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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90회 – 세상과 연결돼서 부끄럽고 행복한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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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어떤 방식으로든 거리의 사람들과 함께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내일이니 미래니, 변화와 혁신이니, 트렌드 리포트니 세대 리포트니 따위를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길바닥에서 눈 맞고 밤새 앉아 있는 사람들이 바로 트렌드다. 소비자다. 팬덤이다. 대중이다. 세대다. 세상이다.

저들이 애써서 얻어낸 결과를 누가 누리는가. 바로 나다. 기성세대다. 중산층이다. 기업인이다. 사업가다. 기득권이다. 우리다.

우리야말로 누군가 희생해서 얻어낸 세상의 무임승차자들이다. 87년까지 안가도 된다.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2020년대 모두 그렇다. 운동권 싫어하고 노동운동 혐오하고 파업에 욕하고 집회에 짜증내고... 그렇게 살았다.

나는 당장 앞으로 내 말과 글이 너무 부끄럽고 위선적일 것 같다.

모르겠다. 사는 게 쉽지 않고 그냥 더 복잡해지는 거 같은데.. 애초에 원래 그랬던 걸 이제야 몸으로 깨닫는 것 같다.

서울대 법대 나온 놈들, 육군사관학교 나오고 경찰대 나온 놈들이 저따위가 된 건 원래 성품이 그래서가 아니라 그래도 되는 환경에서 그래도 된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기랑 여기는 또 뭐 얼마나 다르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만

냉소하지 말고

자기합리화하지 말고

용서없이

앞으로 가고 싶다.

오늘도 저녁 내내 일하고

야간 교대하러 한남동에 간다.

시간이 갈수록 부끄러워하기는 커녕 윤석열이든 국민의힘이든 경호처든 사악하고 이기적인 무리들이 잔머리 굴리면서 뚫린 입이라고 막말하는 걸 못 견디겠다.

니네 덕분에 내가 법치와 국가안보와 자유시장경제를 고민하는 찐 보수가 되어버렸다. 1991년부터 좌익사상에 물들어서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에 평생 후원하고 투표했는데. 씨발!

 

 

차우진님의 페이스북에서 옮겨온 사진과 글입니다.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히면서 느낀 것들을 생생하게 쏟아낸 글이었습니다.

이 글을 몇 번이나 곱씹어 읽으면서 참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가장 열심히 앞장서 싸우면서도 남을 가르치려하지 않고

무수한 고민과 갈등 속에서도 대중의 에너지를 오롯이 즐길 줄 알고

지금의 상황이 어떠한 지를 그 누구보다도 분명하게 말하고 있고

분노와 연민이 함께 어우러져 활활 타오르고 있는 그 모습은

전사 그 자체입니다.

 

지금의 상황에서 한 발 떨어져서 투덜거리기만 하던 제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더군요.

저야말로 ‘누군가 희생해서 얻어낸 세상의 무임승차자’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합니다.

이렇게 부끄러움을 고백하고 뼈저린 각성을 한다고 해서 다시 광장으로 달려갈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곳에서 느낀 이질감까지 극복할 자신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이렇게 한 발 떨어진 자리에서 부끄러워하고 미안해하면서 그들의 에너지와 함께 연결되도록 노력할 뿐입니다.

 

앞만 보고 싸우느라 정신없었을 때는 전선에 있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항상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잠시 뒤로 물러섰을 때에야 후방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있는지를 알게 되고, 그들이 이기적인 무임승자자가 아니라 든든한 응원군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차우진님과 같이 최전선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분들에게 힘이 되기 위해서라도

과거의 제 자신을 가슴 뜨겁게 응원하고 안아주기 위해서라도

그들과 연결되고 연결되도록 노력해보렵니다.

 

 

2

 

 

 

제주항공 참사에 대한 뉴스를 보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애써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국가애도기간은 끝났고

사람들의 눈과 귀는 다시 윤석열에게로 향하고 있고

유가족들에게 험한 말을 하거나 이용해먹는 이들에 대한 기사가 보일 뿐입니다.

그분들의 지옥문은 이제야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없습니다.

외면하지 말자고 다짐할 뿐입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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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귤 선과장의 예쁜이(이 녀석을 챙겨주시는 분이 이런 이름을 붙여주셨습니다)에게 식구가 하나 늘었습니다.

얼마 전부터 유기견 한 마리가 주변을 어슬렁거리더니 같이 어울려 지내고 있습니다.

보아하니 나이는 어린 것 같고, 겁이 많지만 사람을 경계하지는 않더군요.

예쁜이의 성질이 까탈스러워서 조심히 접근하는 것 같지만, 세상에서 가장 발랄한 두 강아지들과는 잘 지내는 것 같더군요.

처음에는 저와 약간의 거리를 두기도 했지만 제가 예쁜이네 식구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을 보고는 조심스럽게 다가오더니 머리를 쓰다듬는 것도 허락해줬습니다.

이렇게 또 하나의 인연이 생겼습니다.

 

비쩍 마른 몸에 정서적으로도 불안정했던 예쁜이는

산책도 자주 하고 주위에서 챙겨주는 사람도 많아서

살도 찌고 붙임성도 엄청 좋아졌습니다.

예쁜이 가까이 가면 꼬리를 격하게 흔들며 반기다가

제가 자세를 낮추면 제게 와락 달려와서 제 얼굴을 핥아댑니다.

그런 예쁜이를 쓰다듬어주면 제 품에 안겨 편안하게 제 손길을 느낍니다.

그렇게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합니다.

 

이제 점점 커가는 두 강아지를 계속 망치해둘 수 없는 것도 고민이고

새로운 인연으로 다가온 백구는 어떻게 해야 할지도 고민인데

예쁜이에게 발정기가 찾아온 것이 또 고민입니다.

겨울이 지나면 선과장도 닫힐 텐데...

녀석들과 정이 쌓이는 만큼 고민들도 늘어가지만

이렇게 인연이 이어짐에 감사할 뿐입니다.

 

 

 

(김애라의 ‘하얀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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