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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98년 투쟁의 기록

현대자동차 98년 투쟁의 기록

8월 12일 수

오후 3시 30분에 협상이 결렬되었다. 이후 언론에서는 일제히 공권력 투입이 입박했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위원장은 협상 결렬 이후 조합 사무실 위에 만들어 놓은 철구조물에서 농성에 들어갔다. 몇일째 전경들은 현대자동차 주변에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고, 헬기가 현대자동차 상공을 계속 순회하였다. 가족대책위의 선무방송차량은 인근 아파트와 주택가를 돌면서 선무방송을 계속하였다.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어떻게 살라는 말입니까?" "정리해고 막자는데 공권력이 왠말이냐!" 물건을 사러 들른 복지매장의 여직원이 선무방송차량의 선무방송을 듣고 "옳소"라고 동의를 표하였다. 전경들은 퇴약볕 아래에서 축구시합과 응원전을 하면서 사기를 모으고 있었다.
저녁부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무장한 전경들이 비속에 이동하는 모습이 더욱 긴장감을 높게 만들었다. 어제부터 밤이 되면 전경들이 인근에서 철수한다. 공권력을 투입하기 이전에 긴장감을 풀어놓기 위한 수법인데, 이미 공권력과의 수 차례 싸움 경험이 있는 활동가들에게는 더욱 긴장감을 갖게 하는 것이다. 사수대는 야간에 경비를 사면서 쇠파이프가 지급되고 있다. 현장에서는 내일 새벽이나 모레 새벽에 공권력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농성대오는 휴가 이후 불어났고, 현장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8월 13일 목

아침 출근길
비가 내리는 가운데 전경차들이 각 문앞에 서너대씩 세워져 있다. 정문과 구정문 앞에는 처음으로 페퍼포그가 등장했다. 출근 시간 각 문앞에서의 사측 구사대와 노동조합 조합원들의 신경전은 다소 소강상태다.
정몽구 회장과 관리자, 구사대 등 수 백명이 3공장에 진입하였다. 사수대를 중심으로 현상사수투쟁을 벌였다. 젊은 회장을 중심으로 사측 관리자들이 대의원을 밟고 넘어 들어왔고(그 대의원은 전치 4주의 부상을 입었다), 사수대는 좌우로 오토바이를 타고 경적을 울리면서 관리자들을 몰아냈다. 공권력 투입의  빌미를 마련하기위한 폭력사태 유발에는 실패하였지만, 언론플레이에는 충분했다. 언론에서는 집중적으로 그 장면이 보도되었다.
10여 일째 파업투쟁 중인 태광산업에서 노조동합 사수대와 관리자와의 충돌이 있었다. 당연히 경찰병력이 배치되어 곧 투입될 태세를 갖추었다. 현대자동차 기동대 100여 명이 오토바이로 이동하여 지원투쟁을 벌였고 경찰병력은 철수하였다.
오늘은 헬기가 도는 대신 전경들이 기합소리를 내면서 현대자동차 인근 인도를 자주 행진하는 무력시위를 벌였다.
저녁 집회
저녁 8시부터 본관 앞 광장에서 집회가 열렸다. 파업투쟁 이후 가장 많은 인원인 2만명이 집회에 참가하였다. 정문 앞 육교위에는 인근 주민들이 집회를 지켜보기 위해 모여들어 육교가 가득찼다. 집회 열기는 매우 드높았다. 광장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본관 옆 길까지 대오가 이어졌다.
박유기 기획실장은 앞으로 좀더 강도 높은 투쟁을 벌일 것이라면서, 우선 정몽규 회장을 비롯한 관리자들을 내일 폭력협의로 고소고발할 것이라고 발표하였고, 조합원들은 환호성과 박수로 답하였다. 이어 촛불 점화가 있었다. 연단에 있는 비대위원들이 먼저 촛불에 불을 붙이고, 앞에서부터 조합원들이 초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들불에 불이 번지듯이  앞에서부터 붙기 시작한 촛불이 점차 대열 뒤로 향하였다. 한마디로 장관이었다. 조합원들은 촛불을 붙여들고 '솔아 솔아 푸른른 솔아' '아침이슬' '직녀에게' 등의 노래를 함께 불르면서 열기는 높아졌다. 이어 대오는 농성텐트들이 쳐져 있는 본관 앞거리를 행진하여 위원장이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노동조합 앞으로 이동하였다. 노동조합 위 철제 구조물 위에서 위원장이 아름다운 투쟁을 강조하는 연설이 있었다. 위원장의 연설을 마치고 대오는 다시 인근  건물을 돌고 나서 각 사업부별로 해산하였다.

8월 14일 금

출근길의 전경차량이 각 정문앞에 배치되어 있는 것은 마찬가지 였다. 가족대책위는 역시 피켓을 들고 선전전을 벌이고 있었고, 정문 안에 조합원들이 모여있었다.
오늘도 3공장 아토스라인에 사측 관리자들이 조업을 시도할려고 들어갔지만 실패했다.
오후 4시 30분경 민주노총 집회를 참석하기 위해 각지의 노동자들이 모이는 것 때문인지 전경차 10여대와 지휘차량, 페퍼포그 차량이 외각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집회를 앞두고 사측이 헬기를 동원하여 삐라를 뿌렸다.

