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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VJ, 그 시절 미얀마의 투쟁이 오늘의 우리와 연결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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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십 년 동안 군부통치가 이어져 오고 있던 미얀마에서는 사람들이 말을 잘 하지 않는다.

비밀경찰이나 끄나풀들이 곳곳에서 귀를 쫑긋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하겠지만 시위라는 것도 상상을 못한다.

아주 큰 용기를 낸 누군가가 시내 중심가에서 구호를 외치는 순간 주위에 있던 사복경찰들이 달려들어 순식간에 잡혀간다.

2007년 미얀마의 중심지 양곤에서 그런 모습을 은밀하게 촬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조그만 캠코더 카메라를 몰래 들고 다니며 몸부림치며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찍고 그것을 외국으로 보내 세상에 알린다.

목소리를 외치는 사람이나 그것을 찍는 사람이나 목숨을 걸고 해야 하는 일이다.

그렇게 처절한 그들의 목소리와 영상으로 만들어진 다큐였다.

 

일군의 사람들이 힘들게 구호를 외치다가 순식간에 잡혀가는 상황에서 승려들이 군인들에 의해 폭행을 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평소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던 승려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거리로 나섰다.

미얀마 국민들의 절대적 신뢰를 받는 집단이어서 군부마저도 함부로 하기 어려운 것이 승려였지만 그들이 서슬 퍼런 군부를 상대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거리로 나선 승려들은 처음에는 일반인과 분리된 채 자신들의 요구만을 말하려 했지만 승려들의 뒤를 따르는 시민들이 순식간에 불어나면서 대규모 시위로 발전했다.

시민들은 뜨거운 박수를 치고 간절한 기도를 올리며 승려들을 응원했고, 용기를 얻은 시위대는 억눌렸던 요구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그리고 시위대는 군부가 가장 민감해하는 아웅산 수지가 갇혀있는 자택으로까지 행진을 벌였다.

 

다음날부터 군부의 반응은 민감해졌다.

5인 이상 시위 금지령을 내리고 곳곳에 군인과 경찰을 배치했다.

야간 통행금지령도 내려졌다.

살벌한 분위기가 감도는 가운데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조심스럽게 모이기 시작하더니 다시 승려들과 시민들이 대열을 이뤄 행진을 했다.

군인과 경찰은 즉시 무자비한 진압으로 맞대응을 했고, 사찰에까지 몰려가서 승려들을 마구잡이고 잡아들였다.

승려들이 잡혀가자 젊은 학생들이 선두에서 서서 싸우기 시작했다.

죽음을 각오하고 투쟁에 나선 이들에게 군대는 발포를 하기 시작했고 곳곳에서 피의 진압이 이뤄졌다.

특히 카메라에 더 민감해서 반응해서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외국인이라도 거침없이 사살해버렸다.

그 모든 과정이 누군가의 증언이나 자료가 아니라 현장을 찍은 카메라로 보여 졌다.

총소리가 수시로 들리고 군인들의 살벌한 진압이 이뤄지는 한복판에서 목을 숨긴 채 찍은 영상들을 보고 있노라면 숨이 막혔다. “차라리 이게 극영화였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무수한 이들이 죽고 잡혀가면서 그들의 투쟁은 또 한 번 짓밟혀 버렸다.

그 투쟁을 영상에 담아 외국으로 보내던 활동가들도 하나 둘씩 잡혀 들어가 버렸다.

인접국인 태국에서 국내 활동가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영상을 외국으로 전달하던 이는 국내 활동가들이 다 잡혀가자 본인이 카메라를 들고 다시 미얀마로 들어간다.

그렇게 이 다큐는 끝이 났다.

 

그들의 그런 치열한 노력 끝에 2015년 미얀마에 민주정권이 들어섰다.

드디어 미얀마에도 봄이 와서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듯했다.

그러나 그 희망은 오래가지 못한 채 2021년 또 한 번의 쿠데타로 껶여버린다.

그에 맞서 또 다시 목숨을 건 투쟁이 이어지고 있는 미얀마 소식을 우리는 몇 년 째 듣고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이 땅에서 계엄령이 선포되고, 그에 맞선 싸움이 벌어지고, 대통령 탄핵과 우익들의 준동으로 혼란스러워진 나날을 보내고 있다.

10년 전 멀리 있는 남의 나라에서 일어났던 상황이 바로 지금 이곳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벌어졌던 국회의사당 폭동사건도 서울 한복판에서 재현되는 것을 보며 세계는 기묘하게 연결되고 있다는 것도 확인하고 있다.

오래전에 조약하게 만들어진 이 다큐멘터리가 그 시절 미얀마의 얘기만이 아닌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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