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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농의 샘, 보는 이의 마음까지 경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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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침에 산책을 하고 있는 사랑이와 저를 발견한 강아지 두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달려옵니다.
그 녀석들의 귀여운 모습을 보며 저는 밝은 미소를 짓지만
무턱대고 앞으로 돌진해오는 강아지가 싫은 사랑이는 으르렁거리며 피해버립니다.
달라붙는 강아지들과 도망가는 사랑이의 실랑이는 산책 내내 이어지고, 강아지들은 집에까지 따라옵니다.
살짝 눈치를 보며 집안으로 들어와서 사료를 발견한 강아지들은 주인의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사료를 먹기에 정신이 없습니다.
그런 녀석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웁니다.
감귤 선과장의 어미 개와 강아지는 주인의 방치 속에 놓여있습니다.
어미 개는 묶여있지만 강아지들은 풀려서 차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선과장에서 위험하게 지냅니다.
주거환경이 열악한 건 둘째 치고 사료와 물도 제대로 주지 않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서 한 달 전부터 묶여 지내는 어미 개를 산책시켜주고 있는데, 엄마가 산책을 나서면 강아지들도 졸졸 따라붙어서 함께 산책을 합니다.
녀석들을 하우스에 데리고 와서 풀어주면 아주 신이 나서 뛰어다니고, 뛰어다니다 지치면 제 곁으로 다가와 품에 안겨서는 제 얼굴을 핥아대곤 합니다.
어느 날 세 마리를 집안으로 데리고 와서 사료를 줬더니 모두 정신없이 먹어대더군요.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저럴까 싶으면서도 현실적인 고민이 동시에 생겼습니다.
“사랑이는 입매가 짧아서 사료걱정은 별로 하지 않았는데 저렇게 식욕이 왕성한 세 마리에게 매일 사료를 챙겨주려면 조금 부담스러운데...”
“입양할 것도 아닌데 어디까지 돌볼 수 있을까?”
“강아지들이 한 두 달만 있으면 완전한 성견이 될 텐데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미 개는 중성화수술도 하지 않았는데 또 임신을 하면 어쩌나...”
이런저런 고민만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봤더니
어떤 분이 개들의 보금자리에 조그만 담요를 하나 깔아놓고 사료도 한가득 갖다놓으셨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제 마음이 뭉클해지는 동시에 살짝 부끄러웠습니다.
녀석들과 정을 나눈다면서도 사료 값이 부담스러워 주린 배를 충분히 채워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연민이 동정이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저는 아직도 이렇게 소심한 연민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2
‘마리안느와 마가렛’이라는 다큐를 봤습니다.
소록도에서 한센인들의 치료와 치유를 위해 40여 년간 함께했던 오스트리아 출신 간호사의 얘기였습니다.
20대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머나먼 나라의 조그만 섬에 들어와서
세상 사람들이 문둥병이라고 꺼려하는 이들 곁에서 평생을 함께 하다가
나이가 들어 자신에게 병이 찾아오자 조용히 그곳을 떠나신 분들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자신에 대한 다큐를 찍겠다고 찾아온 이에게도 “나는 별달리 한 것도 없으니 조용히 잊혀지게 해달라”면서 촬영을 거부하셔서 다큐의 대부분을 소록도 거주자들의 증언으로 채워야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두 분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해주셨는데
그곳에서 공중보건의로 잠시 일을 했던 분의 증언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그분들 집에 가서 식사하고 있는데 웬 사람이 찾아왔어요. 한센환잔데, 자꾸 와서 요구하는 것이 ‘요번에 픽업트럭 같은 거를 사주면 요번에는 틀림없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라는 거예요. 가만히 보니까 전번에도 한 번 도와줬는데 그걸 다 탕진하고 이번에 와서 다시 그걸 부탁하는 거예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저 사람 아무래도 좋지 않은 사람 같으니까 도와주지 마세요’ 그랬더니 마리안느씨가 하는 얘기가 ‘글쎄, 내가 여기서 거절하면 저 사람 아주 나쁜 사람이 되고, 혹시 내가 여기서 가능해서 도와줘서 요번에 저 사람이 혹시 성공하고 마음을 바로 잡아서 그 일이 잘 성사되면 좋지 않겠냐. 내가 웬만하면 한 번 도와주고 싶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 이 사람들은 정말 종교인이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자기 가진 거 다... 그렇게 넉넉하지도 않더라고요, 사실은... 근데도 자기 가진 거 최선을 다해서 남을 도우려고...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건 나쁜 사람이건 도와주려는 이런 자세를 보고 ‘아, 예수님이 우리한테 하는 행동이 이런 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분의 얘기를 듣고 저를 돌아보게 되더군요.