경고문
아직도 사내에는 불법 농성자들이 불법 점거 및 폭력을 휘두르며 정상조헙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회사는 오늘(8/14) 15:00부터 무기한 휴업을 결정하였습니다.
이 시간부터는 출입허가를 받은 직원만 회사에 출입할 수 있습니다.
노조는 현재 사내에 있는 모든 치장물을 철거해야 하며, 지금까지 잔류하고 있는 모든 인원들은 즉시 퇴거할 것을 명합니다.
회사는 온갖 폭력과 파괴를 일삼고 있는 일부 인원에 대해 더 이상 인내할 수 없는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따라서 회사는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회사의 조치를 무시하고 계속 잔류하며 불법파업, 폭행, 파괴행위를 집단적으로 행하는 사람 모두에게 회사는 형사상 고소는 물론 민사상 손해배상을 끝까지 추궁하여 다시는 우리 회사에서 불법파업이나 폭력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조치할 것입니다.
1998. 8. 14
현대자동차(주) 사장 박병재

거리에 뿌려진 삐라를 어린애들이 신나서 주웠고, 청소부가 청소를 위해 주워들었다. 지나가던 차들이 멈춰서서 청소부에게 한장 달라면서 받아갔다.
5시 30분경 현대자동차 조합원들이 사내에서 대오을 형성하고 풍물패를 앞세우고 집회장소인 사택 운동장으로 이동한다.
현대자동차 조합원 대오가 들어오면서 무대 왼쪽부터 자리를 잡고 앉기 시작하고, 타사업장과 타지역 조합원들이 그 옆으로 대오를 지어 앉기 시작한다. 문선대의 문화공연으로 사전 문화행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집회가 시작할 무렵에는 운동장의 반 이상이 차고, 스텐드에도 사람들이 들어찼다.
집회는 별로 힘있게 진행되지 못했다. 문화행사 프로그램도 그렇고, 집회 프로그램도 마찬가지고 알차거나 힘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없었다. 그렇지만 현대자동차 조합원들의 조직적이고 단결된 모습은 돋보였다. 현대정공은 휴업중인데도 100여 명이 참가하였다. 대우기전, 동해, 기아자동차 등에서 온 조합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김광식 현대자동차 위원장이 철탑위 농성장에서 무전기로 투쟁결의를 밝혔다. 조준호 금속산업연맹 수석부위원장은 목소리를 높여 투쟁을 얘기하기는 했지만 왠지 공허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집회중간에 노래패 '꽃다지'가 노래를 신나게 부르자 조합원들이 신나서 따라불렀다. 힘차게 팔을 뻗으면서 '단결투쟁가'를 부르고 나서, 꽃다지가 인사를 하고 들어가려고 하니 모두 "한번 더"를 연호 한다. 앵콜송으로 꽃다지는 '불나비'를 불렀고 모두 신나게 따라 불렀다. 이어 투쟁결의문 낭독을 하고 집회는 끝이 났다.

1998. 8. 15. 토

공휴일이라서 그런지 오늘은 일단 표면상으로 조용했다. 경찰병력은 서울에서 있는 범민족대회 때문에 빠져나갔다는 얘기가 있다. 효문로타리 근처에 전경차량이 몇 대 대기해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병력이 보이지는 않았다. 일주일 내내의 긴장감이 오늘은 다소 누그러 드는듯 했다.
저녁 8시에 본관 앞 광장에서 집회가 열렸다. 공휴일이고 휴무인대도 8천여 명이 모였다. 가족들의 참여가 많이 보였다. 집회장 주변은 미리 설치된 각양각색의 깃발이 설치되어 있었고, 집회에 참석하는 조합원들도 노동조합에서 나누어준 깃대와 천으로 깃발을 만들어서 들고 왔다. 집회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이미 언론에서 공공연히 공권력 투입이 임박했다고 밝히고 있는 상황이어서 그런지 집회의 주된 내용은 공권력 투입에 대한 규탄과 대응이 있었다.
사측에서는 SOS7이라는 용역업체에 폭력배 용역을 요청해 놓은 상황이다. 어제 스포츠신문에 sos7에서 '무술유단자. 특수부대 출신, 영남지역 활동가는 한 자'라는 조건으로 인원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냈다. 노동조합에서 확인한 바로는 사측에서 직접 면접을 보면서 현장내에 파견되어 현장을 교란하는 활동을 위한 용역폭력배를 선발하고 있다고 한다. 이미 사수대 복장을 입고 밖에 나갔던 조합원이 정채불병의 괴청년들에게 집단구타를 당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오늘 집회에서는 이에 대한 규탄도 있었다.
집회에 참가한 조합원들은 무대에 있는 문선대의 노래와 율동에 맞춰 집단적으로 노래를 부르면서 선동무를 따라하였다. 수많은 집회와 긴장감 속에 조직적으로 단결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요즘 집회에서 나타나는 모습중의 하나는 집회를 보기위해 정문 앞 육교에 모여든 주민들을 소개해 주는 것이다. 각 사업부별로 참가한 대오를 소개하면서 마지막으로 육교 위에 있는 주민들을 소개한다. 주민들은 사회자가  소개하면 박수를 치거나 손을 흔들어  보이고, 조합원들은 박수로 답한다. 오늘 집회에서는 노동조합 여성부장과 3명의 여성대의원들이 삭발식을 가질 예정이었지만 비대위 회의에서 만류하는 바람에 취소되었다고 한다.  이번 투쟁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투쟁하는 대오중의 하나가 식당 아주머니들이기 때문이다.  식당 아주머니들은 대부분이 생계를 직접 이끌어가는 상황인데 전원이 정리해고 대상이어서 가장 적극적으로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래서 집회에서는가족대책위 아주머니들과 함께  아주머니 조합원들이 소개되곤 한다.
오늘 집회에서는 정리해고에 대한 화형식이 거행되기도 하였다.
집회를 마친 조합원들은 모처럼 농성장에서 술자리를 가졌다. 일부 사업부만 보기는 하였지만 오래간만에 전체가 모여서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는 흥이 나는 술자리가 만들어졌다.
내일부터는 공권력투입에 대비해서 바리케이트를 보강하고, 노동조합 차원의 공식적인 지침이 내려진다고 한다. 잠시 오늘 숨을 돌리고 나서 긴강감이 높아지는 상황이 이어지게 된다.

