‘노동자의 출판사’라는 몽상


출판시장이라는 것도 자본주의 체제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이라는 자본주의 시장법칙을 따른다. 책 읽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어떤 사람들일까? 기본적으로 지식인들이 있을 것이고, 수험서를 사야하는 학생과 수험생들이 있고, 소설과 생활 실용서를 주로 읽을 여유가 있는 젊은 여성층이 있고, 경제 실용서와 자기 개설서를 읽어야 하는 화이트칼라층이 있고, 만화나 환타지 소설 등에 열광하는 청소년들이 있을 것이다. 대체적으로 책을 보는 사람들은 젊고 학력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출판사는 주된 수요층의 구미에 맞는 책들을 쏟아낸다. 정신없이 쏟아내는 책 중에서 한두 권만 대박나면 출판사는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과학 출판사처럼 특정 이념과 지향을 갖고 있는 경우 수요층이 매우 한정될 수밖에 없다. 책 한 권을 내서 2천부를 소화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사회과학 출판사들은 최소한의 판매가 가능해야 한다는 고민 속에 주된 수요층인 지식인의 욕구에 맞춰나가게 된다. 노동자와 대중을 얘기하면서도 ‘노동자와 대중에 대한 해석’을 주로 하려는 지식인용 책들이 주를 이룬다.


노동자와 대중에 대한 얘기를 하더라도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일상이기 때문에 자기 눈높이에서 바라보지만, 지식인들은 조금 위에서 관찰하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자기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상용어로 대화하지만, 전체를 조망해야 하는 지식인들은 사회과학적 용어를 사용한다. 상대의 얘기가 자신의 얘기이기도 한 사람들끼리는 서로를 대상화시키지 않고 자기 얘기를 하지만, 사회과학적 의사들은 환자를 다루듯이 관찰하고 해부하고 도려내면서 철저히 대상으로 다룬다.


과거 활화산처럼 대중투쟁이 뿜어져 나오던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에는 출판사들이 대중들의 요구를 따라가기에 정신이 없었다. 지식인들의 혁명적 욕구에 맞춘 원전출판만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활기찬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한 수기와 르포와 소설과 시들이 넘쳐났다. 심지어 대학 화장실에 널려있던 낙서들까지 모아서 책으로 내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사회적 환경이 변하자 출판사들이 담아낼 대중의 목소리도 줄어들었고, 그런 책이 팔리지도 않는 현실에서 삽질을 할 여유도 없어졌다. 출판사가 살아남는 것이 힘들기 때문일까?


최근 들어 인터넷을 통한 소통의 활성화와 다양한 촛불집회로 나타나는 새로운 형태의 대중투쟁의 영향이 출판계에서 나타나고 있다. 인터뷰와 르포 관련 책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대중의 직접 참여를 통한 소통의 중요성이 현실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점을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과거 수기나 낙서 등의 형태로 다듬어지지 않은 대중의 생생한 목소리가 그대로 드러났다면, 요즘 인터뷰와 르포는 대중의 생생한 숨결을 인터뷰이와 르포작가에 의해 세련되게 다듬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결정적으로 요즘의 인터뷰와 르포 관련 책들의 대부분은 젊은 10대와 20대들에게 집중적으로 맞춰져 있다. 한국사회를 변화시키는데 있어서 그들이 중요하기도 하지만, 출판시장에서도 역시 그들이 주요한 수요층이기 때문일 것이다. 찌질이도 못난 노동자 민중의 목소리는 아직도 관찰 대상으로 소외된 채 남아있다.


3. 노동자들이 술만 처먹는 건 아니다


국민학교 밖에 나오지 못해서 맞춤법이 서투른 우리 어머니도 처녀 시절에는 소설을 읽으면서 꿈을 키워가기도 했다. 중학교 밖에 나오진 못한 어느 50대 해고자는 아직도 책 읽는 것을 싫어하지만 가끔 글을 쓰곤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 생활을 해온 어느 해고자도 책 읽는 것을 엄청 싫어하는데, 자기 지역 노동자들의 글을 모아놓은 책은 재미있게 본다. 삶과 일에 치여서 읽고 쓸 여유가 없는 노동자들도 자기 얘기를 하고 싶고, 쉽게 가슴에 와닿는 책을 읽으며 눈물짓기도 하고, 여유만 된다면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는 있다.