“내안에 안주하지 말고 주위를 둘러보며 살아야 한다.”
“춥고 배고프고 외로운 이들이 몇 년 전 내 모습이기 때문에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의 얘기를 듣는 것이 힘들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더라도 그저 그 옆에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서로가 살아가는 힘이 될 수 있다.”
읽는 라디오를 통해서 제가 자주 해왔던 얘기였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려고 마음을 다해 노력해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절박한 상황에 처해서 도와달라고 호소를 했을 때 사람들은 냉정하기만 했고, 저는 그때마다 배신감을 느끼며 세상에서 점점 뒤로 물러나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그렇더라고 그들을 버리면 안됐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뭔가를 바라고 그들에게 다가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에게 아낌없이 줄 수 있어야 하고, 내가 도움이 되지 않을 때는 스스럼없이 떠나야 한다”고 합니다.
아...
솔직히 그렇게 살 자신은 없습니다.
제 그릇은 그 정도로 크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들려온 얘기를 그냥 무시하기도 어렵네요.
음...
제가 소인배임을 인정하면서도 대인배의 가르침은 가슴 속에 담아두며 살아야겠습니다.
그렇게 살다보면 조금씩이나마 제 그릇이 커질지도 모르니까요.
3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되고 난 후 마음이 안정이 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조금씩 일상을 찾아가니 평온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이 소중한 일상에 감사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직도 일상의 평온함으로 돌아오지 못했거나
삶 자체가 지옥인 분들에게는
이런 얘기도 사치로 들릴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하네요.
이번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광장에 자주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광장의 에너지를 느끼고 싶어서 인터넷으로 집회영상을 자주 보기는 했지요.
다양한 이들의 얘기를 들으며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이 들더군요.
저랑 다른 의견을 말하는 분도 있었고,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어서 공감이 되는 분도 있었고, 제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을 얘기해주시는 분도 있었고, 예상 밖의 용기가 필요한 발언에 깜짝 놀라기도 했었고, 기발한 발상에 미소를 짓기도 했었고, 은근히 가르치려고 드는 발언에 불편하기도 했었고, 횡설수설하는 얘기였지만 귀를 쫑긋하게 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 얘기들을 잘 접어서 가슴 속에 넣어둬야겠습니다.
그 생생한 목소리들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얘기해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기득권을 놓치지 않은 저들은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고
투쟁의 선봉에 있었던 정치인들은 또 다른 기득권을 향해 분주한 계산을 하고 있고
광장은 비워져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가 연결되어 거대한 에너지를 만들어냈던 그 힘은 살아있기에
보잘 것 없는 제 일상 속으로도 그 에너지를 끌어들여 봅니다.
겨울다운 매서운 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너무 추워서 밖에 나가고 싶어지지 않는 요즘인데
사랑이와 선과장 개들을 산책시키려면 자주 나가야 합니다.
그 발걸음에 조금 더 용기를 내서 계속되고 있는 촛불집회에도 한 번 나가봐야겠네요.
(Eric Whitacre's Virtual Choir의 'Lux Aurum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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