1998. 8. 16. 일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비가 와서 모두들 농성장에서 TV를 보면서 휴식을 취했다. 라면을 끓여먹고, 파전에 술도 간단히 한잔씩 했다. 범민족대회 때문에 올라갔던 병력이 내려오고 있다는 소식이 있었다. 저녁에 전경차량이 이동하는 모습이 보이기는 했지만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공권력 투입에 대비해서 노동조합에서 끝까지 투쟁한다는 지침이 내려졌다. 조합원들의 농성참여를 독려하는 작업도 이루어진다고 한다. 언론에서는 특별한 상황이 없어도 연일 현대자동차 소식을 내보내고 있다.

1998. 8. 17. 월

새벽부터 헬기가 인근 상공을 떠다니기 시작했다. 아침 출근길에 회사앞에 전경들은 보이지 않았다. 회사근처는 조용했다. 공설운동장에서는 사측에서 벌이는 정상조업 촉구 결의대회가
있었다. 다수의 관리자와 조반장 등이 작업복 차림으로 차에서 내리고는 공설운동장으로 향했다. 노동조합 사수대의 진입을 차단하기 위해 전경과 경비들이 공설운동장 입구를 차단하고 있었다. 관리자와 하청업체 직원 등 1만2천여 명이 모여 궐기대회를 하고, 정상조업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유인물로 선전전을 벌였다.
회사 주변 도로에는 전경들이 벌로 없었지만, 수십대의 전경차량과 지휘차량, 페퍼포그 등이 이동하는 모습은 가끔 보였다. 언론에서는 공공연히 공권력투입이 임박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1백여 개 중대 1만 2천여 명의 병력이 인근 초등학교 등에 집결되어  있다고 보도되고 있다. 노동부장관이 저녁에 중재를 위해서 내려오기는 하였지만 노동조합에 정리해고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으로 중재를 하고 있어 공권력 투입을 위한 명분쌓기라고 언론에서까지 비판하고 있다.
본관앞에서 열린 저녁 집회에는 가장 많은 2만여 명의 조합원들과 가족들이 모였다. 공권력 투입에 맞서 끝까지 투쟁할 것을 힘있게 결의했다. 가족대책위와 애들이 무대위로 가득 올라가서 가족들도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비장한 결의를 밝혔다. 어린애들은 집회 이후 밖으로 내보냈지만 아주머니들은 많이 남아있었다.
경찰은 하루종일 헬기로 현장 상공을 순회하면서 농성대오의 위치와 움직임을 감시하였다.
노동조합은 중앙농성대오에서 떨어져 있는 천막을 중앙으로 이동하였고, 요소요소에 바리케이트를 쌓으면서 공권력 투입에 대비하였다. 사업부별로 쇠파이프와 볼트 등 만약을 대비한 준비물들이 이동되었다.

1998. 8. 18. 화

새벽에 공권력의 도발이 있었지만 사수대와 아주머니들의 완강한 저항으로 일단 물러났다. 언론에서는 본격적인 진압을 앞둔 예행연습이라고 한다.
전경차량과, 포크레이, 페퍼포그 등이 도로 한 편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오후에는 전경들이 각 정문을 완전히 차단하여 버렸다. 조합원들은 쇠파이트로 무장한 가운데 각종 구조물로 바리케이트를 보강하고, 정문에는 출고대기중인 차량들을 몰고 와서 바리케이트를 쌓기도 하였다. 사측은 헬기를 통해 최후통보라는 내용의 삐라를 뿌렸다. 일촉즉발의 긴장된 분위기가 팽배했다.
저녁 6시 지역집회가 정문 앞에서 있었다. 전경들이 이미 도로와 육교, 정문 앞까지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집회장소를 확보하기 위해서 도로를 점거한 채 전경들과의 몸싸움이  있었다. 집회자체를 봉쇄하려는 경찰들은 집회장소를 장악하고는 도로에 내려온 대오를 밀러붙이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현대중공업의 한 동지가 부상을 당하여 긴급히 후송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건물위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주민이 화분을 전경들에게 집어던지기도 하였다. 몸싸움끝에 대오들이 불어나고 공간이 확보되자 건물위에서 지켜보던 주민들이  박수와 환호성을 보내왔다. 잠시후 현대정공 조합원들 200여 명이 대오를 지어 집회장소로  오면서 다시 주민들의 박수와 환호성이 있었고, 힘을 얻은 집회참가자들은 다시 정문 앞 집회장소에서 경찰이 철수할 것을 요구하면서 몸싸움이 있었다. 현장 안에 있는 현대자동차 조합원들도 담이나 정문 경비실 위로 올라와서 지켜보면서 응원을 하였다. 몸싸움이 있을  때는 경비실 위에 있던 현자 조합원들이 쇠파이프 등을 집어던지면서 같이 싸움을 벌이기도 하였다. 결국 정문을 막고 있던 경찰병력이 철수하면서 집회장소가 확보되어 4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집회가 열렸다.
바리케이트를 사이에 두고 현장 안에는 현자 사수대, 정문 앞에서는 지역 동지들, 육교를 포함한 사면에 전경, 건너면 건물 옥상과 창문들에는 지역주민들이 자리를 차지하였다. 연사로 나선 지역의 동지들은 모두 정부를 강력히 비판하면서 광주의 금남로처럼 울산의  양정동을 만들자고 결연한 의지를 밝혔다. 지역주민들은 노래를 같이 부르거나 구호를 같이 외치지는 못해도 같이 박수갈채를 보내면서 집회에 함께 했고, 집회참가자들도 2시간 가까이 쭈그려 앉아서 진행되는 집회인데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면서 연대투쟁의 결의를 다졌다.
지역집회가 끝난 후 현대정공 조합원들은 정공에서 공권력 투입에 대비한 철농에 들어갔고, 현대중공업 조합원들은 막바로 열린 현대자동차 저녁 집회에 참가하였다.
전경들은 명령에 따라 저지는 하지만 이미 현장과 지역 동지들, 그리고 주민들까지 함께 하나가 된 기세에 완전히 눌려 있는 것이 역력했다. 나중에 정문에서 철수하는 전경들에게 백골단이 몽둥이질하는 것을 거세게 항의하기도 하는 상황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 사기를 올리기 위해 전경들은 이동하면서 전에 없이 고함을 지르면서 구호를 하였다.
저녁에 국민회의 노무현 부총재를 비롯한 중재단이 내려와 긴급 중재에 들어갔다는 뉴스가 나왔다. 내일까지 중재를 하고, 중재기간에는 공권력 투입을 자제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한다. 언론에는 일제히 톱뉴스로 다루었고, 외국 취재진까지 취재를 와 있는 상황이다.
현장에는 긴장감이 매우 높은 가운데에도 4천여 조합원들을 비롯하여 가족대책위까지 빠져나가는 인원 없이 농성을 계속 벌이고 있다.