이영희나 이진경이나 노엄 촘스키의 책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전태일평전이나 김남주나 박노해의 시를 읽어 본 현장활동가들은 많다. 글을 쓴 사람들의 출신성분이 지식인이냐 노동나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와 함께 호흡하면서, 누구의 언어로, 누구의 얘기를 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생생한 삶의 얘기와 그들의 투박한 정서와 단순하고 단호한 세상사는 이치가 있다면 노동자들에게는 쉽게 스며든다. 노동자들은 머리를 뜨겁게 하는 책이 아니라 마음을 뜨겁게 만드는 책 속에서 마음과 머리가 뜨거워진다.


과거 수기와 르포와 소설과 시와 낙서 등이 봇물처럼 쏟아지던 시기에 자기 얘기를 하면서 가슴이 부풀었을 사람들은 아직도 그 시절의 감동을 잊지 못할 것이다. 물론 그 중에서 유명해 진 사람도 있지만, 그런 사람은 아주 극소수이고,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시 조용히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들 대부분은 다시 책을 읽지 않고 글을 쓰지 않는 삶을 살고 있겠지만, 그 강렬했던 기억과 꿈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직도 그들은 글을 쓰고 싶지만 더 이상 그들을 찾는 출판사는 없고, 그들의 얘기가 있는 책을 읽고 싶지만 그런 책은 많지 않다.


노동자 민중에게 읽을 만한 책을 주면 화장실에서 똥을 싸면서라도 읽는다!

노동자 민중에게 삶을 얘기해달라고 하면 날이 새도록 입을 멈추지 않는다!

노동자 민중에게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만 있다면 가슴 뛰게 하는 힘을 쏟아낸다!


너무 원론적 주장만 하는 게 아니냐고?

웃기지마라!

내가 해봤거든!

“무식하다고 놀리지~말아요!”


4. 지역과 현장에 뿌리를 두는 대중의 출판사


대중의 호흡을 느낄 수 있는 책을 만들고, 대중의 손에서 읽힐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대중의 삶과 노동과 투쟁이 이뤄지는 지역과 현장에 뿌리를 내려야한다. 대중조직이나 계급적 정치조직이 아니더라도 노동자 민중과 호흡하고자 한다면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원칙이다.


최소한 10개의 지역과 현장(노동현장만이 아니라 여타 부문운동이나 소수자운동의 현장)을 중심으로 운영위원회가 구성된다. 이렇게 구성된 운영위원회가 평의회 출판사의 기본적인 모든 사안을 논의하고 결정한다. 운영위원회 외의 별다른 옥상옥 구조를 두지 않고 최소한의 업무처리를 위한 실무자를 1~2명 정도 둘 수 있으며, 기획 사업을 위한 사업위원회를 두는 정도로 체계는 간단하게 한다.


운영위원들은 지역이나 현장별로 자체적인 소통구조를 가질 수 있고, 이 소통구조를 통해 대중 집필자들을 발굴하고 책의 유통을 책임진다. 예를 들어, 울산의 경우 최소한 10~20명의 집필자는 충분히 조직할 수 있는 지역인데, 이렇게 집필자들이 조직되면 지역 차원에서 다양한 사업들을 만들어내면서 대중적 글쓰기를 해나갈 수 있다. 그리고 책이 나왔을 경우 한 지역이나 현장에서 최소 100부의 판매를 책임진다면 책 한 권당 1,000~2,000부를 소화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게 된다.


어떤 책을 어떻게 출판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은 운영위원회를 통해서 해야만 한다. 운영위원들은 지역과 현장에서 대중 집필자들을 다양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한 기획 사업을 준비하더라도 지역과 현장에서 함께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또한 좀 더 많은 대중이 싼 가격으로 책을 구입할 수 있도록 종이질이나 외장에 치우치지 않는 단순한 편집과 출판을 진행한다. 예를 들어, 녹색평론사와 같이 재생지를 사용한다거나, 판매에서 인세나 이윤개념을 없애는 방안 등을 모색할 수 있다.


지역과 현장을 기반으로 한 운영위원회가 중심이 되기 때문에 운영위원들이 재정에 대한 책임도 갖는다. 초기 재정은 운영위원 각출, 지역별 사업, 출판사 기획사업 등을 통해 충당하고, 책의 판매를 통해 생기는 수익금은 기본적으로 지역과 현장별로 자체 규정을 두어 처리한다. 지역이나 현장별로 판매와 수익금 발생에서 불균형이 발생하는 문제나 출판사 전체 사업을 위해 발생하는 부채의 처리 방안에 대해서는 운영위원회에서 기본 원칙을 정해서 공동으로 해결해나간다.