1998. 8. 19. 수

오늘 하루는 정중동이었다. 병력들은 인근도로와 각 입구를 차단하고 있었고, 사수대는 각 정문별로 경비를 서고 있었다.
오늘 하루는 국민회의 중재단의 활동이 중점적으로 진행되었다. 언론에 보도된 바에 의하면 국민회의 중재단은 식당아주머니로 정리해고 대상을 최소화하고(하청이관시 고용승계), 2년 무급휴가를 3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의 중재안으로 활발한 중재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 내일 오전이 데드라인이라고 했다.
공권력 투입에 대한 명분용 중재였던 노동부장관의 중재보다는 실제로 중재를 성사시키려는 모습이 적극적이기는 하지만 결국 정리해고를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누구보다도 가장 적극적으로 투쟁을 벌여왔던 식당아주머니들의 문제는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그리고 무급휴가라는 것도 사실상의 정리해고이기 때문에 사실상의 항복선언을 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아직 노사 양측은 이러한 국민회의 중재안에 대해 기존입장을 고수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내일 오전이 되면 중재안을 받아들여 백기투항을 하든가, 중재가 실패하여 공권력이 투입되든가 둘 중의 하나가 결정이 될 것이다.

1998. 8. 20. 목

국민회의 중재단을 중심으로 한 노사정간의 중재가 계속 이어졌다. 낮에는 인근에 배치된 병력이 다소 줄어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오후가 되면서 두 대의 헬기가 공장과 인근지역을 계속 돌아가면서 상황을 살피기 시작하였고, 저녁이 되면서 병력들이 전진배치 되었다.
낮에는 민주택시연맹 소속 택시들이 차량시위를 벌이기도 하였고, 국제금속노련도 정리해고를 반대한다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중재단의 중재안이 알려지면서 현장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가장 선봉에서 싸워왔던 식당아주머니들과 100여 명을 정리해고 하는 선에서 정리해고를 최소화한다는 것이 정부 중재안의 핵심내용이었다. 이 중재안을 중심으로 협상이 타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긴장감이 감돌면서 저녁 9시 노사정간의 협상을 앞두고 현장조직 민투위가 정리해고 반대와 기만적  중재안 반대를 외치는 집회가 열리기도 하였다.
저녁 10시경 후문 앞에서는 경찰의 봉쇄에 항의하면서 사수대와 조합원들이 대치하여 긴장감이 높아지기도 했다.

1998. 8. 21. 금

노조가 정부 중재안을 받아들였지만 사측이 중재안 내용이 지나치게 노조측 입장만을 감안한 것이라며 반발하면서 막판 타결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오후들어서는 일부 언론에서 거의 타결이 되었다면서 분위기를 타결로 몰아갔다.
현장은 계속 술렁거렸다. 정부 중재안이라는 것이 정리해고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얘기들이 나왔다. 노동조합을 믿어야 한다는 얘기, 노동조합이 정리해고를 인정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얘기, 그래도 현실적으로 어쩔수 없지 않느냐는 등의 얘기들이 나왔지만 공식적으로 얘기들이 논의되는 것은 아니었다.
언론에서 상황을 타결로 몰아가고, 경찰병력도 어느 정도 줄어들면서 이렇게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냐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런 가운데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가 현대자동차 근처에서 잡았던 집회도 취소되었다.
저녁 7시 30분 본관 앞에서 협상내용에 대한 보고대회가 있었다. 5천여 명의 농성조합원과 가족들이 참여하였다. 열기가 아주 드높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조합원들은 힘있게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따라했다. 사전문화행사는 아주 짧게 끝났고, 본대회가 시작되자마자 김광식 위원장이 협상 진행내용을 설명하였다.
김광식 위원장은 먼저 기자들에게 이후에 노동조합에서 정식으로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니 집회장소에서의 카메라 찰영를 말아달라는 부탁을 하면서 시작했다. 위원장은 위원장으로서의 고민과 어려움을 토로하고 조합원들의 어떤 비판도 이후에 수용하겠다며 노사정간의 협상과정을 설명하였다. 오늘 협상을 앞두고 언론에서 이런 저런 얘기들이 나왔지만 정부중재안이 공개된 것을 오늘 협상 과정에서 였다는 점, 그런 상황에서 노동조합이나 사측이 이 중재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조건이었다는 점, 위원장으로서 조합원들의 안정과 이후의 모든 상황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점,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나 차차선을 선택해야 한다는 점등을 근거로 늘어놓고 나서 정부중재안과 그를 놓고 노사가 벌였던 협상 내용을 설명하였다.
내용의 핵심은 정부는 회사측이 통보한 1,538명의 정리해고 대상자를 250~300명으로 최소화한다는 것이었다. 그 외에 순환휴가제 문제나. 고용안정기금 문제, 고소고발 취하문제 등이 있었지만 핵심은 정리해고를 받아들인다는 것이었다. 사측은 아주 완강히 이런 노조와 정부의 중재안을 거부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었다.
위원장의 연설 도중에 여기저기에서 항의가 잇따랐다. 그래도 위원장은 끝까지 얘기를 계속했다. 뒤쪽 대열에 있는 조합원들은 항의도 제대로 못하고, 대열에서 "씨발, 씨발"거렸다.
위원장은 조합원들이 계속 항의하자 이후에 어떠한 책임도 질 것이고, 조합원 총회를 통해서 모든 내용을 조합원들 앞에서 심판받겠다고 얘기했다. 조합원들의 항의가 계속  이어졌지만 위원장은 얘기를 마치고는 연단을 내려가 버렸고, 나머지 집행부와 비대위원들도 따라서 연단을 내려가버려서 순식간에 집회가 끝나버렸다. 사회를 보던 조직실장이 정리를 하기 위해 투쟁가를 부르자고 하였지만 조합원들은 거의 따라 부르지 않았고, 구호도 따라하지 않았다.
사회자가 급하게 집회를 끝내버렸다. 조합원들은 술렁거리면서 해산하기 시작하였다.
조합원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하여 잠시 후 무대 위에 조명이 다시 들어오고 한 아주머니가 올라와서 마이크를 잡았다. 빠져나가던 조합원들이 주춤하였다. 아주머니는 자신은 식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 조합원들을 대표하는 대의원인데 오늘 대의원직을 시퇴했다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오전에 김광식 위원장이 식당 아주머니들을 불러서 식당 아주머니 조합원들에  대한 정리해고가 불가피하다면서 위로금을 2천만원 정도로 얘기하였다는 상황을 보고하였다. 조합원들이 술렁거렸다. 위원장을 욕하는 얘기는 하지말라는 조합원들과 끝까지 얘기를 들어보자는 조합원들의 고함이 오고갔다. 몇몇 동지들이 무대위로 올라가서 마이크를 잡고 자본가와 공권력 앞에서 분열되어서는 안된다,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투쟁하자면서 분위기를 잡아가면서 즉석 집회가 자리잡혔다. 몇 명이 동지들이 마이크를 잡고 정리해고를 인정하는 정부의 중재안과 노동조합의 양보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선동이 있었고, 조합원들은 박수와 환호성으로 답했다. 매우 어수선한 가운데 즉석 집회가 마무리되었다. 무대 앞쪽에 있었던 가족대책위는 약식집회가 끝난 후에도 남아 정리해고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확인하였다. 조합원들은 각자의 텐트로 돌아가면서 매우 심하게 술렁거렸다. 싸움이 끝난 것이 아니냐면서 농성장을 이탈할려는 움직임도 있었고, 여기저기에서 토론들이 진행되었다.
매우 어수선한 가운데 가족대책위 아주머니들이 가정 먼저 노동조합 앞으로 이동해서 항의집회를 가졌다. 위원장과의 면담을 요구하였지만 조합회의가 잡혀있어서 면담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가족대책위 회장이 조합회의 이후에 면담과 이후 행동을 얘기하겠으니 일단 텐트로 돌아가자고 얘기했지만 아무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조합이 입장을 밝힐 때까지 조합 앞에 있겠다는 것이었다. 가족대책위 회장단의 계속된 해산 종요로 가족대책위는 해산하였다.
여기저기에서 이탈하는 조합원들을 방지하고 토론이 들어갔다. 30분쯤 후 사수대를 중심으로 각 사업부별로 대오를 지어 노동조합 앞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1천여 명이 노동조합 앞에 모였다. "정리해고 분쇄하고 고용안정 쟁취하자" "집행부는 각성하고 정리해고 철회하자" 등의 구호가 이어졌다.
잠시후 위원장이 마이크를 잡고 위원장의 고민과 어려움 등을 얘기하였다. 모두 숙연하게 위원장의 얘기를 들었지만 위원장은 자신의 고민과 어려움만을 얘기하면서 정리해고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조건만을 장황하게 설명하였다. 위원장의 변명이 길어지자 조합원들이 짧게 하라는 얘기가 나왔고, 위원장의 얘기가 끝나자 여기저기에서 항의가 이어졌다.