이런 구조에서의 딜레마는 출판사가 살아남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과 조직중심의 운영으로 경직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에서 이윤을 내지 못하는 사업들은 돈과 열정만 꼴아 박다가 단명하기 마련이다. 단순하게 얘기하면, 그렇게 하자는 것이다. 출판시장의 논리를 따라가다가 정체성이 상실되는 것보다 정체성을 살리다가 문을 닫더라도 그런 실험을 과감하게 해보는 것이 더 소중하다. 물론, 최대한 오래 버티도록 노력은 해야겠지만...

출판사 스스로가 대중 속으로 파고들지 못하고 조직 중심의 운영으로 경직된다면 그 출판사의 결론은 둘 중의 하나다. 문들 닫거나, 전문가 중심의 관료조직으로 변질하거나. 그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관건은 어떻게 대중과 호흡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조직 운영에서의 핵심이다. 그렇게 해 보려고 하는 일이 그렇게 되지 않았다면 실패한 것이다.

단명하거나 실패해서는 안 되겠지만, 실패를 두려워하지는 말자!


5. 어떤 책들을 만들 수 있을까?


1) 무지랭이 문고


대중적으로 유명한 글쟁이도 아니고, 교수나 변호사 같은 사회적 직함도 없고, 빵빵한 조직적 후원을 기대할 수도 없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내가 활동했던 울산에서 그런 능력과 열정을 갖고 있는 사람을 최소한 10명은 알고 있고, 좀 더 적극적으로 찾아본다면 20명 이상은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와 기회일 뿐이다.

지역과 현장에서 그런 사람들을 찾아내서 용기를 북돋아 주자. 필요하다면 글쓰기 교실 등의 형태로 과거의 노동자문학회 같은 모임을 만들어갈 수도 있다. 가장 힘 있는 글들을 쏟나낼 수 있는 이들은 투쟁하는 대중들이다. 그들 속에서 자신들의 억울함과 정당함을 얘기하라고 하면, 그들은 매우 뛰어난 글쓰기 능력을 발휘한다.

글이 투박하고, 완결성이 좀 떨어지면 어떠랴. 무지랭이들이 자기 얘기를 스스로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도 소중한 것인데...


2) 물망초 문고


물망초의 꽃말은 ‘나를 잊지 마세요’이다. 일제시대나 해방공간의 사회주의자들을 기억하는 것도 소중하고, 80년대 거대한 대중투쟁을 기억하는 것도 소중하다. 그에 못지않게 소중한 것이 몇 년 전 완강한 투쟁을 벌였던 무수한 이들의 투쟁이다. 그들의 투쟁을 기록하고 다시 기억하는 것은 지금 우리에게 그 어떤 투쟁들보다 강한 힘과 상상력을 안겨 준다.

아직도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기륭전자 노동자들, 화려한 방조제 공사 완공식으로 묻혀버린 새만금에 반대했던 어민들, 격렬했던 만큼 힘겨웠고 패배 이후에도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는 코오롱과 금강화섬 노동자들, 비리재단 민주화의 모범이었다가 비리재단의 복귀를 저지하기 위해 투쟁하는 상지대 교수와 노동자들,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이었으나 정규직의 배반을 넘지 못했던 한국통신계약직 노동자들, 전국을 집중시켰던 완강한 투쟁에도 삶의 터전에서 정신적 상처만 안고 쫓겨나야 했던 대추리 주민들, 격렬한 파업투쟁 이후 집단 해고된 채 10년의 세월을 버티고 있는 울산의 효성노동자들... 우리가 기억해야 할 투쟁은 너무도 많다.

인터뷰와 르포가 활성화되면서 많은 이들이 인터뷰와 르포를 시도하고 있다. 이들의 역량을 지역과 현장과 결합시키자. 그런 경험들이 많이 쌓여 있기 때문에 르포 작가 2~3명과 지역의 당사자 2~3명이 모인다면 어렵지 않게 기록을 만들어낼 수 있다.

욕심내지 말고 그들의 다양한 기억을 모아서 100쪽 정도의 작은 책들로 만들어보자. 그런 얘기를 담은 부담 없는 분량과 가격의 책이라면 현장에서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3) 혁명을 설계하자 시리즈


혁명이라는 것이 과거에 쓰러지거나 변질해갔던 기억이라거나, 다른 나라에서 시도되고 있는 관찰 대상이거나, 미래에 실현해야 할 꿈만은 아니어야 할 것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그 현장으로 달려가 보기도 하고, 논란이 일고 있는 다른 나라로 뛰어 들어보기도 하고, 미래의 꿈을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다면 우리는 현실을 더욱 깊이 있게 성찰할 수 있고, 상상력도 매우 넓어질 것이다.