남성 조합원 : 저는 지금까지  위원장님과 비대위의 지침에 따라 충실하게 투쟁해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위원장님이 하신 말씀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무엇 때문에 투쟁을 해왔습니까? 지금 와서 정리해고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위원장님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요.

남성 조합원 : 저는 제 동생이 정리해고 되어서 지금까지 투쟁하고 있습니다. 우리 조합원들은 이렇게 투쟁열기가 좋은데 지금 무엇이 두렵습니까? 공권력이 두렵습니까? 그까짓 공권력 우리는 두렵지 않습니다. 충분히 막아낼 자신이 있습니다. 어짜피 작살나는 거라면 저 더러운 회사측과 공권력과 싸우고 깨지면서 작살나면 났지, 지금 이렇게 노동조합에 배신을 당할 수는 없습니다.

가족대책위 아주머니 : 저는 이번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부터 싸움을 해야된다면서 지금까지 계속 해오고 있습니다. 몇일 전에 우리 얘가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30여 일 동안 너무 힘들게 농성하다보니까 애가 병이 들었습니다. 의사선생님이 대체 어떻게 했길래 애가 이 모양이 되었냐고 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투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투쟁을 하기 전에는 운동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평범한 아내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정리해고만큼은 막아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투쟁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원장님 힘내시고 다시 한 번 단 한 명의 정리해고도 없다는 입장을 확인해 주십시요.

남성 조합원 : 얼마전에 제 아들이 경련을 일으켰습니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손발이 비틀어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저는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위원장님, 왜 그런 약한 소리를 하십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왜 투쟁을 하고 있습니까? 저희는 정리해고를 인정할 수 없습니다.

식당 아주머니 : 오늘 오전에 위원장님이 불러서 조합에 올라가서 얘기를 들었습니다. 정말 어렵다면 저희들이 희생하겠습니다. 저희들이 나가서 나머지 조합원들이 살 수 있다면 저희들이 나가겠습니다. (조합원들, '그럴순 없다'라고 고함이 떠졌다)

남성 조합원 : 왜 식당 아주머니들이 나가야 합니까? 좆팔리지도 않습니까? 약한 여자들이 나간다는 것은 우리 남자들에게는 너무도 좆팔리는 일입니다. 우리는 약한 사람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약한 여자들을 쫒아내고 식당에 가서 밥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정리해고 되어야 한다면 제가 나가겠습니다.

남성 조합원 : 저는 솔직히 이번  싸움 끝나면 회사를 그만둘 생각이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고향에 내려가서 농사라도 지으면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주영이, 그 새끼 꼬라지가 미워서 지금까지 투쟁하고 있습니다. 위원장님 삭발할 때 많이 울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게 뭡니까?

남성 조합원 : 위원장님 아까 조합원 투표를 통해 심판을 받겠다고 했는데 말이됩니까? 지금 회사에서는 조반장이나 농성에 참여하지 않는 조합원들 일당주면서 여기저기 돌러다니면서 술주고 놀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좆빠지게 투쟁하고 있는데 이런 우리랑 그런 놈들하고 똑같이 투표하자는 것이 말이 됩니까?

가족 대책위 아주머니 : 위원장님, 저희는 위원장님이 어렵고 힘든 거 다 압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 대답해 주십시요, 왜, 머리를 자르면서 관에다가 집어넣고 정리헤고가 철회되지 않으면 내려가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 중재안과 모든 양보안을 철회하고 끝까지 투쟁하십시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관을 불태우십시요. 저희는 공권력이 하나도 무섭지 않습니다. 싸워서 이길 자신이 있습니다.

계속되는 조합원들이 항의에 위원장은 그저 "여러분의 뜻을 잘 알겠습니다. 열심히 투쟁하겠습니다"라고만 답했다. 조합원들이 명확한 입장을 얘기해달라고 요구하였지만, 위원장은 자신을 몰아붙이지 말라고만 하고 집회를 마무리하였다. 그리고 나서 조합원들은 "앞으로 한 달은 더 투쟁한다"면서 집행부가 제대로 된 투쟁을 벌이길 바라면서 텐트로 돌아갔다.
저녁뉴스와 마감뉴스에서는 정부와 노동조합이 중재안에 합의를 했는데 회사측이 거부하고 있다면서 분위기를 몰아갔다. 현장에서 있었던 조합원들이 분노와 항의에 대해서는 전혀 보도가 없었다.

1998. 8. 22. 토

오전에 굴뚝 고공농성투쟁을 벌이고 있던 윤성근 전위원장이 정부중재안 수용에 대해 노동조합 사수와 생존권 사수투쟁의 기본정신에 위배된다는 내용으로 편지를 보내왔다.  윤성근 전위원장의 편지는 복사되어 각 농성텐트에 나누어졌다. 농성 조합원들은 협상의 진행과정과 정리해고를 수용하는 노동조합의 입장에 대해 토론을 벌이면서 농성투쟁을 계속 했다.
오후 들어 가족대책위가 먼저 협상이 진행되고 있던 본관 앞으로 이동하여 항의집회를 가지기 시작하였다. 민투위는 대오를 지어 농성장을 돌면서 기만적인 중재안 반대와 정리해고 완전 철회를 요구하는 선동을 벌이면서 본관앞 항의집회에 결합하였다. 가족대책위, 민투위, 식당 아주머니 조합원 등 200여 명이 조합원들은  본관 앞에서 "단 한 명의 정리해고도 받아들일 수 없다" "기만적인 정부중재안 반대한다" "공권력은 즉각 철수하라"는 등의 내용으로 끝까지 죽기를 각오하고 투쟁할 것을 결의하였다.
오후 3시 30분부터 시작된 1차 항의집회는 6시까지 진행된 이후 저녁식사를 마치고, 다시 저녁 8시부터 2차 항의집회가 이어졌다. 가족대책위, 민투위, 식당 아주머니 조합원 등이 참여하는 2차 항의집회가 이어지는 도중 저녁 9시경 사수대원 전원이 본관 앞으로 대오를 형성하여 항의집회에 결합하였다. 사수대가 결합하면서 3백여 명으로 불어난 항의집회 대오는 힘있게 투쟁가와 구호를 외치면서 '중재안 박살, 정리해고 철회'등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한편 집회도중 정리해고 통보를 받고 농성투쟁을 벌여왔던 종합사업부의 장항규 조합원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와 참가자들의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하였다. 장항규 조합원의 사인은 스트레스에 의한 심장압박사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어 9시 30분에는 본관앞에서 노동조합의 협상 보고대회가 열렸다. 오늘 집회에는 어제 이후 농성 조합원들이 다소 농성장을 이탈하는 등의 여파로 평소보다 인원이 줄어 3천여 명의 조합원들이 참여하였다. 그리고 문선대도 노동조합의 협상태도에 항의하여 이날 집회 문선을 거부한다고 하였다.
집회가 시작되었지만 조합원들의 구호와 노래 소리는 힘이 없었고, 사회를 보는 조직실장의 독려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박유기 기획실장은 교섭보고를 통해 오늘 오전 11시부터 저녁까지 노사정간에 실무협상과 본교섭을 계속 진행하였지만, 정리해고자에 대한 대책문제, 고용안정기금 문제, 리콜보장  문제, 고소고발 및 각종 재산가압류 철회문제 등에 대해서 노사간에 이견이 계속 맞서 더 이상 협상을 계속 할 필요가 없어서 협상장을 나왔다는 보고가 있었다. 이에 조합원들은 환호성과 박수로 답하였다.
김광식 위원장도 대회사를 통해 "더 이상 협상을 통해 얻을 것은 없다. 지금까지 노조에서 밝혔던 2천7백억원에 달하는 임금삭감안을 철회한다. 더 이상 비굴하게 머리 숙이면서 협상에 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후 더욱 힘있는 투쟁을 위해 투쟁대열의 정비와 조합원들의 참여를 다시 조직하자"고 투쟁의사를 밝혀 조합원들과 가족들의 열화와 같은 환호성과 박수가 이어졌다.
농성 조합원들은 집회를 마치고 농성텐트로 돌아가 이후 투쟁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면서 투쟁대오를 다시 정비하였다.

8. 23. 일

오후 2시 태화강 둔치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정리해고 저지와 민주노조 사수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렸다. 전국에서 3천여 조합원들이 관광버스 등을 통해 내려왔다.

이갑용 민주노총 위원장 : 지난 5월과 7월 두 번에 걸쳐 총파업 문턱에서 총파업이 좌절되었다. 그 이후 개별 단사에서 직격탄을 맞았다. 현대자동차가 투쟁을 벌이고 있을 때 민주노총은 약한 모습을 보였다. 오늘 이 자리를 그런 약한 모습을 극복하는 자리이다.
나는 현대중공업에서 위원장으로 투쟁할 때 '골리앗의 외로운 늑대'라고 불리웠는데, 민주노총 위원장이 되고 나서 '양치기 소년'으로 불리우고 있다. 더 이상 양치기 소년이 되지는 않겠다. 재벌과 정권은 하나로 뭉쳐서 싸우고 있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하반기에 정리해고 철회투쟁 반드시 해야한다. 하반기에 전체가 뭉쳐서 정리해고 철회투쟁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싸워서 깨지는 한이 있어도 원칙과 명분은  지켜져야 한다. 하반기 투쟁을 힘있게  벌여나가자.

권영길 민주노총 전 위원장 : 이후 어떠한 사업장에도 공권력이 투입되면 민주노총과 민중의 이름으로 정리해고 철회와 경제파탄 책임을 묻기 위한 범국민 운동을 벌이겠다.
현대자동차 협상이 만약 불만족스러운 내용으로 타결되더라도 인정해주자. 이는 패배가 아니라 이후 좀더 힘있는 투쟁을 위한 시작일 뿐이다. 그리고 만약 타결되지  않으면 현대자동차 앞에서 연좌농성이라도 벌이자.