내가 해방공간의 전평이나 남로당 간부라면 미국과 우익세력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신탁통치안에는 어떤 입장을 취했을까? 4.19혁명의 주역이었다면 혁명을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끌고 갔을까? 베네주엘라에 지역교류 프로그램으로 참여하게 된다면 어떤 활동을 벌이고 싶은가? 우리 공장에서 노동자통제를 실시한다면 어떤 프로그램을 실행할 것인가? 내가 우리 마을 인민위원장이 된다면 어떤 사업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 우리 대학을 진보적 대안대학으로 바꾼다면 어떻게 바꾸고 싶은가? 등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혁명적 기획의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관심 있는 주제를 중심으로 몇몇이 모여서 자료를 수집하고, 인터뷰를 하고, 토론을 하고, 구체적 설계를 해보자. 그 과정에서 전문가들의 참여가 필요하면 포함시킬 수 있지만, 전문가들은 조언 역할로만 한정하고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자들이 진행해보자. 만만한 주제가 아닌 만큼 최소한 1년 이상의 준비기간을 갖고 구체적으로 점검하고 토론하자. 이견이 있으면 이견이 있는 데로 정리해서 이견을 드러내자. 역사적 사실을 재확인 하거나, 현재의 문제점을 드러내거나, 혁명 전략을 완성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 혁명을 그려보는 것이 목적이어야 한다. 혁명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토론하자.


4) 지도 그리기 시리즈


복잡하고 정신없이 변하는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누구나 자기만의 삶의 원칙이 있을 것이다. 소박하든 거창하든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연결돼는 과정에서 삶의 지도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다양한 삶의 지도를 그려보는 작업은 삶을 풍부하게 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한 명이 하나의 주제를 정해서 최소한 1년 이상 자료수집과 인터뷰, 토론 등을 진행하면서 생생하면서도 풍부한 얘기들을 정리해본다. 지도 그리기 작업을 진행하는 방식과 정리하는 방식은 각자의 스타일에 맞게 자유롭게 한다. 통일적인 대동여지도를 만드는 것은 아니니까.


- 착한 사람들 : 세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 중에 아주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얘기를 모은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착하게 살아가는 것은 많은 아픔을 가슴 속에 쌓아놓고 있어야 하는 것이고, 의도하지 않게 끼친 피해에 또한 아파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세상살이는 어떤 숨결일까? 착한 사람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만, 그들의 얘기를 듣기 위해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이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 공동체 마을 : 서울의 성미산 공동체, 홍성과 태안의 생태공동체, 대전의 지역화폐운동 등 대안적 공동체를 만들고 가꾸어가기 위한 시도들은 많은 곳들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런 공동체 운동을 소개하거나 개괄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깊이 들어가 보자. 그 속에서 사람들은 어떤 희망을 그리고 있고, 어떤 고민들을 하고 있을까?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공동체에서 나온 사람들은 왜 나왔을까? 하는 등의 문제를 생각해보자. 평가하지 말고 다양한 희망과 고민 속에 공동체 지도를 그려보는 것이다.


- 넌 꿈이 뭐니? : “넌 꿈이 뭐니?”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과연 사람들은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10대에서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던져보자. 차분하고 진지하게 꿈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자. 분석하거나 해석하려고 하지 말고 사람들의 꿈에 대해 들어보자. 앞으로 뭐가 되고 싶은지, 내 꿈은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꿈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 80대에 그리는 꿈은 어떤 것이지, 꿈이 너무 많아서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삶의 호흡을 하는지...


- 성찰 : 요즘 성찰이라는 화두가 심심치 않게 얘기되고 있다. 그만큼 우리의 운동이 변질됐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40~50대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성찰에 대한 얘기를 나눠보자. 가장 믿었던 이가 입장을 달리 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등 뒤에서 칼에 찔렸던 경험은 있었는가? 내가 50억짜리 로또에 당첨된다면 그 돈을 어떻게 쓸까? 중요한 권력을 장악했을 때 반대파들을 어떻게 대할까? 남을 비판했던 말을 그대로 나에게 돌린다면? 내가 상처를 줬던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대할까? 등 형식적 질문과 답변이 아니라 마음 속 깊은 얘기를 끄집어 낼 수 있는 것이 관전이다.


- 상상력이 별건가? :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이 아닌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문화활동가들의 대안적 실험들, 대안교육 현장에서의 기발한 상상력, 독특한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는 사람들, 자전거 메신저를 운영하는 사람, 작은 북까페나 동네 도서관의 소박한 경험, 공동체 라디오의 자유로운 실험들, 투쟁 현장에서의 색다른 경험들, 다양한 쉼터의 경험 등 거창하지는 않지만 기존 관성을 거부하면 재기발랄한 상상력은 자유롭게 나래를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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