현대자동차 가족대책위 : 우리는 지금까지  처절한 투쟁을 벌여왔다. 지금 우리는  서너살된 어린 자식들과 함께 투쟁을 벌이고 있다. 언론에서는 어린 아이들을 볼모로 투쟁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내 자식새끼와 내 남편이  길거리로 내몰리게 되었는데 투쟁하지 않은  부인이 어디있겠는가?
공권력, 우리는 전혀 두렵지 않다. 공권력 들어올테면 들어와라. 들어와서 만삭이 된 임산부를 짖밟고, 우리 어리 자식들을  짖밟을려면 짖밟아라. 우리는 정리해고가 철회되지  않는한 한 발자국도 물러설수 없다.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대오를 지어 현대자동차까지 두 시간 동안 가두행진을 벌였다.
가두행진 대오가 현대자동차에 다다르자 경찰병력이 행진을 가로막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현장에 있던 사수대를 비롯하여 조합원들이 급히 출동하였다. 상공에서는 두 대의 경찰 헬기가 상황을 감시하고 있었다. 잠시 후 경찰은 봉쇄를 풀었다. 정문 앞에서는 사수대와 조합원들이 몰려와 있었고, 육교와 인근 건물 위로는 주민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깃발을 앞세우고 행진해오자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이 환호성과 박수로 답하였다. 행진대오는 사택 운동장으로 이동하여 정리집회를 마치고 해산하였다.
저녁 뉴스에서 277명을 정리해고 하는 내용으로 협상타결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에서 심하게 술렁거렸다. 일부 사수대원은 쇠파이프로 철근구조물을 내리치면서 분노를 표시하기도 하였다. 여기저기에서 토론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분주하게 정확한 상황을 알아볼려고 사람들이 움직이기도 하였다.
저녁 7시 30분에 본관 앞 광장에서 집회가 열렸다. 4천여 명의 조합원과 가족들이 모였다. 드높았던 열기는 찾아 볼수 없었다. 문선대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문선을  거부하고, 음반주자와 최소한의 노래패만이 집회문선에 참여하였다.
사회를 맡은 조직실장은 "싸움의 방식에 대한 차이가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전체가 하나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분열되지 말 것을 강조하였다.
김광식 위원장도 대회사를 통해 "오후에 노동부장관이 최종중재안을 제시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그러나 납득할 만한 안이 나오지 않아서 거부하고 나왔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마치 노사간에 협상이 타결로 나가는 것처럼 보고하고 있다. 위원장은 조합원이 수용할 수 있는 안이 나오면 조합원들에게 의견을 먼저 묻겠다. 오늘 정부에서 제시한 중재안은  비대위를 통해서 전달하겠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조직실장이 "이후 예측되는 사측의 여러 가지 탄압 속에서 무력화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조합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다시 이끌어내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집회가 마무리되었다.
아주 짧고 별다른 열기가 없는 집회였다. 여기저기에서 노동조합의 명확하지 않은 방침에 대한 문제제기들이 있었고, 토론들도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고기를 구우면서 회식을 하는 곳이 많았다.

8. 24. 월

새벽 극적 대타협이라는 소식이 아침뉴스에 집중적으로 보도되었다.
식당아주머니 177명을 포함한 277명 정리해고, 정리해고자에 대한 위로금 지급, 정리해고 통보자 중 나머지 인원은 1년 6개월간 무급휴가, 정상조업을 위한 노력이 있을 시 고소.고발 최소화하도록 노력 등의 내용으로 합의되었다.
새벽에 타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노동조합으로 찾아간 조합원들에게 노조는 아직 타결된 것이 아니다라고 발뺌하다가 뉴스를 통해 보도되자 협상타결을 시인하였다. 이에 격분한 조합원들이 노동조합 앞으로 몰려가 사수대 옷을 벋어던지져 불을 태우고, 각종 깃발 등을 함께 태워버렸다. 위원장이 삭발식을 하면서 "관에 묻혀서 내려오는 한이 있어도 단 한 명이라도 정리해고를 인정할 수 없어며, 정리해고가 철회되지 않으면 내려오지 않겠다"며 노동조합 위 철탑에 메달아 놓았던 관을 내려서 같이 불태워 버렸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에 돌을 던지면서 유리창을 깨기도 하였다.
많은 농성조합원들이 허탈한 마음을 안고 농성장을 빠져나갔다. 식당아주머니, 가족대책위, 사수대, 현장조직 활동가, 열성조합원 등 열심히 선두에서 투쟁을 해왔던 조합원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놓고 토론을 벌였으나 별다른 대안이 나오지 않았다.
상황이 다소 진정되자 위원장이 식당에서 대의원과 간담회를 갖겠다고 하여, 간담회에 가서 많은 대의원과 조합원들이 분노섞인 항의를 하였지만, 위원장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투쟁이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되어야 한다'는 등의 얘기로 자신의 입장을 강변하였다. 누구하나 동의하기 어려운 위원장의 강변에 거세게 항의를 하던 조합원들은 농성장을 빠져나갔다.
오후 들어 농성장은 전쟁이 끝나고 폐허만이 즐비한 전쟁터였다. 휑하니 늘어져 있는 천막들과 휴지들만이 어지럽게 날리고 있었을 뿐이다. 청소부 아주머니들은 어디부터 청소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아 손을 놓고 있었다. 그 와중에 가장 신이 난듯이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는 것은 기자들 뿐이었다. 정리해고가 확실해진 식당 아주머니들만이 농성장을 지키고 있었다. "떳다! 아지메 부대. 열받았다"라는 구호가 천막 위에서 그대로 나부끼고 있었다.
사측은 내일부터 휴업을 철회하고 정상조업을 한다고 공고를 붙였고, 바리케이트들은 저녁쯤에 다 치워져 있었다. 양정동은  전경들도 사라지고, 농성조합원들도 사라진 가운데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저녁에 식당 아주머니들이 본관으로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면서 항의농성을 가서 마지막 몸부림을 쳐봤다. 노동조합 마저 배신하고 등을 돌린 상황에서 울부짖으면서 몸부림을 쳐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아주 짧은 뉴스거리를 제공할 뿐이었다.
언론에서는 노동조합에 상당히 유리한 타협이라는 듯이 집중적인 보도를 하고 있다.
몇몇 만날 수 있는 동지들은 '정리해고를 축하합니다' '양정동민 여러분, 현대자동차 좆됐습니다' '지금 안짤려도 어짜피 올해 안에 짤릴 목숨입니다'라는 식의 자조 어린 대화를 웃으면서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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